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1화(51/343)
51.
그렇게 어색한 시간을 보내던 와중 견훤이 밖으로 나와선 우리와 갓에이에게 인사한다.
“어우, 다들 인물 훤칠한 거 봐. 반가워요, 견훤입니다. 동화는 더 잘생겨졌네. 카메라 마사지 덕인가?”
씨익 웃으며 말하는 견훤의 모습에서 약간 류이든이 보인 것은 착각일까.
실제로 관리를 한 덕분에 잘생겨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면전에 대고 이야기하다니, 심오한 사회성의 세계로군.
“…잘생겨졌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나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미간을 문질렀다.
그 의미를 알아챈 견훤이 웃음을 토해낸 뒤, 라디오에서도 그 정도 센스만 뽐내도 될 거라고 얘기한다.
“이제 5분 후에 시작이니까 지금 들어가죠! 이동!”
견훤을 따라 부스 안으로 들어간 우리가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 * *
“견훤의 저녁의 리듬 2부, 리듬전당포, 영업 개시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 코너는 사람들이 고민을 전당포에 맡기면 음악을 내준다는 기이한 콘셉트였다.
“오늘 저희 전당포를 봐주실 주인장분들로 뜨거운 신인 아이돌 블로센스와 갓에이의 멤버분들 모셨습니다.”
견훤은 우리 쪽을 먼저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블로센스분들, 우리 리듬중독자분들께 한 번씩 자기소개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이어진 자기소개 시간,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블로세스의 지동화입니다. 견훤 님을 무참히 살해한 사람이자, 전당포에 제 자작곡을 팔러 나온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고민 다 제가 사 가겠습니다.”
대본이다. 내 뇌가 절반 정도 축출되더라도 이딴 식으로 자기소개를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우와, 동화 씨 자기소개하자마자 ‘동화야, 오늘 왜 그래’라는 반응이 도배되기 시작했어요.”
분명 대본 읽어봤을 텐데 능청스럽게 세 치 혀로 거짓을 고하는 견훤에게 차마 욕은 못 하겠어서 답했다.
“…제가 보기엔, 이거 쓴 작가님이 저를 이상한 인간으로 묻으시려는 것 같습니다.”
“부스 밖에서 작가님이 크게 X 자를 그리고 계시네요.”
“…아쉽게도 저는 작가님 쪽을 보지 않을 예정입니다. 오해의 해소 없이 저를 음해하시려는 뜻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와… 역시 어휘력이 장난 없네요. 들어보니 팬분들 사이에선 동화 씨 말투나 사용 어휘가 소소하게 유행을 한다고?”
류이든이 재빠르게 말을 이어받았다.
견훤은 틀이 너무 과하게 잡혀있으면 라디오의 재미가 준다고, 약간은 자유로운 진행을 추구했으니, 이렇게 기회를 줄 때 바로 물어야 한다.
…고, 류이든이 어제 더럽게 강조했지. 귀찮아죽겠다, 잔소리꾼.
“네! 예전에 서바이벌 때 동화 형이랑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 미친 강아지가 롤러코스터에서 보였던 내 추태를 말하며 깔깔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부러 나를 ‘형’이라고 강조해서 불러,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여지를 흘렸다. …상당히 능숙하군.
류이든이 주도하고 내가 보조하고 석준이 사이사이 해괴한 대답을 끼워 넣어서 대화의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네, 그럼 이번엔 우리 갓에이분들이 소개해 주실 시간이네요.”
그러자 윤성호가 입을 먼저 열려다가, 옆의 ‘인간’을 보더니 눈짓했다.
“안녕하세요, 갓에이에서 리더 겸 카리스마를 맡고 있는 Y라고 합니다.”
…와우, 구려라. 저런 건 보통 회사에서 정해주는 걸로 아는데 대체 어느 미친 인간이 저런 센스를 가졌는지.
견훤은 별다른 말 없이 윤성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중독자 여러분! 갓에이에서 보컬과 끼를 담당하고 있는 성호입니다.”
…기왕이면 리듬중독자라고 풀 네임으로 불러줬으면 한다. 중독자라니 옆에 있는 놈을 지칭하는 데나 적당한 단어잖아.
물론 일부러 말실수를 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견훤이 성호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한다.
“중독자라니, 우리 리듬중독자분들께 혼 좀 나시겠는데요?”
견훤의 저런 반응을 끌어내려고. 만약 사실이라면 상당히 우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라디오에 두 팀이 나왔다는 건, 견훤의 관심을 두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허억! 죄송해요, 중독자분들! 제가 말실수를!”
…어, 그냥 지적으로 다분히 열등한 건가?
예비 마약중독자이신 Y 씨와는 다르게 다분히 성격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윤성호는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갔다.
Y 씨는 인성에 결함이 있는 게 틀림없는지 윤성호 위주의 토크에 불만스러운 표정이었고, 윤성호는 머릿속이 꽃밭인 건지 해맑기만 했다.
저런 걸 보면, 석준과 사이가 나쁜 인간은 확실히 못 될 인간이다.
그리고 약간의 아이스브레이킹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고민 상담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 라디오의 언어를 빌리자면…….
“드디어, 리듬전당포 영업 개시입니다!”
* * *
“리듬전당포는 여러분이 고민을 맡겨주시면, 이야기와 음악으로 바꿔주는 가게입니다. 머릿속에 가지고 있기만 하던 고민들을 모두 가져와 주세요!”
견훤은 사연지를 하나 꺼내 들더니 첫 번째 손님이라며 소개하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관악구에서 사는 스물한 살 대학생입니다.”
…흠, 내 학교 있는 곳이군.
“친구와의 관계를 끊어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아직 사연의 첫 글자도 듣지 않은 상태지만, 보통 그러면 끊는 게 맞는 선택지다.
“그 친구는 자주 제게 면박을 주곤 합니다. 제가 옷을 사 가면 너무 촌스럽다, 센스가 그게 뭐냐, 하고 이야기하고. 제가 일상에서 생긴 불만 같은 걸 얘길 하면 네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 이해가 안 된다, 라고 합니다. 원래 친구끼리 조금 말을 편하게 하곤 하니까, 참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대응이 조금 유하군.
“하루는 친구가 제게 어떤 부탁을 하길래 너무 바빠서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아무리 그래도 친구 부탁인데 왜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하냐, 우린 친구도 아닌 거냐, 별로 바빠 보이지도 않는다고 일주일 동안 이야길 했습니다.”
…아니, 왜 진즉 연을 끊지 않은 거지?
“문제는 이 친구와 제가 서로 친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제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으면, 다른 친구들이 불편해할 것 같았습니다.”
…음, 뭐, 그럴 수도 있겠군.
“네, 꽤 고가의 물건이 나왔네요. 뭘 결정하기도 상당히 애매한 고민이네. 혹시 누구 이 물건 감정해 주실 분 계신가요?”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강박 때문인지 Y 놈이 입을 열었다.
“저는 조금 더 명확하게 친구분께 그러지 말아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요. 연을 끊는 건 지나치게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니까.”
견훤이 그 답에 애매하게 웃으며 일단 받았다.
“음, 사실 고민 속에 있는 친구분 같은 성격이면, 그렇게 얘기해도, 너 또 예민하게 군다! 하고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무조건이지. 심리적으로 그 인간은 사연을 보내주신 분을 완전히 자기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즉, 저 인간은 남을 자신의 아래로 짓누르는 상황에서 만족을 얻는 인간인 거다.
나는 우선 입을 열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행위로 인한 보상이 생길 때 그 행위를 반복합니다. 가령 시험 기간에 휴대폰을 보는 행위가 정신적 만족도가 크기 때문에 그 행위가 반복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의 뜬금없는 심리학 강의에 류이든이 불안한 손길로 내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어제 정해둔, 지나치게 학술적으로 얘기하면 안 된다는 신호다.
“주제넘게도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친구분께선 말을 통해 손님분께 면박을 주고, 그 면박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주눅 드는 손님분의 표정에서 만족도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을 끊는 게 고민되신다면, 우선 그 만족도를 제공해 주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견훤이 묻는다.
“오, 지동화 감정사! 그럼 어떻게 보상을 주지 않나요?”
“너무 예민하게 군다, 라고 얘기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웃으며 네가 둔감한 거다, 라고 얘기해 주시고, 센스가 별로라고 얘기하면, 네가 유별난 거다, 라고 얘기해 주십시오. 친구 부탁인데 왜 이렇게 단호하냐고 묻는다면, 지나치게 남한테 의존적이라고 얘기해 주시면 됩니다.”
견훤은 내 특유의 말투에 웃음을 흘리다가 대답한다.
“그러니까 면박받고 주눅 드는 것 자체가 면박을 더욱 유발할 테니, 주눅 들지 말고 대응하는 거군요!”
“또다시 주제를 잊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만약 성격상 이렇게 대응하는 게 어려우시다면, 연을 끊는 걸 추천드립니다. 어차피 제대로 된 친구도 아닌 인간분 때문에 스트레스받느니 그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한다.
“다만, 만일 이렇게 하실 거라면, 친구 무리 중 입이 가벼우신 분이나 남 걱정이 많은 사람을 두 분 정도 골라서, 개별적으로 만나 고민 상담을 하신 다음에 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그 두 분 덕분에 친구 무리에선 이미 정치적으로 누구의 잘못인지가 확정될 거고, 연을 끊으신 후 생활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조언일 뿐, 제 말에 거부감이 드셨다면 싹 잊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쯤 와선 견훤이 껄껄 웃기 시작한다.
류이든은 이게 지나치게 냉정한 대답은 아닌가 잠시 당황한 것 같지만, 견훤과 PD 쪽의 표정을 빠르게 읽고는 같이 웃기 시작한다.
흠, 하긴 잔인하다는 이미지가 내게 있었지. …연예인은 대체 어떻게 사는 것일까.
“와, 실시간 반응이 한껏 뜨거워졌네요. 손님분께서 제시해 준 고민은 지동화 씨께서 맡는 걸로 하겠습니다. 동화 씨는 조금 있다가 음악으로 돌려주셔야겠죠.”
“…음,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듣는 것이?”
“에이, 사실 뻔한 대답이 나오기 쉬운 고민인데 이 정도면 충분히, 음… 그래, 잔인한 내용이니까 손님분도 나름대로 만족하실 거예요.”
…음, 잔인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겁니다.
류이든이 그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내 이미지를 정정한다.
“kf9845 님께서 저런 친구 있으면 모든 행실 바로 하게 될 거라고 해주시네요. 하긴 동화가 무표정으로 있으면 조금 냉정해 보이죠? 그런데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따스한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가끔 형이라고도 부르고.”
…친구가 있었던 적이 지금뿐이라 모르겠습니다, kf4895 님.
그걸 들은 석준이 펄쩍 뛰더니 말한다.
“제가! 동화 형님을 만나고 나서 상품 구매 전에 세 번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만일 샀다가 이전에 샀던 거면 동화 형님이 가만히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너무 잔인해서!”
…그건 무슨 개소리야, 이 멸종 동물 놈아.
“사실, 그건 또 그런 게, 동화가 기억력이 진짜 좋거든요. 거의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에 나름대로 신경 쓰였던 일은 일자까지 다 기억했다니까요. 그래서 저절로 뭘 해도 신경 써서 하게 되죠.”
이어지는 류이든의 말, 망할 놈이 또 이상한 이미지를 붙이려 드는군.
“이야, 그렇군요. 혹시 저랑 ‘디텍션’ 촬영했을 때, 그 전날에 어떤 사연이었는지 혹시 기억나시나요?”
견훤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음 짓는다. 히죽대며 자기 대본을 보는 게, 아마 준비해 온 질문 중 하난가 보군.
…하, 무슨…….
“…세트 뒤에서 말씀드렸던 사연은 경기도 안산 45세 가정주부분의 사연과 서울 강동구 학원 강사분의 사연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쉬운 문제를 내는 걸까.
그리고 이어지는 2초 정도의 정적. 라디오 특성상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잠깐, 설마.
“…틀렸나요, 혹시?”
그럴 리가 없는데. 요즘 잠을 좀 못 잤다지만, 그 정도 과거를 기억 못 할 리가.
“…아니요, 지나치게 정확해서요. 원래 놀리려고 준비해 온 건데. …리듬중독자분들 놀랍게도 이게 짠 게 아니에요! 와, 아직 소름이 돋네.”
견훤이 기이한 걸 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다시 웃음을 되찾는다.
“와… 역시 AI 그 자체네요. 사실 제가 ‘디텍션’ 세트에서 동화 씨가 사연 말하는 거 보면서도 그 생각했는데.”
그러며 자연스레 견훤은 ‘디텍션’ 세트장에 있었던 일화를 풀어낸다.
류이든과 석준의 시선이 양옆에 꽂히는 것이 느껴진다. 테이블 너머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견훤의 말에 호응하며 나를 보는 윤성호와, 굴욕적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시는 Y 씨의 시선까지도 생생하다.
“와, 블로센스건들면청부살인 님께서, ‘동화야, 네가 아이돌 되길 응원하느라 내가 대한민국의 발전을 막은 거 같아서 죄스러운데, 이 죄스러움이 미치게 좋아. 어떡할까?’라고… 보내주셨네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