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2화(52/343)
52.
결국 리듬전당포는 ‘잔인한 AI, 그러나 응원해 주고 싶은, 그런데도 배덕감이 느껴지는 지동화’라는… 개 같은 이미지를 내게 넘겨주고 막바지로 나아가고 있다. 와중에 공부법 상담이 와서 내 학창 시절 공부 방식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고.
“그건 또 그렇네요. 이든 씨가 블로센스 리더죠?”
“네!”
“와우, 블로센스 팀은 차가운 두뇌와 뜨거운 리더십을 모두 갖추고 있네요.”
…견훤은, 대체 왜 저런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지.
“네, 이제 모든 손님의 사연을 전당포에 수납했습니다. 이제 손님분들께 리듬으로 보답해 드릴 시간입니다. 블로센스는 어떤 리듬을 준비해 오셨나요?”
류이든이 침착하게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입을 연다.
“저희가 준비해 온 리듬은 총 두 곡입니다. 우선 귀여운 넷째 석준 씨가 소개해 주세요!”
“우선― 저희 타이―틀곡인― ‘클라우디 블루’를, 제가! 직접! 동화 형님의 도―움을 받아!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왔습니다!”
…대단히 자랑스럽나 보군. 목소리가 격앙되고 평소보다 말투도 빠릿빠릿하다.
“네, 그리고 다음 곡은 제 자랑스러운 형! 블로센스 공식 보물! 잔인한 고양이!”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참 류이든답게 개소리를 해대는군, 멍멍.
“동화 씨의 미발표 자작곡인, ‘절벽과 소년’입니다! 어떤 곡인지 소개해 주세요, 동화 씨!”
“…이든 씨에게 선물을 주려고 만든 곡입니다. 힘겨운 상황을 견뎌낸, 혹은 견디고 있는 모든 분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썼습니다.”
“네! 이번에는 제가 직접 가사를 썼어요! 많은 분께서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
마이크를 잡은 류이든의 손이 약간 떨렸다.
‘…하, 씨, 데뷔 무대만큼 떨리네.’
지동화가 써준 곡을, 이번 한 번 만에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된다.
좋은 호응을 받아야 다음 무대나 다음 앨범에 ‘절벽과 소년’이 불릴 기회가 생길 테니.
류이든은 일주일 넘는 기간 동안, 활동을 제하곤 가사를 쓰는 데만 집중했다.
지동화도 류이든과 함께 작업실에서 곡을 수정해 줬고.
‘…진짜 혼자 둬도 괜찮다고 그렇게 얘길 해도, 중증 일 중독자야.’
옆에서 마이크의 음향을 확인하고 있는 지동화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치자 지동화는 잠시 보더니, 입 모양으로 말한다.
(뭘 봐, 우리 팀 공식 강아지.)
‘…나, 형으로서 존경받고 있는 걸까?’
시무룩해진 류이든이 음향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 * *
고등학교 2학년, 남고생은 야작을 마치고 돌아와 고시원에 누웠다.
…인간의 전 생애는 불만족에 불과하다는 사르트르의 말은, 어쩌면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별 볼 일 없는 형편인 집안, 간절한 꿈이었던 예술전문고등학교에 합격하는 덕분에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중인 그는, 오늘도 홀로 자리에 누워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는다.
그나마 지금 이 순간, 좁아터진 고시원에서 생각을 정리하며 라디오를 듣는 순간만이 행복에 가장 근접한 순간일 것이다.
‘…지동화, 이분은 나랑 생각이 엄청 비슷하네.’
전당포에 올라오는 고민마다 ‘주제넘게 한 말씀 올리자면’이라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꾸준하게 하면서도, 그 내용은 냉정하게 그런데도 고민을 주신 분이 최대한 덜 아픈 방향의 해결책을 툭툭 내뱉는다.
‘…아, 이제 음악만 들으면 끝이구나.’
그렇게 잠들고 나면 또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친한 사람은 없는 학교에서 홀로 앉아 내가 미술에 재능이 있긴 한 걸까 싶은 생각에 막막해하며, 그런데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작업에만 매달리는, 그러다 실수라도 하면 부모님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죽을까?’
죽을 용기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습관처럼 죽음을 생각하는 하루의 익숙한 마무리.
그런 그의 귓가에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 한 네 대 정도의 기타가 합주로 약간은 음울하게 울려 퍼진다.
그런데도 묘하게 자신을 감싸는 것 같은 느낌. 그는 머릿속의 생각이 순식간에 지워내고 음악에 집중한다.
파도의 속삭임, 푸른빛의 향기들
새파란 구름의 틈에서 만난 우리들
‘…별 위에 둘이서 앉아있는 느낌.’
과학적으로 그랬다간 열기에 녹아 없어지겠지만, 왠지 이 음악 속의 ‘우리’라면 그런 최후조차 함께라서 괜찮다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어쩐지 익숙한 가사, 그는 어디서 들어봤는지를 생각해 본다.
‘…아, 이거 국어 쌤이 공감각적 심상 예시랍시고 틀어준 거.’
그냥 진도나 나가지 괜히 젊은 척한다고 욕했는데, 들어볼 걸 그랬다.
그렇게 우주 위에 떠있는 기분을 만끽하다가, 곧 노래가 끝난다.
―와, 저 이거 원곡을 아는데도, 완전 다른 곡 같았어요. 준 씨가 편곡을 직접 하셨다고 했죠?
―네, A&R팀이 도와주신다고 하셨는데, 자랑스러운 우리 고양이 지동화 형님이 거절하셨습니다. 저를 괴롭히려고!
이분 상당히 억울했는지 말이 완전 빨라지셨네. 그는 얇은 벽 너머로 웃음이 새지 않게 조용히 웃었다.
―이제 블로센스의 마지막 곡은, ‘절벽과 소년’입니다. 리듬중독자분들 귀 기울여 주세요! 자그마치 미발표 신곡!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곡. 피아노 소리가 낯선 음계로 움직인다.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아.
바이올린이 아주 조심스레 얹어지더니 머릿속에 거대한 벽을 연상케 하듯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순간 바이올린이 사라지더니, 미약한 피아노 소리만 남는다. 절벽과 그 앞의 작은 소년.
절벽 바위틈 사이에 손을 끼워 넣으면,
이 세상 나밖에 없는 것만 같아
흘러오는 바람에 내 두 뺨 스치면,
가끔은 포기해 버리고만 싶어
음은 조금씩 올라간다. 마치 소년이 절벽 틈에 손을 끼워 넣으며, 한 칸씩 올라가듯이.
떨어진다는 두려움, 올라가려는 집착
나는 언제쯤 절벽 위에 오를까
자괴감이 스며와, 울어버리는 순간
나는 결국 아무것도 아닐까
…류이든, 이라고 했나? 목소리가 약간은 낮고 거칠다. 순간 바람 소리가 피아노 소리에 뒤섞여 기묘한 화음을 이룬다.
절벽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손이 떠오른다. 이 절벽을 올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만다. 소년은 그 두려움에 상처받아 떨고 있다.
절벽을 오르던 건 내 뜻이었는데
어째서 이리도 두려워진 걸까
‘그러게… 미술, 진짜 하고 싶었던 건데, 왜 이렇게…….’
어려운 집안 사정과 평범한 수준의 재능 때문인지, 어느새 꿈은 집착으로, 희망은 두려움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리고 그때, 곡이 다시 한번 상승하기 시작한다. 바이올린의 스타카토가 힘찬 분위기를 만든다.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나면,
손끝에 새겨진 상처는 어떻게 기억될까
그리고 올라가던 곡은 툭 끊어지더니, 잠시 침묵한다. 소년의 추락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순간 약간 울컥하는 심정에 남고생은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우는 소리가 새어 나가면 컴플레인이 들어올 거다.
그렇게 잠시 울음을 참을 때, 다시 곡이 상승한다. 소년은 다시 절벽 위를 오르고 있는 것이다.
‘…왜?’
손끝의 흉터가 사라지기 전에, 한 번 더
절벽의 의미를 모를지라도, 다시 또,
결국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나면,
손끝에 새겨진 상처는 어떻게 기억될까
다시 음악이 툭 끊어지고 곧 다시 상승한다. 독특하고 낯선 진행, 그런데도 불편하진 않다. 곡은 훅 부분으로 넘어간다.
먼 훗날, 여전히 절벽 아래 선 노인은
먼 옛날, 여전히 남은 손끝의 상처를
먼 훗날, 여전히 기억될 그때 그 순간을
먼 옛날, 여전히 후회하지 않을 테니
곡은 떨어지고 오르기를 반복한다. 소년은 먼 훗날의 자신을 생각하고 절벽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결국 손끝의 상처는 먼 옛날,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남고생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혹여 가사를 놓칠까 소리가 새는 것을 억제한다.
곡이 흐르고 흘러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소년이 절벽의 정상이 아닌 절벽 자체에 의미를 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곡이 툭 끊어질 때, 바람 소리가 휘몰아치는 사이로 류이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먼 훗날, 지금 오르는 순간이
먼 옛날,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하, 씨, 무슨 노래가 이렇게.’
남고생은, 즉 또 한 명의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이한 열정에 휩싸여선 휴대폰으로 블로센스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 * *
‘…류이든, 노래 실력이 갑자기 상승했군.’
옆에서 화음을 넣다가 문득 나도 감상해 버리고 말았다. 흠, 뭐지, 약물이라도 투여한 건가?
노래를 모두 마친 류이든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광견병 고위험군인 강아지 놈이 노래 부르다가 제 감정에 취해서 울었나. 아무리 그래도 석준이랑 다를 바 없는 짓을 할 리가.
“…동화 씨, 나 잘 불렀지?”
목소리에 물기 빼, 망할 놈아. 아직 라디오 엔딩도 못 냈잖아.
“네 노래, 흠집 안 가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지!”
그러곤 고개를 들더니 눈물 맺힌 얼굴로 씨익 웃는다.
“여러분! 어떠셨어요! 저는 곡 듣다가 옛날 생각이 그렇게 났는데. 음, 전반적으로 다들 눈물만 흘리고 계시군요!”
견훤은 좋아죽겠다는 움직임으로 리듬중독자들의 반응을 유도한다.
“hhh3345 님이 ‘현직 예고생입니다! 위로받았어요!’라고 반응 보내주셨네요. 오늘 블로센스가 팬분들 좀 수확해 가는 것 같죠?
견훤은 곁눈질로 류이든이 진정한 걸 확인하자마자 인터뷰 모드로 들어선다.
“가사를 이든 씨가 쓰셨다던데, 혹시 모티프가 무엇인가요?”
“음, 우선 하나는 제 연습생 생활이었습니다! 동화 씨도 제 연습생 생활 듣고 이렇게 작곡해 주신 거거든요.”
“와… 10년 가까이 연습생 생활 하셨다고 했죠. 또 다른 건?”
“동화 씨가 곡 주면서 소설을 한 편 써주셨어요. 그 소설 읽고 가사를 썼습니다.”
…음, 왠지 공개해야 할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군.
“팬분들이 소설 보여달라고 폭발적인 반응을! 혹시 공개할 예정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카페에 올려두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와중에 건너편에서 Y 씨가 망했다는 표정으로 앉아있고, 윤성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흠, 왜 초상집이야.
“자! 이번엔 갓에이분들의 리듬을 들을 차례인데, 어떤 곡을 준비하셨나요?”
“네… 저희는 이번 타이틀곡인 ‘Young’을 둘이서 부를 수 있게 편곡해 왔습니다.”
* * *
놀랍게도 갓에이의 곡은 나쁘지 않았다. 분명 윤성호가 실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새 늘었는지 듣기 좋았다.
…다만, 타이틀곡이 힙합 쪽 장르인지라 그 소란스러움을 편곡으로 억제했는데도 태생적 한계로 인해 시끄러웠다.
“네, 잘 들었습니다. 오늘 견훤의 저녁의 리듬, 여러분 촉촉이 잠들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연진들의 소감이 이어지고 나서 견훤의 마무리 멘트가 나오자, 드디어 집에 간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야, 블로센스, 실력 좋은 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곡도 엄청 좋게 잘 뽑았더라.”
“선배님이 편안한 분위기 만들어주셔서 좋은 무대 할 수 있었던 거죠!”
류이든의 쉼 없는 사회생활을 보고 있으니 내심 감탄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아할 만한 사례군. 사회적 동물 놈.’
나는 옆에 앉은 석준과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짐을 챙겼다.
그때 윤성호가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휴대폰을 내민다.
“번호 좀 주세요! 동화 씨!”
…하, 얘는 변한 게 하나도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