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3화(53/343)
53.
“동화야! 휴대폰 알람 울리는데?”
잠에 들기 전, 씻고 나와 방 안에 들어가니 채하민이 비몽사몽인 얼굴로 웃으며 말한다.
…목화인가?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 확인해 보니 ‘집단 따돌림 가해자 혹 방관자 의심군’이라 저장된 번호로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동화! 오늘 했던 무대 진짜 감명 깊게 잘 봤어요! 언제 한번 만나서 (저랑 동화가 모두 한가할 때) 서바이벌 멤버들이랑 같이 놀러 가요!
나는 알겠습니다, 라고 짧게 답장을 남긴 뒤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흠, 어제 짧게 대화를 나눠보니 인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하기야 정상적인 인간이면 악한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애초에 윤성호를 나쁘게 볼 이유가 ‘현재’의 내겐 존재하지 않는다.
석준이 겪을 가능성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건 결국 가능성에 불과한 채로 남아버렸으니까. 석준은 이미 우리 팀에 속했으니, 그런 일 따위 겪지 않을 테다.
갓에이의 다른 멤버들은 마약 고위험군이니 연예인 직업 특성상 거리를 둬야겠지만… 윤성호는 다가오든 말든 내버려 둬도 일단은 괜찮지 않을까.
* * *
시간 차를 두고 갓에이와 블로센스의 공식 계정에 한 편씩 글이 올라왔다.
Official_God:A 1시간 전
(블로센스의 지동화와 갓에이의 윤성호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사진)
에이스 님들! 여러분의 귀염둥이 성호입니다! 오늘은 견훤 선배님의 ‘두 시의 리듬’에 출연했답니다 🙂 서바이벌 때는 많이 친해지지 않았지만! 이제부터 저희 친해지기로 했어요! 저의 우정, 응원해 주세요! 오늘 하루도 편안하길 바랄게요! 그럼 이만!
Blossence 공식 계정 10분 전
(블로센스 멤버들과 견훤이 함께 찍은 사진) (갓에이 윤성호가 올렸던 사진)
안녕하십니까, 블로센스 지동화 인사드립니다. 견훤 선배님의 라디오에 출연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오늘 라디오에서 불렀던 ‘절벽과 소년’이 여러분에게도 위로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밤, 위로받는 하루의 마무리가 되길 바라며,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총총.
더 넥스트 니체 때부터 블로센스를 응원했던 이들과 윤성호의 개인 팬들이 의외의 조합에 놀라면서도 캡처하기 시작했다. 윤성호의 팬들은 지동화가 눈꼴사나웠음에도, 윤성호가 SNS에 상주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정을 응원한다는 소리만을 피드에 올렸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다음 날 SNS의 블로센스 판은 한껏 폭풍이 휘몰아쳤다.
―난 어제… 절벽과 소년 듣다가 그냥 질질 짬… 회사 생활하다가 상사한테 존나 깨지고 온 날이었는데,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는데, 겁나 위로받았다 진짜
└ㅜㅜㅠㅜㅜㅠㅠ 존나 위로되긴 했어 진짜 나 마지막 가사가 그렇게 좋더라 ‘지금 오르는 순간이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ㅜㅠㅠㅜㅠㅠㅜㅠㅜ
└심지어 그거 지동화가 류이든 연습생 생활 듣더니 잘 이겨냈다는 의미에서 만든 곡이라며 ㅅㅂ ㅈㄴ 스윗해…
└지동화 사패 이미지 부여하던 것들 다 어디로 가서 아가리 닫았니~
지동화 작곡, 류이든 작사의 ‘절벽과 소년’을 들은 이들의 후기 글이 SNS를 지배하자, 모종의 사유로 어제 라디오를 듣지 못한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아, 또 나만 이런 거 못 들었지. 또 나만 존나 병신이지. 왜 덕질할 때마다 나만 이렇게 놓쳐. 억울해. 어제 돌아와.
―시발 여러분 어제 라디오 안 들은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저도 절벽과 소년 존나 듣고 싶은데, 어제 피곤하다고 하루 쉬자 했던 저를 죽일 수 있도록 타임머신 좀 사용할 수 없을까요?
└ㅎㅎㅎㅎㅎ 내 인생 최대 업적 : 어제 피곤한 거 참고 라디오 들음
└공식 사이트에 곧 보라 편집본 올라온다니까 존버!
그리고 그런 상대적 박탈감이 다시 라디오 후기 글을 양산해 내고, 그것이 다시 박탈감을 불러일으키는 순환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팬카페에 올라온 지동화의 소설이 다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간을 덕질하는 중인 걸까… 글도 잘 써 곡도 잘 써 한국대생이야 얼굴 잘생겼어… 대체… 동화 너는…
└이든이가 이 소설 읽고 가사 썼다고 하더니 그게 맞나 보다… 아 씨 소설 읽으니까 노래 또 듣고 싶은데, 그래서 음원 언제 풀림?
그리고 그렇게 ‘절벽과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최고로 뜨거워졌을 시점에, 하나의 글이 미칠 듯한 속도로 좋아요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트위터 가입 1일 차, 처음으로 팬아트 그려봤습니다. 류이든 절벽과 소년 버전!
(류이든과 닮았지만 한참 어려 보이는 소년이 절벽에 매달려 손끝의 피가 흘러나오는데도 계속해서 손에 힘을 주고 있는 그림)
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중인 것 같은 강아지상의 얼굴, 앙다문 입술에서 이 절벽을 오르겠다는 열망 하나만 남은 눈을 한 류이든의 팬아트. 뒤이어 새로운 글에 절벽 아래에 누워서 웃고 있는 류이든의 그림까지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금손의 등장에 팬들은 당황하면서도 자신의 타임라인으로 글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돌판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며, ‘`절벽과 소년’ 그리고 지동화의 소설, 류이든의 팬아트까지, 아이돌판에서 회자되었다.
* * *
한 손에 믹스 커피를 들고 있는 장해진 팀장은, 곰곰이 계산하기 시작했다.
‘…‘절벽과 소년’ 반응이 좋을 건 예상했는데, 이렇게 터질 줄은 몰랐어.’
비록 대중적인 중독성은 좀 떨어질지언정 곡 자체는 좋으니 나름대로 언급이 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근데 커뮤니티를 잠시 정복할 정도일 줄은 몰랐을 뿐. 심지어 블루잭이 아직 활동하는 중인데도 이 정도의 반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견훤의 라디오가 나름대로 일반인도 많이 듣는 포맷인 점, 지동화와 류이든 사이에 얽혀있는 스토리가 감동적인 점, 노래가 힘들 때 들으면 위로가 된다는 점, 이 모든 것이 뒤섞여선 이런 결과로 이어지다니.’
거기에 대체 왜 팬아트를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는 실력의 금손 팬아티스트의 그림도 화제에 보탬이 됐지.
‘…가장 중요한 건, ‘절벽과 소년’ 공식 음원 발표 시기.’
현재 1집 앨범 음방 활동은 3주 차에 접어들었다. ‘클라우디 블루’는 대략 음악 방송에서 7위 정도까지 치고 올라왔다. 소속사 서바이벌 출신의 신인임을 감안하고 생각하더라도, 이 정도면 지금도 부끄럽지는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화제를 끌어모으면 남은 3주 동안에 더 높은 성적을 달성할 수 있겠지.
장해진은 기획팀 회의를 소집했다.
* * *
“우선 여러분께 들려드릴 좋은 소식! 저희 블로센스가 W앱에 입성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팀장님. 대체 왜 이 바닥은 끝도 없이 새로 배워야 할 것이 쏟아져 나오는 건지.
“와! 저희도 그러면 TOT 형들처럼 라방 하는 거예요?”
나는 재빨리 이현재에게 곁눈질을 했다. 팀원 중 류이든 다음으로 눈치가 빠르니, 대강 알아들었겠지.
“…형은 진짜, 가끔 보면 아이돌 하려는 사람 맞나 싶어요.”
귀에 속삭이는 말에 나는 쉽게 수긍했다.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으니까.
“음, 쉽게 말하면, 소통 방송하는 곳이구요. 팬분들이 직접 댓글도 달아주는 플랫폼이에요.”
그러니까 더 많은 팬분과 더 긴 시간을 함께하기 위한 소통 창구인 건가. 조선 시대로 치면 신문고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거군.
“그래서 오늘은 W앱 첫 방송 일자 등 알려드리고, 어떤 콘텐츠를 하고 싶으신지 의견을 들어보고자 모였어요. 지금 당장 말씀해 주실 필요는 없고, 리더인 이든 씨에게 말해주시면 이든 씨가 수렴해서 전달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장해진은 종이를 한 장 더 넘긴다.
“그리고 회사 내부에 이래저래 일이 있어 조금 늦어졌지만, 블로센스 팬클럽 이름을 정하려고 합니다. 이것도 의견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저희도 좋은 이름을 고민 중이랍니다.”
…기획팀 네이밍 센스는 캐터필러에서 그 민낯이 밝혀졌으니 이번에도 우리 측에서 좋은 의견을 올려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블러섬이 이름에 들어있으니 씨앗은 어떻냐는 의견이 나오겠지.
“참고로 씨앗같이 우리말 팬클럽명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오, 이건 나도 좀 놀라운걸. 정확하게 예언하다니.
여전히 웃고 있는 류이든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은 것을 보니, 대강 누가 들어도 별로인 이름인 것 같다.
“그리고 W앱이랑은 별개로, ‘절벽과 소년’ 뮤직 비디오를 쉽게 찍어볼까 해요. 세트장 없이 그냥 녹음 현장만 찍어서. 다만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은 건데, A&R팀에 부탁해서 5인 곡으로 편곡을 할지 아니면 그대로 갈지, 생각해 봐주시겠어요?”
그 소리에 나는 옆에서 졸고 있는 채하민을,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에서 잘 수 있는지 신기해서 관찰하던 눈을 돌려 앞을 바라봤다.
“…그 노래는 이든 형 목소리가 아니면 좋지 않은 곡입니다. 애초에 그렇게 작곡됐습니다.”
옆에서 또 류이든이 흠칫하는 게 느껴지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 일단 무시하고 넘어가자. 장해진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원곡자 뜻이니 그렇게 진행할게요. 약간 독 짓는 노인 같으시네요.”
…그렇게 숭고한 예술혼 같은 건 아니지만, 엇비슷한 거긴 하군.
* * *
1차 녹음 작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류이든이 빨리 일을 끝내길 원하기에, 다른 멤버는 먼저 보내고 둘이서 작업실에서 ‘절벽과 소년’을 녹음했다.
로드 매니저님은 조금 뒤에서 따라 걸으며, 류이든과 내가 편하게 걷도록 배려해 주신다.
류이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동화, 고마워.”
저 망할 놈의 사회생활. 아주 몸에 밴 습관이다.
“…낯간지러운 소리 할 거면 닥치십시오.”
“야, 형. 동화 형, 내가 진짜, 형 아니었으면 데뷔도 못 했을 거고, 어? 이렇게 좋은 선물도 못 받았을 거 아냐. 내가 진짜 평생 은혜 갚을게.”
평생 은혜를 갚으려 해도 나름대로 성공한 아이돌이 되어야 갚지 않겠습니까, 이든.
“지금 당장 실천하지 못할 것을 약속하는 건 간사한 사기꾼의 버릇입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마스크를 쓴 채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웬 비명 같은 함성이 울려 퍼지더니 사람들이 대뜸 몰려와선 내 손을 붙잡곤 사진을 찍어댄다.
류이든에게도 달라붙었는지 류이든도 어딘가 붙잡혀 미친 듯이 사진에 찍혔다.
뒤에서 오던 로드 매니저님이 빠르게 제지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더 붙어댔겠군.
…뭐지, 병인가? 혹시 정신병원에서 환자분들이 단체로 탈출을 감행한 건 아닐까.
나는 멍하니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보다가, 이런 천재지변은 나약한 존재인 내가 어쩔 수 없음을 알아서 그저 그러려니 했다.
‘…생각한다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 그냥 넘어가자.’
그런데 그냥 가자고 말하려 류이든을 바라보니 약간 떨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왜 그래?”
그러자 류이든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멋쩍게 웃는다.
“아, 그, 사생, 얘기만 들었지 처음 겪으니까 조금… 그렇네.”
…사생?
“죄송해요. 사생이 붙은 건 본 적 없다고 전임자분이 말씀해 주셔서 두 분 편히 가시라고 조금 느슨하게 따라왔는데, 이럴 줄은…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차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로드 매니저분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사과한다. 음, 정신질환자의 예측 불가능한 행위가 개인의 책임이 될 수 있을까. 다분히 어려운 문제군. 한스 요나스는 어떻게 얘기할까.
“동화, 괜찮아?”
류이든이 내 몸을 살핀다. 누가 봐도 자신이 나보다 더 당황한 게 티가 나는데 말이지.
“…음, 그래서 사생이 무엇입니까?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동음이의어가 일곱 가지나 있는데, 그중에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찾아오는 침묵. 류이든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다. 예전에도 저런 눈초리를 받은 적이 있었지. 타이틀의 의미를 몰랐을 때.
한나 아렌트의 말에 따르면, 무지는 죄가 된다고 했으니 사과해야 할까.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