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4화(54/343)
54.
“…사생이라고, 숙소 근처에서 잠복하면서 우리한테 말 걸거나 방금처럼 조금 과격하게 구는 사람들이 아이돌한테 자주 붙어.”
…대체 왜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요즘 시대가 시대라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얼굴을 볼 수 있을 텐데.
“사실… 나도 들은 거긴 한데,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싶은 욕심이랄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이랄지, 하여튼 그런 마음으로 찾아온다더라.”
“…음, 그 기저 심리는 좀 흥미롭네.”
다른 팬들보다 자신이 더 가깝다는 우월 의식이 내적 기저인 것 같군. 아니면 좋아하는 이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거나.
진지하게 분석을 하고 있는 나를 류이든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다.
“하여튼 내일 승원 매니저님한테 얘기드려야겠다.”
“그건 제가 말씀드릴 테니, 어서 숙소로 가시는 것이…….”
로드 매니저님은 여전히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다가 한껏 가까이 붙어선 고개를 들어 주변을 경계했다. …미어캣.
뭐, 살다 보면 저런 괴이한 이들과도 부딪힐 수도 있긴 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외워둬야겠군.
숙소에 돌아가 사생에 대한 얘기를 류이든이 꺼내자 모두 침울해졌다.
…아니, 생각할수록 짜증 나는군. 왜 잘 살던 집안에 괜히 나타나선 분위기를 경제 대공황 이후 미국 가정집처럼 만들어놓는 거지.
“동화야… 또 이상한 생각 했지…….”
채하민이 침울한 것과는 별개로 지적할 것은 지적하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
“흠, 일단 매니저님은 만약에 만나더라도 아는 척 일절 하지 말고, 당분간은 어디 나갈 때 매니저 대동하거나 아니면 나가지 말라시네.”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심리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이면, 저런 행위를 유발하는 매개가 될 겁니다.”
저들에겐 화를 내는 일조차 만족으로 다가올 확률이 높으니까.
“아! 레온 형도 그 얘기 해줬어요. 반응 보이면 안 좋다구.”
…레온이면, TOT 소속이라는 것 빼곤 모르는 인간이군.
“그럼… 일단은 무시할 수밖에 없는 거네?”
채하민은 야밤에 편의점 가는 걸 즐기던 인간이니까 시무룩해할 만하다.
“뭐, 큰일만 나지 않길 바라야지.”
…일반적인 영화에서 큰일이 나기 전에 나오는 대사군.
* * *
그것과는 별개로 심각한 기획팀의 네이밍 센스를 고려해 팬분들의 호칭을 정할 때가 왔다.
…이름이라니까 리얼리티 1화 때 이름의 중요성 촬영했던 게 떠오르는군.
석준이 번쩍 손을 들더니 의견을 밝힌다.
“저―는 프린스&프린세스면― 좋겠습―니다.”
미친 의견. …얘가 작곡하더라도 제목은 멤버들이 다 같이 정해주는 게 맞을 것 같군.
“그건… 조금, 음, 하하.”
류이든이 대놓고 구리다고는 못 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게 보인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나 같은 놈이지.
“…음, 의도는 좋지만 발음이 입에 붙지 않고, 한 번에 부르기 어려우니 다른 게 좋지 않을까.”
그러자 석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풀이 죽는다.
남이 풀 죽는 건 또 버섯 끊기만큼이나 힘겨워하는 채하민이 입을 열었다.
“동화야, 왕족을 뜻하는 독일어 뭐야?”
“리젠츠게뷔건(Lizenzgebühren).”
채하민은 ren에서 특유의 독일어 r 발음에 당황하더니 황급히 말한다.
“프, 프랑스어!”
“…알떼스 로얄러(altesse royale).”
“오… 머, 멋지다.”
그래, 이건 너도 어떻게 못 하겠나 보군.
“…음, 저희가 식물이니까 빛 같은 느낌의 단어는 어때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를 본다. …음, 번역기 취급인가.
“독이어론 리히트(licht), 프랑스어론 뤼미에르(lumière), 앞에 거 어감 별로일 테니, 라틴어로는 룩스(lux).”
애초에 독일어랑 프랑스어로 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을까, 싶어서 대부분이 알 만한 단어를 덧붙였다.
“…빛은 다른 언어도 아는 곳 많으니까, 더 말해줘?”
“…룩스?”
이현재가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역시, 블로센스 공식 작명소.”
류이든이 희망찬 눈으로 이현재를 바라본다.
하기야 아직 젊은 뇌 덕분인지 이현재는 창의력 하나는 우수하지.
잠시 고민하던 이현재는 조용히 한 단어를 뱉었다.
“…룩셈부르크?”
…미친 의견.
* * *
블로센스의 W앱 입점 소식이 널리 퍼지고, 팬들은 삼삼오오 모여 첫 번째 라방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시작되는 방송. 팬들은 일단 알림이 뜨자마자 달려 들어갔다가, 제목을 보고 잠시 멈칫한다.
‘블로센스의 작명 강의’
길 가다가 가끔 보이는 철학관에나 있을 법한 명칭에 잠시 팬들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리고 화면이 열리고 블로센스 멤버들이 1자형 탁자에 나이순으로 앉아있고, 그 뒤로 블로센스 작명소라는 간판이 큼직하게, 궁서체의 글씨로 걸려있다. 게다가 멤버들은 모두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블로센스 작명소입니다!’
―아니 콘셉트 무슨 일인데 ㅋㅌㅌㅋㅋㅋㅋㅌㅋ
―하 애들 약간 긴장한 거 봐 신인 너무 좋아 진짜
―블로센스 보러 왔는데, 여기 청학동 브이로그였나요?
―한복… 너무 좋다…
붉은빛이 감도는 한복을 입은 류이든이 해맑게 웃으며 소리친다.
‘이야, 저희 작명소가 드디어 W앱에 분점을 냈습니다.’
이어지는 멤버들의 박수.
‘아쉽게도 오늘 개점했지만! 오늘을 마지막으로 작명소는 폐업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오늘의 손님인 여러분! 저희에게 지어달라고 부탁하실 이름이 있으신가요?’
의도가 다분하다. 팬들은 꾸준하게 팬클럽명을 달라고 요구했기에, 이 방송이 팬클럽명을 공개하는 게 목적이라는 걸, 멤버들도 기획사도 팬들도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내 돌을 놀리는 데 진심인 게 팬심이기 때문에…….
―저희 집 반려견 김점례가 4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이름을 좀…
―제 성씨가 제갈인데, 60년 후에 태어날 손자 이름 지어주세요!
―ENG PLZ♡
―나 필라델피아로 유학을 갈 예정인데 거기서 쓸 이름 지어주라
깔끔하게 채팅 창이 난리 났다.
다음에 대사를 해야 할 이현재가 채팅 창을 보고 당황하더니 입을 열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음, 팬클럽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주시네요?’
―현재야… 나만 그 글 안 보여?
―아니 점례 새끼들 이름 지어줘요 ㅠㅠ
―눈 질끈 감고 못 본 척하는 거 졸귀탱
‘여러분! 한 번만 봐주세요. 다들 아시면서 일부러 놀리시려고.’
류이든이 호소하자 그제야 ‘오구오구’와 같은 느낌으로 ‘팬덤명 지어주세요!’라는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흠, 팬―덤명을 정하―려면, 우리에게 팬―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알아―봐야겠죠.’
‘우리 블로센스는, 모두 꽃이 피듯 자신을 개화하고 있으며, 이는 모두 팬 여러분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동화가 조용히 말한다.
‘팬 여러분은 저희에겐 식물을 자라게 하는 빛과 같은 존재니까요!’
그러곤 모두 중앙에 놓인 두루마리로 손을 모았다가 갑자기 손을 내리더니 씩 웃으며 앞을 본다.
‘그런데 최종 결정된 걸 보기 전에, 저희 멤버들이 냈던 이름을 먼저 보시면 어떨까요?’
‘오, 현재 씨. 좋은 생각이네요. 그러면 저부터.’
그렇게 시작된 멤버들의 해괴한 이름 공개 시간. 이현재의 룩셈부르크부터 시작해서 석준의 프린스&프린세스까지.
‘아, 솔직히 룩셈부르크 회의 때 나온 순간, 저 한 4초 동안 뇌가 정지됐어요.’
‘음, 개인적으론 프린스앤프린세스보다는… 아니, 둘 다 뇌를 정지시키기에 마땅한 이름들이긴 합니다.’
팬들은 대부분 웃기지만 그 속에 담긴 뜻에 웃음 지어줬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동화의 개인 발표 시간. 진짜 해야 하냐는 눈초리로 멤버들을 잠깐 보다가 두루마리를 펼쳐 이름을 보인다.
‘바하이트(Wahrheit)’
―아 이거 또 동화가 동화하는 각이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단어 등장
‘독일어로, 진리… 라는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 아니 그 이전 4대 문명 시기부터 진리와 빛은 동일시되곤 했기에, 여러분이 우리 블로센스의 진리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동화야! 나 그거 듣고 사실 많이 당황했어!’
―뜻은 좋은데 나 바하이트로 불리고 싶지 않아 ㅠㅠㅠㅠㅜ
―어? 너 팬덤 이름이 뭐야? 바하이트?
―친구한테 영업 뛰기 힘들어 동화야 ㅠㅠ
―비너슈니첼 가사 때부터 예견된 바하이트…
댓글을 읽어주며 멤버들이 웃자, 지동화가 멋쩍게 말한다.
‘…저도 이름이 별로인 것을 알기에 제가 공개하지 않으려 했으나, 사악한 멤버들이 강제로 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나름대로 재미있던 헛소리 시간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진짜 이름을 공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자, 그럼 우리의 팬분들의 이름을 공개하겠습니다.’
류이든이 대표로 일어나 중앙에 크게 걸린 두루마리의 끈을 잡아끈다.
‘루미너스’라는 글자가 어김없이 궁서체로 적혀있다.
‘루미너스! 어떤 뜻이죠, 동화 씨?’
류이든이 가장 처음 의견을 냈던 지동화에게 바통을 넘기고.
‘루미너스는 영어로, 어둠 속에서 빛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현재.
‘저희가 무대에서 여러분을 바라볼 때 그 어두운 속에서 여러분이 반짝반짝 빛나니까, 이런 이름을 지어보았구요.’
다음은 채하민.
‘앞으로도, 저희들의 별이 되어, 어둠 속에서 반짝여 주셨으면 하는 소망도 담았습니다!’
마지막은 석준.
‘루미너스―분들이 은하수―가 되어―주시면 블로센스는 그― 별빛―을 받아, 반짝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메라가 큰 앵글로 변하더니 멤버들이 모두 저마다의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 * *
나는 말없이 인삼차를 한 잔 류이든 앞에 내밀고, 류이든은 조용히 이를 받아 마신다.
‘…음, 쓸데없이 긴장을 했군.’
오늘은 케이블방송에서 ‘절벽과 소년’을 라이브로 공연하는 날.
들어보니 ‘절벽과 소년’의 보이는 라디오 편집본이 공개되고 나름대로 이슈가 됐다고 한다. 이후 MV와 음원이 동시에 공개되며 ‘클라우디 블루’의 음원 순위를 곧 따라잡을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내 곡과 내 곡이 순위 경쟁이라,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런 화제성 덕분인지 무대 구성이 비교적 자유로운 케이블방송국에서 한번 라이브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류이든의 2차 긴장 사태.
평소엔 잘 긴장하지도 않는 양반이 대체 왜 이러는지, 원.
“와, 이든 형 중간에 딱 서서 노래 부르면 엄청 멋있게 나오겠다.”
채하민 딴에는 띄워주려는 의도겠지만, 원래 말이라는 게 인간 심리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류이든은 인삼차로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격하게 요동치는지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에 누웠다.
“…음 이탈 나오면 루미너스분들은 그것대로 좋아해 주실 거야.”
“저 ‘클라우디 블루’ 두 번째 무대에서 고음 딱 한 번 삑사리 났는데, 팬분들 그거 라이브 인증이라고 엄청 좋아해 주셨어요.”
“음, 현재. 그건 좋아해 주신 게 아니라, 그냥 놀리신 거잖아.”
나와 이현재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옆에서 주입하듯이 말해주자 그제야 자기가 리더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정신 차리곤 ‘멋진 형’ 상태의 류이든으로 돌아왔다.
‘…음, 이거 좀 유쾌한데.’
개인 곡을 만들어주고 부담감 느끼는 멤버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