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7화(57/343)
57.
채하민은 류이든이 공격적으로 달려오는 걸 보며, 아까의 대화에 대한 궁금증을 잠시 접어두고 묻는다.
“…디오게네스?”
“아카데미에서 제일가는 미친놈이다. 아니, 개라고 하는 게 맞겠군. 이곳에서 유일하게 철학을, 행위를 통해 설파하는 미친놈이지.”
일반적인 철학은 인간의 로고스를 토대로, 논리를 구성해, 그 논리가 철학으로 발현되는 것이지만.
“하, 언어에 의존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불쾌감이 든단 말이야.”
그는 논리가 아닌 행위로 철학을 구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철학자 중 하나다.
“…제대로 화가 나면 위험하니 조심해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실력으로 따지면, 나와 호각을 다툴 정도니까.”
그리고 류이든이 둘 앞에 도달한 순간, 다시 씨익 웃으며 소리친다.
“옆에 애는 뭐지? 새로운 제자랍시고 데리고 다니는 놈인가?”
“나는 단 한 번도 제자를 받은 적이 없다, 천민. 옆에 있는 평민은 곧 내 제자가 될 몸이긴 하지만.”
“어, 천민이라니. 그렇게 차별적인 언사를 하다니, 하여튼 입만 살았어.”
지동화는 그런 류이든을 냉한 표정으로 천천히 훑어보더니 한숨을 내쉬곤 손을 들어 올린다.
“이데아.”
빛의 광휘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펼쳐진다. 그 빛이 닿는 공간은 현실과는 다른 곳이 된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너는 그게 문제야, 플라톤. 뭐가 됐든 이데아가 없으면 철학이 시작되질 않잖아.”
지동화는 무시한다. 그리고 읊조릴 뿐이다.
“철인왕.”
그러자 지동화의 눈이 황금색으로 반짝이자, 류이든의 얼굴이 굳는다.
위압감, 지금 지동화에게서 뿜어 나오는 것은 분명한 위압감이었다.
진리를 이해하고 모두를 내려다보는 왕의 위엄.
류이든은 힘겹게 웃는다.
“…진심으로 싸울 셈이냐, 아가리만 산 놈. 오늘도 평소처럼 밥 한 끼 사주면 될 일이잖아.”
지동화는 오만한 표정으로 비웃으며 류이든을 내려다본다. 사실 키 차이 때문에 지동화가 올려다보는 것이었지만, 오만한 표정이 내려다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착각 말 것. 언젠가 한 번쯤은 강아지를 교육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즉 싸움이 아닌 교육이다.”
“하아, 보리빵 하나 얻으러 왔다가 사람 물게 생겼네.”
류이든도 말하며 손에 자신의 로고스를 끌어모은다. 손에서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은 기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무투파 철학자답다.
그런 둘을 바라보는 채하민, 그리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한둘 모여 구경하기 시작한다.
곧이어 지동화가 손짓하자 빛의 구체에서 광휘가 여러 문장으로 변화하더니 류이든에게 쏟아진다.
한마디 한마디, 강력한 논리를 담고 있다.
류이든은 백 텀블링으로 한 번 피했으나 그조차 예상했다는 듯 지동화의 황금빛 눈에 힘이 들어가며, 한 문장이 궤도를 꺾어내 류이든의 다리를 스친다.
몸을 바로 한 류이든은 다리의 상태를 확인한다. 외관상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무슨 철학이지, 이건?”
“…내가 지배하는 영역에서 쓸모없는 걸 추방했을 뿐이다. 이 영역 안에선 기능을 못 할 테지.”
그리고 지동화는 다시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 고개를 든다.
“포기하고 꺼지거라. 한쪽 발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육체파인 네놈이 날 이길 순 없을 테니.”
“…하, 보리빵 달라고! 플라톤! 배고프단 말이야.”
지동화는 혀를 한번 차더니 펼쳐져 있던 모든 철학을 종료한다. 눈이 제빛으로 돌아온 지동화, 류이든을 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순간 류이든이 씩 웃으며 한쪽 다리만 활용해 달려들더니 주먹을 들어 올린다.
그를 보며 지동화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보리빵을 꺼내려던 손을 멈추고 류이든을 바라본다.
그때였다.
“이티카 : 메세이오(Ἠθικὰ : Μεσαίου, 윤리학 : 중용).”
채하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류이든이 공중에 멈춰 서고 만다.
그뿐이 아니었다.
“디오게네스, 묻겠습니다! 상대방이 무장을 해제한 상태에서 달려드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요?”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렇다면 자중하세요.”라는 채하민의 선언과 함께 류이든이 털썩 떨어지며 손에 감아뒀던 로고스가 모두 사라진 채로 무장해제 되고 만다.
허탈한 목소리로 류이든이 중얼거린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이야.”
지동화조차도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완전 통제라니, 대체 무슨 철학인 거야.”
그제야 자신이 온 관중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채하민이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죄, 죄송해요! 부도덕한 걸 보면 습관적으로 윤리학이 떠올라서.”
그러곤 사람들 틈에서 뛰쳐나가는 채하민, 그 뒤로 지동화의 눈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순간 암전되는 화면, ‘클라우디 블루’의 편곡 버전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다음 화 예고가 지나간다.
지동화와 채하민이 카페에 앉아 심각한 대화를 하는 모습, 이현재가 그걸 보고 순진하게 웃으며 계략을 짜는 모습, 그리고 이현재와 대치하고 있는 채하민, 보리빵을 흙바닥에 누워 맛있게 먹고 있는 류이든, 마지막으로 석준과 마주한 지동화의 모습.
모든 영상이 짤막하게 지나가고 나서, 화면이 암전된다.
* * *
지동화의 팬은 검은 화면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자 화들짝 놀라며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나… 완전 멍청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잖아.’
지금 시각 새벽 3시. 정신이 몽롱해져도 괜찮을 시간.
하지만 아이돌 덕질 9년 차의 그녀도 난생처음 보는 해괴망측한 콘텐츠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대체 어떤 아이돌을 덕질하는 중인 거지?”
도대체 이 영상을 제작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까.
아무리 니체 엔터가 자체 CG팀을 운영 중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과해도 지나치게 과하지 않을까.
특히 지동화와 류이든이 싸우는 신은, 거의 영화급으로 CG가 들어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런 계산적인 생각을 잠시 버려두기로 한다.
소속사에서 자기 돌에 투자해 준다는 건 분명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연관 동영상에 떠있는 지동화의 얼굴을 보고 자동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블로센스의 철학 아카데미 : EP 01, 철학적 지식 더하기]그곳에서 지동화와 멤버들은 각각 자신의 캐릭터가 사용한 기술을 보여주며, 연관된 철학 지식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덕질이 공부가 된다는, 뭐 그런 건가?”
지동화의 팬은 서서히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고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겁나 재밌어, 블로센스 덕질.’
그녀는 빠르게 SNS에 들어가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하… 지동화 눈 황금빛인 거 나만 발리냐고… 보고 심장 멎을 뻔했다고 진짜…
└지동화한테 안 발린 루미너스가 있을 리가
―아… 하민아… 너 같은 교회 다닐 얼굴로 윤리학 외치니까… 내가 너무 부도덕한 인간 같아… 그러니까 우리 집 와서 이티카! 라고 한 번만 외쳐줘라!
└수작 부리지 마세욬ㅋㅌㅋㅋㅋㅋㅋㅋㅌㅋ
―류이든! 씨바! 존나 사랑한다! 무투파 철학자! 류이든 어깨 우리 학교 운동장보다 넓다!
└ㅇㄴ 근데 콘셉트 진짜 뭔 일인데 ㅋㅌㅌㅋㅋㅌㅌㅋㅋ 이거 누가 짠 콘셉트냐곸ㅌㅌㅋㅋㅋㅋ
└높은 확률로 지동화한 것이 아닐까…?
―연기력 진짜 최상급 아이돌이다… 특히 채하민 연기력 실화냐…
└ㄹㅇ 지동화는 평소 모습이랑 비슷해서 이질감 없는 건데 채하민은 평소랑 다른데도 이질감 없더라…
아마도 그녀의 기말 과제는 완성되지 못할 듯싶다.
* * *
우리의 숙소, 나는 소파에 앉아 멍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왼편의 류이든은 자랑스럽게 소리친다.
“이데아!”
그러면 반사적으로 옆에 앉은 석준이 맞받아치며 소리친다.
“판타레이!”
…나를 중간에 두고서.
“…드디어 미치신 겁니까, 두 분?”
스케줄이 끝난 주말, 내일은 일정이 없어서 다 같이 모여 중앙에 연결된 TV로 ‘블로센스의 철학 아카데미’ 1화를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이 난리를 떨고 있다니.
“와… 루미너스분들, 반응이 엄청 좋아요.”
소파에서 태블릿으로 SNS를 보고 있던 이현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오, 진짜?”
그러게. 진짜 대체 왜 그러실까. 진지하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화판은.
“네, 다음 화에 제가 본격적으로 나올 것 같아서, 프로타고라스 미리 예습하신다는 분도 계세요!”
그분도 우리처럼 정상은 아니군.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나도 디오게네스 공부한다고 하신 분 봤어. 진짜 동화 말대로 다 같이 공부하는 느낌인데.”
…이럴 거였으면 팬덤 이름을 아고라나 아테네 학당으로 하는 것도 괜찮았겠군.
그나저나 류이든 저 짐승은 수치라는 걸 배우지 못한 걸까.
“…다음 화에, 당신 더욱더 해괴망측하게 나올 예정인데 괜찮습니까?”
어느새 이현재 옆에 앉아서 같이 태블릿을 보고 있던 류이든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무투가의 자세를 잡는다.
“철학을 논리가 아니라 행위로 설파하는, 철학 무투가 디오게네스입니다!”
그래, 애초에 이현재 말고는 수치라는 개념이 없는 인간들로 구성된 팀이었지. 나만 또 이렇게 수치심에 고개를 못 들고 있는 거군.
그리고 순간 휴대폰에 진동이 울린다. 목화인가 싶어 열어보니, 준성, 윤성호 그리고 목화에게 모두 동일한 문자가 한 통씩 와있었다.
―이데아!
…망할.
* * *
‘모모지’의 PD, 김소영은 프로그램 쇄신의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다.
“하… 시청률 어떻게 높이니.”
사람들과 깊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는 대중매체의 긍정적인 측면에 빠져 있던 그녀였지만,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녀는 ‘교양’ 예능을 원했지만, 대중들은 교양 ‘예능’을 원한다는 사실을.
지금은 어떻게든 가수나 배우의 팬들로 시청률을 때우고 있다지만, 이렇게 현상 유지를 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PD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캐스팅 관련해서 확인해 주셨으면 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멍하게 있던 그녀의 어깨 너머로 조연출이 다가왔다.
“음? 블로센스라는 팀 말이죠?”
“네, 이 팀이… 생각보다 더 재밌는 팀인 것 같아서, 한 번 영상 봐주시겠습니까?”
그녀는 태블릿을 받아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철학 아카데미?’
잠시 흠칫하고 영상을 재생한 순간, 서서히 전개되는 기상천외한 스토리. 그녀는 처음엔 막상 당황스러웠으나, 진지한 연기와 나름대로 구성된 스토리 라인, 그 와중에 녹아들어 있는 철학적 내용에 진지하게 감상하기 시작한다.
‘와, 어이없게 웃긴데…….’
아주 자연스럽게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는 ‘마법’이라는 설정을, ‘철학’으로 바꿔버리곤 꽤 퀄리티 좋은 CG로 구현해 놓으니, 은근하게 몰입되고 재밌다.
그렇다고 웃기기만 한 것도 아니다. 최소한 이 영상을 보고 나서 ‘이데아’라는 한 단어만은 명확하게 기억에 남겠지. 고대 그리스의 상대주의자와 절대주의자의 대립도 기억하기 쉬울 거고.
비록 지식의 깊이는 얕을지라도 선명하게 인상에 남는 전달법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 영상을 보시면 이 영상에 나온 철학 개념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영상이 나옵니다.”
그리고 펼쳐지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설명, 예상보다도 깊었다.
그러나 이미 영상을 통해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 상당히 쉽게 머릿속에 들어온다.
‘…이거, 조금만 더 다듬으면.’
잔잔한 지금의 모모지를 천천히 변화시킬 수도 있는 형식이 아닌가.
유치하다기엔 꽤 우아하고, 그렇다고 고상하다기엔 꽤 가벼운, 한번 시도해 볼 법한 교양 영상이 될 수도 있다.
“…블로센스라는 팀, 매니지 쪽에 캐스팅 내용 바꿔서 한 통 더 보냅시다.”
“어떻게 바꿀까요?”
“지금 봤던 영상 형식으로 제작하면, 밀어주는 걸로.”
양심 없게 영상 형식만 훔쳐 올 수는 없으니, 기왕이면 양자 모두 이득을 보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