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8화(58/343)
58.
오늘도 평화로운 숙소, 채하민이 ‘요리’라는 어려운 그 기술에 숙달하겠다고 선언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번 하늘에서 내리는 밀가루의 향연을 잊지 못한 나는 식탁에 앉아서 채하민을 감시하는 중이다.
“뭐 만들 거야, 하민.”
“음, 오늘은 버섯무침을 먹고 싶은 날이야!”
흠, 데치고 무치는 두 과정밖에 없는 음식을 실패하는 것도 힘들겠군.
“하지만 네가 버섯을 싫어하니까 닭볶음탕을 만들려고.”
…저런. 도축한 닭한테 지나친 실례로군.
“시체를 모욕하는 건 부도덕해, 하민.”
“동화야, 너무 서운하다, 진짜.”
그 말을 듣고 류이든이 눈을 반짝이며 식탁에 앉는다.
“오, 하민이 요리하는 거 W앱으로 보여드릴까?”
“…음식물을 학대하는 걸 방송으로 내보내도 괜찮은지?”
생태주의자분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채하민은 그 말을 듣고는 말도 안 된다는 눈초리로 나를 흘깃 바라본다.
…뭘 봐, 밀가루로 눈을 연성한 주제에.
“동화야, 서운하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서 무릎 꿇게 해줄게!”
손을 씻으며 말하는 채하민과 강가에 놓인 아이가 겹쳐 보이는군.
승부욕에 타오르는 채하민, 류이든은 더욱 좋다는 듯이 소리친다.
“그럼 매니저님이랑 팀장님한테 허락받고 W앱 켜야겠다!”
* * *
“그래서 오늘의 블로센스의 W앱! 블로 미식회입니다.”
나는 되도 않는 정장을 차려입고, 되도 않는 천을 위에 얹어놓은 책상 앞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본다.
…류이든, 미친놈.
“오늘 초대한 미식가, 비너슈니첼과 버섯을 제외하곤 어떤 음식에도 호불호가 없는, 중용 지동화 선생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루미너스 님들. 오늘 사약을 받들게 된 지동화입니다.”
“사약 아니야! 금상첨화의 맛을 보여줄게.”
…그럴 때 쓰는 사자성어 아닐걸.
“그리고 오늘 지동화 선생님께 도전할 요리사, 리얼리티에서 보셨듯 평범한 밀가루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만드신 연금술사, 채하민 선생님 모셨습니다.”
“지금 웃으신 루미너스분들! 오늘 제 실력으로 모두 후회하게 만들어드리겠어요!”
…식칼 들고 그런 소리 하지 마, 토끼 놈아.
그 상태 그대로 채하민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 만들 요리는 닭볶음탕. 제 어머님이 전수해 주신 필살의 레시피랍니다!”
필살(必殺)이라… 목화한테 사과 인사라도 해둬야겠군.
이후 채하민은 미칠 듯한 집중력으로, ‘클라우디 블루’ 후반부 클라이맥스 센터에 설 때와 같은 한껏 신난 표정과 함께, 닭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자, 하민 씨가 연금술을 펼치는 동안, 저희는 소통을 해볼까요, 동화 씨?”
“…음, 루미너스분들께서 이번 자체 콘텐츠로 궁금한 게 많아 보이십니다.”
“아! 맞아. 그거 동화 형 아이디어였잖아. 마법처럼 철학을 설파하는 세계관!”
닥쳐.
철학을 논리로 구성해 마법과 같은 힘을 내게 한다는 의견은 내 것이 맞지만, 그 괴랄한 영상을 온전히 내 것인 양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대본을 제가 쓰긴 했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함께 구상한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 근데 동화 씨가 진짜 글 쓰는 재주가 있다니까요, 루미 여러분? 원래 한 화로 만들려던 거, 동화가 쓴 에피소드 보고 기획팀분들이 살 좀 붙여서 한 4화 분량으로 만들어주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댓글을 살핀다. 그리고 그곳엔…….
―이데아!
―이데아!
―이데아!
―이데아!
무수한 이데아의 향연이. 하, 류이든 성격상 무조건…….
“한번 해드려야겠네요, 동화 씨!”
“…오늘 W앱 끄면 하민이 만든 닭볶음탕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들어갈 준비 하십시오.”
“동화야! 진짜 맛있을 예정이라고. 필살의 레시피!”
결국 CG도 없이 이데아를 외치고 수치스러움이 정점에 치달았을 즈음, 채하민이 내 옆 책상에 앉는다.
“이제 끓이기만 하면 돼요!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동화야?”
“…너는 대체 어떤 철학을 설파할지, 그리고 이든 형이 무슨 철학을 설파할지.”
“아! 저는 상대방 안에 있는…….”
나는 재빨리 손을 들어 올려 입을 막아낸다.
“…스포일러.”
―아 동화야 왤케 재빨라 진짜 ㅠㅠㅜㅠㅠ
―스포 좀 해줘라 ㅠㅠㅠㅠㅜㅜ
―와 꼽주넹 ㅎㅎㅎ
―혹시 후속곡 활동 계획 있어요?!?!!
―다음 주 클블 막주인 거 진짜 말도 안 된다… 제발 후속곡 ㅠㅠㅠ
루미너스분들의 머릿속에서 스포일러 = 후속곡이라는 도식이 완성됐는지, 기획팀에서 철저히 비밀에 부치라고 했던 사안의 질문이 들어온다.
이런 건 리더가 해결해야 하는 법.
“후속곡은 없답니다. 하지만 한 주 후 좋은 소식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
이외에 촬영 비하인드, 류이든의 ‘절벽과 소년’ 뮤비 뒷이야기 등을 떠들던 와중, 닭볶음탕이 완성됐는지 채하민이 냄비를 들고 와 책상 위에 얹는다. 드디어 죽을 시간이군.
“…향기는 일단 정상적입니다. 비주얼도 괜찮습니다.”
“이번엔 성공할 거라니까.”
나는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닭가슴살 부위를 들어 올려 접시에 얹는다.
―지동화 젓가락질 왜 이렇게 예의 바르냐…
―예의로 나를 발라버린다…
살을 찢어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혓바닥 위에서 날카로운 톱날이 움직이는 듯, 어쩌면 총알이 혀를 꿰뚫고 관통하는 듯, 쓰라린 감각이 퍼져 나간다.
…더럽게 맵잖아.
나는 재빨리 씹어서 삼킨 뒤, 입을 열다가 채하민을 바라본다.
한껏 기대에 찬 눈빛. 맛있을 수밖에 없다는 확신. 마치 아이가 부모의 얼굴을 그리고, 잘 그렸다고 칭찬받기를 원하는 순수함이 얼굴에서 묻어난다.
…하, 망할.
“…맛있습, 니다.”
중간에 혀가 아려서 발음이 한번 씹힌다.
“와! 와! 여러분! 루미너스분들! 봤죠! 보셨죠! 저 요리 잘한다니까요!”
“동화, 진짜 맛있어?”
채하민이 카메라의 중심을 차지해 루미너스분들과 기쁨을 나누는 와중, 류이든이 조용히 묻는다.
“…먹지 마. 일단은 기뻐하게 내버려 두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 여러분, 오늘부터 블로센스 공식 요리사가 될 예정이에요. 축하해 주세요!”
…그래, 꿈은 클수록 좋지.
* * *
방송국 HBR의 대기실, 새벽의 사전 녹화를 마치고 나온 우리는 이상한 소식을 하나 듣는다.
“…1위 후보요?”
리더로서, 나만큼이나 침착한 편인 류이든이 조용히 중얼거리자 채하민과 석준 사이에 끼여서 괴로워하고 있던 나까지 멈칫하고 말았다.
“네, 그렇습니다. 들어보니 음원 지수랑 동영상 지수가 높은 폭으로 늘어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이런, 벌써 긴장이 역병처럼 멤버들을 집어삼키고 있군.
“아, 아니, 음, 승원 매니저님, 혹시 이, 이유가 호, 혹시?”
이번에는 당연하게 긴장하는 채하민이 혀에 사탕이라도 넣어둔 양 발음을 씹어댄다.
뭐,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음,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견훤 씨 라디오 때 ‘클라우디 블루’를 부른 것과 둘째는, 크흡, 흐, 프흡, 그, 아카데미 영상이, 나름대로 인기, 크흠.”
…애써서 웃음을 참는 게 더 타인을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는 걸, 매니저님은 모르시는군.
이현재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웃는다.
“…1위는 어차피 블루잭이겠지만, 기분이 엄청 좋네요!”
역시 똑똑하고 현실적이다. 석준은 옆에서 멍하니 앉아 혹시 1위라도 한다면! 이라는 망상을 하는 중인 것 같지만.
“근데 그럼 우리 팬분들한테 뭐라도 해드려야 하는 거 아닐까?”
“음, 그건 그렇지. 사실 신인인데 2위 하는 것도 다 팬분들의 빛 때문이잖아.”
참고로, ‘빛’은 팬들의 사랑을 지칭하는 우리끼리의 은어다. ‘빛 = 진리 = 선함 = 좋음(사랑)’이라는 고대 철학을 따른 것이다.
그렇게 팬분들의 빛에 어떻게 보답할지를 고민하던 중, 한동안 잠잠하던 기지생이 알림을 보내왔다.
띠링―!
[서브 퀘스트 ‘나만의 작은 콘서트!’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은 현재 신인 중 가장 눈에 띄는 팀 중 하나입니다. 길거리 공연을 기획하여 더 많은 팬들을 확보해 신인상을 기정사실화하세요!
완료 조건 : 길거리 공연을 통해 1000명의 추가 팬 확보
보상 : 사소한 미래의 조각]
나는 재빨리 알림 창을 눈으로 훑는다.
지금 이 시점에, 하필이면 이런 퀘스트를 준다는 건, 그 의도가 투명하게 보이는 짓이군.
나는 천천히 기지생의 의도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첫째, 일반적인 길거리 공연이라면 천 명이 추가 확보될 수가 없으니, 영상으로 찍어 올리든 하라는 은근한 제안이 숨어있다. 이건 기획팀에 제안하면 될 일이니 괜찮기도 하고.
그리고 둘째, 퀘스트의 이름에 주목해 보자. 여기서 ‘콘서트’라는 명칭을 활용했다는 건, 규모가 일반적인 길거리 공연보다 커야 한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흠, 작더라도 야외무대를 빌리라는 의미인가.
…대충 이해는 된 것 같군. 저 사소한 미래의 조각이라는 물건도 호기심이 동하고.
“1위 후보 기념으로 길거리 공연이라도 하면 어떻겠습니까?”
“길거리 공연?”
류이든이 말을 받는다.
“루미너스분들 가까이서 볼 기회도 많지 않으니, 우리들만의 작은 콘서트 같은 느낌으로 말입니다.”
“오, 그럼 공연하듯 셋리스트도 선정해? 그건 괜찮다. 우리가 콘서트 하긴 규모가 작으니까.”
류이든이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채하민이 말을 얹는다.
“예전 서바이벌 무대 중 몇 개는 다시 보고 싶으시다는 팬분들도 많으신데 그 무대 다시 하는 건 어때?”
음, 그건 탈락한 연습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음, 만약 할 거면 탈락하신 분들도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하민.”
하지 말자는 뜻이다. 부르기도 뭣하고, 부르지 않고 무대를 온전히 우리 것인 양 하는 것도 우스우니까.
“아, 그러고 보니까 현진이 새로 소속사 들어갔다더라. 디오니 엔터.”
…목화 있는 곳?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1. 김현진은 재능이 출중하여 높은 확률로 데뷔할 만한 연습생이다. 2. 목화는 내 동생이다. 3. 둘은 같은 팀으로 데뷔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조용히 말한다.
“…‘수평선’ 특별 무대 어떻습니까.”
하지 말자고 한 게 10초 전이었지만, 원래 동생을 위해서라면 논리적 모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법이다.
* * *
팬분들의 빛에 대한 보답으로 야외무대를 빌려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을 한 뒤 편집해 공식 계정에 올린다는 계획까지 완성하자, 할 짓이 없어진 우리는, 대기실에 널브러졌다. 아마도 손빨래에 익숙한 옛날 사람이 온다면 다듬잇방망이로 두드리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푹 퍼졌다.
“…그러고 보면 이번 주가 ‘클라우디 블루’ 막주예요.”
“엄―청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정말 꿈꾸는 것 같습니다.”
“…동화가 엔딩 요정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10초 동안 자기만 나오니까 귀 빨개져서 허둥지둥했는데.”
…닥쳐, 하민. 트라우마 자극하지 마.
그렇게 빨래터를 연상케 하는 대기실, 누군가 노크를 한 뒤 들어온다.
…윤성호군.
“여러분! 1위 후보 되신 거 축하드려요!”
나를 제외하곤 전원과 말을 놓은 인간인데도 말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소한 예의는 있는 인간이다.
“성―호 형님, 잘 오―셨습니다.”
석준이 웃으며 반겨주더니 안에 자리를 내준다.
“어? 근데 혼자 다녀도 괜찮아, 성호?”
그러자 윤성호가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사실… 멤버들이랑 다 같이 축하하러 오고 싶었는데, 다들 조금…….”
흠, 마약사범 집단이 대체 우리를 왜 싫어하는 걸까.
“우리 팀보다 인기 많아서 약간 질투? 비슷한 걸 하나 봐.”
윤성호는 애써 포장해 내고 있다지만, 얼굴 보기 싫어해서 못 데려왔다는 뉘앙스가 폴폴 풍긴다.
“그래서 그냥! 혼자 왔지요. 진짜 축하해. 곧 완전 뜰 것 같더라.”
당당하게 소리치는 윤성호와 호응해 주는 다른 멤버들.
…그리고 나는 불길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아마도 죄책감과 비슷한 종류의 것.
아마도 이미 추측했는데, 남 일이라고 생각해서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
만약, 갓에이에서 채하민이 빠지고, 그 결과 새로운 인물이 그 자리를 채운다면 가능성은 그대로 실현될까, 아니면 다르게 실현될까.
[질문권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여 답을 드립니다.답 : 새로운 인물의 성향이 기존의 인물과 그 성향이 유사하다면, 유사하게 실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