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5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59화(59/343)
59.
HBR의 음악 프로인 ‘뮤직 인사이드’ 엔딩 무대. 우리는 MC를 기준으로 왼편에 서있다.
반대편에는 블루잭이 루카치라는 해괴한 예명의 남자를 필두로 여유롭게 서있다.
“오늘 뮤직 인사이드 1위 발표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요! 블루잭의 ‘Time’과 블로센스의 ‘Cloudy Blue’ 중 1위는 누가 차지할까요!”
방금 저 말은, 모두 뒷면인 윷과 같아서 ‘쓸 모’가 없다. 블루잭이 1위인 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
“모든 점수 합산 결과, 오늘의 1위는! 축하합니다, 블루잭!”
우리 멤버는 모두 웃으며 박수를 쳤고, 블루잭과 악수를 나눈 뒤 돌아가려 했다.
“동화 씨! 이데아!”
루카치, 아니 철수 씨께서 내 손을 붙잡고 이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오우,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대체.”
“…안타깝게도 제 머릿속에서 나왔습니다.”
설마, 고작 이 영상 하나로 평생 이데아가 따라붙는 건 아니겠지.
* * *
블로센스의 음방 2위는, 블루잭의 음방 1위보다도 화제가 됐다.
애초에 받을 걸 받은 블루잭과는 다르게, 10위권에서 출발해 2위까지 차근차근 올라온 것이니까.
그러다 보니 2위가 말이 되느냐는 어그로가 심심찮게 등장해 논리적인 척하며 욕을 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블로센스의 기이한 행보 덕분에 행복한 덕질 중이었던 팬들은, 멘탈에 입는 상처 없이 손쉽게 대처해 나갔다.
[ㅅㅂ 블로센스가 지금 활동 가수보다 뭐가 나음?](지동화 이데아 짤)
??? : 이것이 안티를 씻어내는 본질의 빛입니다.
댓글
―ㅅㅂㅋㅌㅋㅋㅌㅌㅋㅋㅋㅋㅋ 미쳤나 룸넛아 ㅋㅌㅌㅋㅋㅋㅋㅌ 타 팬인데 개쪼갰넼ㅋㅌㅌㅋㅋㅋ
―하 ㅅㅂ 요즘이 제일 행복이다… 후속곡 없댔으니 이제 뭔 낙으로 사냐…
[블로센스 음방 2위가 말이 되냐?](블로센스의 철학 아카데미 1화 영상)
(채하민 이티카 설파 짤)
까들아! 이거 보고 정화되라!
댓글
―ㅋㅌㅋㅋㅌㅋㅋㅋㅋㅋㅌㅋ 아 ㅅㅂ 까는 애들 헐레벌떡 들어왔다가 하민이 이티카 맞고 입 닫았네 ㅋㅋㅌㅋㅋㅋㅋㅌ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분석한 한 편의 글이 나왔다.
[블로센스를 까는 애들의 고충]1. 실력이 후달리지 않아서 까면 병신 됨.
2. 니체 엔터 특성상 성적은 존나 정직하기 때문에 거기에 의혹 붙이기도 어려움. 만약에 붙이면 결국 반박당할 불판.
3. 그래서 ‘마음에 안 든다’라는 이유 하나로 까질을 하려니 힘들 수밖에.
병크 없이 꾸준히 활동하면 나머지 신인 압살할 각이 자연스럽게 보이니까 까고는 싶은데 뭘 까야 할지 모르겠어서 분통 터질 듯.
댓글
―호두까기 인형인데 호두가 존나 단단해 버리죠~
―아 신인 압살 이딴 거 언급 좀 하지 마 ㅠㅠㅠ 어그로 존나 끌리자나 ㅠㅠㅠㅠ
└근데 블루투스 눈에도 압살 각 선명하긴 해 룸넛아 ㅎㅎ
2위라는, 애초에 블루잭은 누구도 이기기 힘든 상대니, 사실상 1위와도 같은 성적에 도취한 루미너스들은 돌에 대한 충만한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다만, 그에 비례해서 대중의 관심을 ‘빼앗겼다고’ 인식하는 타 팬덤은, 지금 당장은 민심이 너무 좋기에 가만히 있지만 ‘꼴 보기 싫다’라는 한 가지 생각만은 모두 같이 가지고 있었다.
* * *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나는 조용히 기지생을 호출했다.
‘기지생, 석준 가능성의 조각 내놔.’
최소한 윤성호가 석준의 가능성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는지를 확인해야겠다.
석준에게 직접 묻기엔 녀석에겐 부정적인 기억일 테니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고, 세상의 이면과도 같은 가능성을 직접 알아내기엔 나는 지혜롭지 못한 인간이니, 의지하고 싶지는 않으나 기지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그리고 마치 한 사람이 침묵하는 듯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 한다.
그러다가…….
띠링―!
[퀘스트 ‘도둑놈의 심보!’ 발생!당신이 평소에 노력하는 모습과 주지 않았을 때 생길 거대한 부정적인 여파를 고려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퀘스트입니다. 다음의 조건을 완수하고 보상을 받으세요!
완료 조건 : ‘나는 도둑놈이다’를 삼창하기
보상 : 석준의 가능성의 조각]
…하, 그래, 내 심보가 강도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쯤이야 나도 안단다.
나는 목소리를 내어 나는 도둑놈이라고 총 세 번 말한다.
유일하게 깨어있던 이현재가 해괴한 독백을 듣고는, 그 소리를 낸 사람이 나임을 확인하더니 그럴 수도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도대체 왜 그런 표정인지 부디 해명해 주겠니, 현재.
이현재의 속에서 내 이미지가 대체 어떻게 잡혀있단 말인가.
[퀘스트 ‘도둑놈의 심보!’ 완료!당신은 도둑놈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오늘 이후로 아주 잠시간 연결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보상 : 석준의 가능성의 조각]
한동안 연결이 어렵다라… 이 일을 위해 기지생이 어떤 대가를 지불한 걸까.
나는 그런 의문은 일단 뒤로한 채 기지생에게 말을 걸었다.
‘기지생, 가능성의 조각 지금 사용 가능할까.’
[주무시는 척하시면 지금 사용해 드리겠습니다.]눈을 감고 가만히 있자, 잠시 후, 익숙하게 의식을 잃는 감각이 몸을 기어오른다.
* * *
눈을 뜨자, 지금의 숙소보다 상당히 열악해 보이는 집이 눈에 비친다.
‘…음?’
대체 왜 이런 변화가 발생한 걸까.
경제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숙소는 투자의 일환이니 이전에 실현됐던 가능성에선 서바이벌 데뷔 그룹의 투자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된 것으로 보인다.
한참 동안 변화한 숙소의 이곳저곳을 눈에 담아두고 있을 때, 이전에 연습생으로 활동했던 박우진과 석준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석준의 표정은 지금과 비교할 때 놀랍도록 어두웠다.
“이제, 말 좀 잘 듣자, 준아.”
“…넵―”
“또, ×발 말꼬리 늘이는 거 봐라. 고치랬지, 내가.”
‘…하, 되먹지 못한 인간이군.’
남의 말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꼴하곤.
석준은 그대로 방 안에 들어가고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석준이 옷을 벗자 드러나는 맨몸엔 보이지 않을 곳에 조금씩 멍이 들어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하지 못해서 멍하니 그 꼴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 어떻게든 직접 조질 방법이 없으려나.
이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았다곤 해도, 그래서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걸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엿을 먹이고 싶다.
나는 그렇게 잠시 그들을 조용히 관찰한다.
‘…팀명은 캐터필러로 결정됐고, 리더는 저 박 씨 놈. 김현진은… 이 가능성에서도 없군. 실력은 출중한데, 왜.’
박우진은 일상생활에서 일방적인 독재자와 왕따의 주동자 사이 그 어딘가에 놓여있었다.
박우진을 제외하고 석준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이들은 없었으나, 아마도 석준의 성격상, 그러한 무관심이 더 날카롭게 다가왔겠지.
‘…어떤 구조로 이뤄지는지는 대충 알겠군.’
이 애벌레들 속에서 벌어지는 폭행은 교묘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박우진에 의해 석준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장난이라는 탈을 쓴 채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그걸 지켜보는 나머지 방관자 놈들은 장난이라는 그 얄팍한 탈을 믿는 듯이 무시한다.
일종의 속죄양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석준 한 사람만 희생한다면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공유되고 있었으니까. 집단의 안락을 위해 한 인간의 희생을 내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흔히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윤성호만이 달랐다.
석준과 윤성호, 둘이서 쓰는 것으로 보이는 방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지만 목소리를 떨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석준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윤성호는 석준을 보며 좌절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끊어 말하기 시작한다.
“회사에 말하고 오는 길인데, 장 팀장님이 1집 프로젝트 실패하고 나서 나가시는 바람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놈이 하나가 없어. 장 팀장님 계실 땐 그래도 이 정도로 치닫진 않았었는데. 요즘엔 내가 뭐라고 해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내 눈 피해서 괴롭히기나 하고.”
그 말을 석준은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이며 그저 듣고만 있다.
‘…….’
추론해 보자.
추측 1. 이 가능성에서 ‘더 넥스트 니체’는 투자 대비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1집도 망한 듯하고.
추측 2. 장해진은 그 책임으로 회사를 뜬 듯싶다. 아마도 성격상 회사에서 자리 내놓으라고 눈치를 줘서 나갔겠지. 끝까지 자신이 맡을 수 있는바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을 사람이니, 회사를 관둘 생각을 스스로 하진 않았을 테니까.
추측 3. 그 결과인지, 혹은 다른 연유인지 이후 회사 꼬락서니가 개판이 됐다. 현재의 회사와는 무언가 달라도 심하게 다르다. 아니면, 아이돌판이 원래 저런 곳이고 장해진과 그 팀원들이 독특한 인간들이거나.
석준은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조심스레 입을 연다.
“형―님도― 같이 당―하는 게 두―렵습니다―”
“헛소리야, 진짜. 차라리 같이 당하려고 이렇게 나대는 거야. 내가 박우진 이길 힘은 없지만, 같이 맞아줄 수는 있으니까.”
‘…채하민급으로 선한 놈이잖아.’
그리고 곧 장면이 전환되더니, 이번엔 한 뉴스 기사로 전환된다.
[캐터필러, 도 넘은 폭력… 같은 멤버의 밀고로 밝혀져]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석준은, 옆에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윤성호의 병문안을 왔는지 서툰 솜씨로 사과를 깎고 있다.
석준은 우울한 표정을 하고, 윤성호는 밝게 웃고 있었다.
“준, 나는 괜찮은데.”
“…형―님이, 저 막―다가― 형님―”
“에이, 신고해 줬으면 됐지, 뭐! 다리도 금방 붙는대. 큰 문제 없다더라고. 근데… 괜찮겠어? 분위기 보면 우리 해체할 거 같은데. 그거 피하려고 계속 버틴 거잖아.”
그걸 듣던 석준이 눈물을 한 방울씩 흘리면서도 윤성호의 한쪽 팔을 꼭 붙들고는 힘겹게 웃었다.
“…형―님, 웬 헛소―리입니까. 저랑 같―이 백수 돼서 좋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번쩍, 눈을 뜬다.
‘…갓에이 팀에 들어간 윤성호가 채하민과 같은 일을 겪을 확률은 몇 퍼센트인가.’
우선 고려할 것은 윤성호가 채하민만큼이나 선하면서, 하는 행위를 보니 채하민보다도 뒤가 없는 인간이라는 점.
꽃밭인 머릿속과 강인한 정신, 그리고 남을 위한 희생에 거리낌 없는 태도, 채하민과 비교했을 때 부분적으로는 더 과한 면도 존재한다.
만약 나였으면 설득해서 바꿔볼 결심을 하기 전에 미리 기자들 몇몇을 매수해서라도 몰래 기사로 냈을 텐데.
이 두 명이라면 높은 확률로 마약에 심취한 갓에이 멤버들 앞에서 ‘마약은 나빠!’라고 소리친 뒤,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설득을 시도하다가 통하질 않으니 신고라는 길을 택하겠지.
[소름 끼칠 정도의 추리입니다!]…게다가 미래의 가능성을 계산할 줄 아는 기지생이 인증까지 해주었다.
그러니 정리하면 100퍼센트에 수렴하는 확률로 윤성호는 이지현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을 겪게 되겠지.
나는 다시 묻고 싶은 것이 생겨 속으로 기지생을 불렀다.
‘…기지생,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건 언제까지야.’
[방금 인증을 하고 나서 자리를 뜬 고로, 현재 부재중입니다.]하, 망할.
‘…저 가능성에서, 최소한 윤성호의 다리 부상은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었고, 채하민의 가능성에서는 다리가 재활이 불가능한 수준이었지.’
어쩌면 현재 채하민의 가능성이, 나의 개입으로 인해 윤성호에게서 실현되기 직전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번에는 윤성호가 가수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채하민을 구해낸 건 좋다. 그 멍청한 토끼 놈이 우는 모습 따위 가능성의 조각 속에서만 보는 걸로 족하다.
그러나 윤성호가 대신 저런 일을 겪는 것은 정당하지 않고, 따지고 보면 내 행위가 길고 긴 인과 과정을 거쳐 결국엔 윤성호가 저 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이 되었다면, 그 나비에겐 폭풍에 대한 책임이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더럽게 죄책감 느껴지는군, 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