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6화(6/343)
6.
* * *
곡을 틀자 흘러나오는 베이스 리프가 귀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뒤에서 드럼 사운드가 사이사이 여백을 채워준다.
채하민은 아침에 들었던 리듬을 되새기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채하민은 큰 동작 없이 세세하게 박자를 쪼갠 움직임만을 이어나갔지만 춤을 배워 본 인간이면 알 수 있듯 그런 게 느낌 살리기가 더럽게 어렵다.
기본기도 기본기인데 춤 선을 살려야 하니까.
‘쟤 저거 일부러 저러네.’
딱 봐도 기죽이려고 실력 없이는 손도 못 댈 춤을 뽑아내고 있다.
베이스 리프 사이로 가볍게 울리는 신디사이저가 들어오자 채하민은 곧바로 움직임을 더 크게 바꾸지만, 박자는 동일하게 세세히 쪼개고 있다.
곡의 펑키한 리듬을 한껏 타면서 흥겹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힐끗 아까의 ‘선배님’을 바라봤는데 채하민의 능숙한 움직임에 당황한 표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마지막에 다른 사운드는 빠지고 예의 그 베이스 리프만 남았을 때 채하민은 동작을 줄이면서 관절 위주로 돌리면서 마무리를 하기 시작한다.
곡이 끝나고 찾아온 정적. 나는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서라도 웃으며 말했다.
“어떠세요, 선배님? 곡이나 춤에 고칠 점 좀 알려주세요.”
실력 봤으면 부디 선배고 자시고 됐으니까 입 좀 닥치라는 뜻인데, 필히 알아듣길.
그리고 때마침 문을 열며 장해진이 들어왔다. 녀석은 아무 말도 못 한 게 분한지 약간 씩씩댔지만, 오늘 밤에 집에서 생각해 보며 이불을 발로 미친 듯이 차댈 거 뻔히 보인다.
그러니 앞으로는 건들지 말았으면.
“와, 하민 씨 춤은 언제 봐도 대단하네요.”
장해진은 들어오려다 하필이면 타이밍이 겹쳤는지 밖에서 지켜본 것 같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나는 서둘러 눈을 굴려 장해진의 뒤쪽을 바라봤는데 다섯 명이 채하민을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오케이, 어차피 나를 보는 게 아니면 아무 상관 없다.
“댄스곡은 이번에도 혹시 동화 씨가 쓰셨나요?”
“네!”
그리고 일제히 나를 향하는 시선. 하, 저 도움 안 되는 놈.
졸지에 대뜸 연습실 찾아와서 자작곡이랑 즉흥 댄스로 기선을 제압해 버렸다. 그냥 소박하게 쟤네 3명만 딱 보고 입 닫기를 바란 건데, 젠장.
약간 도망쳐 버리고 싶은 기분이라 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런 나를 보던 중 개처럼 생긴 인간 한 놈이 입을 열었다.
“저분 귀 엄청 빨가시다.”
닥쳐.
“그쵸!”
너는 말하고 싶었던 거 대신 말해줘서 기쁘다는 티 내지 말고, 하민.
* * *
장해진이 우리를 모아놓고 말한 것을 정리하자면…….
1. 일주일 후부터 합숙을 진행.
2. 1화는 각자의 개인 무대로 구성되며 관객 없이 심사위원 평가만 진행.
3. 개인 소개 영상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티저처럼 올라갈 예정.
4. 연습 과정 촬영은 합숙 이후부터 진행.
5. 1화 무대 촬영은 지금으로부터 약 2주 후 진행되며, 방송은 4주 후 진행.
위와 같은데, 대강 들어도 겁나 빡센 일정 같이 느껴진다.
일단 집 들어가서 최근 핫한 아이돌 무대 영상을 분석해야겠군.
“혹시 질문 있으신 분?”
한 20분 동안 강연인 양 세세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질문이 있을 리가.
“질문 없으시면 오늘 공지 마무리할게요. 새로 온 연습생도 있으니 서로 인사도 나누시고 자유롭게 뭐 하셔도 되고, 집에 가셔도 상관없습니다.”
장해진이 나가고 나는 빨리 작별 인사를 드린 후 빠져나가려 했으나 누군가 한발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정식으로 인사는 못 드린 것 같아서, 류이든이에요.”
일단 초면에 반말이 아닌 것만 해도 가산점이다.
“안녕하십니까. 지동화입니다.”
그때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알림 창이 눈앞의 녀석이 퀘스트 대상이라는 알림을 보내왔다.
‘…역시, 예상대로잖아.’
나는 그 알림 창을 보는 순간 충격과 함께 무언가를 깨달았지만, 일단,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애들 몇 명이랑 같이 저녁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흠. 약간 외모가 강아지들의 왕처럼 생겨서 그런지 위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림없지. 내가 시공간 이동도 시키는 기이한 능력을 지닌 생명체한테도 주눅 들지 않는데 고작 견왕 정도야.
나는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전 좋아요!”
…라고 채하민이 크게 외치는 덕분에 일단 입을 닫았다. 저놈 저거 가서 호구 잡히면 안 되는데.
아까 기선 제압 때도 그렇고 얘는 착한 성격 탓에 성격 더러운 놈 붙으면 끝도 없이 뜯어 먹힐 거다.
하…, 조금만 덜 해맑았어도 그냥 버리고 가는 건데.
“…저도 가겠습니다.”
* * *
다른 연습생들과 밥을 먹는 시간은 나름대로 평화롭게 지나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 갔지.
집에 돌아온 알림 창을 확인하는 걸 그냥 관뒀다. 사실 아까 밥 먹을 때 나왔던 알림들도 확인하지 않았다.
아까 류이든과 대화를 나눴을 때 잠시 보류해 둔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메인 퀘스트 수행 대상이 4명이고, 더럽게 5백만 원이라는 거액을 걸고 참여하라고 강제했던 서바이벌 데뷔 인원이 5명이라는 것에서부터 예상하긴 했다.
그러니 기이한 지적 생명체, 기니까 줄여서 기지생은… 선택받은 네 명을 도와 함께 데뷔하라고 나를 등 떠밀고 있는 것이다.
일단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유도하려 시도하는 것 자체도 기분이 더러운데, 이제는 아예 아이돌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나머지 연습생들 9명을 전부 기만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군.
서바이벌에서 날 제외한 나머지 9명 중에 데뷔라는 꿈에 진심이 아닌 녀석이 어딨단 말인가.
그런데 누가 데뷔해야 할지 미리 알고 도와주라는 뉘앙스가 폴폴 풍기는 알림과 퀘스트를 보낸다?
이건 다른 이들의 꿈과 노력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망할 기지생 놈. 지적 호기심을 미끼로 나를 이딴 식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솔직히… 여전히 시공간 이동의 이유는 궁금하긴 하다. 그러나 이들의 꿈을 가지고 장난질 칠 생각은 없다. 다 집어치우라지. 망할 기지생.
일단 서바이벌에 참여하게 됐으니 민폐를 끼치지 않고, 또 월세도 지키기 위해서 일단은 최선을 다하겠지만, 기지생 뜻대로 남의 꿈을 짓밟는 데 동참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결론, 나는 온 힘을 다 했는데도 탈락하는 게 최선이고, 나머지 연습생들은 제 능력껏 데뷔하면 그만이다.
방송인 거 잠시 신경 끄고 원래 성격 그대로 보여주면 알아서 재수 없다고 탈락시키겠지, 뭐.
띠링―!
[주의! 오해가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불가능하나, 당신의 생각과는 다릅니다!]하, 헛소리. 인간의 꿈과 의지를 무시하곤 자기 뜻대로 가지고 놀려는 초월적 존재의 말 따위,
“엿이나 드십시오, 기지생.”
나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 * *
일정은 꽤나 바쁘게 진행됐다.
합숙 전까지 난 집에선 잘나가는 아이돌의 무대 영상을 찾아보고, 회사에선 트레이너와 연습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리고 합숙이 시작되는 이틀 전, 나와 채하민 그리고 류이든은 개인 소개 영상을 찍기 위해서 니체 엔터의 한 연습실에 모였다.
하필 모인 멤버도 죄책감 느껴지는 구성이군. 너희들은… 기지생에 따르면 데뷔할 거라고 한다.
“동화는 그새 살 좀 빠진 것 같네?”
류이든이 나를 보더니 말한다.
그런가? 아, 참고로 류이든과는 밥을 먹을 때 말을 놓기로 했다. 물론 류이든만.
나는 적당히 핑계를 대고 넘겼다.
그러다 류이든이 잠시 연습실 한구석을 흘깃 보더니 작게 말했다.
“그나저나… 동화, 너는 하민이 왜 저런지 좀 알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연습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몸을 풀고 있는 채하민.
일단 인사 이후 별다른 말이 없었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밝은 인상에 우울한 기색이 느껴진다는 것까지, 그냥 난리가 났다.
‘차라리 무슨 일 있다고 크게 소리치면 덜 걱정될 텐데… 저러면 좀 안타까운데.’
“동화, 너가 한번 이야기해 보는 게 어떨까? 처음 올라가는 소개 영상인데 저 상태면…….”
…기지생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지가 않은데, 제길, 왜 하필 아이돌이 꿈이라서 그 아이가 떠오르게 만드는지.
소개 영상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니, 30분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
나는 다리를 찢고 있는 채하민의 뒤에 조용히 앉아서 녀석의 등을 밀어줬다. 녀석은 잠시 흠칫하더니 충분히 몸을 풀었는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동화야…….”
“…왜.”
“오늘, 아니 이틀 정도만 재워줄 수 있어?”
뭔데, 또.
“…이유 들어보고.”
“그게, 집에서 아이돌 같은 거 한다고 쫓겨났어.”
음, 비합리적이군.
“음, 너 연습생 1년 넘게 했던 데다가 삼촌도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응, 그땐 아버지 몰래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합숙 들어가야 하니까 겸사겸사 아버지한테도 말했거든. 그런데 갑자기 우리 집안에 딴따라가 웬 말이냐면서…….”
하, 아홉 살 이후로 천애 고아로 자란 내가 대답해 주긴 어려운 문제다. 이런 건 어떻게 해결해야 한담.
“…아버지는 네 이야기 들어보려고 하시긴 했어?”
“아니, 아이돌 연습생 얘기 듣자마자 합숙 들어가려거든 오늘 당장 나가라고 하셨어.”
흠, 일단 채하민 아버님이 보기에 채하민은 말 잘 듣는 아이였을 테니, 강하게 나오면 채하민 쪽에서 먼저 굽힐 거라고 예상하신 건가.
그럴 땐 충격요법이 직방이다.
“짐은 싸 왔어?”
“응. 근데 막상 나오니 카드가 다 정지됐더라고. 그래서…….”
확실히 강하게 나오시는군. 이건 한 번쯤 제대로 반항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일이다.
“…우리 집 들어와. 그래야 아버님도 네 뜻을 아시겠지.”
“고마워… 진짜 너한테는 민폐만 끼치는 것 같다.”
나는 기죽어 있는 채하민에게 됐으니 연습이나 똑바로 하라고 톡 쏘아줬다.
소개 영상은 장기자랑 비스무리한 걸 1분가량 보여주고 남은 2분 동안 노래나 춤 같은 걸 보여주는 약 3분 길이의 짧은 영상이다. 촬영만 회사가 해주고 계획은 모두 개인의 선택에 따른단다.
그러니 나도 어제 하루 종일 써온 대본을 연습해야 한다. 5백만 원이 푼돈도 아니고, 지키려면 만전을 기해야지.
* * *
#지동화 자기소개 가편집본
‘안녕하십니까, 겨울에 태어난 지동화 인사드립니다.’
차분하게 인사하는 지동화의 손에는 스노드롭이 세 송이 정도 들려있다.
‘이 꽃은 스노드롭으로 1월 1일에 태어난 제 탄생화입니다. 꽃말은 희망과 위안.’
그러곤 그 꽃을 살짝 들어 올리며…….
‘제 데뷔의 희망을 이 꽃에 담았습니다.’
그러곤 꽃을 살짝 내밀며,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던 표정을 무너뜨리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부디 이 꽃과 그 속에 담긴 제 희망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꽃이 여러분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도록 노래하겠습니다.’
그러곤 옆에 준비된 키보드에 앉아 그 위에 꽃을 올려놓고 잔잔하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오늘 들려드릴 곡은 스노드롭으로 제가 직접 만든 곡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피아노 사운드. 흰 눈이 떨어지는 평원을 바라보듯 평온한 느낌의 소리가 공간을 채운다.
그 위에 작은 발자국을 찍듯 흘러나오는 지동화의 목소리.
새로운 한 해의 시작, 설레이는 마음과
올해는 다를 수 있을까, 요동치는 불안함
새해의 설렘과 불안을 언급하며 시작된 곡은 마치 작은 동물이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음
이젠 나도 나갈래, 음
이 좁은 세상 속에서
프리코러스에서 용기를 내보겠다는 듯 곡을 고조시킨 지동화는 코러스에서 다시 잔잔한 눈이 떨어지는 듯한 음계로 돌아왔다.
내게 희망을 주겠니
네게 위안을 줄 테니
내게 희망을 주겠니
네게 위안을 줄 테니
뚝뚝 떨어지는 눈처럼 반복되는 가사로 이뤄진 후렴구는 평화로운 눈 속에서 잠든 한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그 속에 불안함이 담긴.
노래가 끝나고 지동화는 키보드에서 일어나더니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곤 고개를 확 들더니 카메라 옆을 바라보며 향해 작게 소리쳤다.
“하민, 구경하지 말라고! 류이든 형도 저리로 좀 가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지동화의 귀 끝은 전반적으로 하얀 분위기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