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61)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61화(61/343)
61.
‘모모지’ 제작 회의실.
철학 아카데미가 예상보다 더 히트하는 바람에 이미지를 이어나갈 겸, 새롭게 온 출연 제의에 응하기로 하였다.
블로센스와 강승원 그리고 원래는 밖에 잘 나오지 않는 장해진까지 모였다.
나름대로 첫 예능, 비록 한 분기긴 해도 출연 제의를 받은 택이니 엔터사에서도 최대한 신경을 쓴 처사인 듯싶다.
그래, 회사에서 아이돌 론칭 과정의 중역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모인 셈이다.
“…근데 이든 형.”
생수로 목을 축이던 류이든이 나를 돌아본다.
“엉, 왜?”
“…우리 소속사 사장님은 뭐 하는 분인지?”
어떻게 여태껏 얼굴을 한 번도 못 마주칠 수 있는지.
“아, 혜랑 사장님? 뵌 적 없던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성함 정도는 알고 있었지.
“나 연습생 초반까지만 해도 1선에 계셨는데, 지금은 감 떨어지셨다고 투자자 유치나 관리 같은 부분만 맡으신다더라.”
…그렇군. 개인적으론 범죄라도 저지르신 건가 의심했는데.
“사실 TOT 형들도 얼굴 뵌 적 거의 없대.”
그렇게 쓸데없는 수다를 떨고 있을 때, PD님이 들어오셔선 인사를 한다.
“아,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자료 준비로 약간 늦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온 건 우리고 아직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과할 건 또 무엇인가.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지식의 메인 PD 김소영입니다.”
그러곤 절도 있게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한다.
예의가 뼈에 새겨진 듯한 사람 같아서 강승원과 느낌이 비슷했다.
“음, 기본적인 계약 건을 말씀드리기 전에, 출연 예정자분들께 어떤 일을 해주셔야 하는지를 간략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소영은 자료를 한 부씩 사람들 앞에 내려놓는다.
“우선, 저희 프로그램은 지금 존립의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세상에나, 몹시 뜬금없군. 면접에 합격해서 업무 관련 안내를 받는 자리에 갔더니 앞뒤 자르고 회사가 부도 위기라 말하는 택이다.
“대중분들이 더는 ‘고상함’을 원하지 않죠. 17, 그리고 18세기에 형성된 지식인에 대한 이미지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꽤 배우신 분이군.’
나는 자세를 올곧이 하고 경청한다. 지식인상의 통시적인 변화와 거기서 도출되는 지식의 올바른 전달 방식.
매스미디어와 지식에 관한 일부 철학자들에 대한 공부의 깊이가 돋보인다.
그렇게 일장 연설을 마친 김소영. 사실 논리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길어졌을 뿐 결론은 단순했다.
‘모모지의 지식 전달 방식은 낡았다.’
“…방금 보셨듯, 모모지는 방금 제가 말한 방식대로 지식을 알렸습니다.”
김소영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하다가 나를 보더니 입을 연다.
“물론 가끔 지동화 씨처럼 논리적인 대화를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대개는… 지루하다고 여기죠.”
나는 조용히 눈동자를 굴려 옆자리에 앉은 석준을 바라본다.
‘…반쯤 눈이 감겼군.’
안 자려고 안간힘을 쓰곤 있지만, 잠에 빠져드는 건 시간문제일 듯싶다. 학교에서 뭔가 배우기는 하는 걸까.
나는 조심스레 펜으로 석준의 옆구리를 찔렀다. 생각이 있으면 놀라지는 않겠지.
“후―압!”
그래, 기대한 내가 등신인 걸 알려줘서 지나치게 고맙군.
“죄, 죄송―합니다.”
그걸 보는 김소영은, ‘그렇죠?’라는 표정으로 한번 사람들을 둘러본 뒤 이어 말했다.
“그래서… 저희 팀은 블로센스가 이번에 자체 콘텐츠로 공개했던 철학 아카데미를 몹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답니다.”
그러곤 김소영 PD는 종이를 한 장 넘기고 모두에게 보이게 한 뒤 말했다.
“모모지,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으로 근대 철학을 주제로 한, 블로센스가 이번에 보여준 형식의 영상물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와… 헤겔과 니체가 철학 배틀하는 영상이라니, 벌써 수치스럽군.
“다만, 모모지의 제작비나 시청 연령층 등의 다양한 사정상… 마법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준비한 기획안입니다. 이건 나중에 보시고 의견 주시면 됩니다. 알아보니 블로센스가 철학 아카데미 제작에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시면 저희에게도 바로바로 알려주시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특히 나를 주시하시는 걸 보니, 대본 초안을 내가 짠 게 들켰나 보군.
…망할 인터넷 시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업적이다.
* * *
“와… 이분들도 콘셉트 대단하네요.”
세부 계약 사항 조정을 위해 강승원과 장해진이 김소영 PD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기획안을 훑어보던 이현재가 중얼거렸다.
그래, 우리 영상도 콘셉트가 ‘대단’했다는 걸 알긴 하는군.
“추리 드라마에 근대 철학을 섞겠다니… 진짜 대단하다.”
류이든도 그 말을 듣더니 중얼거린다.
애초에 젊은 시청자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니 괜찮겠다만, 대체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는지.
게다가 수록된 인물 목록을 보니 근대 철학의 큰 줄기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알겠다. 즉, 이 사람들 지금 진심이다.
“…개인적으론 우리보다는 덜 ‘대단’한 콘셉트인 것 같은데.”
“하긴, 철학 마법이 더 괴상하긴 하다.”
류이든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면서 씩 웃는다.
타인이 무엇을 수치스러워하는지는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군.
“…당신도 제 의견에 찬성한 거 기억하십시오.”
“당연하지.”
* * *
모모지 제작 회의 이후엔 또 급하게 다뤄야 할 주제가 있다.
“디오니 엔터에 김현진 연습생은 컨택이 완료됐습니다. 데뷔 전 좋은 기회가 될 거라며, ‘수평선’ 무대 특별 출연해 주기로.”
오랜만에 보겠군, 양아치 같은 얼굴.
“장소 컨택도 완료됐고, 보안 업체도 컨택 완료됐어요. 그러니 이제 진짜 무대 준비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체력을 고려해서 토크 시간 제외 진짜 무대는 20분 내외로 제한을 두려고 합니다. 그러니 대략 다섯 곡 정도를 준비하는 겁니다.”
장해진은 한숨을 푹 내쉰다.
“여러분! 댄스곡 다섯 개로 꽉 채우시면 안 됩니다! TOT도 한강 야외무대 빌려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멤버분들이 댄스곡을 엄청 밀다가 준성 씨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진 전적도 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앨범에 발라드가 없다는 거지.
“따라서 ‘절벽과 소년’은 무조건 셋리스트에 한 곡 넣어주세요. 쉬어가는 타임으로.”
그러곤 장해진은 기획팀이 만들어둔 셋리스트를 보여주며.
“우선 저희가 짜둔 겁니다. 한번 보시고 괜찮겠다 싶으시면 그대로 갈게요.”
흠, 타이틀곡인 ‘Cloudy Blue’, 수록곡인 ‘Our Hour’, 미수록곡 ‘절벽과 소년’, 서바이벌 곡 ‘수평선’, 그리고 마지막 한 곡은 수록곡인 ‘시작, 시간’.
조금씩 색채가 다르면서도 1집의 몽환적인 느낌과 여름 특유의 청량한 분위기를 골고루 잘 담아낸 셋리스트다.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게 아닌 법이지.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팀장님, 혹시 ‘절벽과 소년’ 다른 곡으로 해도 괜찮을까요?”
류이든이 손을 들고 말한다.
“…음, 이유는요?”
“너무 제 개인곡이라… 공연 취지랑 잘 맞질 않는 것 같아서.”
그래, 그게 문제다. 서바이벌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응원해 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니까. 모두 함께 돋보일 수 있는 방향이 좋으니까.
그렇기에 장해진은 날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단체곡 편곡을 반대한 게 나였으니까.
…어쩔 수 없군.
“…대신 제가 편곡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습니까?”
장해진은 말리지 못할 무언가를 보는 눈빛으로 날 보면서 중얼거린다.
“…A&R팀이 일 줄었다고 좋아할 게 벌써 빤히 보이네요.”
* * *
모든 회의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온몸이 썩어나는 기분이다.
“…침대.”
나는 재빨리 씻고 나온 뒤 이불을 파고들어 머리맡에 놓아둔 책을 꺼내 들었다.
…행복하군, 아주.
“너는 책 읽을 때 제일 행복해 보이더라, 동화야.”
아, 그러고 보니.
“…하민, 내일 시간 괜찮으면 작업실 갈래.”
채하민은 샐러드를 씹다가 답한다.
“응? 내일 ‘절벽과 소년’ 녹음하러 어차피 가는 거 아니야?”
“…그것보다 조금 더 일찍.”
그러자 채하민이 샐러드 그릇을 흔들며 묻는다.
“뭐야, 놀러 가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너는 나완 달리 사람 만나는 게 놀이인 외향적 인간이니까.
* * *
다음 날, 채하민과 함께 작업실에 들어가서 잠시 기다리자 작업실 문이 열리더니.
“형! 나 왔어! 하민 선배님도 안녕하세요!”
목화가 들어왔다.
내 작업실에 한 번쯤 놀러 오고 싶다는 목화의 소원과, 하민 선배님과 더 친해지고 싶다는 별것 아닌 희망을 들어주기에 적합한, 마지막 주 음방 활동이 끝난 첫 휴일이니까.
“와! 목화야, 2개월 만이야.”
“그게 다 동화 형이 저를 꽁꽁 숨겨서 그래요.”
…음? 헛소리.
“모든 음방 2위 축하드려요. 하민 형 춤 보려고 다 챙겨 봤어요.”
…나는, 못된 것아.
그러자 목화는 특유의 느긋한 얼굴로 나를 힐끗 보더니 얄밉게 웃는다.
대체 어쩌다 저리 영악하게 자랐지. 유년기에 올바른 것만 보여주려 그리 노력했는데.
그렇게 목화는 내 작업실에 놓인 가구와 설비 등을 살펴보며 감탄하기 시작한다.
“와… 형, 이거 회사에서 다 해준 거야?”
“응.”
“동화가 작곡 실력 좋다고 사주셨대.”
그렇게 한바탕 작업실 탐방까지 끝나고 나자 소파에 앉아 한동안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눈다.
“…목화, 혹시 김현진이라고 알어?”
“어? 우리 회사 들어온 거 알고 있었어? 어제 첫인사 해서 오늘 말해주려고 했는데.”
음, 류이든한테 말한 건 들어가기로 말이 오가고 난 직후였나 보군.
“…혹시 데뷔는?”
“아마, 내년 초에 론칭할걸? 지금 데뷔조 뽑는다고 공지 떠서 분위기 완전 살얼음판이야.”
한숨을 쉬는 목화를 보며 나는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그러고 보면 목화도 데뷔하고 나서 내가 겪은 일을 그대로 겪는 건가.’
열여덟 살이나 된 애지만, 내 눈엔 아직 아이랑 다를 바가 없어서 그런가. 몹시 걱정되는군.
“만약에 데뷔하면 아마도 현진 씨랑은 같이 데뷔하지 않을까?”
자기보다 어린 걸 알면서도 말을 높이는 게 아주 마음에 쏙 든다.
“디오니 엔터면 대형이니까 데뷔하면 무섭게 따라오겠다, 목화야.”
채하민이 말하자 목화는 고개를 젓는다. 목화의 표정이 마치 날카롭게 분석하는.
“에이, 그래도 형들 나가는 속도는, 거의… 조금 있으면 라이징 단계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은데요?”
…라이징 단계는, 아마 뜨는 중이라는 의미겠지.
그렇게 별것 없이 이어지는 담소.
목화는 대화에 능하고 채하민은 리액션에 능하니, 나는 그저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다 USB를 꺼내 들었다. 오늘 손에 쥐여줘야 마음이 놓이겠군.
“아, 목화.”
“왜, 형?”
“…이거 선물.”
목화는 두 손으로 USB를 받아 들며 의아해한다.
“형, 요즘 USB를 선물로 주는 문화가 있던가?”
“…내용물이 선물이야.”
“오, 뭐야, 형. 혹시 나한테 곡이라도 하나 썼어?”
“응.”
“어?”
뭐, 동생 놈아. 네가 물어서 맞다고 해줘도 난리구나.
“…아니, 왜?”
“…너 데뷔 오디션 때 쓸 곡 없다고 뭐라 했잖아. 네가 말한 분위기 다 반영해서 하나 만들었으니까 들어보고 창작 안무 만들어봐.”
…그래, 지금 당장은 내가 아이돌 활동을 하느라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긴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알량한 마음이다.
“아니, 근데 형, 바쁘지 않아? 대체 언제…….”
…음?
“…됐으니 연습이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