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6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65화(65/343)
65.
번지점프대 위, 내가 발을 올렸다.
번지점프의 사고 확률은 0에 수렴할 정도이므로, 나는 몹시 안전한 상태이다.
번지점프에서 죽는 것보다 야생 곰에게 죽을 확률이 차라리 높을 것이다. 나는 안전하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무심코 말을 뱉고 말았다.
“대체… 사람들은 왜 돈 내고 하는 죽음 체험 같은 걸 발명한 겁니까.”
그걸 듣던 류이든이 웃으며 말한다.
“왜냐하면 오늘 네가 괴로워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지!”
‘…하, 망할.’
류이든이 안전장치를 모두 점검하더니 요원의 안내를 따라 번지대의 끝 쪽으로 걸어 나간다.
“그럼 먼저 뛸게, 동화야!”
그래, 애초에 저 인간한텐 이게 벌칙조차 되지 않는다, 이거군. 망할.
번지대 위에 선 류이든,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다만, 높은 확률로 웃고 있지 않을까.
―이든 형! 한마디 해줘야죠!
아래쪽에서 울려 퍼지는 이현재의 목소리. 특유의 발성이 온 계곡을 뒤흔들었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뛰어내리실게요.”
안내 요원의 말에 류이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뛰어내린다.
“블로센스 영원히!”
…구리군. 케케묵은 낡은 관습 같은 말이다.
류이든이 줄에서 벗어나 땅을 밟고 나서, 마침내 찾아온 나의 차례.
나는 안내원분의 손을 꼭 부여잡고 번지대 앞에 섰다. 그분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드는 게 보인다만,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 쓸 정도로 사정이 좋지는 않다.
―와! 동화 멋지다!
그리고 들려오는 류이든의 목소리.
―동화 형도 한마디 하구 와요!
대포와 같은 이현재의 목소리가 떨어진다.
…그래, 죽을 확률은 낮다. 겁내지 말고 뛰면 되겠지.
나는 조심스레 번지점프대 앞에 다가가 아래를 바라본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는, 그 심연 역시 자신을 들여다보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니체.’
나는 시선을 들어 올려 하늘을 본 뒤 눈을 감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그 내면 역시 자신을 들여다보기에, 자신이 어떤 욕망을 가지는지 알지 못한다는 니체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처럼, 내가 지금 무슨 욕망을 느끼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 욕망은…….
“류이든… 저주하겠습니다.”
류이든에 대한 살의에 가까운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몸을 아래쪽으로 떨어뜨렸다.
* * *
루미너스에 대한 감사제 주간에는 W앱과 자컨 공개가 수시로 진행되며 마치 축제를 연상케 했다.
그중에서도 루미너스들에게 가장 관심을 받은 콘텐츠는 ‘블로센스와 놀이 교실 EP 1 : 블로센스, 부정부패 저지르겠습니다!’였다.
일단 소속사 관계자가 대체 누구냐고 묻고 싶은 제목부터 시작해서, 지동화의 계략이 성공한 이후 권선징악으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룩스메아 @luxmea1919
이번 자컨 개웃기넼ㅋㅋㅋㅋㅌ 동화가 자기 1등 하려고 팀 제안할 때 애들 반응 유형별로 나타나는 거 ㅅㅂㅋㅋㅌㅋㅋ
하민 : 비밀연합! 특별해!
석준 : (아무 생각 없음) 좋습니다!
이든 : (일단 불신) 얘가 왜 나한테?
현재 : (합리적으로 계산 중) 흠… 손해는 적겠네
meine_winter_blume @flow3221
아닠ㅋㅌㅋㅋㅋㅋㅌㅋㅋ 하민이 배신당한 표정 존나 ㅋㅋㅌㅋㅋㅋㅋㅋㅌㅋ
(토끼 이모티콘) : 어떻게 그런 잔악무도한 짓을! 믿을 수 없어요!
(채하민의 ‘검사하겠습니다’ 반응 짤)
이든아사랑한다 @edenily1
이건 지동화가 하드 캐리 했다 진짜… 애들 성격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략 짜는데 내가 다 치가 떨리더라 그리고 와중에 현재만 완전히 다 믿진 않고 밀수품 적게 넣은 건 진짜… 블로센스 확신의 두뇌 라인…
(지동화 검사하겠습니다 선언 짤)
마지막 지동화의 번지점프 편집본은 룸넛판 밈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여우같은내돌 @fox287
나는 이거 보고 진짜 쪼겠다… 같이 웃어줘 트친들…
(지동화가 마지막 번지점프 순간에 허망하고 공허한 표정으로 땅을 한번 내려다보고, 하늘을 다시 올려다본 뒤, 눈을 슬며시 감은 채 ‘류이든… 저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몸을 부드럽게 아래로 떨어뜨리는 영상)
―디노인사이드 @112dinosaur
ㅅㅂ 앞에 안 보고 이 부분만 보니까 세상에 배반당한 새드엔딩의 주인공 같잖아 ㅋㅋㅌㅌㅋㅋㅋㅋㅌㅋㅋㅌㅋㅋㅋㅋ
지동화 의문의 개그캐 ㅋㅌㅌㅋㅋㅋ
―또래또래 @aweful90
비장하게 저러고 나서 내려온 다음에 진짜로 류이든 멱살 잡은 게 ㄹㅇ 킬링 포인트
(지동화가 류이든 멱살 잡고 흔들면 류이든이 웃고 있는 짤)
류이든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자막으로 기말고사, 자기가 파는 돌의 소속사 같은 것들을 넣은 패러디물이 SNS에 자주 올라왔고, 그 결과 무언가에 대한 저주심을 품어내는 밈으로 잠시 인기를 끌게 되었다.
* * *
“와… 무대 꽤 크네요?”
서울에 위치한 한 야외무대, 우리는 주차장에 세워둔 차 속에서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루미너스 감사제 주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감사제 공연 날이다.
평일 오후 2시라는 특수한 시간대와 주택가와도 떨어진 무대,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힘든 조건인데도 벌써 많은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눈에 띈다.
“SNS에 월차 내셨다는 분들도 계세요. 자체 휴강하신다는 분도 많았구.”
이현재의 말을 듣고 나는 뭐라 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묘하게 기분이 좋은.
그러니까 마치, 내가 예전에 썼던 소설을 밤새워 읽느라 힘들었다는 독자분의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열심히 해야겠군.’
류이든이 박수를 치며 시선을 끈다.
“어제 아무도 몰래 와서 리허설 했던 대로만 하면 될 거야. 오늘 무대 회사에서 촬영팀까지 와서 공식 계정에 편집해서 올린다고 하시니까, 실수만 하지 말자!”
…저런 말을 하면 꼭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별일 없을 테니까 무대만 잘 즐기면 돼!”
아주 불길하군.
우리는 임시로 설치한 대기실에 들어가 의상을 점검했다.
오늘의 의상은, 여름이라 배려해 주신 듯한 얇은 소재의 한복 같은 저고리와 청바지, 그리고 유년기에도 착용해 본 적 없는 멜빵이었다.
내가 패션에 문외한이라지만, 마치 세 살짜리 아이도 불에 손을 대면 놀라듯, 기상천외한 조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서바이벌 때부터 우리 의상을 담당해 주시던 스타일리스트분께 묻자, 그저 웃으시면서 멜빵 메는 걸 도와주신다.
“감사제니까 한복 입고 예의 차려야지.”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의미겠지.
* * *
백스테이지. 채하민이 무대 아래를 몰래 훔쳐보고 오더니 이현재, 석준, 김현진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 쑥덕거린다.
“엄청 오셨어, 엄청! 완전 빼곡히 앉아계셔.”
“…긴장돼요. 이번에 음 이탈 내면 자존감 난리 날 것 같아.”
“플래―그야, 현재―”
“형, 불길한 소리 하지 마시구요…….”
“어어… 현재야, 나도 한 무대밖에 안 나가는데도 너무 떨려.”
그러고 나서 넷은 이현재의 긴장감이 옮아가기라도 했는지 서로 손을 끌어모아 부여잡고는 할 수 있다고 계속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이현재가, 지능이 낮아졌군.’
이를 지켜보고 있는 나와 류이든은 그저 서있었다.
그때 옆에서 띠링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류이든이 저걸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촬영을 마치곤 곧바로 휴대폰을 만지작댄다.
“…뭐 해?”
“SNS에 올려도 되는지 허락받으려고.”
…그러니까 저 하찮은 모습을 올리겠다는?
“…그걸 루미너스분들이 좋아해 주셔?”
만약에 좋아해 주신다면, 내 머리로는 팬분들의 기호를 판단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해야겠지.
“네가 나 저주하는 것도 좋아해 주시는데?”
그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니까, 좋아해 주신다기보단 공감해 주신 거겠지.
류이든은 내가 말이 없자 설득됐다고 여겼는지 날 보곤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근데 형은 안 떨려? 나도 엄청 긴장되는데. 우리 무대만 30분 정도 하는 거 처음이잖아.”
“…떨려.”
마지막 음방 끝나고 2주 만이니까.
* * *
# 공식 계정에 올라갈 제1회 블로센스 감사제 영상 가편집본
푸른 파도가 치는 화면에 줌인을 하자 파도의 하얀 부분으로 화면이 가득 찬다.
이후 화면이 줌아웃 되면 흰 부분이 국화 한 송이로 이어진다.
국화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더니 서로 이어지며 문자를 이룬다.
[Blue, Blooming]그리고 화면이 반으로 갈라지는 순간 블로센스 멤버들이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 잡힌다.
그리고 수록곡인 ‘Our Hour’이 흘러나온다.
저녁, 친구들과 모여 홈 파티를 할 때 들을 법한 파티 비트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모두 뒤돌아 흥겹게 비트를 타다가 비트가 잠시 멈출 때 석준이 고개 돌려 느긋하게 읊조린다.
Oh― Our― Hour
지동화가 센터에 서더니 멜빵을 쓸어 올리며, 씩 웃은 뒤 입을 연다. 느긋한 밤에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귀족 같은 표정이었다.
새벽 두 시에 눈을 떠도 여전히 울리는 TV 소리 (Our―)
Like Nobody’s Buisiness, 머릿속엔 없는 내일 (Hour)
지동화가 옆으로 몸을 쓰러뜨리면 류이든이 툭 받아 들고는 튕겨준다. 그리고 류이든 센터.
It’s the end of the week, 팝콘이 필요해
Film in the TV screen, 음악도 틀어대
류이든이 노래하며 흥겹게 스텝을 밟자 다른 멤버들이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젓는다.
그러다가도 류이든이 한번 더 스텝을 밟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추다, 흥에 겨웠는지 웃음이 번져간다.
멤버들이 큼직하면서 유쾌한 동작의 춤을 선보이고, 곡은 홈 파티의 분위기가 고조된다.
그리고 프리코러스, 이현재가 석준에게 업혀서 센터에 선다. 곡은 곧 있을 훅을 준비하듯 분위기가 잠잠해진다.
이제 그만 자고 싶다고 (No way!)
말해도 들어줄 리가 없어요 (That’s Right)
오늘 밤 수면은 불법이고 (Because)
일어나서 여기 콜라 마셔요 (It’s Our Hour!)
터져 나오는 훅, 통통 튀듯 무대 위에 전자음이 뛰어다닌다.
석준 등에 업혀있던 이현재가 왼편으로 석준이 오른편으로 뛰쳐나가자, 채하민이 그 중간에서 툭 튀어나오듯 점프해 나온다.
왼쪽으로 몸을 돌려 박수를 한 번 치고 상체를 뒤로 기울여 좌우로 몸을 꿈틀대자, 다른 멤버들도 곧 대형을 맞춰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 동작을 반복한다.
웃음을 유발하는 안무를 한번 선보인 뒤, 고조되는 비트에 맞춰 채하민을 중심으로 락킹 춤을 춘다.
정말 내일은 없는 것처럼 흥겹게 뛰어다니며 해맑게 웃고 있는 멤버들.
곧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멤버들이 일렬로 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To Be Blooming! 블로센스입니다!’
* *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힘들군.’
다른 무대보다 안무가 격한 곡이라 그런지 숨이 차오른다.
무대 앞쪽에는 평일 오후임에도 많은 팬분이 모여서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었다.
“여러분! 저희 보고 싶었죠!”
채하민은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이 소리친다.
‘…대신에 대본을 까먹었군.’
원래는 류이든이 감사제 이야기를 먼저 하는 순서인데 말이다.
아무래도 팬분들만을 위한 무대라는 사실에 상당히 흥분한 듯싶다.
류이든은 그냥 웃으며 자연스레 말을 받는다.
“저희도 많이 뵙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가 블로센스의 제1회! 감사제 자리를 마련했죠.”
그제야 아차 하는 채하민이 멋쩍게 웃자 류이든은 괜찮다고 한번 웃음 지어준 뒤 나를 바라본다.
“동화 씨! 그런데 감사제라는 게 정확히 뭐죠?”
나는 차오르는 숨을 다잡고 말을 잇는다. 기억력이 좋다는 죄로 가장 긴 대사를 받았으므로.
“루미너스 님들을 위해 블로센스가 준비하는 축제입니다. 저희에게 보내주신 사랑에 보답을 드리기 위해 무대를 꾸미고 영상으로 올리는 등의 행사가 진행됩니다. 이 밖에 더 독창적인 이벤트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다양한 단어가 쓰였으나, 본질은 ‘루미너스, 사랑합니다’ 하나로 귀결된다.
그리고 첫 번째 대화가 마무리되고.
“그러면 이제 루미너스분들에 대한 감사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류이든이 감사제의 개최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