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7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72화(72/343)
72.
기지생이 다분히 신사적인 방식으로 취득해 온 정보를 류이든에게 공유해 줬다.
…협박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공격적이니까, 신사의 방식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조금 있네? 성호한테 문제 생기는 건 내년 3월쯤이니까.”
“그렇지.”
류이든은 샐러드를 한입 크게 넣는다. …흠, 드레싱도 하나 없이 저걸. 그리고 같은 접시 위에는 아무 간도 되지 않은 닭가슴살이 놓여있다.
어제 류이든에게 장난을 친 뒤로 자기관리가 더 엄격해진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헸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듯싶다.
…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할 테지만, 내가 해결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데.
“어떻게 하려고? 생각해 둔 건 있어?”
“…미래라는 게, 상당히 복잡하다는 교훈을 얻었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경험적으로 확인하는 건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연습생이 된다’라는 미약한 사건이 ‘윤성호가 죽는다’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건…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짓거리다.
기지생이 말한 두 달 후라는 수치는, 우리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흐를 때에나 이뤄질 경우의 수다.
모든 것들은 잠재된 형태로 언제든 실현될 때만을 기다리며 존재의 뒤안길에서 꿈틀대고 있겠지.
“…우선은 현상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비록 잔인할지도 모르지만.
“그래?”
류이든은 닭가슴살을 먹으며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기왕이면 그런 일 있기 전에 해결하면 좋을 텐데… 힘들려나?”
정론이며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계획이기도 하다.
아직 마약을 하지 않으니, 마약을 못 하게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하필이면 이지현의 아버지가 유통자일 건 또 뭐람.
이지현의 인격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중차대한 사건이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러니 미봉책으로 위험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보단, 차라리 윤성호의 안전을 도모하는 쪽이 낫다.
그러니까…….
“…우선, 현재 또는 미래에 마약을 하고 있을 연예인의 리스트가 있어.”
나는 머릿속을 뒤져 저장해 둔 정보를 불러온다. 음, 다행히 누락한 건 없는 것 같군.
“…뭐?”
류이든이 힘겹게 입에 남은 닭가슴살을 다 먹고 나서는 탄식처럼 말을 뱉는다.
“누님께서 도와주시는 대가로 드리는 게 좋겠지.”
어차피 알려질 사실, 터뜨릴 시기는 뉴스에서 봤던 날짜를 외워뒀으니 그 무렵 가장 먼저 터뜨리는 것만으로도 기자의 커리어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류이든의 아버님께는 이지현의 아버지에 관한 정보를 드리고 싶지만… 아는 거라곤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뿐이라 아쉽다.
“아니, 아무렇지 않게 그런 중대 사항 얘기하지 좀 마!”
음, 아무렇지 않을 건 또 뭐란 말인가.
나는 가뿐히 류이든을 무시하고 말을 잇는다.
“…일단 계획을 얘기할게. 내가 어젯밤에 고심한 것들이긴 한 게, 나는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까 형이 채워줘.”
류이든은 그 말을 듣더니 결국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동화… 너는 진짜 자신에 대한 저평가가 너무 심해.”
다시 무시. 저평가가 아니라 객관적인 것이니, 거짓에 반응할 필요는 없다.
“…계획의 기본 골자는,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에서 따 왔어.”
그리고 한참을 미리 뽑아 온 계획서를 보며 내 계획을 설명한 후, 류이든은 모든 계획을 듣고 나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닭 쫓던 개가 지붕을 보는 표정이 저것과 같겠지.
“…동화, 이걸 어젯밤에 계획한 거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결함이 있나 보군.
“…어떤 사람이 계획을 A안, B안, C안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세부 계획을 경우의 수에 따라서 나눠.”
“음, 어쩌면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든든하긴 한데… 지금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진짜.”
류이든은 계획서를 훑어보다가 나를 보고 다시 계획서를 보길 반복하다가 웃었다.
“계획대로 별문제 없이 해결되면 좋겠네.”
“…그렇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는 서사에는 비일비재해서 문제긴 하지만.
* * *
윤성호는 공백기에도 바쁘게 굴러가는 연습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확실히… 힘들다.’
연습생들 사이에서 데뷔하고 나서는 더 힘들 거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때는 데뷔만 하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견디던 때라 속 편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윤성호는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켠다. 어머니가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이 메신저로 와있었다.
―웬수가튼 아들아,,, 연락좀하고 살자,,, 여는 니 동생이 오고십다고 난리친 동물원
정작 사진에는 동물이 찍혀있지 않다는 게 웃겨서 윤성호는 웃음 지었다.
문자에 답장하고 있자니 호연이 들어온다.
“성호, 뭐 해.”
무뚝뚝한 목소리, 이젠 너무 익숙해졌다. 말투만 저렇지, 사실은 속이 따뜻한 친구다.
갓에이에서 유일하게 나와 친밀한 사람. 굴러온 돌이지만, 갓에이 놈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약간은 거리감이 들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 호연이만은 나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갓에이에서 둘만 소외되고 있는 거지만.
…어쩌다가 이 꼬락서니가.
윤성호 본인은 팀 리더인 이지현이 뭔가 싸하게 행보가 구리다는 사실을 진즉에 눈치채서 약간 경계했을 뿐이고, 호연이는 그런 나한테 친하게 대해줬을 뿐이다.
대체 이게 무슨 잘못이라고 따돌림 비슷한 걸 받고 있는지.
‘…쟤들 요즘 유흥가 돌아다닌다던데.’
연예인이 돼놓고서는 한다는 짓이 왜 그 모양 그 꼴인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실패해서 자포자기한 것도 아닐 텐데.
갓에이는 나름대로 선방했다. 물론 블로센스에 묻힌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그리고 이렇게 선방한 데에는 자신과 호연이의 지분이 60퍼센트는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자신은 서바이벌에서 비주얼도 좋고 실력도 좋은 애들한테 밀려 떨어졌다지만 비주얼 하나는 밀리지 않았고, 호연이는 실력이나 비주얼이나 다 괜찮았으니까.
‘하, 진짜 얼굴은 무슨 아스팔트 길에 서너 번 비빈 것처럼 생긴 놈들이.’
남의 얼굴을 헐뜯는 건 잘못된 일이지만, 따돌림 같은 한심한 짓거리를 당하다 보면 열이 뻗쳐서 참을 수가 없다.
“성호, 뜨거워.”
호연이 전매특허인 기묘한 생략 화법. 아무래도 분노가 얼굴에 표출되었나 보다.
“…호연아, 너는 진짜 그렇게 착해서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냐.”
“음, 잘 살고 있어.”
그래, 네가 죽지는 않고 있긴 하지. 윤성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너 없었으면 아마 우울증 걸렸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릴 때, 휴대폰이 진동한다. 어머니의 답장인가 싶어 확인했는데.
‘…동화 씨네.’
아직 말을 놓지 않은 유일한 블로센스 멤버이자, 뜬금없이 연락이 오면 답장을 해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기묘한 사람.
윤성호는 메시지 창을 열어 확인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현명한 생활 수칙을 공유해 드리려 합니다.1. 문제가 있다 싶은 상황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전엔 세 번 이상 이 글을 떠올려 주십시오.
2. 저는 언제나 성호 씨의 고민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3. 만약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사안이라면 꼭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4. 타인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타인의 문제지 본인의 문제는 될 수 없습니다.]
뭐야, 이 나폴리탄 괴담 향기가 흠씬 풍기는 문자는. 4번 이후로도 뭔가 글이 쓰여있긴 했지만, 결국에는 연락 좀 하고 살자는 뜻이었다.
윤성호는 글을 몇 번 읽다가, 지동화가 갓에이 내부 사건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건지를 의심하게 된다. 지난번부터 자꾸 고민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뉘앙스의 문자가 왔는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고민을 들어주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나.’
이지현이 교묘해서 그런지, 아니면 회사가 무관심해서 그런지, 아직 따돌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진 않았을 텐데.
‘어! 아니면, 이거, 혹시 친해지자는 사인인가? 원래 친구끼리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니까?’
윤성호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 꽤 진심인 사람이다. 물론 정의로운 성격 탓에 정작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번도 어김없이 지동화에게 한 통의 문자를 남긴다.
[오늘 저녁 메뉴가 고민이에요]그리고 한참이나 답장이 없어 윤성호가 호연과 쓸데없는 대화를 하면서 까먹었을 때쯤.
[이미 저녁 시간은 지났지만, 비너슈니첼이라고 아십니까]휴대폰에 답장이 와있었다.
‘와! 엄청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윤성호는 신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이어나갔다.
물론 돌아오는 답장은 매우 느렸지만, 처음으로 윤성호는 지동화와 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지동화가 메시지로 대화를 나누는 인물은 목화가 유일하다.
* * *
“자, 여러분. 지금 공백기긴 하지만 사실 ‘모모지’ 촬영도 코앞이라 꽤 바쁠 예정입니다. 그런데 상황상 앨범 준비도 늦추기가 어렵고요.”
장해진이 차근차근 일정을 소개한다. 라디오나 W앱, 행사 같은 일정이 하나둘 공개된다.
“우선 공백기에도 꾸준하게 W앱은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마 첫 W앱은 동화 씨가 예전에 의견 내셨던 ‘월간 지동화’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방송 내용이 가장 구체적으로 잡혀있으니까요. 혹시 다음 주에 바로 하실 수 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멤버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한 곡을, 팬들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콘셉트의 월간 지동화. 사실 이미 대강의 틀은 잡아뒀기 때문에 따로 준비할 게 없기도 하다.
비록 내가 낸 생각이지만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그리고 앨범은… 제작 회의가 다음 주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번에도 동화 씨가 곡 작업에 참여할 예정이니, 제작 회의 때 조금만 더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다시 또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저희가 지난번 앨범이 나름대로 선방해서, 이번에 예산이 생각보다 더 많이 배정되었습니다. 몽환적인 콘셉트가 지난 곡이었다면,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조금 더 화려한 느낌이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화려함.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군.
명확한 정의를 추구하는 내 표정을 보던 장해진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지난번 곡이 귀족들의 늦은 오후에 구름 위에서 티파티를 하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곡은 저녁의 무도회 같은 것도 괜찮다는 뜻이죠. 어쨌든 고귀한 왕자님들 느낌이면 좋겠습니다.”
…어렵군. 저녁의 무도회라니, 이것도 채하민 정도나 알 만한 것 아닐까.
“사실 말이 그런 거지, 그냥 느낌 가는 곡 쓰시면 됩니다. 준성이한테 써준 ‘Sorry’ 같은 곡도 괜찮, 지는 않겠네요. 시기가 너무 가까워서. 만약에 많이 힘드시면 안 쓰셔도 돼요! 편곡에 참여하는 정도로도 작곡 이미지는 이어나갈 수 있으니.”
장해진은 최대한 나를 배려하며 말을 고른다.
‘…쓰고 싶은 곡이라.’
쓰고 싶은 곡이 있긴 하다.
최근에 내가 느끼는 행복과 기쁨을, 곡으로 한번 써보고 싶긴 하다만, 그룹을 위한 곡으로 적절하지는 않다.
…지난번처럼 어디 놀러라도 가야 할까.
내가 고민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석준이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한마디 한다.
“영감을 위해― 영화―라도 보―시면 어떻습―니까, 형님.”
…너 또 알프레도 보러 갈 거잖아, 공룡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