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7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73화(73/343)
73.
작업실, 나는 휴대폰을 하나 설치해 두고 W앱을 켰다.
“…안녕하십니까, 루미너스분들. 오랜만입니다.”
사실 오랜만이라기엔 공식 SNS 계정으로 수시로 인사드리지만, 영상으로 보는 건 오랜만이니 이게 맞지 싶다.
“오늘은 제 작업실에서 인사드리는데, 조금 낯설지 싶습니다.”
―동화야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 보고 싶었다고ㅠㅠㅠㅠㅠ
―작업실 뭐야 ㅋㅌㅌㅋㅋㅌㅌㅋ 작업실조차 엄청 지동화스러워…
―말투 조금 그렇다…
―근데 월간지동화가 뭐야?
나는 댓글을 빠르게 훑다가 질문에 답을 해준다.
“월간 지동화는, 지난번에 이든 형에게 곡을 써줬던 걸 많이 좋아해 주셔서 기획되었습니다. 다른 멤버들과 함께 루미너스에게 선물로 줄 곡을 만들 겁니다.”
―동화야… 후드 너무 잘 어울린다 진짜… 박제해 줘…
―누구 곡 써줘 이번엔???
―작곡 이미지 겁나 미네 진짜
8월쯤 되었으니 강력한 신인상 후보인 우리에게 좋지 못한 관심이 올 거라곤 하던데, 예상보다 거세군.
‘공백기 첫 W앱이 나인 게 다행이군’이라고 생각한 걸 알면 채하민이 난리 칠 것 같으니, 이 생각은 취소해야겠다.
“이번엔 저희 메인 보컬을 위해 곡을 써보려 합니다.”
나는 키보드 앞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곡을 선물하기 전에,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데, 여러분은 현재에게 어떤 곡이 어울릴 것 같습니까?”
―귀여운 거! 귀여운 거! 귀여운 거!
―귀여운 콘셉트!
―동요 불러줘 현재야! 거기에 고음 질러줘!
…루미너스분들의 취향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정말 미처 예상치 못한 의견이라 그런데, 바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키보드에 손을 올려 곤란한 미소를 짓는다. 준비한 건 발라드나 청춘 이미지의 곡뿐인데.
―어림도 없어 동화야 돌아가
―안 돼 안 바꿔줘
―ㅋㅋㅋㅋㅌㅋㅋㅋ 하 내가 살다 살다 지동화 당황하는 걸 다 보네 인생 잘 살았다 진짜
―아 지동화 당황하는 거 너무 짜릿하다
…더 난해해지셨군.
나는 어쩔 수 없이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즉흥 편곡은, 퀄리티가 낮아진다는 큰 문제점이 있다만… 뭐.
“그럼, 뭐가 좋겠습니까, 동요. 저는 ‘곰 세 마리’ 정도밖에 아는 게 없습니다.”
나는 손을 움직인다.
‘곰 세 마리’의 메인 멜로디에 반주를 엮는다. 신나는 분위기는 억제하고 따스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살려야겠지. 화기애애한 ‘가족’이 모인 집이 으레 그렇듯이.
나는 목화와 함께했던 휴일을 생각하며 곡을 연주한다.
그리고 곡이 끝났을 때, 나는 미소 지은 채 카메라를 바라본다.
“…곡은 어떠십니까?”
―아… 좋은데… 이걸 원한 게 아니야…
―택배가 잘못 왔는데 맘에 드는 물건인 느낌이야 동화야…
―자연스레 지동화가 지동화하는 중
“저는 좋긴 한데, 현재한테 주기엔 조금 허술해서… 혹시 다른 건 없으십니까?”
그리고 채팅 창은 다시 수많은 동요 이름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아니, 그, 루미너스분들, 이건 제가 원한 방향이 아닌…….
―베이비 샤크.
순간 눈에 훅하고 들어오는 단호한 댓글.
“…‘베이비 샤크’는 뭔지 모르겠어서, 잠시 검색을 좀 하겠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기괴한 전자음과 동요 특유의 어린 목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가사.
나는 곡을 분석하다가 약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이렇게 바꿔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나는 단조의 암울한 분위기와 약간의 효과음을 섞어 누군가 곧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순식간에 발랄했던 곡이 아기 상어가 먹잇감을 노리기 위해 온 가족을 호출해 합동 사냥을 하는 곡으로 탈바꿈한다.
―베이비 샤크여도 샤크였구낰ㅋㅋㅌㅋㅋ
―아 웃겨 진짜 지동화 ㅋㅌㅋㅋㅋㅋㅋㅋㅋ
―아 좀 싸하다 이거 ㅋㅌㅌㅋㅋㅋㅌㅌㅋ
―내가 아는 그 똥꼬발랄했던 곡 맞냐고 ㅋㅋㅌㅌㅋㅋㅋㅌㅋㅋㅋㅋㅋㅌ
결국 이후로 내 W앱은 이현재에게 선물할 곡을 준비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저 동요를 요청하면 다르게 바꿔주는 방송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쩌다 월간 지동화가 이렇게.”
하다 보니 나도 재밌어서 요청을 받아주다 보니 예정된 시간의 4분의 3이 이미 지나있었다.
―포기해 동화야 멀리 왔어 이밐ㅋㅌㅋㅋㅋㅋ
―아닠ㅋㅌㅋㅋㅋㅋㅋㅋㅌㅋㅋㅌㅋㅋㅋ 이제 깨닫기엔 늦었잖앜ㅋㅌㅋㅋㅋㅋㅋㅌㅌ
―아니 현재 이거 보고 울겠닼ㅋㅌㅋ
…차라리 그냥 편곡하는 콘셉트로 바꿔서 진행해도 재미는 있겠군.
그런데 그때 작업실의 문이 열린다. 멤버들에게 W앱 얘기를 했으니 아마도 멤버들이겠거니 생각했다, 는 게 내 실수였을까.
“우리 작곡가님! 잘 지내셨습니까!”
…준성?
내가 순간 멈칫하며 준성을 바라보자, 채팅 창도 비슷한 반응으로 차오른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특별 게스트 너무 화려한데요…?
…음, 잠깐, 분명 밖에서 회사 직원분이 출입 막아주실 텐데?
“오, 뭐야? V로그 찍어, 후배님? 잠시 우리 같이 작업하는 것 얘기하러…….”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뛰쳐나가 손으로 준성의 입을 막는다.
“…W앱 중입니다, 선배님.”
그러자 준성이 프로답게 당황한 기색을 순식간에 표정 뒤로 숨기더니 웃으며 말한다.
“루미너스 님들, 안녕하세요! 동화 씨랑 가장 친한 가수 준성입니다! W앱 중인 줄 모르고 실례했습니다. 죄송해요!”
그러곤 넉살맞게 신사처럼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간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거 큰일 난 거 아닐까. 내가 준성 솔로 앨범에 참여한 건 극비 사항이었는데.
나는 일단 키보드 앞에 앉아 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 창을 바라본다. 모두 그 혼란한 와중에 ‘같이 작업’이라는 말을 정확히 들었는지, 질문과 추측이 불티나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일단 상황을 무마하려 시도한다.
“음, 나중에 말씀드릴 거라서 지금 당장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지만, 진정될 것 같지가 않았다. 공백기에 이런 스포성 발언은, 늘 뜨거운 감자니까.
‘…음, 망했군.’
* * *
“와! 우리 동화 W앱 난리 났던데!”
매니지팀 쪽에 가서 발생한 사건을 전하고 돌아온 숙소. 류이든과 이현재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선 나를 보고 미소 짓고 있다.
“동화 형, 제 곡 선물은 ‘베이비 샤크’ 스릴러 버전인가요?”
“내가 ‘곰 세 마리’ 듣고 감동한 건 처음이었지.”
내 월간 지동화가 본질에서 어긋난 걸 교묘하게 놀려대고.
“최고의 스포왕 지동화.”
“그래도 준성 형 ‘Sorry’ 자체가 유출된 건 아니니까 나름대로 다행 아닐까요?”
준성의 출입으로 인한 스포일러 역시 놀려댄다.
‘…별 반응도 없는 나를 놀리는 게 뭐가 그리 재밌다고.’
나는 소파에 앉으며 답한다.
“…여쭤보니 큰일은 아니라고 하셔.”
강승원 매니저님이 말씀하시길, 어차피 나중에 공개될 정보였으니 차라리 이렇게 미리 소문에 불을 지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하필 그때 스태프분이 화장실에 가셔서.”
W앱 종료 예정 10분이라 스태프분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도 괜찮겠다 싶으셨는지 자리를 비운 그 짧은 새에 준성이 올지 누가 알았을까.
“준성 형, 이번 곡 완전 제 취향이었어요. 저는 잔잔한 곡보다도 약간 미친 듯이 신나는 곡이 좋더라구요?”
멤버들에게만 준성의 ‘Sorry’를 들려주고 나서 이현재는 늘 이런 반응이다.
예상외로 악동 같은 이미지의 곡을 좋아하나 보군. 선물을 준비할 때 참고해야겠다.
거실의 소란에 잠에서 깼는지 방 안에서 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석준이 한쪽에 캐릭터 인형을 껴안고는 밖으로 나온다.
저 인형은 석준의 신체 기관의 일부가 아닐까 합리적으로 의심된다.
“어― 형님― 오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 숙이면 내가 무슨 조직의 보스라도 된 것 같잖아, 준.
8월 초순, 더워 죽겠는 날씨. 다시 일정이 시작됐지만 아직은 바쁘진 않아서 한가롭게 에어컨 바람을 쐬며 멤버들과 담소를 나눈다.
멤버 넷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한 명의 빈자리가 유독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하민은?”
류이든이 씩 웃는다. 이현재는 은근한 미소를 입가에 올린다. 석준은 하품을 하는 걸 보니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다.
“아마 너한테 미안해서 방 안에서 속죄 중일걸?”
…음?
“하민이가 불쌍하거나 작고 연약한 것들에 유독 약한 거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인간이니까 처음에 나한테 그리 오지랖을 부렸겠지.
“하민이 아는 형님이 아주 잠시만 동물 하나를 임시 보호해 달라고 했다더라고.”
…저런, 류이든 동족이라도 데려왔나? 길러본 적은 없다만 사정만 잘 설명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닌데, 뭘 또 속죄까지야.
“뱀 한 마리, 지금 네 방 안에서 주무시는 중.”
…그래, 채하민이 토끼 주제에 파충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군.
“…동화야.”
그때 채하민이 문을 열곤 고개만 빼꼼 내밀며 말한다. 아마도 류이든에게 먼저 말을 꺼내달라고 부탁한 뒤 계속 듣고 있었나 보다.
그럼 진즉에 말할 것이지, 채하민이 문 뒤에서 마음 졸이고 있을 걸 생각하니 우스웠다.
“미안… W앱 중이라 얘기하기가 조금 그래서… 내일 바로 본가로 보낼게.”
“난 괜찮아, 하민.”
“…원래는 상의 없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말이 길다. 애초에 나는 뱀을 달리 싫어하지도 않는데 뭐가 문제인지.
나는 비록 하루지만 같이 방을 공유할 놈의 얼굴을 들여다보러 자리에서 일어선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나의 뒤를 채하민이 종종걸음으로 따라온다.
그리고 방 안에 들어가 채하민의 책상 위에 언제 사 온 건지 모르겠는 전기방석 위에 걸쳐진 사육장을 들여다본다.
‘…세상에.’
나는 기묘한 광경에 충격을 받아 몸이 잠시 멈춘다.
사육장 안에 들어있는 뱀. 녀석은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었다.
‘…우로보로스.’
언젠가 한번 말했지만, 개념으로 아는 것과 경험적으로 아는 것엔 유의미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런 나를 보며 채하민이 말을 덧붙인다.
“저 아이, 전 주인이 애 관리를 엄청 대충대충 했는지, 스트레스를 받았나 봐. 자기 꼬리를 물고 있더라고……. 너무 안쓰러워서…….”
옆에서 채하민이 별 상의 없이 뱀을 데려온 이유에 대해 무어라 변명했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이미 머릿속에서 우로보로스에 관한 지식들이 터질 듯 새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우로보로스, 무한한 순환과 영원성,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의 상징.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원시적인 혼돈의 상징으로 분석해 내기도 했다.
나는 멍하니 뱀의 형상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망할, 작업해야겠군.’
지금 이 감각이 더 지나기 전에 완성하고 싶다.
나는 일단 마스크를 바로 챙겨 들었다.
“…어? 동화야, 어디 가?”
“작업실.”
채하민이 내 대답을 듣더니 또 쓸데없이 땅굴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다. 땅굴 파는 것이 토끼의 본능이긴 하지만, 너무 잦은 것 아닐까.
나는 나가면서 하민에게 한마디 말을 덧붙인다.
“…하민, 덕분에 무슨 곡 쓸지 떠올랐어.”
이제 그만 땅굴 파라는 속뜻을 담아 한마디를 해주고 빠르게 밖으로 나섰다.
비너슈니첼을 먹었을 때만큼이나, 영감이 차올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