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7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74화(74/343)
74.
작업실에 앉은 나는 작곡 프로그램을 켜며 눈을 감는다.
‘…영원한 순환과 시작과 끝의 교차.’
우로보로스를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자신도 이해하기 힘든 연상 작용이다. 혼돈은 언제나 이성에 의해 해명된다는 계몽주의적 선언을 맹신할 수는 없겠…….
…그만.
지금은 사유나 전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쨌든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이끌림을 우로보로스에게서 느꼈다.
‘…나는 어째서 시간을 역행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한 것은, 내겐 지나친 행복이고 하나의 구원일 것이다.
나는 서바이벌이 끝난 직후 가능성의 조각에서 봤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작은 방 안에서 홀로 무언가를 계속 연구하며 종이를 끄적여 대던 ‘나’.
그 가능성이 비록 실현될 수 없을지라도 여전히 내게 남아있겠지.
마치 뱀처럼 나는 허물을 벗으며 새로운 몸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그 허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즉, 새로이 시작했는데도, 내겐 여전히 그 끝이 담겨있다.
‘…기분이 이상하군.’
아마도 그것 때문에 우로보로스를 보고 이상한 영감을 얻은 것일 테다.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순간이, 결국 이전의 끝 이후의 끝, 모두와 맞닿아 있다는 건… 당연한데도 기묘해.’
나는 상념을 끊어내고 머릿속에 흐르는 악상에 집중한다.
순간적인 이미지, 우로보로스를 보았을 때의 감각, 그 모든 것들을 곡 안에 담아내는 건 어렸을 적 캠핑을 갔을 때 목화와 함께 반딧불이를 찾아 어둠 속을 헤매던 것과 기분이 비슷하다.
더욱이 이건 오로지 나 홀로 찾아 헤매는 것.
그러나 한 수학자가 말했듯, 어둠을 헤맨 시간이 빛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결정 지어 줄 것이다.
달칵.
마우스를 누르는 소리를 시작으로 작업실 안이 고요해진다.
* * *
채하민은 오랜만에 아무도 없는 방에서 눈을 떴다. 옆에서 알람 소리가 울리고 있다.
‘…결국 안 돌아왔네, 동화.’
…음, 우선 용용이를 본가에 보내줘야 할 텐데.
평소에도 땅굴을 팔 때면 안심시켜 주는 말을 한마디씩 덧붙여 주곤 했던 지동화다.
그런데 땅굴을 팔 때마다 말을 듣다 보니, 땅굴에서 자신을 끄집어낼 때에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절대로 자신을 위로한다고 거짓을 입에 담진 않는다는 것을. 아마도 작업하려고 갔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 진짜 또 밤새웠겠네.’
아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번에도 작업실에서 쓰러진 전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무리한다.
‘아주 그냥 무리 안 하면 문제라도 생기나 봐.’
채하민은 새벽 6시에 맞춰둔 알람을 끈다.
지동화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회사에 들러봐야겠다.
‘…만약에 한 번 더 쓰러지면 멤버들이랑 다 같이 협박해서라도 작업을 줄여야 하나?’
동화는 체력이 약한데 정신력으로 버티는 타입이라 이런 밤샘 작업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1년이나 2년 같이 활동하고 말 것도 아닌데, 장기적으로는 건강을 관리하는 게 좋을 테니까.
채하민은 어울리지 않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후드집업과 마스크를 착용한다.
곧바로 회사에 있는 동화의 작업실로 가 유리창 안을 넘어 들여다본다.
‘…아직 작업 중이네, 아주 그냥 또 쓰러지려고.’
동화는 반쯤 죽은 눈빛으로 모니터를 쏘아보고 있다. 밤새우기를 힘들어하는 채하민의 입장에선 놀라운 광경이다.
그리고 그때, 지동화가 대강 됐다 싶었는지 몸을 들어 올리더니 키보드를 누르며 곡을 튼다.
채하민은 문에 귀를 대고 곡을 듣는다. 원래라면 하지 않을 짓이지만, 지금 동화가 쓰는 곡은 정황상 블로센스의 곡이라 호기심이 동했다.
‘…어?’
신기하게도, 뱀이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뱀 한 마리가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약간 음험하고 무섭다. 그런데 비트 자체는 신나고.
그리고 곡이 흐르다가 중후반부, 앞부분과 달리 이 부분을 특히 신경 썼는지 편곡이 되어있었다.
‘…와, 진짜 엄청 춤추고 싶은데.’
채하민은 자연스레 리듬을 탄다.
동화가 나가기 직전 봤던, 뱀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하는 행동인 꼬리 물기. 원형의 뱀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드럼 비트부터 회전판이 도는 소리, 일렉 사운드까지. 채하민은 곡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곡이 끝났을 때, 채하민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다.
“동화야! 너 또 밤샘 작업!”
그러나 춤추고 싶은 욕심보다도 채하민에겐 멤버와 함께 하는 미래가 소중하니까, 잔소리를 해야겠다.
* * *
나는 우선 채하민에게 놀라는 척을 해준다. 문밖에서 리듬을 타면, 인간인 이상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지만 놀래려는 의도가 한가득했으니까.
“…놀라라.”
“그렇게 무표정으로 놀랐다고 하면 누가 믿어, 동화야.”
채하민이 해맑은 표정으로 들고 있던 커피와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딱 보니 비싼 브랜드다. 역시 도련님이군.
“아침 안 먹고 작업할 생각이었지, 또.”
더 넥스트 니체 서바이벌 때부터 블로센스까지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전통, 내가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하면 어째선지 이렇게 간단한 식사 거리를 사 온다.
“…고마워.”
“근데 방금 곡은 뭐야? 엄청 좋던데. 그 댄스 브레이크 부분이 진짜… 춤추고 싶더라.”
아, 들켰군.
“…당연하지.”
“응? 무슨 말이야.”
채하민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부분, 너 생각해서 쓴 부분이니까.”
채하민의 동공이 커진다. 입이 벌어지더니 기묘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벌떡 일어서선 두 손으로 입을 막는다.
해준 일에 비해 반응이 너무 과장되어 있군.
“와… 이게 진짜 기분 좋으면 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거 처음 알았어, 동화야.”
…미안하다만, 하민, 댄스 브레이크는 보통 너 생각하면서 쓰는데. 물론 이번에는 조금 다르긴 하다. 채하민 독무가 아니면 느낌이 안 살 테니까.
이 곡에 담아내는 건, 끝과 시작.
그러니 이곳에서 처음 날 이끌어준 채하민에게 ‘시작’을 의미하는 부분을 맡기고, 곡의 ‘끝’ 부분에 넣고 싶었다.
“동화야, 내가 많이 아낀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나?”
채하민은 여전히 입에 올린 손을 내려놓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한다.
“…낯간지럽게.”
* * *
공식 휴일이 끝나고 나서, 회의와 W앱 그리고 자체 콘텐츠 촬영이 주를 이루는 와중.
우리는 ‘모모지’ 촬영 준비를 위해 회의실에 모였다.
“와, 대본… 퀄리티 좋은 것 같은데요?”
이현재가 시놉시스를 읽더니 중얼거린다.
“제가 추리소설 자주 읽는데, 클리셰 범벅이긴 해도 나름대로 재밌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클리셰는 애초에 잘 팔리니까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지나치면 문제겠지만, 인물 이름이 헤겔 같은 것들로 나오는데 뭔 상관이랴. 애초에 목적이 다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촬영은 당근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잘게 썬 당근을 넣은 볶음밥을 만들어주는 작업이니까.
…근데 시청자분들을 아이에 비유하는 건 잘못된 것 같군. 반성하자.
“근데… 좀 걱정이다. 우리 연기 잘할 수 있을까?”
동의한다. 애초에 철학 아카데미는, 연기력이 아이돌치고 봐줄 만한 수준에 자체 콘텐츠였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이건 지상파 방송이니까.
“흠, 확실히… 연습 엄청 많이 하긴 해야겠다.”
그보다도… 연기는 진짜 자신이 없는데.
나는 내가 맡은 배역을 확인한다.
지동화 이름 석 자 옆에 적힌 니체.
…인연이 질기군, 니체.
사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렇게 이명처럼 따라붙게 된 건지.
나는 시놉시스를 훑어본다. 개략적인 구도는, 총 여섯 명이 묵고 있던 고립된 산장에서 한 명이 죽으며 서로가 서로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스토리다.
상당히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구도기도 하다만, 죽는 이가 주하나라는 이름인 반면, 나머지는 모두 철학자라는 점이 나름대로 재밌다.
…근데 피해자 이름이 주하나라.
나는 조용히 생각하다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생각을 멈춘다.
“미리 한번 리딩이라도 해볼까? 연기 쌤 오시기 전에.”
“오! 괜찮다, 그거. 이든 형, 그럼 나랑 여기 해볼래?”
류이든과 채하민이 둘이서 나누는 대화 부분을 읽기 시작한다. 참고로 류이든이 칸트, 채하민이 로크다.
“칸트, 당신, 지금 저를 의심하는 겁니까? 시계가 틀릴 때도 있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죠.”
“…당신이 마지막에 주하나와 같이 있었던 교실의 칠판에, 붉은 흔적이 있던 걸 봤으니까.”
“그래요? 전 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칠판에 남아있을 리가 없잖아요.”
나는 웃음을 흘렸다. 예상보다 더 재밌군.
내 미소를 보던 이현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표정은 의아함이 가득 차있었다.
“…동화 형, 저거 웃긴 대사예요?”
아, 로크를 직접 읽지 않았다면 모를 수도 있겠군, 저건.
로크는 정신이 흰 칠판과 같고 경험을 통해 그 칠판을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방금 저 대사는 바로 그 지점을 교묘하게 비튼 대사로,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데 내 칠판에 남아있을 리가 없잖아, 라는 의미다, 라는 내 설명을 모두 들은 이현재의 표정이 조용히 경악에 가득 찬다.
…뭐, 여우 놈.
“저걸 듣고 이해하는 형은, 진짜 대단하면서도… 아이돌이 맞나 싶기도 하구… 느낌이 묘하네요.”
리딩 하다가 우리 대화에 집중하던 류이든의 눈이 반짝인다.
“하긴, 동화가 자주 안 웃는 이유가 있다니까. 이런 한국대스러운 개그에만 웃어서 그런 거네.”
무슨.
“…편견이야.”
“근데 맞는 것 같긴 해, 이든 형. 동화 콘셉트 포토 보면 거의 무표정이거나 지루한 표정이잖아.”
“역시 잔혹한 귀족이자 이 시대의 지성인, 지동화답네.”
…망할, 놀릴 포인트를 직접 만들어주다니. 다음 콘셉트 포토 때는 무조건 웃는 이미지로 부탁드려야 할까.
그렇게 한차례 나를 놀리는 주기적 행사가 끝이 나고, 리딩을 하던 도중, 석준이 묻는다.
“형님― 근데 헤―겔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나한테 헤겔이 주장했던 절대정신을 설명하라는 의미는 아닐 테니, 말 그대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줘야겠군.
“…너처럼 말 느리던 분이야.”
그래서 강의할 때 학생들이 고통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 * *
그리고 2주 후, 우리는 ‘모모지’ 촬영 현장에 들어섰다.
‘…복장이, 조금.’
나는 손에 들린 새까만 복장을 받아 든다. 가죽 재킷에 체인이 달린 찢어진 청바지. 아마도 공격적인 비판을 자주 했던 니체 사상의 특성을 반영한 것 같다.
거기에 더해서 수많은 피어싱. 정확히는 귀찌지만, 대체… 이게 몇 개인지.
니체는 실제 성격은 온화했다고 하니, 이런 의상을 입었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하, 오늘 또 루미너스분들이 놀릴 거리만 잔뜩 제공할 것 같군.’
예전에 이데아에 시달렸던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말이다.
내가 옷을 입고 나오자, 모든 것이 각을 잰 듯한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류이든이 나를 맞이한다.
몹시 칸트다운 패션이군.
“동화, 너 그런 의상 입어본 적 있어?”
내 모습을 본 류이든이 실소를 터뜨리며 묻는다.
…없지, 당연히. 평소에 패션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데 가죽 재킷처럼 불편한 옷을 입어봤을 리가.
촬영 장소는 강원도에 있는 한 산장. 이곳에서 5일 내로 모든 촬영을 끝내는 게 목표라고 한다.
‘…거기에 별개로 철학자 설명 영상을 찍어야 한다고 했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