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77)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77화(77/343)
77.
이현재부터 류이든, 석준까지 모두의 개인사가 촬영을 마쳤다.
모두 주하나에게, 채하민과는 다른 방식으로 의존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사건 당일, 각자의 사건으로 주하나와의 다툼이 발생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을 수 있었던 말은 밝혀야 할 진실이 남았다는 진리의 말뿐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야 할 내 촬영 신.
나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대본에서 외우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런데 대본이 문제가 아니군.”
도대체 이 인간의 감정선을,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멤버에 비해 연기력이 특출하지도 않은데, 어째서 하필이면 내게 이런 배역이 돌아왔을까.
나는 일단 한숨을 내쉬었다. 해야겠지, 어떻게든.
* * *
# ‘모모지’, ‘진리 아래 비밀은 없을 테니’ 편집본
“…얘기했는데도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류이든(칸트)가 반쯤 부서진 멘탈로 중얼거린다. 어제 자신의 과거를 공개한 것이 충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하나를 죽인 걸까?”
석준(헤겔)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중얼거린다.
그러나 그 속에서 채하민(로크)과 지동화(니체)만은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때 채하민(로크)이 입을 연다.
“니체… 당신입니까?”
비릿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걸린다.
“당신이… 주하나에게 무슨 얘기를 한 겁니까.”
“하, 씨… 이래서 낙타 같은 것들이랑은 대화할 수가 없다니까.”
비릿한 웃음에 지동화(니체)가 조소를 보인다.
“그래, 너희들은 문제가 생기면 남이 하라는 대로 사는 그런 인간이었지. 낙타랑 다를 바가 없어. …혹시 당신도 여전히 낙타 자식인가?”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한 채하민(로크)이 순간 멈칫하더니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불길한 예감이라도 생긴 건지, 목소리가 약하게 떨린다.
“…니체,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단 걸 왜 모릅니까.”
나는 피식 웃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기타를 한번 탁 친 다음 의자에 몸을 기대 채하민을 바라본다.
“노예 같은 생각이야. 이제 나가서 좀 죽어주지 않을래?”
그러자 모두의 눈빛이 지동화(니체)에게 쏠린다.
“이틀 전에… 누가 방아쇠를 당겼냐고 물었던가, 로크?”
그리고 지동화(니체)는 그 모든 시선을 무시하며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었다.
“로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예상했지만…….”
그리고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아마도 나인 것 같군.”
지동화(니체)는 착잡하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담긴, 묘한 표정을 얼굴에 보였다.
“너희 모두를 해방한 게 나였으니.”
카메라가 이번엔 지동화를 클로즈업한다.
* * *
지동화(니체)가 교실에 앉아 주하나를 중심으로 뭉친 네 명의 사람을 바라본다.
“…이상하네. 저 등신 같은 것들.”
그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공책을 펼친다.
그리고 그곳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지동화의 내레이션.
―과연 로크에게 주하나는 축복일까.
계속해서 이어지는 연필 소리.
―로크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극복하려는 욕망을 버린 채, 주하나에게만 올곧이 의존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더 나은 미래란 존재할 수 있을까.
지동화(니체)는 판단한다. 주하나가 저들에게 제공하는 안정감은, 결국 결여를 극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에 불과하다고.
―마치 언제까지나 둥지 속에 있고 싶어 하는, 둥지 밖의 세상이 곧 죽음이라 생각하는 어린 새들처럼 저 네 명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어린 새들을 언제까지나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어미 새처럼 주하나는 존재한다.
내레이션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진다.
―과연 날개를 부러뜨린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어린 새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쳤을까.
그리고 모든 내레이션이 끝났을 때, 지동화(니체)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메라가 줌인 되며 자리에 있던 공책을 보여준다.
그곳엔 낙타 네 마리가, 한 사람의 손에 이끌려 사막을 걷고 있었다.
* * *
“주하나.”
지동화(니체)는 오랜만에 홀로 있는 주하나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어? 니체, 무슨 일이야?”
“흠, 정신은 멀쩡해 보이는데.”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고, 지동화(니체)는 옆자리에 앉았다.
“…혹시 음악 좋아하나?”
주하나는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웃으며 답한다.
“음악은 다 좋아해!”
그렇게, 지동화(니체)와 주하나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지동화(니체)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즉 주하나가 정말 저 네 명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했다.
어느 날, 음악실. 지동화(니체)와 주하나는 서로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주고 있었다.
“와! 니체, 진짜 재능 있는 거 같애.”
“당연하지. 태어나서 한 일 중 음악을 빼면 몇 개 남지 않으니까. 음악을 좋아한다길래 기대했더니, 정작 아무것도 모르던 너하고는 다르지.”
자만심이 넘쳐 오만하게 느껴지는 답변을 들으면서 주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진짜 모자라서…….”
“흠, 자존감이 낮은 거냐?”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하나의 표정이 급작스레 어두워진다. 그렇기에 지동화(니체)는 생각한다.
―결국… 어미 새는 어린 새를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한 건가.
그러므로 그는 결론 내렸다.
모두에게 손해만 가득한 관계라고.
그것은 어쩌면 오만일지도 몰랐고 독선일 수도 있었으나, 지동화(니체)는 늘 자신이 옳음을 믿으며 살아왔다.
그 네 마리의 낙타를 위해서도 그리고 주하나를 위해서도, 끊어내는 것이 옳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피아노 치던 것을 멈추고 한마디를 뱉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네 사람보다도 주하나를 위해 말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주하나, 언제까지 자기만족을 위해 그놈들의 성장을 막을 셈이야. 더럽게 기만적이야.”
다만, 그는 그의 생각이 옳음은 알았으나,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음을 몰랐을 뿐이다.
그날 이후로, 주하나는 지동화(니체)로부터 들었던 말이 늘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깨달았다.
―니체의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날로부터 주하나의 손목엔 흉터가 늘었다.
그리고 로크, 헤겔, 칸트, 데카르트와 대화를 하며,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자신만 사라지면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10년 전의 그날 밤이 찾아왔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날 밤의 비밀이 그렇게 밝혀진다.
* * *
이야기를 마친 지동화(니체)는 웃음을 흘렸다. 그건 조소에 가까워 보였다.
지동화(니체)의 고백에 모든 멤버가 그를 바라봤다. 경악, 후회, 슬픔,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들 하나하나에, 지동화(니체)는 중지를 들어 올린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삐―)같군. 그래, 진리 양반. 주하나의 죽음에 더는 비밀이 없나? 이제 뭐라고 얘기할 셈이지? 내 오만함이, 그리고 이 등신 같은 머저리 놈들의 의존증이, 한 사람의 죽음을 낳았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건가?”
지동화(니체)는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린다.
“하! 그래! 이제 만족해? 흰 가면 쓴 또라이 놈?”
“뭘 웃는 겁니까! 당신 때문에! 당신, 당신이 뱉은 그 말 때문에!”
채하민(로크)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동화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래! 주하나는 죽었다. 물론 주하나는 죽어있지!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고! 어떻게 우리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을까?”
지동화(니체)는 계속해서 웃으며 채하민(로크)을 마주한다.
“우리가 아닙니다! 당신이죠!”
채하민(로크)이 지동화(니체)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중얼거린다.
“아니, 우리가 죽인 거야. 로크, 받아들이고 살아가. 네 그 알량한 외로움과 애정결핍 때문에, 그리고 내 독선 때문에, 이 모든 게 하나가 되어 주하나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었다고!”
지동화(니체)는 졸려 오는 목 때문에 한 음절씩 끊어 말했음에도 끝까지 모든 말을 뱉어낸다.
채하민(로크)은 그를 바닥에 밀치듯 던져버렸다.
그리고 고요해진 산장 안. TV의 타이머가 멈추고, 흰 가면의 인간이 다시 등장한다.
“진리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그 이름 아래 비밀은 없을 테니.”
그리고 산장을 꽉 잠그고 있던 기계장치들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던 탈출임에도 누구 하나 발을 옮기지 않았다.
* * *
“컷! 좋았어요! 특히 동화 씨! 아주 캐릭터랑 찰떡이야.”
…그렇습니까. 저 말이 과연 욕인지 칭찬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 고민 중이다.
이런 미친 인간이랑 캐릭터가 찰떡이라는 것은… 욕이겠지.
“처음엔 아이돌들이라 그래서 걱정 많았는데, 다들 연습 엄청 한 게 눈에 보이네. 계속 이대로만 갑시다.”
감독님이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쉬는 시간을 선언한다.
나는 졸린 목을 매만지며 소파에 앉았다.
‘…피해자 이름이 주하나인 것부터 내가 핵심적인 인물일 건 예상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스토리일 줄은 몰랐다. 니체의 안티크리스트적 성향을 드라마로 풀어낸다는 괴이한 생각을 하는 PD가 실존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놀라운 점이다.
특히 ‘주하나는 죽었다. 물론 주하나는 죽어있지!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고! 어떻게 우리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대사는, 원래 니체의 책에서 주하나 대신 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부분인데 말이지.
…이거, 괜찮은 건가. 아직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이 정도로 성장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찌 됐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화제가 될 거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그렇게 이 철학 드라마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채하민이 손에 피부 진정제를 들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와, 동화야. 너 표정 완전 무서웠어. 나 진짜 울 뻔했잖아.”
…그렇군. 나는 네가 더 무서웠는데, 이 토끼 놈아. 상대역이었던 채하민이 연기를 잘해준 덕분에 나도 더 이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류이든이 물 흐르듯 흘러와선 말을 얹는다.
“우리 동화는 또 배역이 이런 거네. 잔혹군주 지동화 어디 안 가지.”
그러게 말이다. 나는 류이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내 생각엔, ‘디텍션’부턴 거 같은데.”
“…결국 준성 선배 잘못이군.”
인과에 크나큰 오류가 있지만, 준성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니까.
“아, 준성 형 얘기 들으니까 생각난 건데 기사 떴더라구요?”
이현재가 내 책상 쪽에 앉으며 말한다. 우리 팀에서 여론 조사 분야에 최고 권위자답게 나는 보지도 못한 얘기를 꺼낸다.
“…기사?”
“네, 형이 이번 앨범에 들어가는 곡 쓴 거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
…음, 대중들의 생각을 쉽게 추측할 수는 없지만 별로 긍정적인 여론은 아닐 것 같군. 인기 있는 가수의 앨범에 회사 후배의 곡을 쓴다라, 욕먹을 가능성이 몹시 높다.
“아직 다들 안 믿는 분위기더라구요. 사실 ‘클라우디 블루’도 곡은 좋았지만 아직 신인이니까 믿기 힘든가 봐요.”
나는 이현재의 객관적인 분석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준성 앨범도 곧 윤곽이 완전히 잡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