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8화(8/343)
8.
류이든을 죽일 거다.
분명히 한 번 같이 가고 나선 권유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오늘 저녁 은근하게 나에게 헬스장에 갈 것을 권유하는 류이든을 보며, 드디어 결심이 섰다.
인간을 죽이는 건 지성인이 할 짓이 아니라지만, 류이든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니까 논외다.
채하민한테 집에서 재워줬으니 너도 같이 죽이자고 설득이라도 해봐야겠다.
“이든 형, 지금 진지하게 형의 살인 계획을 짜는 중입니다.”
잠에 들기 위해 이불 속에서 고갤 묻은 내가 소리쳤다.
“너가 칼로 찔러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인간이냐.
“…채하민도 같이 할 거예요.”
그 순간 내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한 채하민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아직 저녁인데도 잠에 취한 어눌한 목소리로 말한다.
“동화야, 왜 불렀어?”
나는 그런 채하민을 보다가 생각했다.
‘다 꺼져줬으면 좋겠다.’
* * *
무대 리허설장에 오자 눈에 세트장의 모습이 들어온다. 작은 공연장을 대관하고 무대 앞에 심사위원 자리 다섯 석을 설치한 작은 세트장.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상한 기분이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이 무대가 ‘내’가 아니라 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건 내 꿈의 실현이 아닌 ‘내’ 꿈이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도.
그런데도 긴장과 약간의 설렘이 가슴 속에 있음을 부정하긴 어려웠다.
그래, 마치 내가 지난번에 소개 영상에서 불렀던 가사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다는 긴장과 설렘이 가슴 속에 있었다.
기이하군.
아홉 살부터 중학교 때까진, 살아갈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고등학교 생활을 할 땐 그냥 친구가 없는 데다가 또 공부하느라 더럽게 바빴다. 장학금이 필요했으니까.
대학교 생활에서도 학점을 중심에 뒀고, 동아리도 어학 쪽 스터디 위주로 친목 없이 공부만 했다.
시간 짬이 나면 책을 읽었고, 그러다 써보는 것도 재밌길래 쓰다 보니, 소설 작가가 되었다.
즉, 내 인생은 단 한 번도 노래나 춤 같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던 적이 없었다. 아이돌 노래는 특히, 더 그랬고.
그런데 처음으로 본격적인 무대에 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긴장과 설렘을 느낀다니, 기이하기 짝이 없다.
“무슨 생각 해?”
무대 세트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내게 채하민이 다가오더니 묻는다.
“…내일 무대.”
채하민은 나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내 어깨를 꼭 쥐었다.
“동화야, 나 좀 얘기해도 괜찮아?”
나는 무대에서 시선을 돌리고 채하민을 바라봤다. 무언의 동의에 채하민은 잠시 한숨을 한번 내쉬곤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사주 보시거든?”
오, 갑작스러운 미신인걸. 할머니가 하신다니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런데?”
“어제 갑자기 전화가 오시더라고? 그래서 어쩐 일이시지 했는데, 내 사주를 어머니가 부탁하셔서 봤다는 거야.”
빠른 결론 부탁한다.
“올해 초에 귀인이 하나 나타나는데, 붙잡으면 성공할 거고, 못 하면 원하는 건 이룰 수가 없다더라고.”
와, 설마, 이 이야기 흐름이면…….
“그 귀인이 너 아닐까?”
육성으로 욕할 뻔했군.
“…무슨 헛소리야, 하민.”
“아니, 그렇잖아? 너랑 본격적으로 친해진 게 올해 초고, 너 보고 나서 이전 회사 나갈 결정도 했고, 만약에 너 아니었으면 삼촌 생각해서 아마 끝까지 남아있었겠지.”
오, 논리적 정합성은 나름 갖추고 있군. 다만 전제인 사주가 비논리적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내가 귀인인 게 말이 되냐고, 하민.”
“아니, 우리 할머니 용하기로 소문났다니까?”
그렇게 나와 채하민은 내가 귀인인가 아닌가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카메라가 우릴 찍고 있는 걸 발견한 내가 멈칫하자, 채하민도 따라서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분이 제 귀인입니다!”
하… 치욕스러워.
“저게… 비하인드로 유튜브에 올라갈 수도 있다고?”
“응, 우릴 봐주시는 모든 분들이 너가 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이 멍청한 대화를 사람들이 듣게 된다고. 이 멍청한 놈이랑 내가 진지하게 논쟁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고.
…괜찮다. 이 서바이벌이 뭐 그렇게 인기를 끌겠는가. 중형 기획사에서 하고 케이블에 방영된다는데, 탈락하고 나서도 학교는 다닐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런 우리 곁으로 한 연습생이 초조하게 뛰쳐나가기 시작한다.
“어, 현재다. 요즘 자주 어디 뛰쳐나가더라.”
…음, 이현재였나. 여우를 닮았군. 개, 토끼, 다음은 여우라니, 동물농장이 따로 없다.
* * *
한 익명 아이돌 커뮤니티. 그곳은 지금 나름대로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최근 대형 아이돌 팀들은 대부분 비활동기라 씹고 즐길 만한 건수가 부족했던 차에 최근 아이돌 사업에 힘을 실어주던 니체 엔터의 데뷔 서바이벌이 공개된 것이다.
[야, 니들 이거 봤냐](니체 엔터 데뷔 서바이벌 <더 넥스트 니체> 쇼케이스 영상)
심사위원으로 TOT 나오는 거 상상만 해도 개발린다 진짜
댓글
―또바이벌 실화냐 진짜
―ㄱㄴㄲ… 새끼들 팬들 다 괴로운 거 왜 하냐고
―TOT가 심사위원 할 짬바냐
―니 새끼는 얼마나 연차가 쌓이셨길래… ^^
―ㅂㅁㄱ~
―오 저기 세 번째 애 쫌 괜찮다
―프로그램 이름 실화냨ㅋㅋㅋㅋ ㅈㄴ 구리다 진짴ㅋㅋㅋㅋ
처음에는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연예인의 팬들이 주로 반응했지만, 방송을 2주 앞두고 하나씩 멤버 소개 영상이 나오기 시작하자 서서히 멤버들에 대한 반응도 등장했다.
[더넥니 연습생 춤에 가슴 웅장해진다](채하민 멤버 소개 영상)
춤추라니까 심장 때리고 앉았네
댓글
―춤 선 지린다 진짜… 표정 연기 지린다 진짜… 얼굴 지린다 진짜…
―채하민 센터로 두고 군무 볼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군침이 싹 도노…
―데뷔도 안 했는데 무슨 ㅋㅌㅌㅌㅋㅋㅋ
―토끼 닮았지 않냐 하민이
―22222
―3333333
―4444 약간 얼굴선 가는데 순하게 생겼으면서 은근 야한 느낌도 있음
―하민아… 지금 내 심정을 그대로 옮겨 적으면 청주 여자 교도소 갈 것 같아서 많이 참았다… 나 제법 젠틀하지?
―ㅋㅋㅌㅌㅋㅋㅌㅋㅋㅋㅋ ㅁㅊㄴ이네 진짜
[더넥니 유일무이 작곡 포지션](지동화 멤버 소개 영상)
은 무슨 작곡이고 나발이고 맨 마지막에 채하민 저리 가라고 할 때 한껏 붉어진 귀밖에 눈에 안 들어왓읍니다……
댓글
―냉해 보이는 얼굴 미소로 녹을 때 혼절 위기 작곡 가능에 발려가지고 혼절 직전 근데 그 자작곡이 좋아서 혼절 마지막 붉어지는 귀 보고 존나 행복해서 사망
―뭐? ㅅㅂ 이 좋은 걸 내가 돈 주고 못 들어? ㅋㅋㅋㅋㅋㅋㅋㅋ 개빡치넼ㅋㅋㅋ 말로 할 때 계좌 부르라고 지동홬ㅋㅋㅋㅋ
―귀… 귀… 귀… 귀… 저 붉은 귀 딱 한 번만 만져 보고 싶다… (입맛을 다시며)
―ppt 땄어요~
―입맛 왜 다시는뎈ㅋㅋㅋㅋㅋㅋ
―저 오글거리는 걸 얼굴이 살리네 ㅋㅋㅋㅋㅋㅌㅋ
―ㄱㄴㄲ 처음엔 조금 그렇다 싶다가 웃는 거 보고 네 희망 받을게요! 이 난리 떰
[더넥니 피지컬 1등](류이든 멤버 소개 영상)
…….
각 멤버별로 비록 한 줌이지만 소개 영상에 치인 사람들이 생겨 영업 글을 써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소소하게 화제가 된 것이 지동화의 소개 영상이었다.
방송국은 가장 마지막에 채하민과 류이든에게 소리치는 부분을 넣어서 편집했는데 예상대로 진지한 앞의 영상과 대비되는 모습 덕분에 관심을 끌었다.
―지동화 이름부터 ㅈㄴ 낭만적이야…
―지동화 웃음에 기억 개조당했습니다. (소개 영상 지동화 꽃 들고 웃는 부분.gif)
―기억났다… 고등학교 때 내가 들고 가던 종이 주워주면서 웃는 선배… 차가울 줄 알았는데 나한텐 따스했던 선배…
―그런데 부끄럼은 많이 타서 친해지면 놀리기 좋은 선배… 잘 지냈구나… 동화 선배… (지동화 귀 붉어진 채로 소리치는 짤.gif)
―지동화 채하민 관계성 벌써부터 기대되는 거 실화냐고
―이든이도 빼지 말아주세요~ (류이든 어깨에 만리장성 합성한 짤.jpg)
―강아지상 토끼상 고양이상 얼굴합 미쳤네 진짜 (지동화 채하민 류이든 삼분할 편집.jpg)
그러다 지동화 영상 마지막에 언급된 채하민 류이든을 묶어서 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나, 아직은 개인 멤버를 미는 이들보다 그 움직임이 미약했다.
* * *
장해진 팀장은 회의실에서 ‘더 넥스트 니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정리하면… 지동화 이 친구가 소개 영상은 가장 반응이 좋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팀장님.”
“대체 어디서 이런 호박이 넝쿨째…….”
“그나저나 팀 구성 예측은 어쩔까요?”
아무리 서바이벌이라지만 어느 정도 팀 구성원을 예측해 놔야 이후 활동을 빠르게 이어나가는 데 용이하다.
“일단 기존에 해 둔 건 폐기하는 걸로 하죠. 새로 들어온 두 친구가 얼마나 스타성이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순 없으니.”
“그럼 이번 서바이벌이 총 8화니까 한 4화까지 예측해서 컨셉 잡기 시작할까요?”
“하긴, 그쯤 되면 최소 두 명 정도는 누가 붙을지 대강 알게 되겠죠. 그렇게 일정 픽스하는 걸로 하고…….”
장해진 팀장은 서류를 정리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일 1차 경연 무대 촬영이죠?”
“네. 이 정도로 반응 올 줄 알았으면 관객도 좀 받을 걸 그랬습니다.”
장해진은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회의를 마쳤다. 연습생들끼리 친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진지하게 경쟁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 그게 이번 ‘더넥니’의 방송 목표. 그러니 연습생들에게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줄 차례다.
* * *
리허설이 끝나고도 다 같이 연습실에서 썩어가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찾아온 장해진은 연습생을 불러 모으더니 다 아는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방송 무대는 방송 이후 유튜브에 공개되고, 그 조회 수가 2차 경연 때 추가 점수로 환산된다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나요, 여러분?”
…그걸 기억 못 하면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인간이겠냐.
“그리고 바로 그 2차 경연 때 현장에 팬분들 모아서 투표를 받아 점수에 포함하는 것도 기억하시죠?”
아니, 사설이 왜 이렇게 길어.
“마지막으로 그 2차 경연에서 하위 2명이 탈락한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아, 이제 그만.
그러나 했던 얘기를 또 하는 게 번거로운 인간은 나밖에 없는지 다들 표정이 진지해졌다.
“지금 인터넷 반응이 나쁘지 않습니다. 소개 영상과 첫 무대에서 좋은 인상을 따내시면 높은 확률로 좋은 등수를 유지할 수 있으실 거예요.”
당연한 소리.
“그리고 지금 인터넷 반응이 가장 좋은 게 지동화 연습생이고, 그다음이 류이든 연습생입니다.”
…안 당연한 소리.
뭐지, 스무스하게 1차 탈락을 목표로 했는데. 얘네들 소개 영상을 다 어떻게 찍었길래?
“나머지 분들은 조금 더 분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열정을 부여하기 위한 발화로군. 다만 큰 문제는 이게 류이든은 언급해도 상관이 없지만, 나를 언급하면 조금… 반감을 심어줄 수도 있는데.
저 봐라, 벌써 예전의 그 어린 자식들 중 하나의 눈빛이 매섭게 변해선 나를 힐긋거리고 있잖은가.
은근히 조용해진 연습실 분위기에 만족한 장해진 팀장님은 몇 마디 더 격려의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떴지만, 약간 냉정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눈치 없는 채하민이 내게 다가와선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며, 잠시 아득해질 뻔한 정신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한번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예상보다 다른 애들이 관심을 못 받았나 보다. 고작 나 정도의 인간에 사람들이 반응을 보여줄 줄은 몰랐는데, 이러다가 초기에 탈락하지 못하면 일반인으로서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
가사, 가사를 바꾸자. 사람들이 약간 짜게 식을 만한 가사로 바꿔버리자.
물론 최선을 다하긴 하는 거다.
최선을 다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우는 거다.
어차피 가사 쓰는 거야 내 마음 아니겠는가?
나는 화장실 좌변기에 뚜껑을 내리고 앉아 가사를 생각해 내곤 빠르게 A&R실에 찾아가 가사를 바꾼 종이를 건넸다.
A&R팀 직원분은 가사를 대강 읽어보곤 흠칫하더니, 진짜 이걸로 괜찮겠냐는 표정을 보내왔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전날에 이렇게 가사를 확 바꾸셔도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리고 다음 날, 1차 경연 무대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