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80)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80화(80/343)
80.
이현재는 요즘 시집을 읽는 게 취미가 됐다. 이런 고상한 취미를 자신이 가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게 다 동화 형의 과외 때문이다.
“…왜 재밌지, 이게.”
학교에서 시를 읽을 때 읽히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를 읽는 게 재밌어졌다.
‘…동화 형은 내가 시 좋아할 줄은 어떻게 안 거람.’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 시대의 사랑’이라고 적혀있는 시집을 읽으며 자리에 누웠다. 동화 형의 추천으로 어제 샀던 책이다. 자학과 자괴감, 그 속에서 홀로 느끼는 고독 같은 게 자조적이면서 지독한 언어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화상’이라는 한 편의 시만을 곱씹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준성 형 곡이 엄청 인기네.’
물론 준성의 인기 역시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곡 자체의 퀄리티가 좋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커뮤니티에서도 꽤 오랜 기간, 동화 형의 작곡 능력이 대단하다거나 의심하는 종류의 댓글이 달리곤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악의 없이, 혹은 악의를 가지고 씨부렁거리는 소리 따위에 흔들릴 동화 형의 멘탈은 아니지만, 도리어 자신이 화가 샘솟을 때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게다가 이번 곡도.’
이현재는 과외할 때마다 지동화가 작곡하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며 그 퀄리티를 확인하고는 했다.
뱀이 기어 다니는 느낌인데, 불쾌하다기보단 해방감 같은 통쾌함이 강했다.
마치 탈피하기 전에 갑갑한 상태였던 뱀이 탈피 후 상쾌함을 만끽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뱀이 무언가를 휘감는 듯 집착과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던 이현재는 문득 깨닫는다.
‘…어휘가 동화 형 닮아가는 기분이야.’
이러다가 일상생활에서도 어렵게 말하는 건 아닐까 이현재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야, 와서 밥 먹어.”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하민 형이 밥 먹으라고 호출했다.
“…누가 만들었어요?”
그리고 위협받는 작은 동물처럼 침대 위에 책을 끌어안으며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묻는 이현재.
채하민은 그 반응을 보곤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그러려니 하고 답한다.
“오늘은 동화가!”
그 순간 이현재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리며 안심으로 가득 찬다.
‘…다행이야, 정말.’
오랜만에 동화 형의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단 하루 피어나는 꽃향기라도 맡는 듯, 신이 나기 시작했다.
* * *
다음 앨범 제작 회의. 완성된 곡은 이미 A&R팀에 전달하고 왔다.
“일단… 콘셉트은 지난번처럼 귀하게 갈 겁니다. 다만, 지난번엔 여름이라 전반적으로 시원한 분위기였지만, 이번엔 조금 달리 가보려 합니다.”
옳은 말.
“그래서 이번에 A&R팀님들 의견 들어보니, 노래가 조금 야한 분위기가 강하다고 하더라고요?”
…워딩이. ‘야한 분위기’를 의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작곡 의도 맞춰서 앨범 분위기도 가져가려고 하는데, 어떤 곡인가요?”
분위기가… 이미 타이틀곡은 결정됐다는 느낌이군.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가제는 ‘우로보로스’, 그리고… 끝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
정확한 표현에 나는 만족하며 말을 잇는다.
“그게 가장 주된 작곡 의도입니다.”
그리고 침묵.
장해진은 익숙하다는 듯 웃는다.
“역시 언어로 이해하긴 힘든 점이 있죠? 곡부터 다들 들어보면서 얘기할까요?”
그리고 완성본이 틀려 나온다. 가사는 아직 붙이지 않은 그저 내 허밍과 헛소리로 멜로디의 흐름만 표기해 둔 곡.
모두 익숙하게 비너슈니첼이라는 단어가 난폭하게 울려 퍼지는 것을 듣는다.
“…이것도 공개하면 팬분들이 좋아하실 텐데.”
류이든의 중얼거림. 미친 소리.
모든 곡이 끝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곡은 진짜 좋은데? 가사만 잘 붙이면 되겠다.”
“약간 집착하는 연하남 느낌이네요. 네가 나를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돌고 돌아봤자 우린 우리뿐이잖아, 이런 느낌.”
…아니다. 그런 곡이 아니다.
“그것도 그런데, 중간에 댄브 부분 들어보면… 뭔가 휘감아 오는 느낌이지 않아요?”
“조금 숨 가쁘게 만드는 게 있지. 집착을 하는데 조금 판타지적으로 집착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감도 오지 않는 나는 그냥 가만히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본다.
“시간 되돌려서 계속 자기랑 만나게 하는 광기 같은 게 느껴져. 끝나면 다시 시작할 때로 돌아가고.”
“오… 그런 느낌으로 콘셉트 잡아도 좋겠는데요?”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스토리 작가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사야 동화 씨가 쓰는 거지만, 뮤직비디오는 그런 느낌으로 가서 스토리 이어가는 게 좋을 거 같애요.”
…모르겠군. 어떤 콘셉트가 튀어나올지.
* * *
HBS의 한 PD실, 토요일 새벽 시간대에 진행되는 음악 프로그램인 ‘작년 가을쯤 듣던 곡이 올해 여름에도 듣고 싶어져 행복합니다’라는 기나긴 이름의 프로그램, 줄여서 ‘작곡여행’을 연출하고 있는 이영화 PD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다.
캐스팅 목록을 선정해서 가져오던 조연출은 그 눈빛에 흠칫해선 조심스레 다가간다.
“어… 뭘 그렇게 봐요, PD님?”
“준성 씨 뮤비.”
그걸 보고 있던 조연출은 흠칫한다. ‘PD님이 아이돌곡을…….’이라고 중얼거린 조연출은 조심스레 언질을 놓는다.
“오, 드디어… 우리도 아이돌 캐스팅 들어가나요?”
그리고 이어지는 단호한 선언.
“싱어송라이터 아니면 안 부르는 건 변함없어. 아이돌 캐스팅해도 작곡하는 멤버는 있어야지.”
‘작곡여행’은 중간 MC와 대화를 나눌 때 음악 편곡이나, 미공개 자작곡 소개 따위를 하기 때문에 이름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돌아가며 출연하기로 유명하다. 그런 관계로 출연자는 작곡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고 판단되는 가수에 한해서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출연했던 사람이 시기만 달리해서 출연하는 일이 많았고, 또 그만큼이나 시청자가 고정적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발전도 퇴보도 없는 시기, 그게 현재의 ‘작곡여행’을 설명해 주기 좋은 문장일 것이다.
“에이, 저는 또 PD님이 현실 직시하신 줄.”
“그런 건 아니고, ‘모모지’ PD 아니?”
“네, 요즘 시즌 개편한다는 소리 들리던데.”
그걸 들은 이영화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걔가 요즘 시청률 잡겠다고 노력하기는 하지, 라고 중얼거리며.
“하여튼 걔가 얘네들을 추천해 주지 뭐니.”
그리고 이영화는 화면 한구석을 가리킨다. 거기엔 작은 글씨로 ‘작곡 : 동화’라는 단출한 문구만 적혀있다.
“동화가 누구예요? 새로 나온 싱어송라이터인가?”
그럼 내가 모를 리 없을 텐데, 라고 조연출은 중얼거린다. 인디판을 들락거리며 늘 새로운 얼굴이 없는지 확인했던 과거가 있기에 나온 자신감이었다.
“아이돌 멤버.”
“…드디어 PD님이, 시청률을 생각하기 시작하셨군요! 저는 정말 좋습니다, PD님!”
“김칫국 마시지는 말고. 완전 생신인이라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아.”
‘작곡여행’이 비록 고였을지언정, 거대한 물이 고인 것이기에, 비록 신인이더라도 아이돌이 출연하면 나름대로 화제가 될 테니까.
“다음 앨범도 자작곡 실을 거 같은데, 그거 듣고 결정할까?”
작곡하는 아이돌이야 흔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결국 허울뿐인 경우가 많았기에 여태껏 출연시키지 않았을 뿐.
그런데 이영화는 자신의 친구 김소영 PD의 말을 따라 약간 조사해 보다가 온갖 동요를 듣기 좋지만 기괴하게 편곡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닫고 말았다.
‘…걔는 또라이였지.’
그리고 그런 또라이 기질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법이다.
* * *
지동화의 팬은 커뮤니티 등지에서 올라오는 음해 공작을 천천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 개씨, 쓰레기 같은 것들이.”
현재 10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준성의 솔로곡에 지동화가 작곡과 편곡으로 참여했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부터, ‘끼워팔기’를 비꼬는 같잖은 것들이 한둘씩 보인다. PTSD가 올 것만 같다. 이런 조리돌림.
“차라리… 우리 앨범이 좋은 거였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만일 그랬다면 팬들끼리 박수치고 말았을 테니까.
소속사 선배 곡에 참여할 때, 심지어 그 선배가 솔로 데뷔였고, 하필이면 광역 어그로꾼인데, 그때 작곡이랑 편곡을 맛깔나게 하는 덕분에 인터넷 설전이 시작됐다.
[준성이 불쌍하다 솔직히]자기 솔로 앨범 나오는데 후배 홍보용으로 전락한 심정 상상도 안 된다 진짜… 내가 타이머였으면 존나 슬플 듯…
심지어 뮤비 끼워팔기도 했더만…
댓글
―닥쳐주시겠습니까.
└동화인 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굳이 ㅅㅂ 언급해서 지나가던 인간들 광역 어그로 끌어야 하냐 개 같네?
―아니… ㅅㅂ 홍보라도 됐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이 정도면 홍보용으로 쓴 것도 아니잖아…
└기사 보면 소속사 배포용 1도 없었는데 뭐같이 굴래 자꾸?
―타이머는 이 글과 무관합니다~
└좋은 곡 받아서 도리어 땡스~~ 슬프긴 지랄 ㅎㅎ
―하… 이제 슬슬 신인상 시즌 온다고 일단 때려 패고 보지 또 나 탈모 오면 니들이 병원비 줄 거냐고
―뮤비 끼워팔기라기엔 ㅈㄴ 억울한 게 촬영장 비하인드 컷 좀 보고 와라
└그걸 믿냐고~~~~~ 당연히 연출 아니냐고~~~~~~~
└정말 미안한데 산소 아까우니까 죽어주면 안 될까?
그녀는 다음 글을 확인한다.
[지동화가 ㅅㅂ 작곡 잘하는 게 검증이 됐냐고]아니 쏘리 노래 좋은 건 인정하는뎈ㅋㅋㅋㅋ 그거 하나 썼다고 시발 작곡 천재 기믹 잡는 거 역겹다고… 클블도 썼는데요? 이딴 댓글 사절~
댓글
―에반데…
―ㅋㅋㅌㅋㅋㅋㅌㅋㅋㅋㅌㅋㅋ 아 진짜 그만 좀 하자… 왜 1집 때부터 우리 꽃돌이들만 대가리 존나 잡히냐
―아… 동화가 이거 읽을 거 생각하니까 정병 올 거 같애… 작업실에서 ㅈㄴ 밤새워 가면서 작업했을 텐데 이딴 소리나 듣고
―누가 ㅅㅂ 천재 대접해 달래? 서바이벌 때부터 했던 약속 그냥 지킨 거잖아
그녀는 그 모든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속에서 끓어오르는 천불을 잠재우려 노력한다.
“…아, 개XX들, 머릿가죽을 XXX XX에 XXX 한 다음 그 위에다 대고 가래침을 뱉어버려야 하는데.”
아이돌 덕질을 할 때면 어렸을 적 전라도에서 사시던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욕설이 입안을 맴돌고 만다.
서바이벌 때부터 만들어진 약속을, 더없이 좋은 곡을 선물로 줘서 멋지게 지켜낸 지동화가 자랑스럽고 블뽕이 차오르기도 했지만, 이럴 때면 아이돌 덕질과 수명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연구해 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댓글 전에서 날뛰던 그녀는, 무심코 온 알림을 확인해 본다.
―깜짝 라이브 시작! 블로센스 : 근육 강아지 생일 대기 중입니다.
그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분노. 그 빈자리에 기쁨이 순식간에 들어찬다.
“…아, 씨, 진짜.”
절로 올라가는 광대는 어째서 이리도 가벼울까.
그녀는 서둘러 휴대폰을 터치해 W앱을 켠다.
그리고 펼쳐지는 짙은 암흑. 처음엔 화면이 로딩 중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저 어둠뿐이었다.
‘동화는 어디에!’
그렇게 생각하던 때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여러분, 반갑습니다.”
어둠 속에서 검정색 후드를 쓴 네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의 조명에 비친 얼굴이지만, 분명히 지동화의 용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비밀 집회라도 하는 것 같은 이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