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8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82화(82/343)
82.
세계관 연결을 위한 MV 촬영은 절찬리에 진행 중이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돌 그룹이 무슨 세계관 연결인가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류이든의 설명으로 인해 나름대로 해소가 됐다.
“팬분들이 즐길 거리를 하나 정도 더 제공해 주는 거지. 우리가 역할 놀이를 하는 걸 팬들이 지켜봐 주는데, 그 역할 놀이를 스스로 해석해 나가는 맛까지 있으니까!”
…그렇군. 솔직히 목화가 어렸을 때 책을 읽으며 장난감들로 역할 놀이를 하는 걸 봤을 때 재밌진 않았던 것 같지만, 팬분들의 취향은 늘 심오하고 깊은 뜻이 있을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평생을 공부해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어쨌든 회사에선 우리 멤버에게까지 세계관이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나와 이현재는 지금 골몰히 앨범에 들어갈 부록 비슷한 종이쪽지를 읽으며 분석 중이었다. 이건 과외의 연장선쯤 되겠지.
# 지동화, Soteria, 그러나 미완성인
바닷속 뒤안길, 그 위에서 지동화는 눈을 떴다.
(중략)
바위 틈새에서 기어 나오는 뱀은 하늘이 된 바다를 물어뜯을 듯 입을 벌린다.
어쩌면 뱀은 하늘을 물어뜯을 듯했지만, 결국엔 사랑을 갈구했던 것일까.
결국 지동화는 눈을 감는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바닷속 뒤안길임에 안심하며.
바닷속 뒤안길, 그 위에서 지동화는 눈을 떴다.
쓸데없이 상징을 꾸역꾸역 박아두고 시간선도 일부러 꼬아놓은 듯 보이는 짧은 글. 이번 앨범에 들어갈 스토리 조각이라고 한다.
앨범 속에는 우리 사진뿐만 아니라 이런 단편 글들이 들어가서 팬들의 즐거운 해석 시간을 유도하겠지.
“형… 이건 무슨 소리인 거예요?”
“…정보가 모자라. 의미 없이 불친절하고. 개인적으로 내가 산 책이 이런 형식이라면 쓸데없이 어렵게 써놨다고 욕했을 것 같아.”
어려운 형식은 의미를 창출할 때에만 가치 있는 법이지만, 아이돌 세계에서 문학 이론 따위는 통하지 않는 듯싶었다. 즉, 이게 만일 소설책이었다면 나무에게 사죄를 드리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렇네요. 나무는 무슨 죄래.”
물론 이건 소설이 아니니, 새로운 마케팅의 한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기획팀의 불친절함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 석준이 촬영을 마쳤는지 걸어온다.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왜 그래, 준?”
“뱀이, 뱀―이, 제 머리를― 어깨―를.”
정말 미안하지만, 그 덩치면 독사한테 물려도 꽤 버틸 수 있을 텐데.
“동화 형님! 현재! 무섭습니다! 살려주세요!”
“…이든 형 옆에 있었잖아.”
“이든 형님은! 똑같이 도움이 안 됩니다! 제가 뱀에게 붙잡혀 가면 구해줄 왕자가 필요합니다! 저처럼 여린 사람을 구해줄!”
…위즈니에 뇌가 오염된 수준이 심각하군. 어떻게 이리도 당당하게 미칠 수 있을까. 해답을 알고 싶은 질문 중 하나다.
“…현재.”
석준이 내 무릎을 부여잡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관찰하며 이름을 부른다.
“형, 저도 준이 형은 감당하기 힘든 거 알구 있잖아요.”
우리 팀에서 가장 차분한 이현재가 포기할 정도였군.
“…준.”
“형님! 드디어 구해주실 마음이 드신 겁니까!”
“하민은 뱀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을 무시할 만큼 못된 성정도 못 돼.”
마침 채하민이 개인 신 촬영을 마치고 오는 길인 걸 확인한 참이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린 이 아이에게 나는 너무 매정하다. 뱀이 두렵지 않은 이유를 이성적으로 설명해 준들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야말로 왕자답지.”
그 말을 들은 순간 석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민 형님!’이라고 소리치며 달려갔다.
* * *
나는 돌무더기 위에서 세 마리의 검정색 뱀을 몸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흰색 재킷을 입은 데다가 피부도 하얀 편이라 그런지, 검정색 뱀이 더욱 선명히 보였다.
“와… 동화 형, 쟤는 무섭지도 않나 봐. 어떻게 저러고 표정을 유지하지.”
류이든이 촬영장 밖에서 구경하며 중얼거리는 게 왠지 모르게 큼직하게 울린다.
“하민 형도 콘셉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동화 형도 엄청나네요. 잔혹군주가 어디 가는 건 아닌가 봐요.”
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무시하고 지시에 따라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오른손에 찬 돌로 만들어진 엉성한 팔찌를 바라본다.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아쉽게도 나도 모른다.
한숨을 한번 내쉬고 뱀이 목 위로 올라오길 기다린다. 약간 소름 끼치는 감각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눈을 감는다.
“…오케이, 컷! 아주 좋았어요!”
이걸로 한 장면, 뱀이 짓누르는 나의 얼굴이 완성됐다.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와, 맨몸 재킷 멋지다, 동화야!”
닥쳐, 토끼. 나는 어째서 내 의상은 늘 이런 꼴인지 의아할 지경이니까.
아마도 스타일리스트님은 팬분들의 취향이라고 하시겠지. 전문가의 소견에 반발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지나치게 수치스럽다.
“에이, 파인 스웨터랑 다를 바도 없잖아.”
류이든이 일침을 놓듯 지적하지만, 다를 게 아주 많다. 재킷은 정장의 한 피스인데, 그 모든 형식과 격식, 제도를 무시한 채 맨살에 직접 갖다 붙인다는 건 너무나 수치스럽다.
“그게 다 형 목선이 예쁘다는 팬분들 반응 때문일걸요?”
SNS 거주민인 이현재가 웃음을 참으며 말한다. 사악한 악마 같은 표정이다. 이현재의 말에 따르면 목선이, 예… 하, 보기 좋은 때문에 이런 의상이 주어진다는 거군.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망할 아이돌, 다 좋은데 의상을, 어떻게 할 순 없을까.
* * *
컴백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주. MV 촬영과 콘셉트 포토 촬영 등 어려운 작업은 이미 끝났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연습뿐인 시기가 돌아왔다.
그리고 준성의 앨범 작업 이후 은근하게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기 시작하던 내 작곡 실력이 이번 컴백 소식이 알려지자 재점화되었다, 라고 이현재가 설명해 줬다.
왜 이렇게 남의 실력에 관심이 많은지는, 나도 철학자의 지적 능력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으니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작곡 실력이 철학자의 지성만큼이나 관심 가질 대상인지 모르겠을 뿐.
“와… 이분은 말이 심하네요. 욕을 조금 더 우아하게 하신다면 좋을 텐데, 그죠?”
“…그렇지. 욕의 다양성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니까.”
이현재는 내가 그런 쪽으로 완전 면역 상태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나와 함께 욕에 담긴 수사법을 공부하는 중이다. 좋은 교육 자료가 될 수 있다.
“어제 형이 준 논문 다 읽었는데, 적용해 보니까 딱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이론에 너무 매몰되지 않게 주의. 현실도 가끔 왜곡돼 보여.”
그렇기 때문에 연습실에서 나와 이현재가 학술적인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채하민이 한번 접근했다가 이현재가 배운 것들에 대한 요약 정리를 듣는 와중, 정신이 혼미하다고 주장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 이런 그룹이 또 있을까, 하민아.”
류이든이 숨을 고르며 물을 마신 뒤, 채하민에게 물어본다. 채하민은 이현재가 ‘지동화화’되고 있다고 정의한 뒤 고개를 젓는다.
“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형.”
안타깝지만 저놈들이 비정상적인 거다. 지성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우니까.
…흠, 아쉽군. 기지생이 근신 처분(으로 추정)을 받는 바람에 가끔 들어오던 태클이 사라졌다.
만약에 있었다면.
띠링―!
[당신의 본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말하며 짜증을 유발했을 텐데. 미안하기 짝이 없고, 보답할 길이 없어서 더 미안하다.
순간 이현재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해지고 말았다.
“…동화 형?”
창의적인 욕설과 비방 댓글을 분석하고 있던 이현재가 멈칫하더니 나를 바라본다.
‘아무리 형이어도 계속 욕을 읽는 건…….’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고 책임감을 느끼나 보다.
“…죄송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뭐가 됐든 위로해 줘야겠군.
“그런 욕은 예전에 더 많이 들어서 괜찮아.”
사실 들은 적 없다. 연습생들에게 따돌림을 겪었긴 하다만 언어폭력에 노출됐는지도 모르고. 그러나 거짓은 달콤하기에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엄숙해지는 분위기. 모두 조용히 입을 다문다.
…음, 역시 위로하는 건 적성에 맞지 않나 보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곡을 틀었다. 이런 걸로 우울해할 바에 연습해서 루미너스분들을 만족시키는 게 더 나을 것이다.
* * *
연습을 마치고 나와 류이든은 작업실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데뷔와는 별개로 몹시 중요한 일이 남았다. 바로 이지현과 그 왈패들이 마약을 접하는 일. 계획은 A안, B안, C안, D안으로 크게 구분되어 있으나, 기지생이 없으므로 D안은 폐기.
류이든과 나는 여러 안을 비교하며 가장 피해가 적을 것 같은 계획을 골라잡았다.
“근데… 괜찮겠어?”
대체 뭐가. 내 시선을 받은 류이든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거… 엄청 위험한 일이잖아?”
“뒷세계 사람을 건드는 일이라?”
류이든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아이돌이 할 만한 일은 확실히 아니긴 하다. 그런데 이 정도 일이 위험하다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가 정한 계획은 ‘컴백 직전’이라는 시기를 고려하여 가장 안전한 루트니까.
“…형, 계획 제대로 읽어본 것 맞아?”
류이든이 그 물음에 쓴웃음을 짓더니 답한다.
“읽어보긴 했는데…….”
목소리에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군. 그럼에도 나를 도와주려 한다는 걸로 보아 나는 복받은 인간이긴 한가 보다.
“이대로 될 수 있을지 약간…….”
일단은 읽어봤다는 것만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200페이지에 달하는 계획서를 모두 읽는 건 꽤 힘든 일이었을 테니. 계획서는 이번 사건에 참가하는 등장인물들의 행위 양상을 분류하고 그 양상 사이의 가능한 조합에 따라 세밀하게 쪼개져 있으니까.
“계획대로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야.”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걸 감상하면 되니까.
그러려고 세밀하게 짜둔 계획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대로 움직이겠지만, 그 사이사이에 약간의 정보를 제한하고 제공함으로써 정해진 결말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자유롭게 스스로 생각하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미래 아래에서 이뤄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 계획이 라이프… 씨 철학에서 따온 거라고.”
“라이프니츠.”
처음 책으로 접해서 그 사상을 읽을 때 논리는 다 이해했는데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인간 중 한 명이다.
“…이런 그룹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있어서 좋은데 없어야 하지 않나 싶고, 그렇네.”
류이든은 생각이 많아졌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린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상적인 그룹의 형태, 나는 꽤 마음에 들지만.
다음 날, 이지현이 멤버들을 이끌고 가는 날부터, 계획은 시작될 것이다.
“그럼 우선…….”
류이든이 계획서를 훑으며 전화기를 꺼내 든다.
“하… 누나한테 전화해야겠네.”
계획의 시작은 류이든의 누님이 될 것이다.
“누님이랑 사이 안 좋아?”
“…너랑 목화 사이가 좋다 보니까 모르나 본데, 누나와 남동생 사이는 좋기 힘들어.”
나는 그에 고개를 끄덕여 주며 윤성호에게 보낼 문자를 미리 작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