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8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85화(85/343)
85.
이지현은 기분이 좋았다. 어젯밤 하늘이 높은 줄 모를 정도였던 기분. 아무래도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마약을 접하나 보다.
그렇게 흥겹게 오후 2시가 되어, 회의를 위해 갓 엔터 사옥으로 걸어 들어간 이지현, 다른 멤버들은 이미 2시 반 회의를 위해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가는 순간, 싸해지는 공기. 그곳에선 기획팀장, 매니지먼트실장 등이 김 이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음… 뭐지?’
지금 설치면, 아버지랑 달리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하는 저 김 이사 놈의 눈 밖에 날 수 있으니 몸을 사려야 한다. 자신이 여태껏 헛짓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인맥이 닿은 이 이사님 덕분이었으니.
그런데 왜일까. 이사의 두 눈이 날카로운 빛을 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대체.
“왔구나, 지현아.”
…뭐지, 시발. 이지현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멤버들의 눈빛도 극명하게 갈린다.
호연과 윤성호 둘을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조졌다’라는 자막을 밑에 달아두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반면 윤성호는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이지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호연은 평소와는 달리 무감한 얼굴 위에 혐오의 정서를 담아두고 있었다.
“아주 장하구나. 우리 회사에서 나름대로 투자했던 기획안을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했으니까.”
그의 손에 들려있는 태블릿엔, 한 클럽의 풍경이 촬영돼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이지현은 회의는커녕 근신이라는 명목으로 숙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멤버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 약간 표정이 일그러진다. 탓하는 표정이 눈에 띈다. 분명히 자기들도 마지막에 가선 먼저 약에 손을 뻗었으면서 우습기 짝이 없다.
…큰일이 났다.
이지현은 침대에 누워 그렇게 중얼거렸다.
회사에선 영상을 누가 보냈는지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도리어 믿었던 이 이사님에게 자신의 입지가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 나대지 말고 닥치고 있으라는 말을 듣고 오는 길이었다.
…×발, 뭐지. 대체 아버지 클럽에 왜 카메라가.
그 룸은 아버지가 아들인 자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 둔 VIP룸이었는데, 어떻게 그곳에.
그 모든,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 끝나고 이지현은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아버지, 아버지에게 연락을 드리자.
이지현은 황급하게 휴대폰을 들어 키패드에 1번을 꾹 눌렀다. 문제가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해소해 줬던 사람이니까!
울리는 통화음. 이지현은 입안이 마르는 감각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모든 말을 전달한 순간, 울려 퍼지는 목소리.
―이 ×놈의 ×끼! 너였냐! 왜 영업장에 경찰이 ×발 들어왔나 했는데!
* * *
류이든은 자리에 앉아 지동화를 바라본다. 지동화는 이현재와 거실 탁자에 앉아 시 한 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손에 든 휴대폰에선, 자신의 누나가 쏘아 올린 마약 게이트가 천천히 점화하는 순간이 그려지고 있었다.
지동화가 누나에게 선물이라고 자신을 통해서 전달한 이상한 리스트. 누나는 그 리스트에 있는 연예인 중 FFF 클럽에 자주 오간다는 소문이 있던 배우를 스토킹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기사로 나타났다.
“동화 형, 그러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의 원형적 상징이 작용한 거니까!”
“흠… 충분히 그럴듯해. 한번 다음 구절도 그런 식으로 해석해 보자.”
연예계에 태풍을 일으켜 놓고는 정작 자신은 태평하다는 게, 간이 큰 건지 뭔지 류이든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면… 이지현 아버지가 저 배우부터 시작해서 차차 자신에게서 마약을 받은 사람들 때문에 이지현을 도와주기 쉽지 않아질 거라고 했다.
차라리 이지현이 완전히 망해버리면 모를까, 아이돌로서의 직업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관심도 때문에 직접적으로 윤성호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못할 거라고.
결국 리스트를 받은 누나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예측해서, 지동화가 세운 계획의 일부로 작용하고 있단 거다.
지동화의 계획서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 A 루트, 하위 항목 13번 : 이지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 일을 알렸을 경우 (실현 가능성 89%)
―이때는 일이 가장 수월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다. 우리가 목표한 결과를 위해서 추가로 할 작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는 후술한다.
1. 인물 F는 자신의 직계혈족이 마약 사범인 게 알려져 봤자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인물 Y는 아버지의 보호가 아닌 분노로 인해 위축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Y의 측근은 Y에 대한 원망감이 생길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원망감은 Y의 행위를 통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3. 토끼의 삼촌을 통해 전해 들은 말에 따르면, Y에 대한 소속사의 비호는 특정 이사로 인해 발생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사의 입지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기에, 소속사 측에서도 Y를 통제할 것이다.
4. 이러한 통제가 발생하고, 사생활의 관리가 진행되면, 보호 대상 A는 Y의 마약 사실을 공론화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예방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결론 : 따라서 A 루트,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A―5 2번으로 이동할 것.
‘…그것보다 하민이는 계획서에 너무 당연하게 토끼라고 적혀있구나.’
계획서에 자신의 이름은 강아지로 대체되어 있던데, 혹시 동화 머릿속에선 멤버들이 동물로 대체되어 보이는 중인 걸까. 자신도 고양이인 주제에!
어쨌든 류이든은 지동화에게 소름이 돋았다.
이지현이 마약을 하는 사실을 밝혀 정의를 구현한다는 선택지나, 이지현의 아버지가 마약 사범이라는 사실을 알린다는 선택지는 계약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도리어 누나에게 리스트를 넘겨주는 대가로 이지현에 대해 비밀을 유지할 것을 부탁했을 정도니까. 물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어제 사진을 찍기까지 했지만.
지동화가 선택한 것은 ‘악인의 징악’이 아니다. 지동화의 계획서의 마지막, 에필로그 파트에 적혀있던 것은 ‘갓에이의 존속’이었다. 다만, 윤성호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만을 도려낸 채로.
류이든은 모든 계획서를 읽고 나서, 지동화와 나눴던 대화를 회상한다.
‘…음, 근데 동화 형, 이거 이지현이 다시 마약에 빠지면 어떡해?’
‘그럴 수 있지. 실수의 반복은, 제대로 된 교육 없이는 필연적인 사항이니까.’
‘그러면 그때도 성호가 위기에 빠지면?’
아마 이때, 지동화는 이지현이라고 부르는 게 기분이 별로라서, 입 밖으로 뱉을 땐 ‘인간’이라는 단어를 활용했다.
‘…상황이 달라질 거야. 성호가 직접 인간의 마약 사실을 알리는 사건 없이, 자기가 알아서 지옥으로 내려갈 테니까.’
결국 지동화의 말에 따르면, 이지현이 이번 사건을 통해 제대로 ‘교육’받아서 바뀐다면, 윤성호는 원활하지는 않을지라도 갓에이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이지현은 홀로 몰락하고, 그걸 시작점으로 해서 갓에이 자체가 망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건 네가 바란 상황이… 아니지 않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우였어. 윤성호가 아이돌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지동화는 그렇게 말하며, 어떤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류이든이 어렸을 적, 집에 홀로 있을 때 다치면 어머니가 지어 보였던 표정과 같은… 죄책감을 지니는 표정.
자신은 그저 예지몽을 꿀 뿐인데, 어째서 그렇게 죄책감에 시달리는 표정을 순간 지어 보인 걸까.
아마도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류이든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류이든은 식탁에서 일어나 거실 탁자에 앉아있는 둘 뒤의 소파에 가 몸을 눕혔다.
“얘들아! 형님이랑 같이 놀자!”
“…형, 지금 신성한 학습 시간이에요!”
이현재가 독서 시간을 방해받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지동화는 포기한 듯, 시집을 접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졸려 보이는 나른한 표정이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현재, 장기나 배울래?”
“갑자기 웬 장기예요?”
“오랜만에 다시 두니까 재밌어서.”
“형, 저는 장기 같은 거 취향에 너무 안 맞는데…….”
햇빛이 평화롭게 내려앉은 거실, 류이든은 기나긴 과정을 거쳐서 지동화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므로 류이든은 지금의 평화가 조금 더 길게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별다른 사건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일상이 반복되길, 류이든은 바랐다.
* * *
컴백 직전. 우리는 최종적인 스타일링을 위해 미용실을 찾아왔다. MV 촬영 때도 다듬거나 염색을 하곤 했다만.
어쨌든 나는 그냥 머리 길이만을 다듬을 뿐 별다른 작업이 필요치 않아 가만히 앉아있었다.
“악, 으, 그윽.”
이 소리는 채하민이 머리에 어떤 약을 바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소리다.
“동화야! 머리가 너무 따가운데!”
“…내가 약을 바르고 있는 게 아니야, 하민.”
호소할 대상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잖은가.
“나 지난번 뮤비 촬영 전에 탈색할 때도 죽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 또!”
뿌리를 탈색하는 건 과연 얼마나 아픈 일이기에 저럴까. 겪어본 적 없어서 모르겠다.
아마도 채하민은 이번에 은발을 할 예정이라는 듯싶다. 은발 토끼, 달에 산다는 설화가 있는 동물에게 알맞은 빛깔이다.
물론 그 옆에서 이현재, 석준, 류이든 순으로 앉아 염색 중이다. 그중에 탈색으로 고통받는 건, 지난번 앨범에서도 탈색을 했던 채하민과 이현재. 나머지 둘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음, 부럽다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왜 나만 흑발로 남는 걸까.
“동화, 너는 최대한 단정한 흑발로 가야 한다니까.”
미용실 실장님께서 옆에 앉아 오렌지주스를 건넨다.
“…그렇습니까? 혹시 이번에도 팬분들의?”
“아니, 내 고집이지, 이건. 장인 정신 비슷한? 너는 해도 푸른 계통으로 해야 하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칠흑 같은 머리를 유지하는 게 나아.”
…‘칠흑 같은’이라는 수식어구는 조금, 중2병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말입니다.
“어차피 너 빛 받으면 약간 푸르게 보일 정도로 검정색이라 괜찮을걸, 팬분들 반응도?”
사실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기만 하면 별로 문제 될 것도 없다.
“아, 잠깐만요! 실장님, 머리카락이 불에 타는데요?”
이현재의 애원, 이후 입으로 꾸역꾸역 참아내는 비명이 귀에 들려온다.
저런, 안타깝군.
“현재는 금발로 뿌리 염색하는 겁니까?”
“그렇지. 이든이는 갈색, 준이는 파랑색으로 뿌염 하는 중이고. 너만 좀 한가하게 됐네.”
“전 이런 시간 좋아합니다.”
나는 오랜만에 홀로 앉을 수 있는 시간과 배경음악으로 들려오는 멤버들의 비명을 만끽하며 챙겨 온 책을 꺼내 들었다.
존재와 시간, 오랜만에 읽는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