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8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89화(89/343)
89.
쇼케이스 현장, 광기와 열광 그 사이 어디쯤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나서, 타이틀곡인 ‘마지막 시작 : the First Last’ 무대의 막이 올랐다.
‘클라우디 블루’가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춤선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에는 강하고 절도 있는 동작이 많다.
안무를 보는 입장에선 시각적인 만족도가 더 클 테지만, 솔직히 말해서 하는 입장에선 온몸의 에너지가 0으로 소진되는 것 같다.
즉, 죽을 것 같다.
두 번째 후렴구가 지나고, 브리지 부분의 댄스 브레이크 파트. 채하민만을 위해 작곡된 부분.
채하민을 중심에 두고 우리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서있다. 그 사이에서 채하민만이 뱀과 같은 웨이브로 가슴 쪽을 오른손으로 툭툭 치며 해방감을 쏟아낸다. 이후 이어지는 권총 모양의 손짓과 함께 우리가 뒤로 쓰러지듯 눕는다.
잠시간의 독무, 약 4초 동안 우리는 누워서 지렁이처럼 꿈틀대면 그만이다. 안무 선생님께서는 지렁이가 아니라 뱀이라는 용어를 활용했으나, 인간이 누워서 꿈틀대는 모습은 아무리 잘 봐줘도 지렁이일 뿐이었다.
…하, 이 파트라도 쉬어서 다행이군. 채하민은 체력이 강한 토끼니까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잠시 지렁이와 호접몽을 이루고 있는 와중에, 나는 다짐했다. 강렬한 곡을 다시는 작곡하지 않을 거라고.
* * *
쇼케이스가 끝나고 돌아온 숙소, 두 번째 앨범 활동이라는 설렘이 집 안 곳곳에 맴돌고 있다.
“와… 이거 진입해 있는 게 너무 놀라워, 동화야.”
채하민이 낯짝에 뱀 무늬가 그려진 마스크 팩을 붙인 채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지난번보다 화제가 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음원 순위 끝자락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놀랍기도 하고 기묘하기도 하다. 첫 번째 앨범 음원이 랭크됐을 때는 얼떨떨하고 낯설며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고생해서 만든 곡을 사람들이 듣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묘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대중의 평가가, 저런 기괴한 마스크 팩을 얼굴에 붙인 상태에서도 실시간 성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은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소설을 쓸 때는 이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동화야, 루미너스가 네 쇄골에서 수영하고 싶으시대! 오늘 쇼케이스 의상이 브이넥이라 그런가 봐.”
…뭔, 그건 또, 무슨.
팬분들의 ‘주접’이라는 문화생활은 받아들이기 힘든 구석이 있다. 차라리 악플을 읽는 게 심적인 동요가 더 적을 정도로.
싫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채하민은 그런 동요를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양상을 소개해 준다.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워서 발을 까딱여대는 게, 한량 같다.
“이번 곡이 ‘클블’보다 좋다는 분들이 엄청 많으셔.”
“확실히… 순간적인 도취가 개인적으로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동화야, 내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랬지!”
내게 작곡 작업은, 영감으로 주어진 한 조각의 퍼즐을 갖고 그 퍼즐에 맞춰 나머지 부분을 끼워 맞추는 작업과 같다.
즉, 작업은 한순간의 영감을 노동을 통해 이어붙이는 과정에 불과하다. 노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단 한 조각의 퍼즐, 그 한 조각에 의해 곡은 제 색을 갖는다.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지만, 언제나 똑같은 정도로 강렬한 영감이 찾아오진 않는다. 그러므로 ‘클라우디 블루’보다는, 이름을 떠올리는 게 귀찮은 이 곡이 더 좋은 이유는 뱀 한 마리 때문이다.
…라는 긴 해석 끝에 채하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이번 곡 듣고 네 실력 많이 알아주면 좋겠다, 그지?”
안타깝지만 정작 나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곡이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고,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고치면 그만이라서. 비교하기에는 내 수준이 부족하지만, 작품이 마음에 들기만 하면 누가 뭐라든 상관없는 장인과 비슷한 마음가짐이다.
“현재한테 들어보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 험한 말을 한다더라. 괜찮아?”
얘는 악플에 관한 소식은 전해 들었으면서 내가 그 악플을 읽으며 분석까지 한 건 전해 듣지 못했나 보군.
“어차피 남들의 헛소리.”
신경 쓸 가치가 없다. 이건 오만이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 블로센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서 욕먹을 정도로 천한 곡을 선보인 적은 없다.
* * *
[ㅅㅂ 지동화가 아이돌판 찢었다]최근 아이돌 중 자작곡 수준 제일 높다 인정하자 이제
타돌 팬이라지만 이젠 ㅅㅂ 양심 아파서 욕을 못하겠다
현직 작곡과라 기존 곡들도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흐린 눈으로 존나 깠는데…
이번 곡을 듣는 순간 확신했다… 질투하기에는 곡이 너무 좋았다…
댓글
―응 회사가 써준 거
└이 정도 곡 쓰고 작곡란에 지동화 세 글자밖에 안 적어준 거면 작곡가가 알아서 폭로했을 듯
└지동화 싸패니까 목숨 줄 잡고 있을지도~
└아니 ㅅㅂㅋㅌㅋㅌㅋㅋㅋㅌㅌㅋㅋ 최근에 본 말 중에 제일 얼척없네 ㅋㅋㅌㅋㅋㅋㅋㅌㅋㅋㅋㅋ 노빠꾸로 애 범죄자 만드는 거 실화냐고 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룸넛들은 다 안다… 지동화는 싸패라기엔 너무 따시다…
└니체가… 작곡가 풀 존나 좁은 그 니체가… 이 정도 곡을 무기명으로 신인 아이돌 띄워주는 데 바칠 작곡가를 가지고 있다고…? ㅅㅂ 그게 말이 되니…
―아 ㅅㅂ 팬 아닌 척하지 마 존나 냄새나 노래 구린데 무슨 올려치기 개심해 땅콩 년들
└응~ 네 새끼는 작곡 못 하나 봐~
└죄송하지만, 닥쳐주시겠습니까? 열등감이 여기까지 투명하게 반짝여서 잠을 이루기 힘듭니다.
└솔직히 곡이 구린 건 아니지… 지가 쓴 건지 의심스러울 뿐 시체꽃 팬들만 눈 가늘게 뜨고 지 새끼들 보는 거지 준성 곡부터 지금 곡까지 신인이 쓸 수 있는 곡이 아니니까 ㅎㅎ
커뮤니티에서의 설전은 이런 식이었다. 사실 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일부 인간들의 무례한 추측과, 팬들의 제재의 반복이었다. 시체꽃과 땅콩이라는, 블로센스와 루미너스(룸넛)를 부르는 기괴한 멸칭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작곡 실력으로는 욕을 할 수 없으니 그 기원을 의심하는 것. 지동화가 보기엔 왜 이리 천박하게 구는지 의아하다고 평가할 만한 일이 커뮤니티에서는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루미너스는 그리 크게 고통받고 있지 않았는데…….
[ㅅㅂ 이번에 애들 봤냐고 ㅅㅂ 진짜]뱀 콘셉트? 솔직히 존나 걱정했고 아직 청량물 더 빨아도 될 것 같았지
근데… 시발 동화가 말했던 것처럼 타임머신만 만들어지면 나는 그때의 내 대가리 한 대 딱 쳐주고 싶다…
이번에 약간 귀하게 자란 애가… 딱 각 잡고 무도회 나갈 때 착장 아니냐? 나는 진짜 ㅅㅂ… 너무… 콘셉트부터 곡까지…
특히 채하민 독무 파트 나오면 나는 존나… 심장을 부여잡고… 온 세상을 찢어발길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댓글
―(채하민 독무 GIF) 하 내 삶의 이유, 지금껏 산 삶이 가치를 갖는 순간.
―류이든, 당신, 범죄자야. 나 요즘 당신 생각 때문에 인생 다 망쳤어. 책임져.
―준아… 나는… 너 정장 차림만 본 걸로 만족해… 죽어도 좋아 이제…
―현재. 가사 쓰고. 제목 쓴 거. 나는. 너무. 하. 그 작은 손으로. 꼼지락. 꼼지락
└근데 가사 내용이 집착남이다? 연하 집착… 너모 조코…
―그래서 이번 곡 동화 자작곡인 게 존나 발린다고 채하민이 데려온 뱀 보고 지은 곡이라는 게 더 좋다고
갓 컴백, 텅 빈 집, 곧 연말, 신인상 유력 등등, 이미 뽕은 찰 대로 찼으니까. 내 가수가 한 줌이면 모를까, 무럭무럭 커나가고 있는데, 잠시간은 잊은 채 살아도 될 것이다.
* * *
HBS 토요일 새벽 시간대의 음악 프로그램 ‘작년 가을쯤 듣던 곡이 올해 여름에도 듣고 싶어져 행복합니다’, 줄여서 ‘작곡여행’.
이영화 PD는 블로센스의 여러 기사를 모아서 보고 지동화의 ‘월간 지동화’를 보다가, 마침내 선언했다.
“블로센스, 부르자. 부른다고 올지는 모르겠지만.”
조연출이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의미를 해석하더니 박수를 친다.
“오… 드디어 오랜만의 아이돌 출연. 팬들이 좋아하겠네요.”
조연출은 일정표를 점검했다. ‘작곡여행’의 방송 형식은 출연진이 작곡을 하는 과정과 그 무대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감성적인 분위기의 영상물로 찍어내는 1안과, 다른 출연진과 함께 작업을 하는 콜라보를 진행하는 2안이 존재한다.
조연출은 아이돌과 인디 문화의 특성을 고려하며 답한다.
“1안으로 가는 거죠?”
이영화 PD는 피식 웃더니 말한다.
“2안.”
“…네?”
“2안으로 하자.”
조연출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인디판 성향 제일 잘 아시면서 무슨.”
요즘 시대가 시대다 보니 아이돌 문화를 존중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음악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아이돌과 함께 작업하려 들지 모르겠다.
“그 친구 기억 안 나?”
“누구요?”
“걔 있잖니. 또라이처럼 메일로 작업물 테러 했던 신인.”
조연출은 다시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네스퀵인가 했던 걔요?”
“응, 예명도 또라이 같애. 누가 초코 분말 이름을 예명으로 정하나 싶었지, 처음엔.”
정작 조연출은 그 말을 하며 웃고 있는 이영화 PD가 또라이 같다고 생각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신인 무턱대고 쓰긴 싫으시다고 하셨잖아요?”
“블로센스, 걔네도 신인이니까 더 잘 맞겠지.”
조연출은 머릿속을 긁어내며 네스퀵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작업물…은 나쁘지 않았던 거 같긴 한데. 제 기억이 맞으면… 앨범 발매 경험 없음. 믹테 작업만 했고, 힙합 음악 하는 애인데. 음… 괜찮을까요, 이거? 힙합 하는 애들이 인디판 애들보다 아이돌 욕하는 게 조금 심한 경우가 더 많던데.”
“영우야, 나 믿어. 재밌는 게 나올 것 같다니까? 내가 ‘작곡여행’ PD 짓 경력이 벌써 6년 차잖니?”
조연출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조연출, 이영화 PD는 더럽게 재미없는 인디판 가수들로 꾸준히 시청률을 유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실력은 나쁘지 않은 선배임이 분명하니까.
“그러면 일단 캐스팅 쪽으로 문의 넣어볼게요. 구체적인 내용은 작가님들이랑 같이 하실 거죠?”
“응, 아, 기대된다. 나는 진짜 또라이 같은 애들이 너무 좋아.”
조연출은 뒤돌아 걸으며 생각했다. 정작 가장 또라이 같은 것은 PD님이 아닌지에 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