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화(9/343)
9.
TOT의 리더 준성은 휴식기 중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기왕이면 푹 쉬고 싶었지만…….’
니체 엔터가 남자 아이돌을 낸 지 어언 5년, 다음 데뷔 서바이벌을 진행하는데 그곳에서 심사를 봐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연습생 생활을 같이 보낸 동생들이 데뷔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 주고 싶은 마음에 덥석 수락해 버렸다.
‘이래서 정이 무서운 거라니까.’
니체 소속 보컬트레이너가 옆에 앉으며 준성에게 물었다.
“준성, 잘 쉬다 왔어?”
“예, 선생님! 선생님도 잘 지내셨죠?”
“그럼. 그나저나 이번에 나오는 애들 중에 아는 애들 있어?”
“저랑 연습생 생활 겹친 애는 이든이랑 현재 정도?”
“이야, 실력 좋은 애들만 아는 사이라 심사위원 점수 편파 논란 같은 건 없겠네.”
그렇게 심사위원석에 있는 니체 소속 트레이너, 연예인들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큐 사인 30초 전에 그는 심호흡을 하고 얼굴에 미소를 올렸다.
* * *
‘하, 굳이 좋았던 점을 찾는 것도 계속 하니 지치는군.’
준성은 3명의 연습생이 무대를 조지는 걸 보고 진지하게 비판만 하려다가, 그래도 첫 무댄데, 라는 생각에 구태여 좋은 점을 하나씩은 억지로 언급해 줬다.
심지어 꽤 친했던 이현재가 무대를 반쯤 망친 걸 봤을 땐 안타까워 미칠 뻔했다. …저런 실력이 아니었을 텐데, 분명. 왜 이럴까.
다음 무대가 준비되는 동안 잠시 숨을 가다듬은 준성은 다음 연습생의 프로필을 보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자작곡을 준비했네요?”
“아, 지동화 연습생.”
“서바이벌 첫 무대에 자작곡이라, 자신감이 엄청난데요? 실력은 어때요?”
그 질문에 보컬트레이너는 목소리를 약간 낮춰 말했다. 편집되리라는 뜻이다.
“사실 중간에 학폭 걸려서 퇴출된 애들 땜빵으로 들어온 거라 정확히는 모르는데, 오디션 볼 때는 상당히 괜찮았어.”
‘그럼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무대를 보려나…….’
이런 무대를 보려고 서바이벌 심사를 맡았던 건 아니었으니, 부디 이번엔 무대다웠으면 좋겠다.
스탠바이 신호가 오고 무대에 서서히 암전이 들어간다. 암전이 되고 얼마 있지 않아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이 울려 퍼졌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반부.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와 금관악기의 살 떨리는 소리 속에서 현악기의 날카로운 음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 핀 조명이 들어오며 무대 중앙을 비추며 연주가 뚝 그쳤다.
웅장한 도입부 때문에 영웅이라도 출현할 것만 같았는데, 정작 조명 속에서 모습을 비춘 것은 동그란 안경에 체크무늬 셔츠, 반바지에 긴 양말을 입은 웬 너드 한 명. 지동화는 그 꼴을 하고 불안하다는 듯 찌질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준성은 그 모습을 보머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 웃었다. 대체 무슨 컨셉인 거지.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지동화는 이렇게 표현하긴 뭣하지만 쫌생이 같은 걸음걸이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그때 흘러나오는 베이스 기타 리프. 귀를 확 잡아끌면서 리듬감을 돋운다.
베이스 리프에 드럼이 들어오며 통통 튀는 리듬의 키보드 소리가 퍼지자 지동화는 핸드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차라투스트라 말하길, 신은 죽었대
그럼 어찌 살아야 하는진 누구도 모른대
‘…뭔 소리지?’
듣기 좋은 곡에 감탄하고 있던 준성은 도입부부터 개소리 같은 가사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의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곡은 점점 고조되며 한껏 신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여전히 가사는 개소리, 하지만 흥겨움은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리게 만들었다.
지동화 역시 고조되는 곡의 분위기에 맞춰 서서히 처음의 불안함을 지우고 당당하다는 듯 어깨를 쫙 펼치며 의지가 담긴 눈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노래 또한 고음으로 올라가며 곡의 흥취를 돋운다.
영원회귀 하는 이 세상 속, 단 한 번도 살지 못했던 순간
창조되는 생애의 감각 속, 나 스스로 극복해 발견한 초인의 자세
그때 둔탁한 비트가 그 속도를 더해가며 무언가가 터지기 직전임을 듣는 이에게 전달해 주기 시작하고, 비트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음악이 일순 정지된다.
그때 한 입 베어 문, 비너, 슈니첼
가사가 뚝 떨어지듯 끝나는 순간 퍼지는 튀김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지동화는 그 튀김옷 부서지는 소리에 맞춰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곤 장난스럽게 웃으며 베어 무는 시늉을 한다.
이후 매력적인 색소폰 소리가 터져 나오듯이 등장한다. 짧게 끊어지며 튀어나오는 음표들이 무대 위에서 통통 튀어 다니는 것 같았다.
지동화는 거기에 맞춰 안경을 벗어 던지고 셔츠의 단추를 뜯듯이 풀어 안에 입은 검정 계통의 티셔츠가 드러나게 한다.
그러고 나선 신나는 표정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우아한 춤 선을 한껏 살려 작게 점프하며 손동작을 이어나가는 지동화의 모습은, 마치 며칠을 감금당했다가 해방된 사람이 그 순간을 만끽하는 모습 같았다.
비너, 슈니첼
두 번째로 비너 슈니첼이 울려 퍼지자 색소폰 연주는 더 흥겹게 변주되었고, 지동화는 이전의 활기찬 움직임을 조금 무겁게 바꿔 양손으로 허공을 내리찍으며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부드럽게 웨이브를 타기 시작한다.
준성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사에 대한 의문은 이제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냥 흥겹게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곡이 좋아서 그냥 가사 모르고 듣는 팝송이라고 생각하면 이보다 신나는 곡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비단 곡뿐만이 아니다. 지동화가 답답하게 꽁꽁 싸매고 있던 의상을 풀어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은 저절로 무언가가 해소되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했다.
목소리도 그에 맞춰 시원스레 뻗어나가니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의 모습이 연상됐다.
너도 함께 베어 물, 비너, 슈니첼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동화가 다시 한번 장난스레 마이크를 두 손으로 들어 씹는 시늉을 하며 곡이 끝났다.
심사위원들 대부분이 흥겨움에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아까 무대들과는 비교될 정도로 진심이 담긴 박수 소리였다.
준성은 제일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우선 잘 들었고, 또 잘 봤습니다. 자작곡인 것도 감탄스럽고요. 혹시 편곡은 A&R팀에서 전담했나요?”
곡이 아무리 좋아도 이 곡의 핵심은 색소폰 소리다. 지동화가 멜로디 라인만 작곡했다면 자작곡이라고 하기엔 좀 아쉬움이 있으니, 준성은 우선 그걸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저도 편곡에 참여하였습니다.”
“색소폰은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그때 A&R팀장이 마이크를 들어 지동화 대신 입을 열었다.
“처음 들고 왔을 때 거의 70퍼센트는 완성된 상태였어요.”
A&R팀장이 거짓말할 성격이 아닌 걸 알고 있는 준성은 감탄하며 지동화를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서, 연습생이 이 정도 곡을 뽑아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 못 했습니다. 물론 춤이랑 노래도 실력이 떨어지진 않지만, 동화 씨의 가장 큰 무기가 작곡이라는 걸 확인시켜 준 무대였어요. 정말 잘 봤습니다.”
그러자 지동화는 전혀 예측도 못 했는지 약간 멈칫하고 나선 입술을 꾹 깨물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감동받았나 보군.’
하긴 선배 아이돌이 자신이 쓰고 편곡에도 참여한 곡을 극찬했으니 감동받을 만도 하다, 그렇게 준성은 생각하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후 이어지는 심사위원들의 호평 속에서 지동화는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흐트러짐 없이, 조금은 차가워 보일 정도의 표정으로 심사평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아까의 신나 하던, 그리고 마지막에 애교 섞인 장난까지 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 * *
나는 눈앞에서 이어지는 칭찬 릴레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아무도 가사 지적 안 하냐.’
약간 억울하다. 억울해서 아까 전엔 입술까지 깨물었다. 지적받기 위해 일부러 니체의 사상을 인용해서 더럽게 현학적으로 쓴 가사를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가사를 지적하는 순간 니체에 빙의해서 길고 장황하게 이론을 설명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 시청자에게 나의 본질에 가까운 너드 이미지를 박아 넣어서 ‘여러분들이 좋아해 주신 저는 사실 너드에 불과합니다!’라는 진실을 밝힐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째서 가사에 대해 전혀 묻지 않느냔 말이다.
‘예상 밖의 실패로군.’
그렇게 내 계획이 실패했음을 차차 인정하려는 순간, A&R팀장이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가사 말인데요.”
옳거니. 나는 A&R팀장을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서 대체 무슨 헛소리를 쓴 건지 얘기해 보라고 지적해 주시길!
“니체의 사상을 이용해서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며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 육성으로 얼빠진 소리를 낼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런 거였냐며 감탄사를 뱉기 시작한다.
“<더 넥스트 니체> 무대에 어울리는 가사였어요. 연습생이 자신의 삶을 즐기며 데뷔에 도전한다는 느낌도 한껏 살았고요. 니체 사상을 모르면 아예 이해를 할 수 없게 쓴 건 큰 문제점이긴 합니다만, 그 의도 자체는 이해가 됐습니다. 혹시 평소에도 니체 사상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요?”
“…네.”
“그렇군요. 하여튼 개인적으론 가사 수정을 같이 해서 곡으로 내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곡이었습니다.”
‘와, 제대로 망했군.’
갑자기 내가 니체 사상을 가사에 인용할 정도로 서바이벌에 진심이지만, 아직 경험이 미숙해서 이런 가사를 내놓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작곡 실력 자체는 우수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약간 모자란 곡을 들고 무대를 치른 연습생이라, 내가 아이돌판을 아무리 모른다지만 이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다.
마무리가 된 심사평에 나는 얼떨떨한 심정을 애써 숨기고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는 중에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 나… 첫 번째로 탈락 못 하는 건가?’
* * *
정리해 보자. 나는 대기실에서 앉아 땀을 식히며 어쩌다 이런 상황에 처한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 우선 중요한 것부터.
1. 나는 절대로 아이돌이 될 계획이 아니었다.
2. 하지만 다른 연습생의 기회를 빼앗은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5백만 원이 걸리기도 해서 탈락하기 전까진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3. 내 성격상 당연히 첫 번째로 탈락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다길래 가사를 난해하게 바꾸면서까지 내가 아이돌 팬분들이 좋아할 만한 놈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하필이면 박학다식한 A&R팀장의 심사평으로 하룻밤의 달콤한 망상으로 끝나버렸다, 이거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그때 채하민이 내 어깨를 툭 치는 덕분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동화야, 가사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철학적인 내용이었어?”
“…어.”
“와, 역시 한국대 철학과!”
잠깐, 이 흐름도 심상찮다.
채하민이 눈치 없이 크게 말한 덕분에 광범위한 범위의 사람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기실 장면을 찍고 있던 스태프들까지 이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동화, 한국대생이야?”
류이든도 화들짝 놀라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말하고 있다. 나머지 연습생들도 나랑 친하지 않아서 묻지 않을 뿐 한껏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입학 예정생입니다.”
“와, 진짜 세상이 불공평하긴 한가 봐.”
류이든 씨, 치욕스러우니까 이제 그만.
“이 정도 작곡 실력, 이 정도 얼굴, 이 정도 지능이 한 인간한테 있으면 그건 신의 실수라고 해도 무방한 거 아닐까?”
수치스럽다고.
나를 찬양하는 분위기로 이어지는 대기실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밖으로 나섰다. 나오는 길에 안쪽에서 채하민이 귀 봤냐고 류이든에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서 손을 씻었다.
…잠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내가 전하려고 했던 너드 이미지는 한국대생이라는 것으로도 전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 세간에 알려져 있는 한국대생의 이미지는 논문을 읽다 잠드는 너드 그 자체 아니겠는가.
좋아, 이걸로 아이돌 팬분들이 내 실체를 알아차리고 다른 연습생을… 그래, 기왕이면 채하민을 응원하는 걸로 돌아서 줬으면 좋겠군.
좋다. 나쁘지 않다. 이걸 발판으로 차마 너드의 팬이 될 순 없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미래가 펼쳐지길 나는 진심으로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