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2)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2화(92/343)
92.
“오늘 1위 후보 선정, 우선 축하드려요.”
스태프분께서 조심스레 입을 연다. 지난주는 갓 컴백한 상태였어서 성적 집계가 되지 않아 순위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번 주는 달랐다.
장해진에 따르면 남자 아이돌 음원치고는 상당히 선방하며 30위대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1위 후보 정도는 가벼울 거라고 했다.
류이든에 따르면 이번에 기묘하게도 ‘빈집’인 상태라 털어먹기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이게, 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때문에, 많은 가수들이 컴백이 연기되거나 망하는 덕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상한 감각이 든다.
기지생은 이것조차 예상한 걸까.
[별 걱정이 많습니다. 이렇게 해결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그러고 보면 모든 가능성을 예측하는 놈이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치 못 한다는 게 말이나 될까.
[사소한 걱정입니다.]……그렇습니까.
어쨌든 나는 다시 스태프분의 말에 집중한다.
“그건 그렇고, 엔딩 요정분, 사전 녹화 리허설 전에 정하려고 하는데요.”
음악방송에는 ‘엔딩 요정’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규정된 문화가 존재한다. 이 문화는 굉장히 독특한데, 무대가 끝나고 한 멤버의 얼굴을 대략 7초에서 10초 정도 보여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몹시, 싫어한다.
“오늘의 엔딩 요정은… 동화 씨가 하는 걸로 할까요?”
그래서 리허설이 끝나고 들은 소리에, 표정을 찌푸릴 뻔했다. 한 화면 속 덩그러니 올곧이 나 홀로 10초 동안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실존적 위기를 경험하는 기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까지 해서 사는 게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된다.
“아, 지난번에 동화가 카메라 안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거 기억난다.”
“형, 나도 아직 그거 핸드폰에 저장해 놨어.”
“저두요. 루미너스분들도 당황하는 동화 형 하나씩은 품구 사실걸요?”
“저돕—니다—”
하여튼 하나 같이 망할 놈들투성이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놈들. 남의 수치스러운 과거사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지나친 비윤리다.
“다들, 지우십시오.”
“오랜만에 존댓말 지동화 나오나요? 정~말 무섭다.”
뭐가 됐든 일단 류이든은 죽이는 것이 확정이다. 공리주의적으로 옳은 일임이 틀림없다.
“이번에는 어쩔 거야, 동화야? 나랑 같이 엔딩 포즈 구성할까?”
채하민의 권유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군. 애초에 무대 위 제스처 하나하나 미리 생각해서 올라가는 내가, 애드립으로 갑자기 포즈를 취할 수는 없으니.
나는 독약을 삼키는 몰락 귀족의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오! 좋아. 그럼 뭐부터 하지? 애교가 기본인데!”
닥쳐. 그리고 그만둬, 애교 같은 소리. 아이돌로서의 페르소나가 완전히 구축되지 않은 현재의 나에게는 사형 선고와 다를 바가 없다.
내 어두운 심리가 무표정에서도 드러났는지 채하민이 내 표정을 천천히 살피다가 웃는다.
“역시, 곡 컨셉이 컨셉이니까, 조금 멋진 걸로 할까?”
…왜일까. 다 같이 화면에 잡히는 건 상관이 없는데, 홀로 잡히는 건 이다지도 수치스러울까.
* * *
# HBS 뮤직 인 유어 에이리어 방송분
라이징 스타 제인이 ‘구역장(MC)’으로 있는 ‘뮤인에’. 그녀는 대본을 보며 약간 미소 짓더니 말한다.
“올 신인 중 가장 뜨거운분들이 저희 구역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온 세상을 꽃으로 물들여 주실 그분들!”
그 말을 이어받은 남자 구역장, 에이든.
“마지막인지 시작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주는 그분들!”
그리고 다 함께 소리친다.
“블로센스의 ‘마지막 시작 : the First Last’입니다.”
참고로, 에이든의 경우 제목을 얘기하다가 뒤의 영어 부분을 옹알이로 말해 버리는 참사를 일으키고 만다.
뮤직 인 유어 에이리어 실시간 불판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제목이 조금 괴상했으니까.
시작되는 무대, 지동화가 중앙에 홀로 서 있다가 다른 멤버들이 걸어오며 지동화의 목을 조일 듯 잡았다가 놓는다.
I was on Fire, 어쩌면 넌 Trauma,
너무나 완벽한 몰락
그 끝에는 항상 너, 늘 전하고픈 단어,
Nothing But You
지동화의 눈빛이 집착으로 반짝인다. 모든 가사를 뱉어내고 은근하게 미소지어 주는 모습이 먹잇감을 옭아맨 뱀 같은 시선이었다.
단 한 번도 염색해 본 적 없는 검은 머리가, 빛을 받아 순간 푸르게 빛난다. 검정 가죽 재킷과 함께 새하얀 피부, 그리고 검은 머리칼이 어우러지자, 기묘한 인상을 자아낸다.
그 초반부의 날카로운 인상에, 뮤직 인 유어 에이리어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조금은 압도되며 시청하게 된다. 실시간 불판에는 ‘방금 까만 머리 ㄴㄱ?’라는 짧은 문장이 빠르게 달렸다.
후렴구.
이현재와 석준이 주고받으며, 스태프을 밟다가 손목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리는 안무가 펼쳐진다.
Rewind— 너와 내 끝이 시작이 돼,
내 시간 위— 모든 것이 되살아나
(I Trade My All, Just for the Last)
Rewind— 해와 달이 뒤바뀌네,
내 시선 끝— 모든 것이 되돌아가
(I Desert My All, Cause It’s the Last)
그렇게 지동화의 강렬한 시작과, 후렴구의 깔끔한 안무로 끌어모은 시선과 관심은 이후 이어지는 채하민의 독무에서 폭발한다.
결국 이 곡은, 지동화가 처음 작곡했던 그 순간부터, 채하민의 독무로 달려 나가는 과정과도 같았으니까.
모든 것을 불태우고 곡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나서, 채하민과 류이든이 등을 맞댄 채 각각 하늘을 바라보며 화음을 맞춘다.
뒤집히는 모래시계, 영원을 속삭일게
모든 끝, 이번엔 마지막 시작이길
그리고 둘이 털썩 앉은 순간, 등장하는 지동화. 엔딩요정이 되기 위한 준비다.
정면을 바라보던 지동화는 무표정하게 안경을 끼고 주머니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내더니 무언가를 고심한 뒤 끄적인다.
그리고 마침내 다 쓰고 따스하게 미소를 지은 뒤 들어올려 보여준다.
‘좋아합니다.‘
정갈하게 적힌 글자가 차가워 보였던 인상의 남자가, 갑자기 너드미를 뽐내는 인간으로 변하더니 따스한 미소와 함께 냅다 고백하다니.
시청자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밌어서, 유심히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발견해 버린다. 여유로운 표정과 달리 한껏 붉어진 귀를.
그 결과 불판에는,
— 하 쟤가 먼저 유혹한 거 말리지 마.
— 하 결혼갈겨
— 하 미쳤나 진짜
무수한 한숨 세례가 흘러나왔다.
* * *
HBS 음방을 마치고, 우리는 1위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 녹화를 하고 시간이 애매해 지금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더니 진이 다 빠졌다.
1위 후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이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놈들은 한가롭게 내 옆에 몰려와서는,
“좋아합니다!”
“좋아합니다!”
“좋—아합—니다!”
라고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꺼지십시오.”
이현재만 어른스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이것들 쫓아내는 것 좀 도와주지 않겠니.
지난번 채하민이 팬분들에게 SNS를 통해 공약을 물었던 날, 우리는 공약을 확정해 선포했다.
“…만약에 1위 하면 어떡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1위를 하게 된다면 꼼짝없이,
“위즈니 의상 입고 춤춰야지!”
해괴한 짓거리를 해야만 한다.
나를 놀리는 데 여념이 없던 멤버들이 내가 새로 제시한 화제가 마음에 들었는지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마침 우리 활동 기간이랑 할로윈이랑 겹치니까, 음방에서 해도 괜찮지 않을까?”
…음, 오래전부터 너희들이 수치심과 연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와, 그것도 재밌긴 하겠다, 형.”
류이든은 웃다가 문득 표정을 찌푸리더니 또 부정적인 관측을 입에 올린다.
“근데, 1위 할 수나 있을까? 완전 빈집이라서 컴백하자마자 얼추 뚫고 들어온 거긴 한데.”
지난번 1위 후보가 된 것도, 우리가 의도찮은 화제에 오른 것에 더해서 마지막 주쯤에 ‘빈집‘이 된 덕분이었으니까.
“음, 이번에 1위 후보에 같이 오르신 어느 날의 소녀 선배님들이 활동 막주 차라, 이번 주는 무리여도 다음 주에는 아마도 가능성 좀 있지 않을까요? 다다음주까지 가면 새로 컴백하신분들이 조금 계시긴 한데, 한 주 정도는 저희가 1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현재가 태블릿을 들여다보다가 상황을 정리하더니 결론을 내놓았다. 이현재가 데이터를 분석해서 내놓은 결론은 맞는 경우가 많으니, 아마 이번에도 그렇겠지.
……망할.
그럼 결국에는 그 위즈니 분장을 해야한다는 건가.
“동화 형님! 제가 미리 어떤 분장해야 하는지 정해드리겠습니다!”
요즘따라 위즈니와 연이 과하게 자주 이어지는 것, 이게 다… 저 석준 놈 때문이겠지.
나는 석준을 한 번 흘겨보다가 그저 환멸이 나서 책을 꺼내 읽었다.
‘문화의 위치‘.
사르트르가 주장했던 것처럼 책은 모든 외부적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도피처다.
* * *
책을 읽고 있는 중, 스탠바이 소식이 떨어졌다.
이현재가 이런 쪽으로는 나보다 분석력이 좋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가도 괜찮지 싶다.
올라가 MC분 기준 왼쪽에 서서 스탠바이를 대기하고 있자니 윤성호가 두 손으로 작게 화이팅, 이라는 손짓을 한다.
그리고 곧 방송 큐. 생방송이므로 표정을 최대한 관리한다. 높은 확률로 상대방분들이 1위를 하실 테니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여야 인터넷에 상주하는 망할 것들의 먹잇감이 되는 걸 피할 수 있다.
“네, 뮤직 인 유어 에이리어, 2주 차 1위 발표만을 남겨 두고 있는데요!”
“제인 구역장님, 누가 1위가 될지 너무 궁금해요!”
에이든이라는 분이 해괴한 애교를 선보인다. 되도록이면 저런 자리에 앉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럼 에이든 구역장님! 바로 알아보도록 할까요?”
그리고 곧이어 무대 쪽에 설치된 스크린에 점수창이 올라온다.
‘…표정 관리. 너무 무표정이면 도리어 분탕 날 테니, 미소를 약간 지으며, 박수와 함께 오른쪽을 바라보는 걸로.’
그리고 모든 점수가 공개되고, 축포가 터진다. 나는 자연스레 계획했던 대로 몸을 움직인다.
미소, 박수, 인자함. 모든 것이 완벽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이현재가 틀렸다는 점이겠지.
“블로센스, 축하드립니다!”
멤버들은 모두 당황해 있는 상황에서 나 홀로 옆 사람들을 보고 박수를 치고 있는 상황. 나는 그 상태로 정지한다.
……이건, 기만질 말고 해석할 수는 있는 경로가 있을까.
나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고 무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약간 숙인다. 논란이 되어 멤버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
뒤에서 윤성호가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망할. 이현재에 대한 믿음이 비수가 될 줄은.
우리와 구면인 제인이 활짝 웃으며 트로피를 건네 준다.
“와! 블로센스 여러분! 첫 1위 소감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소감을 말해야 할 류이든이 눈물을 뚝뚝 쏟아낸다. 다른 멤버들도 똑같았다. 유일하게 맨정신인 내가 우선 마이크를 받고 말았다.
이현재가 틀렸다는 사실, 그로 인해 실수해 버린 것, 그리고 윤성호의 일과 컴백 준비, 스케쥴 등으로 알게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예정된 듯 하나의 경로로 나아가고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제길, 망할 놈의 리더 놈, 이럴 땐 도움이 되지 않는군.
나는 우선 입을 열었다.
“……좋아합니다.”
그 이후 고요한 침묵.
정신없는 상황 속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시간에 세뇌되듯 들었던 말을 뱉고 말았다.
풉.
류이든 쪽에서 울음기가 섞인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미 이렇게 된 것 끝까지 밀고 나갈 수밖에. 실수가 실수가 아니게 만드는 것은 미칠 듯한 철면피밖에 없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루미너스 님들, 늘 응원해 주셔서 고맙고 좋아합니다. 우리 목화, 형이 많이 좋아합니다. 회사 여러분, 제가 좋아합니다. 모두들, 좋아합니다.”
……뱉고 나서 후회한들 소용없겠지, 망할.
그리고 그 와중에도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채하민과 이현재, 석준을 보며,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어째서 가장 영광스러운 날이 이렇게 된 건지, 한탄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