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3)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3화(93/343)
93.
첫 1위 트로피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이현재의 태블릿을 빌려 SNS 등지를 탐방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오늘 실수를 한 게 있으니, 부정적인 여론이 어느 정도일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오늘 꽃돌이들 앵콜 무대 영상 cut)
일단 지동화 당황하는 희귀한 모습 + 수습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오는 ‘좋아합니다’ 러쉬 + 류이든 그제야 웃으면서 정신 차리고 소감 밝히기 + 이후 앵콜에서 이현재 삑사리 + 그 와중에 채하민 석준 끌어안고 오열
ㅅㅂ 진짜.. 블로센스는 전설이다…. 역시 내 인생 마지막 돌덕질이 될 아이돌이다…
나는 앵콜 무대 영상을 재생해 본다. 다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와중에 나 홀로 수치를 느끼며 ‘좋아합니다‘를 중얼거리고 있다. 바로 껐다. 망할 디지털 시대.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순간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저주가 아닐까. 어쩌면 카메라의 발명은 순간을 만끽하는 태도를 저해하는 것일지도 모른,
“동화야!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토끼 놈은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을 검열하는 재능을 깨우친 듯싶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다른 글을 확인해 본다.
— (지동화 박수 치다가 블로센스 부르는 거 듣고 정색하는 움짤)
ㅈㄴ 웃겼음 ㅅㅂㅋㅌㅌㅌㅋㅋㅌㅊㅋㅋ 동화가 당황하는 거 진짜 세상 웃겼어 ㅅㅂㅋㅋㅌㅋㅋㅋㅋㅋ
— 존나 상상도 못 했던 걸까… 아니면 기만질…?
— 당신이 보는 세상이 저와 얼마나 다른지 알 것 같아요…
누가 봐도 흠집 잡으려는 의도로 말을 하는 것 같다만, 팬분의 글에 멘션으로 저런 글을 달아두면 여론 선동이 될 성싶나. 지나치게 일차원적인 접근법이다.
이후로 확인해 보니, 별달리 특별한 논란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인이니, 1위가 될 것을 예상치 못한 가수의 실수 정도로 받아들여진 듯싶다. 하긴, 그걸 보고 기만이라 생각한 건, 나처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들 정도겠지.
“현재, 여기.”
이현재는 태블릿을 돌려받으며 웃음 짓는다. 태블릿을 빌릴 때 안에 책 들어 있다고 난리를 치더니, 돌려받아서 기분이 좋나 본다. 나와는 달리 e북 중심으로 책을 읽는 버릇이 잡혀가나 보다.
“다 봤구요? 제가 말했잖아요, 별말 없다니까요.”
“응, 너 음이탈 얘기밖에 없더라.”
“…형?”
뭐, 망할 여우 놈아.
“근데, 늦은 질문이긴 하지만 형, 핸드폰은 어쩌고 제 걸로 봤어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볼 수 없는 상태거든.”
현재, 별로 아는 이도 없는데, 내 번호를 아는 인간들이 모두 동일한 문자를 도배하고 있으니까. 축하 문자면 상관이 없을 텐데, 모두 ‘좋아합니다‘라는 식으로 문자를 보내는 중이다.
지금은 잠잠해진 것 같으니, 나는 모든 메시지들을 무시하고 목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데뷔조 막바지 준비한다고 고생이 많던데.
통화음, 우리 곡이 컬러링으로 흘러나온다. 그리고, 곧 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 형, 저도 많이 좋아합니다!
망할 동생 아니랄까 봐, 아주 난리군.
“…볼 시간에 연습해, 동생.”
— 에이, 어떻게 그래. 우리 형이 당황하는 것도 난 난생 처음 봤는데! 그런 걸 놓칠 수는 없잖아.
정말… 기쁜 날이지만 왜 뒷맛이 이리 씁쓸할까.
“잠시, 통화 괜찮아, 목화?”
— 응, 쉬는 시간.
“데뷔 준비는 잘 돼 가?”
— 응, 이번에 컨셉 같은 거 확정하고 한다더라. 내년 2월쯤에 데뷔할 것 같아. 우리 그룹에서 내가 막내가 아닌 게 제일 신기해! 현진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막내였거든. 내가 현진이한테 형같은 형이 돼 주려고.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도망치게?”
— 형, 이제 그걸로 농담도 할 수 있고! 많이 컸네?
“그래, 덕분에.”
— 어쨌든, 형, 오늘 1위 진짜 축하해. 오늘 모모지도 첫방한다고 했지?
“응, 시즌 개편 첫날.”
— 오늘 저녁에 연습이라 바로 보진 못하지만 결제해서라도 꼭 볼게.
“…그래, 용돈 부쳤으니까 확인해 둬.”
— ……어?
“저작권료가 나왔거든.”
그러자 잠시 전화기 너머가 고요해진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목화는,
— ……역시 작곡이 돈벌이가.
라고 중얼거리며, 자본주의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타락하진 않았었는데, 어쩌다.
* * *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자리에 앉아 TV를 틀었다. 장해진 팀장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스케쥴이 바빠서 오늘처럼 모니터링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 잘해 두라고 얘기했다.
“형님, 치킨— 어떻—습니까.”
석준이 류이든에게 승부를 건다. 건강중독자에게서 치킨 먹기를 따낸다는 건, 얼마나 험난한 여정일까.
나는 흥미로워서 읽던 책을 덮어둔다. 옆에서 이현재도 태블릿을 끄는 것을 보니, 같은 마음인 듯싶다.
“그러자. 하민아, 내 폰 좀 주라!”
……음?
나는 자연스레 이현재를 바라본다. 이현재의 고개도 나와 같이 돌아가 서로 눈이 마주친다. 이현재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귀를 한 번 파보고,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뒤 경악했다.
하긴, 만약에 소설이었으면 설정 붕괴라고 욕먹었을 지점이긴 하다. 류이든이…… 치킨을……?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말이 많은데, 반례가 생길 예정이겠죠?”
어느새 이렇게까지 논리적 말하기 능력을 키운 건지, 장하기 그지없다.
“……귀납적 사례가 추가되는 거면 큰일이긴 하지.”
그러면 아이돌짓이고 뭐고, 꽤나 괴로울 것 같으니까.
우리 얘기를 듣고 채하민도 당황한 건지, 자기 옆에 있던 핸드폰을 건네주며 두렵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얘들이 누구 죽은 사람 만들려고. 오늘 말고 이렇게 느긋이 TV 볼 일도 없을 텐데, 뭔들 못하겠어.”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책을 펼쳐 들었다. 다행히 죽을병에 걸리진 않은 것 같으니 괜찮겠지.
* * *
치킨을 테이블에 올리고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TV를 틀었다. 모모지는 1시간 20분 방영, 그 중에서 40분이 우리 편 시간으로 채택되어 있다. 앞부분은, 기존 교양 프로그램처럼 연예인들을 모아두고 한 명의 전문가가 지식을 얘기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의 주제는 세계사 관련이다.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나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걸 보던 채하민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 동화야, 그래서 저게 무슨 소리야?”
누가 봐도 맥락상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거였지 않을까. 스스로 한 번 성찰해 보지 않겠니.
나는 듣고 이해한 대로 채하민에게 설명을 해 준다.
채하민은 내 말을 들으며 천천히 치킨을 씹어 오물댄다.
“아! 그래서 프랑스 혁명이라는 게 지금 자유라는 걸 보편화? 하는 데 기여했다는 거야?”
“……응.”
사실 알아도 사는 데 별로 실생활에 유용하지 않은 지식이긴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게 원래 실생활보다는 깊이 있는 성찰을 위한 거니까.
마치, 지금 시작하는 우리의 작은 드라마처럼.
주하나라는 인간의 비극을 그린 드라마지만, 사실 주하나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주 하나님‘을 패러디한 것이다. 근대 철학 초기와 중기, 종교와 신이라는 구심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철학자들과, 안티크리스트적인 사상가였던 니체의 이야기. 철학 사상의 전환점 중 나름 드라마틱한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즉, 사상사의 흐름을 드라마로 풀어낸 이야기.
‘솔직히… 미친 짓이지.‘
드라마로 즐기면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그냥 흔한 이야기 구조라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니까. 대체 PD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기획한 건지, 좁은 식견으로는 그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이번 회차에서는 도입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산장에 고립되고 의문의 존재에게 명령을 듣는 데까지 진행되었다.
“와… 이렇게 보니까 엄청 부끄럽네요. 제 대사 다 찢어버리구 싶어요.”
“말, 예쁘게.”
이현재의 중얼거림에 류이든이 웃으면서 타박한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되며, 우리가 나와 인사를 한다.
— 안녕하십니까. To be blooming, 블로센스입니다!
매 회차 뒷부분에 이번 회차에 나온 철학적인 내용을 소개해 주는 파트. 이번에는 각자 맡은 캐릭터의 생애와 사상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시간이다.
“저거 찍을 때, 대사 외우기 엄청 힘들었지?”
“맞—습니다. 관심도— 없는 걸 외—우려니 죽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그런 것 치고는 웬만한 교수보다도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하고 있으니까. 나는 천천히 우리가 찍은 영상을 감상한다. 개인적으로는 참 재밌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 촬영이다. 이게 얼마나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화면 속에서 나는 니체에 관해 설명하며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못생겼군.
“철학 설명할 때만 표정 밝은 거 약간 변태 같다, 그지?”
풀떼기를 먹으며 조용히 TV를 보고 있던 류이든이 중얼거린다.
“…여태껏 샐러드만 먹고 있던 게 더 변태 같아, 망할 강아지.”
“와, 나는 왜 너한테 욕먹으면 기분이 좋은지 모르곘네? 니 평정심을 내 손으로 깨뜨렸다는 증거라 그런가?”
……미친 인간.
* * *
디텍션에서 블로센스와 함께 촬영했던 제인, 그녀는 라이징스타로 이곳저곳에서 활약하는 중이었다. 사실 모든 연예인이 ‘라이징‘이라는 호칭이 붙을 때가 가장 바쁜 법이라, 제인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새로 출연할 드라마의 감독님과 기타 스태프진, 그리고 주요 출연진과 함께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지독한 두통을 맛보고 있었다.
“제인 씨, 요즘 음악 프로 MC부터 시작해서 하는 게 많던데, 일찍 들어가도 괜찮아요!”
감독은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인지라 그런 제인을 배려했지만, 제인은 그저 웃으며 넘길 뿐이었다.
그런데 회식 장소에 설치된 TV에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어?‘
디텍션은 현재 시즌 2가 마무리되었지만,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목소리.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악한 목소리.
TV에서 지동화가 ‘니체‘를 연기 중이었다. 채하민과 다른 멤버들의 연기도 펼쳐진다.
‘꽤… 잘하네?‘
아이돌치고는 잘하는 수준이지만, 가수가 저 정도로 연기를 하려면 얼마나 연습을 열심히 했을지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동화 씨는 뭐, 자기 성격이랑 비슷해서 편해 보이네.‘
무례한 것만 빼면 약간 꼬인 성격까지 어쩜 저리 닮았을까, 캐릭터 배정을 누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실력자일 것 같다.
“어? 저 친구들 연기 괜찮네요? 아이돌 같은데.”
감독이 제인의 시선을 따라 TV를 잠시 보다 중얼거린다.
“어? 감독님 모르세요? 저분들 신인 중에선 그나마 제일 잘나가는 친구들인데.”
카메라 감독은 블로센스를 알아보는지 대강의 정보를 소개해준다.
“오… 그래서 저 친구가 작곡을 그렇게 잘해요?”
“그렇게 잘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곡이 좋아서 요즘 저도 자주 들어요. 데뷔곡이 편히 듣기는 조금 더 나았고.”
“OST나… 한 번? 아직 신인이라니까, 조금 값싸게?”
감독이 음악 감독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그는 씩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접촉 리스트에 넣어 둘게요.”
제인은 그 대화를 들으며 웃었다. 그 또라이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까 재밌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