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4)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4화(94/343)
94.
모모지 반응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약간 어이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는 식의 평가였지만 욕이 아닌 것이 어디인가, 싶다.
“이거 클립이 은근히 인기가 많아요, 형.”
모모지는 시즌을 개편한 이후 지식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동영상 사이트에 공식 계정을 만들었다. 당연히 구독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놀랍게도 거기에 올라온 우리의 클립이 나름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약간… 웃긴가 봐요. 엄청 진지하게 드라마 나오다가 동일한 인물이 갑자기 철학 설명을 해주니까.”
“근데 그건 나도 좀 웃기긴 하더라. 누구 죽은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짜잔! 사실은 철학 얘기였답니다!‘ 하니까, 조금…….”
류이든이 말하며 조금 실실 쪼갠다.
“나는 그것도 꽤 재밌기는 했는데… 특히 동화가 설명해 줄 때 귀에 잘 들어와서 니체 얘기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채하민은 니체의 난해함을 아직 제대로 맛보지 않은 상태라 저리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모지는 원초의 목적을 잘 충족하면서도, 그런대로 웃긴 영상이 될 수 있을 성싶다.
“아, 누가 이 영상 보고 우리 멤버들 중 아무나한테 연기 자리 꽂아 주면 좋겠다.”
류이든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인기 있는 아이돌이 연기를 하는 건 어느 정도 정해진 수순으로 전해 들었으니,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동화, 너 연기할 생각 있어?”
“…미안한데, 나는 그런 데 전혀 재능이 없어서. 하민이가 그래도 가능성 있지 않을까.”
내 말을 들은 채하민이 당황하더니 먹고 있던 버섯무침—대체 저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는 내가 죽기 전까지 풀리지 않을 의문일 예정이다.—을 먹다가 당황하더니 나를 바라본다.
“나?”
“너, 연기 엄청 잘하던데.”
“……와, 동화야, 나 지금 감동받으면 되는 거지?”
나는 어이없는 소리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작곡 여행, 본격적인 작곡 여정을 촬영하기 위한 첫 번째 날, 우리는 팀명을 정하기 위한 회의를 하는 중이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의 집합적 단체, 어때요.”
네스퀵의 의견은, 그녀가 제시한 팀명과 지나치게 맞아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으므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런…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요? X나 무서워, 동화 씨.”
……언어생활이, 정말, 카메라가 있는 게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누님.”
“어우, 사극 찍어요? 나 방금 진심으로 토할 뻔했어.”
저런, 했으면 시청률이 높아졌을 텐데.
“알겠습니다, 네스퀵 씨.”
“에이, 정 없지.”
뭘 어쩌라는 걸까. 나는 약간 짜증이 나려 했지만 스스로도 놀라운 자제력으로 억눌렀다.
“뭐라 불리길 원하십니까?”
“음, 누나?”
“싫습니다.”
그런 낯간지러운 호칭은 딱 질색이다. 팬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부를 일이 없을 예정이다.
“어우, 칼 같네요. 베일 뻔~ 거의 장미칼급인 줄 알았지 뭐야!”
능청스럽게 놀려대는 모습이 류이든과 겹치는 순간, 짜증이 났다. 카메라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서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지만.
네스퀵의 얄미운 얼굴을 보며 나는 드디어 인내심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이전 가능성을 살 때 초등학생 과외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와 유사한 감각이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의 집합적 단체……로 합시다.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주 우아한 방식으로, 그리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당신, 미쳤냐’라고 물어봤다. 물론,
“봐! 괜찮지!”
그것도 알아들어 줄 상대방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을 뿐. 네스퀵은 도리어 기분이 좋아져서는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면, 줄—이는 게 어—떻습니까—?”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석준이 제안한다.
“정—문사집단— 어—떻습니까?”
……뭔가, 사이비 종교 이름 같구나, 준아.
“와 씨, 역시 준이, 나랑 취향이 딱딱 맞아떨어지네.”
그렇게, 정문사집단의 첫 작곡여행이 시작됐다.
* * *
작곡여행은 주로 인디 뮤지션을 대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겸 음악 프로그램이다. 작곡과 일상생활을 촬영하고, 그걸 토대로 다큐멘터리 부분을 완성해, 이후 이어질 무대로 마무리하는 형식.
말만 들으면, 요즘 유행한다는 힐링 계통의 예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예상을 벗어나는 가능성으로 가득한 곳.
인디 뮤지션들 중, 나사가 반쯤, 혹은 하나쯤 풀려 있는 사람들이 등장해서,
뮤지션마다 이상한 컨셉의 편집이 가미되고,
그 결과, 작곡 여행은 약간 정신 나간 것 같은 프로그램 형식이 되었다.
웃긴 예능은 아닌데 웃기고, 슬픈 감동 코드나 공감 형식의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보다가 눈물을 흘리고,
작곡여행은 그렇게, 뮤지션이 바뀔 때마다 컨셉이 묘하게 변했으며 그래서 특수한 팬층이 아니라면 꾸준히 보지는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말이 복잡할 뿐, 정리하자면, 정신 나간 출연진에 정신 나간 제작진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영상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블로센스, 작곡여행 출연 확정, ‘K-POP 이단아’ 타이틀 획득하나?](블로센스 인사하는 사진)
최근 컴백한 블로센스가 작곡여행 출연을 확정지었다.
2집 미니 앨범 ‘Snake in Me’로 컴백한 블로센스는 …(중략)… 아이돌의 출연이 거의 없었던 작곡여행에 출연하게 되었다. 모모지에 출연하며 ‘철학돌’이라고 불리고 있는 현재, 다른 아이돌 그룹이 보여주지 않은 독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방송 관계자는 그룹 멤버 지동화의 작곡 실력이 PD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라며…(중략)… 작곡여행은 ‘이단아가 정상인인 척하는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만큼, 아이돌인 블로센스의 ‘K-POP 이단아’로서,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된다.
댓글
— 뭔 이단아야 워딩이 좀 ㅋㅋㅋㅌㅋㅋ
— 응 주작~
— 응 나가 죽자~
— 아 모모지에 나오던 ㅋㅋㅋㅌㅋㅋㅋ 로크 설명하는 분 귀여웠어요
이런 식의 기사가 나는 것도 어쩌면 예견된 일일 지도 모른다. 모모지 출연으로 ‘문과의 희망’ 또는 ‘문과의 취업 성공 신화’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블로센스가, 이번에는 또 작곡여행에 출연한 것이니까.
니체 엔터의 장해진 팀장은 기사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일단 신인 기간은 끝인 건가?”
신인으로서의 1년, 나쁘지 않은 성과다. 아마도 아주 높은 확률로 신인상을 수상할 테니까.
“정경우, 그 개X끼는, 그냥 죽여버릴까?”
더넥니에서 마지막에 편집을 조지며 지동화를 묻을 뻔했던 정경우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다가, 장해진은 일정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아, 연말 무대 준비가 빡세겠는데.’
작곡여행 촬영이 끝나자마자 연말 무대 준비로 들어갈 차례. A&R팀과 함께 어떻게 준비할지 가열차게 회의를 하는 중이긴 하지만, 11월이 돼야 2집 공식활동이 끝나니까.
‘……게다가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개같은 운동회는 또 왜 벌써 촬영한다고 지랄이야.’
TOT가 방송국 눈밖에 안 나려고 신인 때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은 기억이 있는 장해진으로서는, ‘설 특집’이라는 명목으로 미리 촬영한다는 이 프로그램이 더럽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든이나 하민이 말고 다른 애들은 운동할 줄 아는 게 있기는 한가….”
신인이니 이렇게 일이 들어올 때 여러 곳에 얼굴 비춰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멤버들 건강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장해진은 강승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원 씨, 애들 보양식 좀 챙기는 거 어떨까요?”
— 음, 저희 쪽에서도 건강 관리 차원에서라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 오가긴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작곡여행 무대 촬영이니까, 특히 동화랑 준이 몸보신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작곡하는 애들은 더 힘들 테니까.”
매니지팀에서 어련히 잘 하겠지만, TOT가 건강 때문에 힘들어한 경험이 있는 장해진은 노파심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 * *
공식 음방활동 3주 차에 들어선 첫날.
나는 아침 5시에 일어나 떠오르는 해를 보며 토할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음, 물리적으로 죽겠군.”
정신은 또렷한데, 육체적으로 피로하다. 몸이 약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분.
“안 돼!”
침대에서 자고 있던 채하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놀란 채로 나를 바라본다.
‘……미친 건가, 드디어.’
지나치게 착하게 살 때 알아봤다. 채하민은 몽롱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짐짓 무서운 체하며 씹어뱉는다.
“죽지 마, 동화야.”
그러고는 다시 누워서 잠에 빠져드는 꼴.
정말 시답잖다.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나는 밖으로 나간다. 류이든이 널찍한 거실에 설치한 운동기구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다.
“……세상에.”
웬… 미친놈이… 운동을.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다시 봐도, 류이든은 여전히 운동 중이다.
나와 같은 스케쥴을 보낸 게 분명한데, 어떻게 이리 차이가 나는지.
그렇게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도한 나는 그 꼴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느꼈는지, 류이든은 봉에 매달린 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어, 동화, 깼네?”
그러곤 대화할 때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예의라는 걸 아는지, 몸을 돌려서 다시 매달린다.
대화할 때 운동하는 건 무례라는 건 또 모르나 보다.
“…매번 이 시간에 일어나거나, 그 전날에 잠들지 않았지.”
“그건 그래.”
다시 몸을 움직이던 류이든은 뭔가 생각났는지 웃었다.
“그나저나, 그거 들었어? 우리 팬분들도 이제 우리 K-POP 이단아라고 불러.”
정말 이름 짓는 실력은 나쁘지 않은분들밖에 없나 보다. 덕분에 데뷔 초 오픈했던 블로센스 작명소는 폐업했다.
“나도 활동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하나씩 따져 보니까, 이단아라고 불려도 할 말 없겠더라고.”
그렇게 별것 아닌 대화를 하며, 나는 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마신다. 몸에 잠들었던 신경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형, 지금도 작곡여행 관찰 카메라 돌아가는 중이지.”
“응? 그렇지.”
아쉽군. 그게 다 나를 제외한 멤버들이 비정상이라 그렇다고 답해 주고 싶었는데.
“어젯밤에도 작업실에서 돌아왔던데, 작업은 잘 됐어? 도와줄 건 없고?”
공동작업이긴 하지만, 서로 원하는 분위기가 약간씩 달라서 기본적인 비트만 공유한 채 각자 분업해서 작업하기로 했다. 따로 놀지 않도록 꾸준히 작업물을 공유하며 작곡을 하는 과정은 혼자 작업할 때보다 배로 번거로웠다.
“…한번 들어볼래?”
류이든이 끄덕거리는 걸 보고, 나는 노트북을 가져와 이어폰 한쪽을 건넨다.
재생.
지난밤 석준과 함께 밤새듯 작업하며, ‘사랑과 우정’이 녹아든 작업물은 듣기 나쁘지 않았다.
반면에, 내가 작곡하는 파트는, 배신. 앞 파트에서 펼쳐졌던 사랑과 우정이 섞인 여행기를 혼란과 분노의 장으로 몰아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단순한 배신은 천박하다. 내가 원하는 배신은 차라리 우아하고, 느긋하며, 자신을 믿었던 이들에게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미소 지어주는 종류의 것이다.
그렇기에, 느긋하면서도 한 서린 분노가 격정적으로 뒤섞인다.
“…동화, 이거 우리 팬송에 있던 코드들이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팬 쇼케이스를 위해 만들었던, 팬송 주제에 스릴러가 주제였던 곡. 그 곡에서 샘플링을 가져와 느와르적인 분위기를 섞었다.
이단아들의 팬송은 뭔가 다르긴 하므로, ‘정문사집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곡을 지으려면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다.
‘……잠깐,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별로 정상은 아니었군.’
그 곡을 썼던 게 바로 나였으니까.
물론, 멤버들에 비하면 정상임은 분명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