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5)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5화(95/343)
95.
네스퀵과 우리 멤버들이 모두 모인 내 작업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은 처음이라 약간 당혹스럽다.
대략 일주일 정도 골머리를 썩히며 작곡한 곡을 모두 들은 뒤, 의례적인 박수를 친다.
“준이가 작곡한 곡 출시되겠네!”
채하민이 소리치며 석준을 축복하자, 석준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옆에 있는 프루츠 월드 캐릭터 인형을 꼬옥 끌어안았다.
나는 대강의 분위기를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리더는 류이든일지라도, 곡 작업에 한해서는 내가 우리쪽 의견을 대표하게 된다.
“오늘은 다 같이 가사를 작성하는 날입니다.”
내 말에 네스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는다.
“곡 작업은 얼추 끝낸 정도지만, 동화 씨가 써 놓은 기본 비트가 X나 죽여줘서 가사 쓰고 가사 맞춰서 편곡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이 초콜렛 분말 님은 우리가 편해지셨는지, 이제는 비속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여튼 지금까지 작곡여행을 촬영하며 무수히 많은, 이상한 대화를 촬영해 놨지만, 작곡여행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작곡.
특히 우리 쪽에서는 나와 석준이 주를 이뤄 작곡을 했으니 다른 멤버들도 이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사해. 현재, 이든, 하민.”
“동화, 가끔 내가 형인 걸 까먹는 건 아니지?”
아쉽게도 인간은 까먹는 것보다 기억하는 게 더 쉬운 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무대 동선까지 구성하면 끝. 조금 급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인디 팀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아이돌이니까, 무대 위에서의 안무를 구성해야 한다. 이러다 정말로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되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다.
“그럼 무대 컨셉은, 지난번에 얘기했던 그거 그대로 가는 거지?”
“응.”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뮤지컬.”
* * *
# 작곡여행 다큐멘터리 편집본
우울한 BGM이 흘러나오는 흑백 화면. 그 위로 흰 색 글씨가 하나 떠오른다.
[작곡여행 : 개같은 인생 편]그 속에서 누군가 집 소파에 앉아 막대사탕을 하나 베어 물고는 담배처럼 후— 분다. 공주들이 입는 드레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그녀는 고개를 까딱이며 중얼거린다.
“(삐—) 같은 인생, (삐—) 어떻게 내 맘대로 풀리는 게 하나가 없니. 어우, 씨, 개 같은 작곡여행 제작진 놈들, 메일을 그렇게 정성스레 보냈는데 답장도 없어. (삐—) 하, 세상 전부 다 불태워 버리고 싶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제작진 디스, 그 밑으로 자막이 하나 올라온다.
[네스퀵 (24세) / 래퍼 혹은 초콜렛 분말참고 : 제작진은 하고 싶은 말만 해달라고 부탁한 상태.]
즉, 네스퀵은 현재 자신의 뜻으로 촬영 중인 제작진을 욕하는 중이다.
이번엔 화면이 전환되더니, 숙소 거실에서 널브러진 블로센스 멤버들이 등장한다. 여전히 흐르는 우울한 음악.
[블로센스 (4개월) / 응애참고 : 연출된 장면으로 이렇게 조용한 팀이 아님. 뒤에는 시끄러울 예정.]
“연예인으로 살기 힘드네요…….”
[연출된 대사입니다. 시청자분들, 진정하세요! 돌은 던지신다면 제작진에게!]“그러니까.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어.”
“하늘을 나는 새처럼! 저 멀리 날아서 떠나고 싶어. 노래하며, 춤추고 싶어.”
채하민이 단호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누가 봐도,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는 대사지만, 얼굴 덕분에 그나마 정상
화면이 반으로 쪼개지며 한쪽에는 네스퀵, 다른 한쪽에는 블로센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두둥‘이라는 효과음과 함께 캔 음료가 하나 놓인다. ‘마시면, 자유로워져‘라는 카피라이트를 지닌 음료수. 아주 당연하게도 PPL이다.
블로센스와 네스퀵은 의아하게 그걸 바라보다가 캔을 따 원샷한다.
다 마시는 순간 회색 화면에 색채가 되살아나고, 분할된 줄 알았던 화면 사이의 벽이 위로 올라가며 동시에 세트장의 벽들 역시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드러나는 넓은 숲. 블로센스와 네스퀵이 뒤도는 순간 눈이 마주치며 웃는다.
[개같은 인생 속에서]그리고 각자 소파에서 일어나 숲속으로 달려간다.
[잠시나마 망상 속으로 떠나 볼 시간.]그리고 화면 위에 새로운 자막이 큼지막하게 중심을 차지한다.
[정문사집단의 ‘망상여행‘, 지금 출발합니다.]정문사집단의 각 글자 옆에는 이게 무슨 말을 줄인 건지 보여주는 작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후 짤막하게 정문사집단이라는 이름이 정해지는 과정, 작곡하다 쓰러지는 석준을 보며 미소 짓고는 다시 모니터를 반쯤 죽은 눈으로 노려보는 지동화, 안무를 짜고 있는 채하민과 류이든, 작사 중인 이현재, 그리고 전화기를 들고 (삐—) 소리를 난무하고 있는 네스퀵의 모습이 연속적으로 편집되어 들어가더니,
라는 자막만 화면에 덩그러니 남는다.
* * *
나는 눈을 한 번 비벼 본다. 이런 멍청한 짓거리가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올 정도로 눈앞에서 펼쳐진 영상이 놀라웠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촬영할 때 예측하긴 했지만, 뭐 이런 영상이 다 있나 싶다.
“괜찮죠?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 편집했다고요? 작곡여행과 망상여행, 그리고 곡 분위기까지! 너무 딱딱 맞아떨어져서 기쁘답니다.”
김소영 PD는 너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음악방송 스케쥴을 끝내고 흘러 늦은 밤. 우리는 작곡여행 본무대를 촬영하러 모였다.
“그래서 소감이 어떠세요? 이 정도면 괜찮죠?”
김소영 PD는 우리를 모아놓고, 작곡여행에서 예고편과 오프닝에서 쓰일 영상이라며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이단아라는 오그라드는 별명 따위는 집어치우고서라도, 약간 나사가 반쯤 풀린 영상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같다.
“와… 너무… 좋은데요……?”
사회생활 실력은 발군인 류이든이 저렇게 말꼬리를 늘리는 걸 보면 상태가 그리 좋은 영상물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작곡여행을 자주 시청한다는 이현재는 해맑게 웃으며 꺄르르대는 게 이런 꼬라지로 영상물이 나올 줄 알았나 보다.
“예상하고 있었어, 현재?”
“네, 형.”
그리곤 조용히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여기 제작진분들 약간 미치셨거든요. 거의 매번 이런 식이에요. 어떨 때만 감동 코드고.”
…그래, 그러니까 정문사집단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셨겠지.
“호호, 제가 실력이 괜찮죠? 이번엔 제가 편집 방향에 힘을 조금 줬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또라— 아니지, 재미있는 방향으로 촬영해 주셔서 너무 고마운 거 있죠?”
그걸 들은 네스퀵이 씨익 웃더니 중얼거린다.
“아, 진짜, 인생이 제대로 한 번 풀리려나 보네요. 어머니한테 몰래 용돈 타 쓰는 생활이 이제 좀 끝났으면 좋겠네. 혈육 눈치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마도, 끝날 것 같았으니까.
네스퀵은 개인적으로는 방송 출연 기회가 없었던 게 문제지, 한 번 출연하면 잊히기 어려운 캐릭터니까. 세상 어딜 가서 위즈니 공주 차림으로 담배를 피우며 욕을 뱉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촬영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랐다.
* * *
촬영을 위해 분장실에 들어갔다. 그러자 스타일리스트 분께서 내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동화 씨, 어서 와! 오늘은 주인공 일행에 반드시 있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스한, 그래서 주인공이 힘들 때 무심하게 옆에 앉은 채 말없이 위로해주는 역할, 맞죠?”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무슨 분장을 소설 인물 설정처럼 합니까.
순간적으로 이상한 캐릭터를 담당하는 역할이 될 뻔했다.
“이번에 뮤지컬 컨셉이라 그래서 옷도 조금 화려하게 준비해봤죠! 힘 좀 썼답니다!”
해맑게 웃으시는 스타일리스트 님의 손에는 차마 입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코스튬이 들려있다.
“진짜 왕자가 되는 기분이 어때요? 할로윈 때도 쓸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옷을 보는 순간, 석준과 네스퀵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내 쪽으로 달려왔다.
“이건, 이건!”
“X발, 제 생각이 맞죠, 준 씨?”
놀랍게도 이것도 촬영 중이다.
“맞습니다, 네스퀵 씨! 얼음왕자……!”
“제 어렸을 적 이상형 리스트 중 3위였는데!”
…대체 몇 명이나 이상형에 올려 두신 겁니까, 네스퀵.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습니다. 사실 동화 형님, 저는 스타일리스트님들과 기획팀원분들께 몰래 찾아가서 동화 형님은 반드시 얼음왕자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석준이 미칠 듯이 빠른 속도로 말을 뱉어낸다. 이럴 때만 말이 빨라지는 건, 몇 번을 봤는데도 여전히 신비한 기분이다.
“준 씨, 개잘했어요! 어쩜, 어떻게 그런 훌륭한 생각을!”
둘의 대화 소리가 온 사방에 퍼지며, 모든 시선이 이쪽으로 와 꽂힌다. 그럼에도 네스퀵과 석준은 수치를 잊은 듯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위즈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뽐내는 데 열중이다.
결국 이곳에서 수치를 느낄 수 있는 정상적인 인간은, 나 하나뿐이라는 뜻이겠지.
둘의 소란을 무시하고 나는 시스루 천을 기반으로 하얀 옷을 받아들었다.
닥치십시오, 기지생. 그 시간에 책을…… 젠장, 아마도 나보단 더 많이 알 테니 할 말이 없군.
* * *
모든 분장을 마친 우리는 대기실로 들어섰다. 작곡여행의 경우 보통 2팀이 순차적으로 공연장에 올라간다. 인디 팀 하나나 둘로는 애초에 관객이 자리잡기 어려우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아이돌인지라 특이한 경우지만, 방송 형식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는다.
그래서 대기실에는 우리가 아닌 다른 인디 가수 분 역시 들어와 계셨다.
저분의 성함은, 루시드 드림. 예의 바른 신사처럼 양복을 빼입고 우리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한다.
“어우, 휘황찬란해서 눈이 부시네요. 잘생기신 분들이 의상까지….”
개인적으로는 저도 차라리 양복을 빼입고 싶습니다.
루시드 드림은 인디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씬에 꽤나 이름이 알려진 선배 가수다. 1집 활동 휴식기에 개인적으로 작곡을 공부할 때 참고할 정도로 실력도 출중한 편이다.
“아이돌 그룹인 가수분들이랑 한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인데, 반가워요, 자각몽입니다.”
물론 한 무대는 문자 그대로 무대를 공유한다는 의미에 불과하지만.
루시드 드림이 정중하게 내미는 손을 류이든이 받아서 90도에 가깝게 고개를 숙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희 동화가 선배님 곡을 정말 좋아합니다.”
…류이든과 함께 연예계를 헤쳐나가며 생긴 버릇이다. 선배들과 만날 때면 내 기억력을 믿고 관련 활동을 줄줄 뱉으라는 신호다. 디텍션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블로센스의 전통이다.
나는 가볍게 목례한다.
“이번에 내신 4집 정규 앨범, ‘콜로서스는 정말로 그 산 위에서 밝은 미소를 지었던 걸까’ 구매하여 잘 들었습니다. 특히 수록곡인 ‘언젠가 당신을 만난다면 미소 지으며 악수하고 싶어’의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사이, 피아노 선율이 제 취향이었습니다.”
루시드 드림은 내 인사에 미소를 짓다가 내 말이 이어지며 점차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 간다. 이것도 익숙한 일이다. 류이든이 시켜서 암기한 내용을 뱉으면 대개 저런 반응을 보이니까.
“와, 진짜, 저 약간 감동인데요? 제 친구들도 제 앨범 이름 다 못 외우는데. 사실 저도 가끔 까먹어요.”
루시드 드림은 곧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선 무대 기대하겠다며 인사를 남긴다.
음, 그런데 인사를 할 때 네스퀵은 배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루시드 드림을 보며 네스퀵이 이를 꽉 물듯 짓씹는다.
“저 X끼, 예의 바른 척 오지네. 제작진 놈들은 모르고 캐스팅한 거야, 아니면 노린 거야, 이 쓰레기 놈들.”
“……혹시 사이가 안 좋으세요?”
류이든이 조심스레 다가가 묻자, 네스퀵은 썩은 미소를 짓는다.
“네, 제가 저 인간 호적 메이트라.”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