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6)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6화(96/343)
96.
‘호적 메이트’라는 창의적인 용어를 활용한 네스퀵의 말에 나는 조금쯤 의아해졌다.
혹시 요즘 부르주아들에게는 연예인이 되어야 하는 통과의례라도 생긴 걸까. 채하민부터 시작해서 왜 하나 같이 자본주의의 최고 권력을 쥐었으면서 연예인을 하려는지.
“아… 그러고 보니까 저분은 예전에 선상파티에서 뵌 적 있네. 저분도 나도 별로 지나가다 본 느낌이라 기억은 못 했나 봐.”
채하민이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우, 저 X끼가 먼저 가수되겠다고 선언하는 덕분에 제가 얼마나 감시를 받았는지 알아요? 너만큼은 제대로 키워야겠다고 지랄도, 그런 지랄을.”
네스퀵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의상을 점검한다.
“이번에 무대로 이겨 먹어야 속이라도 시원하겠네. 저 망할 새끼 작곡 실력은 좋아도 동화 씨가 조금 더 나을 테니까.”
들어 올린 두 눈에 어떤 열의가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열심히 해서 저 인간 발라 버려요. 실력으로 압살해서 저놈 방광 조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립시다!”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전투태세를 가다듬는 네스퀵은, 정말 문제가 있어 보였다.
갑작스레 집안싸움에 소집된 우리 멤버들은 당황스러운 눈초리로 웃으며 서로를 볼 뿐이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흘러,
“정문사집단 여러분, 스탠바이하실 게요!”
무대에 나갈 시간이 되었다.
* * *
김소영 PD는 무대 아래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감탄했다.
아이돌을 부른 게 오랜만이라 그럴까, 이 정도로 많은 객석에 응원도구를 손에 들고 있는 풍경이 낯설어서.
‘확실히… 인디판이랑은 티켓 파워가 다르긴 하더라.’
사전 신청이 열리자마자 급속도로 마감됐을 정도니까. 괜히 조연출이 아이돌 아이돌 입에 달고 사는 게 아니라는 게 약간은 체감됐다.
그리고 공연 시간이 되었다. 기존 곡 무대, 막간 토크, 이후 신곡 무대. 이러한 순서로 구성된 단순한 공연이지만, 아마도 ‘정문사집단’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기존 곡 무대도 편곡해야 할 테니까.
어두워지는 조명.
완전히 암전되자 블로센스의 이번 타이틀 곡인 ‘마지막 시작 : the First Last’의 전주가 약간 편곡된 채 흐른다.
‘흠, 네스퀵은 개별 무대를 따로 하기로 했나? 그랬다간 분위기 조질 텐데.’
괜히 아이돌을 인디 판 가수들 노는 데 부르지 않는 게 아니란 말이지.
조명이 켜지고 위즈니 속 캐릭터들을 본따 과하지 않게, 캐릭터의 느낌만 살 정도로 꾸민 블로센스가 등장한다.
“지동화 착장 미쳤냐고!!”
“준아!! 씨, 준이 존나 예뻐!!!”
누군가가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김소영 PD는 그 열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서 흠칫 몸을 떨었다.
무대는 이미 질릴 정도로 본 것이었다. 참 잘생긴 청년들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흐뭇해하면서도 네스퀵 때 조질 분위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그런데, 익숙했던 무대는 2절에서 변화했다. 앞서 약간 편곡됐다고 생각했던 비트가 서서히 곡 전체로 퍼져 나가더니 완전히 힙합 비트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 마녀처럼 머리에 뿔을 달고 등장한 네스퀵, 충격적인 비주얼이다.
석준과 네스퀵이 각자 네 마디씩의 랩을 주고받으며 이어진 2절은, 서로를 집착하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집착하는 가사와 날카로우면서 둔탁한 베이스와 드럼이 실리니 질척한 애증물 한 편 보는 기분이었다.
“…오, 괜찮은데.”
작곡여행 4년 차, 음악성에 대해선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김소영 PD, 그녀는 지동화의 편곡 실력에 대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원본도 괜찮지만, 음악성만으로 따지면 이쪽이 더 나을지도.
마무리되는 무대, 블로센스의 팬들은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자 약간은 당황했으나, 우리 아이돌 기 살려줘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청껏 소리쳤다.
* * *
토크 시간, 나는 쓰러질 것처럼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정신력으로 일으켜 세웠다. 운동이, 필요할지도.
MC가 따로 없이 토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어색했다. 그러나 사회적인 인간들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말할 주제도 명확히 정해져 있다. 작곡 기간 동안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
나는 의자 밑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입술이 번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토크는 류이든, 채하민과 네스퀵이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네스퀵이 욕을 뱉지는 않나 걱정했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는 없을 안심이다.
“어우, 동화 씨가 작곡 실력이 진짜 장난 아니예요. 루미너스분들이 제일 잘 아시겠지만, 같이 작업하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잠을 안 자지’라는 생각도 엄청 많이 했고.”
네스퀵이 내 얘기를 하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밤을 진짜 계속 새워요. 자도 거의 두 시간 정도만 자고 작업하고, 약간 안 풀리면 책 읽고. 제일… 닮고 싶으면서 쓰러질까 무서웠던 사람이에요.”
“맞아요. 여러분, 동화가 밤새우는 습관이 있어요. 건강 챙기라고 잔소리 좀 해주세요. 회사에서도 제발 좀 자라고, 일 우리가 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잠을 안 자요.”
류이든이 네스퀵의 말에 이어 뭔가 결정타를 날렸다.
……잠깐, 이거 약간 루미너스들께 죄송한 상황 아닌가. 행복하게 살라고 앨범 사줬더니 건강을 망치는 짓으로 보답한 배은망덕인가.
객석에서 우리의 팬은 아니고 좋은 무대를 보러 와주신분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감탄하는 소리를 냈고,
반면에 우리의 팬분들로 추정되는 분들은 ‘네 놈이 또!’라는 표정으로 경악에 차 있었다.
결국 나는 그 분위기에 조용히 마이크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멤버들과 관객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몇 가지 에피소드—대체로 내가 작곡하다가 벌인 기행들—를 소개하다가, 이제 새로운 곡을 선보일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 이제 저희가 약 3주에 걸쳐 꾸민 무대를 선보일 시간입니다! 환상의 나라 속 이야기를 보여드릴게요.”
“그런데, 동화 씨, 제목이 뭐죠?”
능청맞게 물어보는 네스퀵. 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정문사집단이 들려 드릴 곡은 ‘Truth or Tregedy’입니다.”
이번에도 멤버들과 네스퀵의 동의를 등에 업고 이현재와 내가 함께 정한 제목이다.
* * *
무대 위 블로센스 멤버들이 서로 몸을 기댄 채 앞으로 걸어간다. 화면에는 활력이 뿜어져 나오는 우거진 수풀이 펼쳐져 있다.
그 사이에서 달려나오듯 블로센스가 무대 중앙으로 뻗어 나온다. 활기찬 비트, 신나는 분위기, 그리고 따스한 색채. 모두들 환하게 웃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사이좋은 동료 같았다. 지동화가 짜 놓은 비트를 중심으로 석준이 편곡한 부분이다.
채하민과 류이든이 더블 센터가 되어 노래한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한 마디
너는 세상을 구할 아이란다, 아가야
처음 가졌던 꿈 모든 시련을 견뎌 낸 이젠
동료들과 함께 이 세상을 구할, 시간이야
이 부분 가사는 채하민과 류이든이 어렸을 적 봤던 만화영화를 토대로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소년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다.
멤버들 역시 이에 맞춰 해맑은 웃음을 짓고 댄서 라인을 필두로 신나게 춤춘다.
이어서 석준의 깔끔한 램으로 구성된 후렴구가 펼쳐진다.
Truth or Tregedy, 나로 인해 구원될 세상
내 앞에 놓인 길이 거친 시련뿐이라도
Please Look at me, 나를 바라봐 주겠니
오직 진실 하나 믿고 나는 달려갈테니
멤버들은 언덕처럼 보이는 구조물에 달릴 듯 올라가더니 석양이 펼쳐지는 VCR 화면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위에서 이현재가 두 손으로 석준의 등을 민다. 음악이 잠시 끊어지며, 그 순간이 부각된다.
그리고 뒤돌아 내려오는 슬프게 미소 지으며 언덕을 내려오는 이현재, 그 뒤로 경악한 멤버들의 표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석준이 예언의 구원자라면, 이현재는 그를 절벽에서 밀어버린 배신자가 된다.
장조가 단조로 변주되고, 앞에 깔려 있던 피아노 음계가 뒤틀리며 변질된다.
어두운 조명이 깔리고 이현재가 허밍으로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한 뒤, 무대 오른쪽에 놓인 바위 위에 앉아 노래한다. VCR로 얇은 초승달이 떠 있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한 마디
아버지를 죽인 건 저 아이란다, 아가야
처음 가졌던 절망 모든 시련의 시작, 이젠
전부 다 버려 내 복수를 이룰, 시간이야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현재의 뒷이야기.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을 활용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여정이라는 이름 하에, 죽음이 정당화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달려온 한 소년의 이야기. 이현재가 프루츠 월드를 보고 3일 동안 고민한 끝에 얻은 결실이다.
Truth or Tregedy, 너로 인해 구원될 세상
따윈 내겐 아무런 의미 없는 쓰레기고
그러니 Curse me, 저주해 주겠니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온 나이니
그리고 그걸 배경으로 멤버들이 절벽 아래 석준을 부축해 걸어오는 장면이 배경을 구성한다.
이현재는 그 모습을 보곤 아쉽다는 듯 한숨을 한 번 내쉬곤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네 명이서 계속해서 걸어 나가며 지동화가 마이크를 들어 올린 채 브릿지 파트로 넘어가기 전 간략한 허밍을 집어넣는다. 밤같은 분위기 속 허밍은 쓸쓸한 마지막을 연상케 한다.
지동화가 작곡한 부분은 석준이 작곡한 부분을 뒤틀고 비틀어서, 희망이 무너져 내린 살풍경을 날것처럼 그려냈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 끝쪽까지 걸어가자, 왼편으로 마녀로 분장한 네스퀵이 등장한다.
지동화의 허밍이 그려낸 약간 어두우면서 둔탁한 비트를 이어받아 슬픈 분위기가 더해진다.
어렸을 적부터 홀로였던 한 여인
그리고 그녀만을 바라보던 연인
때 아닌 바람에 흘러가던 그 순간
세상이 우리를 버렸음을 깨달아
최종적으론 악인이 된 여인의 사정. 세상에 대한 복수심만을 키워낸 여인이 뒷이야기. 그녀의 탄생과 구원의 예언이 교차하며, 석준은 스스로를 구원자라 믿었다.
하지만, 과연 그건 모두의 구원일 수 있을까. 지동화는 그 점을 네스퀵과 함께 고민했다.
석준 무리는 힘겹게 마녀의 앞에 섰다. 무대 위 언덕에서 석준 무리를 내려다보는 네스퀵은 한에 찬 목소리로 후렴구를 이어 부른다.
Truth of Tregedy, 네가 구원할 세상
의 진실은 결국 가진 자들만의 것이고
그러나 Trust me, 내가 바꿔 나가리
비극의 진실을 네 눈앞에 보여줄 테니
그리고 그렇게 모두 마주한 순간 옆에서 이현재까지 등장해 다시 각자의 후렴구를 부른다. 서로 형식은 같지만 조금씩 내용이 다른 음률이 화음을 맞추며 뒤섞여 하나의 형상을 그려나갈 때, 어떤 전율이 그 속에서부터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김소영 PD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보며, 팔뚝을 조금 쓸어내렸다. 유치한 이야기로 이 정도 음악을 선보인다는 게, 그리고 실력이 좋아서 컨셉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게 소름 돋아서.
‘…이거 잘못하면 겁나 조질 컨셉인데, 대체.’
특히 중반부 이현재는 놀라울 지경이다. 섭외 때문에 데뷔 때 무대까지 모두 찾아봤는데, 웬만한 솔로 가수랑 비슷한 목소리 폭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원작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어떤 관계인지 파악할 수 있는 표정 연기와 무대 구성에,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깔끔한 작곡까지. 오랜만에 본, 아름다운 무대였다.
그렇기에, 무대가 끝나고 다시 중앙에 모여 인사하는 정문사집단을 보며 김소영 PD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재빨리 편집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듣기로는 작곡할 때 지동화 씨가 중심을 잡았다고 하던데.
‘……이제 확신할 수 있겠어. 지동화 씨가 제일 또라이야.’
정기적으로 프로그램 출연을 권하고 싶어지는, 대단한 또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