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8)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8화(98/343)
98.
이현재는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올려뒀던 태블릿을 들었다. 밖에서 고릴라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마도 이든 형이 동화 형에게 수치사를 당하는 중일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은 별다른 소식 없으려나.’
멤버들 중 전자 기기와 가장 친한 사람. 달리 말하면 가장 문명화되어 있는 사람이 자신이니, 아침마다 SNS나 커뮤니티를 떠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게 버릇이 들었다.
요즘 가장 주요하게 바라보는 건, 동화 형의 실력에 대한 비방. 형이야 정신력이 강인하다지만, 이현재 본인은 그 인간들이 괘씸하기 짝이 없어서 유독 관심이 쏠렸다.
‘와…… 슬슬 인정하는 분위기인가?’
최근 여론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이현재는 놀라움과 만족스러움이 반반씩 섞인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동화 형이 걸어온 길은 인정이라는 단어와 어울리긴 했다. 데뷔와 컴백 타이틀 모두 직접 만들었으며 준성이 형 컴백 곡도 선방했다. 라디오나 과거 서바이벌에서도 꾸준히 곡을 만들었고.
특히 준성이 형 컴백 곡은—물론 타이머분들의 화력이 대단한 것도 있지만— 작곡가를 모르는 상태로 들은 사람들도 좋은 곡이라고 꽤나 화제가 됐을 정도다. 거기에 이번 곡은 20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팬덤이 아직 덜 성장한 상태에서 이 정도 순위는, 대중성을 어느 정도 잡은 거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작곡여행이 방영되고 나면, 조금 더 인정하는 여론이 승기를 잡을 거라고 이현재는 추측했다.
‘……확실히 이번 곡이 진짜 좋아. 동화 형이 신경을 엄청 쓴 티가 날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이번 곡이 지금까지 동화 형이 쓴 곡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동화 형은 굳이 얘기하지 않았지만, 동화 형에게 과외 수업을 받은 이현재 본인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곡에 담긴 꽤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무언가 해석하기 좋아하시는 팬분들도 ‘우로보로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만약에 대학을 나와야 한다면, 국문학과를 나오면 좋지 않을까. 기왕이면, 동화 형 후배로.
그렇게 주제넘은 생각임을 스스로 알면서도 꿈을 꾸는 이현재의 느긋한 아침이었다.
* * *
회의실. 곧 있을 연말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일단, 가장 먼저 있을 복숭아 뮤직 어워드에서 저희가 신인상 후보로 올랐습니다.”
우리가 수시로 차트 순위를 확인하는 곳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이다. 방송 3사와 비교할 때 규모가 적긴 하지만, 한 해 데뷔하는 팀의 숫자를 생각해 봤을 때 신인상에 랭크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상이야 타면 좋고, 아니면 말고.
“거기서, 이번에 합동 무대 제안이 왔는데 말이죠. 저희야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인지라, 조금은 일방적인 통보가 될 수도 있는 점 우선 죄송해요.”
장해진 팀장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신인 입장이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 이해한다. 방송국은 반쯤은 권력과 인맥으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걸, 짧은 연예계 생활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럼 공지드릴게요. 합동 무대의 형식은 신인 팀이 모여서 합동 공연을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어요. 신인 중에서 나름 선방한 곳은 우리 팀, 그리고 보이그룹으로는 갓에이나 RE—121 정도고, 걸그룹은 몬스태프과 스칼라 정도입니다.”
……아주 이름들이 휘황찬란하군. 블로센스라는 이름도 상당히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는데, 이 이름이 굉장히 수수해 보이기는 처음이다.
“다섯 팀이 신인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각 팀 포지션별로 모여서 유닛을 짜 보자는 계획이 나왔고, 거의 다 동의를 했습니다. 아마도 보이그룹은 보이그룹끼리, 걸그룹은 걸그룹끼리 유닛을 짜게 될 것 같습니다.”
저런. 어쩌다가 이런 류이든 같은 일이.
갓에이에서는 단 둘을 제외하고는 면을 맞대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그래서, 다음과 같은 명단이 짜졌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
우리는 각자 한 장씩 종이를 받아들고 살펴 봤다.
‘래퍼 및 보컬 : 호연, Y, 성호, 석준, 동화.’
……정말 꿈에 그리던 라인업이 아닐까. 누차 말하지만, 악몽도 꿈은 꿈이니까. RE—121이라는 괴상한 이름을 지닌 팀엔 래퍼가 없어서 이런 조합이 나온 거라는 장해진의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 자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석준은 그저 헤헤 웃으며 오랜만에 성호 형과 무대 위에 설 생각을 하니까 설렌다는 의사를 표시해 왔다.
“……준, 좋니.”
“네— 형님. 너—무 좋습니다—”
망할 놈.
우리를 제외한 다른 유닛들은 상당히 안정적인 멤버 구성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우리 쪽 조만 더럽게 불편한 상황에 놓이는 것 아닐까.
“연습은 2주 후부터, 그러니까 저희 활동 마무리하고 나서부터 진행이 될 예정이에요. 사전에 미팅을 소속사끼리 의견 나눠서 진행할 테니, 그때 조금 친해지시면 이후 연습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러고 나서 장해진은 곧바로 다음 종이를 배부했다.
“이번에 말씀드릴 건, 개 같은 체육 대회 안건입니다.”
장해진의 표정이 완벽히 썩어들어가서는 단어 하나하나를 씹듯 뱉는다.
“이전에 TOT의 준성이가 이 프로에 출연하느라 다친 전적이 있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내보내고 싶지 않은 프로그램인데, 아시죠? 방송국에서 염병하는 거.”
나는 모르지만 대부분 아는지 석준과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준은 그냥 머릿속이 꽃밭이라 그런 것 같다.
“참고로… TOT도 출연한답니다. 후배들 기 살려주겠다면서.”
개략적인 프로그램의 정보가 요약된 장을 펼쳐 봤다. 팀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부터 각 조마다 몇 명씩 어떤 종목에 출전해야 하는지 등이 적혀 있다. 흠, 우리 팀은 인원수가 적어서 다른 그룹과 나눠 먹을 예정이군.
“그래서 거기 종목 중 자신 있는 거 하나씩만 골라 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눠 드린 쪽에서 4페이지 보시면 있어요. 되도록이면 반영해서 종목 정해드릴게요.”
하, 스포츠라니. 인생에서 가장 인연이 없는 분야 중 하나다. 아무거나 나가서 꼴등을 한 뒤 멤버들에게 놀림 받을 생각을 하니 참 즐거운 예상이다.
“이든이 형, 형은 씨름 같은 거 나가면 다 이기지 않을까?”
나는 채하민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저 강아지 놈의 팔뚝에 들려 이리저히 휘둘린 경험이 있으니,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저는 달리기 나갈게요. 저 달리기 빠르다구 칭찬 많이 받거든요.”
이현재를 필두로 해서 모두들 자신 있는 분야를 밝히며 하나둘 참가 종목을 선정한다. 반면 내가 지닌 육체적 재능은, 글쎄.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럼 동화, 너는?”
나는 목록을 살핀다. 이 직업을 택할 때부터 하기 싫은 게 있어도 해야 할 때가 오리라는 것쯤은 예측했지만, 이렇게 금방 찾아올 줄은.
작곡 대회 같은 것 없습니까. 이길 자신은 있습니다.
“아, 동화 씨. 이번에 새로 들어온 종목 하나 있는데, 그거 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장해진은 종이 한구석에 자그맣게 뭐라 적힌 곳을 가리켰다.
“아마도, 방송국이 쉬어가기 코너로 넣은 것 같아서 주목도는 낮지만, 괜히 운동 못 하시는데 운동하는 것보다는 괜찮을 거예요.”
지당한 소리.
그리고 그 손끝에는 ‘상식 퀴즈’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돌 하는 분들 중에 똑똑한 사람이 많아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흠, 상식이 부족한 편이라 괜찮을지 모르겠군. 두뇌 스포츠도 인정해 줘서 체스나 장기 같은 게 올라와 있다면 좋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 * *
금요일. 오늘은 1위 공약을 이행하기로 정했던 할로윈 특집이 진행된다. 그 말은, 우리가 모든 가수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다시 한번 위즈니 분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의상 보니까…… 갑자기 트라우마가 올 것 같아.”
류이든이 조용히 여름 배경의 위즈니 캐릭터 의상을 받아들며 중얼거린다.
“…감사합니, 흐어, 다. 동화 형, 곡 잘 써줘서 너, 흐어억, 무 고마워요.”
나는 당시 류이든이 했던 말을 국어책 읽듯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줬다. 류이든이 의성어는 제발 빼달라고 부탁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때 메이크업이 끝났는지 가장 먼저 끝난 내게 채하민이 다가와 속삭였다.
“동화야, 우리 매점 좀 갔다 오자.”
속삭일 만한 이야기인지 모르겠군.
나는 이미 얼음왕자…라는 치욕스러운 명칭의 캐릭터가 입었던 옷으로 재차 갈아입고, 토끼 머리띠를 착용한 채하민과 함께 방송국 복도로 나갔다. 흠, 그런데 그 머리띠는 지금 벗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할로윈 특집이라길래 우리처럼 특별한 분장을 한 이들이 조금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밖에 없어서 상당히 고개 들기 어려웠다. 제발, 그 토끼 머리띠라도 내리지 않을래, 하민.
매점에 도착해 당근 주스를 하나 사는 채하민을 보며, 나는 딸기잼 쿠키를 몇 개 샀다.
그렇게 잠시 비치된 테이블에 앉아 딸기잼 쿠키를 하나 꺼내 베어물자,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이 입에 감돌았다. 맞은 편에 앉은 채하민은 당근 주스를 마시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입을 연다.
“맞다. 그러고 보니까, 네스퀵 씨, 사촌 형이랑 선봤던 분이시더라.”
음, 쓸데없는 정보군. 그분은 이미 자유의 몸이 되어 일가를 떠난 상태인데 말이지.
……그런데, 채하민도 나름대로 ‘도련님’이라 불릴 정도의 집안 출신인데, 후계자 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독자면 그럴 수가 없을 텐데.
“생각해 보면, 네스퀵 씨도 대단한 것 같애. 집이랑 연 끊고 사시는 거잖아.”
그보다는 거기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을 끊어내는 게 더 대단한 것 같은데. 아무리 부자유하더라도 돈의 유혹을 떨칠 정도면 의지가 대단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나도 집이랑 반쯤 연 끊긴 했지만!”
……음?
딸기잼 쿠키를 조금 베어 물던 나는 멈칫해서 그대로 채하민을 바라봤다.
“어? 몰랐어? 아버지가 활동 2년 정도하고 나면 이제 관두고 후계자 수업 받으라고 해서 나랑 엄청 싸웠는데, 내가 말 안 해줬구나!”
채하민은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그게 상당한 부조화처럼 보였다. 가족이라는 제도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웃으면서 말할 이야기는 못 되지 않을까.
나는 섣불리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문장을 만들어나간다.
“……음, 괜찮아?”
채하민은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다. 토끼 귀가 그에 따라 움직인다.
“나야 괜찮은데… 우리 아가들이 문제지. 이대로 계속 아버지랑 싸우는 상태면 집에서 걔네들 내보내라고 할지도 몰라.”
채하민이 아가라고 지칭하는 건 녀석이 기르는 파충류들이다. 중학생 때부터 기르던 도마뱀 한 마리와 뱀 한 마리, 그리고 최근에 내게 영감을 준 고마운 뱀까지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중이다. 이렇게 보니, 참 쓸데없는 정보를 잘도 알려줬구나, 토끼 놈.
어쨌든 세계 최초 파충류 아버지인 토끼 놈이 자식들을 생각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식보다는 자신의 아버지와의 문제가 더 심각한 편이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른 법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멤버들한테 얘기해서 데려오지 그래. 어차피 키우면 우리 방에서 키울 예정이고, 나는 키워도 괜찮아.”
다행히 지난번 사생 사건 이후로 옮긴 집은 상당히 넓은 편이니까.
내 말을 들은 채하민이 약간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 내리고, 귀도 내려, 망할 토끼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