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n Idol Wasn’t on My Plan RAW novel - Chapter (99)
아이돌이 될 계획은 아니었다-99화(99/343)
99.
더 넥스트 니체에서 이현재의 팬으로 시작해 순조롭게 루미너스까지의 절차를 밟은 이현재의 팬.
그녀는 한국대학교의 한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블로센스의 할로윈 코스프레이자 1위 공약 영상. 음악방송 무대에서도 하고, 이후 공식 계정에도 연습실에서 촬영한 버전이 올라왔다.
‘이현재, 여우 분장. 호흡 곤란.’
채하민과 세트로 토끼와 여우 캐릭터를 분장했는데, 귀여워 죽어버릴 것 같다. 절로 광대가 올라갔다.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 TV나 핸드폰과 담을 쌓은 덕분에 연예인 덕질을 해본 적 없는 그녀에겐 이런 흔한 이벤트마저도 벅차오르는 덕심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로써 삶의 의미를 되찾고,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게 된다. 한국대에 오기 위해 아이돌 덕질을 하지 않았던 생활은, 자신의 첫 아이돌이 이현재가 되기 위한 초석이었다.
옆에 앉은 그녀의 친구는 그 꼴을 보다가 ‘어우, 덕후 같아…….’라고 짧게 중얼거렸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물론 실제로 덕후가 맞아서 데미지가 없다.
그러다 11시 정각, 수업이 시작됐다. 월수에 진행되는 철학개론 시간. 지동화가 같은 대학 철학과에 적을 두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수강신청을 해본 것일 뿐, 별다른 관심은 없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교수님, 지루한 수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지만, 그녀는 손으로 필기를 하면서도 차라리 때려치고 집에서 핸드폰으로 덕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런데, 수업 중반부. 교수님이 갑자기 PPT에 한 영상을 보여준다.
“아, 제가 찾아보니까 이렇게 잘생긴 사람들이 오늘 수업 주제인 근대 철학 얘기를 하는 영상이 있더라고요? 한번 같이 보실까요?”
노트북에 한글 문서 하나를 켜 두고 타이핑을 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화면을 바라본다.
……모모지?
이미 몇 번이고 봤던 클립이지만, 어째서 이렇게 볼 때마다 새로운지.
“이거 방송 나름 괜찮던데, 다들 한 번씩 봐봐요. 근대 철학에 대해서 그냥 가볍게 상식 쌓기 좋으니까.”
여태까지의 수업 중, 가장 집중되는 시간. 그녀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이현재가 데카르트를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한다.
‘……카이로.’
예전에 철학 아카데미 에피소드에서 이현재가 외쳤던 주문을 스스로에게 외워 보며.
* * *
블로센스 팬덤이 자리잡은 한 커뮤니티, [지동화 모교 등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을 클릭하면 바로 보이는 사진에는 지동화가 거대한 스크린에서 미소와 함께 니체를 설명하고 있는, 모모지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이다.
한국대 철학과 교양 수업 시간, 지동화가 등장한 사건을 쓴 것이다.
댓글
— 야 씨 ㅋㅋㅋㅋㅌㅋㅋㅌㅌㅌㅌㅋㅌ 지동화가 이렇게 등교를 하네 ㅋㅋㅌㅋㅋㅋ
— 한국대 철학과도 하지 못한 철학의 대중화, 블로센스가 해냅니다!
— ??? : (멤버들 얼굴만 보면서) 용안으로 들으니까 근대 철학이 쉬워졌어요!
— 아… 새삼스럽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돌은 대체 어떤 돌인 걸까….? 나는 철학 아카데미부터 좋았지만 무서웠어…. 취향이 개조당하는 기분이라서….
— 나 어제 존나 심각하게 그거 고민함 작곡여행 예고편 보니까 무대에서도 코스프레하고 있던데 다들 반쯤 미친 건 아닐까 의심했음 (물론 나 포함)
— 하지만 알잖아 그게 매력인 거.
— 이 그룹의 매력 : 광기와 이성의 균형, 이단아적인 아이돌 모먼트
— 그러니까 지동화와 석준 사이라는 거죠?
— ㅋㅋㅋㅋㅌㅋㅋㅌㅋ 지동화가 인정한 공식적으로 미친 친구 ㅋㅋㅋㅋㅌㅋㅋㅌㅋ
모모지 영상의 클립은 의외로 널리 퍼져 가기 시작했다. 모모지 방영 이후, 블로센스의 입덕 사유로 ‘윤리 수업 시간’이나 ‘대학교 교양 시간’을 꼽는 루미너스들도 늘어났다.
광기와 이성 사이 어딘가쯤에서 진행되는 블로센스 덕질에 심취한 루미너스는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취하기 시작했다.
[케이팝 이단아가 시발 신인상 정복할 예정입니다.]벌써부터 연말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 비켜 주세요. 신인상 탈 떄까지 숨 참겠습니다.
댓글
— 설레발 치진 말자 우리…. 또 욕 처먹어….
— 그냥 성적만 놓고 봐도 신인상 확정 과언 아니긴 하지…. 제발….. 제발 시발!!!
* * *
2집 미니 앨범 활동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며 오늘 마지막 팬사인회를 했다. 유독 내 쪽에 오신 팬분들이 고민 상담을 자주 요청하셔서, 팬사인회였는지 고민상담회였는지 약간 헷갈렸지만, 무난하게 끝을 맺었다. 최종 음원 성적은 20위 권. 가을이라 발라드곡이 기승을 부렸던 걸 생각하면, 빈집이긴 해도 나쁘지 않은 털이였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거실 한 켠에 파충류장이 3층 규모로 설치돼있는 게 눈에 띄었다. 원래는 우리 방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멤버들이 모두 사정을 듣고 동의해 준 덕분에 류이든의 운동기구 옆에 자리했다.
채하민의 어머니가 사람을 써서 설치해 준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파충류들이 인간보다도 사정이 괜찮은 곳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자, 여러분, 소개할게. 얘는 희망이고, 여기 이 친구는 어둠이, 이 친구는 익숙하지! 시작이야.”
통통하게 살이 쪄서 내 한쪽 팔뚝 같은 도마뱀 놈이 희망 씨, 그 위층 약간 어둡게 세팅된 곳에서 홀로 고고하게 몸을 뻗은 까만 뱀이 어둠 씨, 그 위에 이제 건강을 회복한 건지 꼬리를 물고 있지 않은 시작 씨다.
……음, 그런데 이름이 하나 같이 비일반적이군. 채하민의 정신세계도 석준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미친 편이니 이해할 만하다.
“관리는 내가 다 할 거라서, 딱히 주의사항은 없는데… 너무 밝은 빛만 안 비춰주면 돼!”
솔직히 말해서 동물을 키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에, 흥미가 동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민, 나중에 얘네 밥 먹일 때, 내가 먹여 봐도 될까.”
내가 조심스레 한 마디 뱉자,
“와, 동화 형, 이런 거에 관심 있었어? 아주 귀여운데?”
“그러게요. 뭐든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이런 거에 관심 있나 봐요.”
류이든과 이현재가 달라붙어 나를 물어뜯었다. 이현재는 기특한 동생이므로 봐주고, 나는 류이든에게 고개를 돌렸다.
“한 번만 더 말하면 저 뱀들, 당신이 자는 동안 얼굴 위에 올려 둘 겁니다.”
류이든은 잠시 상상했는지 얼굴을 왈칵 찌푸리고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온다.
“동화야! 애들로 그런 장난 치면 안 돼! 다친단 말이야.”
채하민은 다른 의미로 얼굴을 찌푸리고는 내게 톡 쏘아붙인다. 마치 당근을 빼앗긴 토끼처럼 분노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채하민이 화내는 건 두 번째로 보는 거지만, 아마도 볼 때마다 새로울 것 같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그 아이들은 생물학적으로 너의 새끼가 될 수 없는 종이야, 하민. 토끼는 뱀을 낳을 수 없단다.
* * *
2집 활동이 마무리가 됐지만, 어째서인지 스케쥴은 줄어들지 않았다. 별의별 곳에 행사가 잡히는 경우가 많았고, 라디오나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진행되는 아이돌 전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도 있었기에.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다가올 연말 무대를 준비해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석준은 지금, 우리 회사 회의실 한 곳에 모여 갓에이 멤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회사가 신인 소속사 중 제일 괜찮아서 이쪽으로 모이기로 했다는 후문이 있다. 니체가 신을 이겼군.
그렇게 석준과 프루츠 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안타깝게도 나는 조용히 있고 싶었지만— 기다리다가, 드디어 문이 열렸다.
그리고 보이는 얼굴은 윤성호.
보통 이런 상황에 먼저 들어서는 쪽이 그 집단을 주도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 흥미로운 변화다. 특히 지난번 라디오에서 윤성호가 말하려 할 때 그 인간이 막았던 것까지 고려하면 더욱 신기한 현상이다.
뒤이어 호연과 그 인간이 순서대로 들어온다. 집단 권력 최하위, 이지현. 실질적 리더 윤성호가 쓰레기봉투를 잘 여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준이, 동화! 오랜만이야!”
자리에 앉으면서 해맑게 웃는 게, 지난번보다 밝아 보였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석준이 일어나 윤성호 쪽으로 다가가서는 꼬옥 끌어안는다. 예전에 나한테도 저러려다가 얼굴이 밀린 적이 있는데, 윤성호는 나완 달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반가움을 표했다.
“동화, 오랜만.”
호연이 내 앞자리에 앉으며 무뚝뚝하게 한마디.
그리고 뒤이어 이지현이 푹 숙인 고개로 옆에 앉는다. 자신의 멍청함을 스스로 갚고 있는 모습이 아주 장하다.
그러나 나는 냉정한 표정으로 이지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의 뒷면을 기지생을 통해 들여다봤기에, 저 쓰레기가 벌일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분노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지만, 내 감정을 올곧이 통제하기엔 나는 치졸한 인간이다.
띠링—!
[몹시 인간답습니다!]쉿, 기지생. 또 법을 어겼다고 유폐되고 싶습니까.
[현재 이단아로 확정지어져 이 정도 탈선은 모두 눈감아 줍니다. 애초에 알림창을 통한 대화라는 기술을 구현하지도 못한 머저리들이 제게 어쩔 수 없습니다!]대단한 생물체라는 건 분명하군.
나는 다시 정신을 눈앞으로 돌린다.
“준이는 여기 이 친구는 처음 보지? 인사해.”
윤성호의 자애로움은 실로 대단해서 이지현을 바라보는데도 그 눈빛이 따스했다. 마치… 버려진 강아지를 보는 눈빛이군.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처음이 아니야, 준. 저놈이 네 어깨를 치고서는 자신이 선배니 사과를 하라는 식으로 지껄였잖아.
“처음… 뵙겠습니다. 이지현입니다.”
드디어 예의라는 걸 탑재했구나. 실로 놀라운 발전이다. 윤성호는 강아지 훈련소장에 더 적합한 재능을 지니고 있진 않을까.
* * *
“확실히… 니체 엔터가 자유롭긴 하다. 우리는 거의 선택권이 없었거든.”
윤성호는 우리와 선곡 회의를 하다가 씁쓸하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맞아. 윗놈들 모르면서 말이 많아.”
호연은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바로 입밖에 툭 뱉었다. 윤성호가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쉬고 호연의 등짝을 때렸다.
“어쨌든 간에, 래퍼가 절반 이상이니까 힙합곡으로 선정하는 게 맞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유닛을 이렇게 쫘줬다는 건, 벌스 3개로 구성된 랩 라인을 구성하라는 의미에 더 가까우니까.
“…다만, 그렇게 되면 이번 기획의 주제인 ‘전설의 재구성’에 맞추려면 딱히 고를 만한 곡이 몇 곡 없다는 게 문제지.”
솔직히 이건 시상식을 주최하는 쪽에 잘못이 있다. 초창기 선배 아이돌의 곡을 커버하라고 유닛을 짜놨으면서, 어떤 미친 인간이 5인조 중 3명이 래퍼인 구성을 짰단 말인가. 별 미친 것들이 다 있다 싶지만, 뭐 어쩌겠는가.
“음… 그렇네. 힙합 곡이라고는 해도 대부분이 보컬 라인인 경우가 더 많으니까.”
윤성호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이건 회의가 아니라 나와 윤성호의 대화가 아닌가.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석준은 생각이 없고, 호연은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인간은 약간 의기소침해 보였다.
한숨.
나와 윤성호의 눈이 마주치자, 윤성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웃었다. 둘이서 정하는 게 최선이라는 신호로 보인다.
“아, 근데 편곡은 너가 할 거야? 아니면 우리 회사나 너희 회사 A&R 팀분들한테 맡길까?”
윤성호는 문득 궁금해졌는지 물었다. 그야 당연히…
“나도 해야지.”
혼자 하기엔 그런 작업이 몇 번이나 더 있을 테니 같이 해야지.
그렇게 약 1시간을 ‘대화’한 결과, 한 곡을 선정할 수 있었다.
“이거… 괜찮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취향 곡은 아니긴 해도, 갓에이 팀이나 준에게는 더 잘 어울릴 거야. 물론 나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을 컨셉이고.”
개인적으로는 모두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라 생각된다.
특히 윤성호, 너한테. 내가 서바이벌 때 네 장점을 몇 번이고 분석했으니까 알 수 있다. 아마도 너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