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Friend's Love Log RAW novel - Chapter 11
│11. 절친의 결말
밥 한 숟갈을 뜨기가 무섭게 반찬이 올라왔다. 아니, 제 앞접시에만 고깃덩어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작 가운데 놓인 원래의 본 그릇은 깨끗이 비워진 지 오래였다.
민망해진 희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마주 앉은 건영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건영은 기가 막혀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그만해.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작은 소리로 눈치를 주며 말했지만, 못 알아들은 건지 그런 척을 하는 건지 모를 차승조는 여전히 아랑곳도 않고 희진의 앞에 계란찜까지 가져다 놓았다.
“야, 건영 오빠도 먹어야 하는데 여기다 놓으면….”
“응, 신경 쓰지 마. 저 형 계란 안 좋아해.”
“허.”
결국 참다못한 건영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사람이 앞에 버젓이 앉아 있는데, 이것들이 아주.
“나 계란 좋아하는데?”
이젠 제 말도 안 들리는지, 당황해 헛기침을 하는 희진 앞에 물을 따라 내밀 뿐이었다.
“너 내가 희진이한테 전화 안 해 줬음 어쩔 뻔했냐?”
건영은 진심 억울한 표정으로 따져 물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체처럼 다 죽어 가던 얼굴이 완전 딴판으로 되살아나 이 기막힌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차승조가 이런 표정, 이런 짓을 할 수도 있는 놈이었다니. 도무지 보고도 안 믿기는 광경에 건영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제 말엔 대답도 없었다.
“아오, 진짜. 같이 밥 못 먹겠네, 이 바퀴벌레들아.”
결국 건영은 대충 남은 밥을 욱여넣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출근을 했다는 말에 정신은 좀 차렸을까 싶어 걱정되어 왔더니만, 도리어 제가 둘 사이를 훼방 놓으러 온 꼴이 되고 만 거였다.
“나 간다, 너 내일 아침에 늦지 마. 정각 7시 땡 치면 로비에서 바로 출발할 거니까.”
희진은 엄포를 놓곤 사무실을 나서는 건영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자기가 찾아와서 일을 방해한 건 아닌지, 밥도 못 먹게 내쫓은 건 아닌지 싶어서.
그가 나가자마자 콩, 승조의 어깨를 내리쳤다.
“넌 오빠도 있는 데서 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희진의 엉덩이가 소파 위에 주욱, 당겨졌다. 건영이 나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승조는 그녀를 제 무릎 위에 올려 앉히곤 목덜미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미쳤어! 여기 사무실이거든요, 전무님?”
“그러게. 여길 왜 왔어. 일하는데 집중 안 되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뻔뻔함에 희진은 기가 다 막혔다.
종일 보고 싶다고, 하도 메시지를 보내길래 퇴근길에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 싶어서 들른 것뿐이었다. 일이 밀려 야근해야 한다는 그를 방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저녁도 배달시켜 먹자 한 게 저인데.
“저리 좀, 흐으!”
목덜미에 달라붙는 숨이 뜨거워,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갑자기 왜, 하아, 야, 그만. 그만…!”
“섹스하고 싶어, 희진아.”
소름 끼치게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축축이 적셨다. 찌르르, 단전이 묵직해지며 손끝이 저릿했다. 그제야 희진은 무릎 위 자신이 깔고 앉은 묵직하고 단단한 기둥이 그의 발기한 그것이라는 걸 자각하곤 몸을 떨었다.
“야근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갈까?”
“잠깐, 잠깐만….”
다급하게 그를 밀어내 봤지만, 힘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저를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이미 욕정에 푹 젖어 있었다. 불길함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요 며칠 사이 차승조는 자신이 알던 그 차승조의 모습이 아니었다. 완전히 달랐다. 분명 같은 사람을 대하는 건데 친구 모드와 애인 모드 스위치 전환이 이렇게 빠르고 확실해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그랬다.
적응할 시간이나 좀 주고 전환을 하든지.
도대체 그동안 이런 모습을 어떻게 숨기고 있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집에! 집에 가자, 흐, 가서, 하자. 응?”
결국 아이 달래듯 그를 달래며 애원했다. 아무리 마음이 불타도 여기선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그것도 밥 먹다 말고 이게 무슨…!
“네, 안에 계십니다.”
별안간 정신이 번뜩 드는 말소리에 희진의 눈이 댕그랗게 부풀었다. 분명, 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문 앞에서 제게 인사를 하던 비서의 것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밀어내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달크닥, 문고리가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이는 다름 아닌 엄필중 회장이었다. 하마터면 차승조 무릎 위에 앉아 엄 회장을 맞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안, 안녕하셨어요. 회장님.”
희진은 얼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엄 회장도 예상치 못한 광경에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회장은 의아한 눈초리로 상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희진을 바라봤다.
성질 더러워 사람 옆에 오래 못 두기로 유명한 손자가 유일하게 오래 친구 삼은 게 희진이라는 걸, 회장도 모르지는 않았다. 남녀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느냐 생각하는, 다소 보수적 사고방식을 가진 그조차 희진만큼은 진즉에 인정한 바였다. 승조의 절친으로.
그런데 지금은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붉어진 희진의 뺨. 참지 못하고 히끅 터져 나오는 딸꾹질 소리. 다소 높은 공기의 온도까지.
“하실 말씀 있으심 전화로 하시죠. 바쁜데.”
승조는 태연하고도 무뚝뚝한 얼굴로 머리를 쓸었다.
“전화로 할 말이 아니니 직접 왔겠지.”
회장의 말에, 희진이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저는 그럼 이만….”
“앉아, 어딜 가.”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의 손이 덥석 희진의 손을 맞잡아 당겼다. 가녀린 몸이 그대로 소파에 다시 주저앉았다.
의아하게 움직이던 엄 회장의 눈동자도 두 사람을 따라 굴러갔다. 아무래도 심상찮았다. 사람 상대하며 40년 넘게 돈 만진 장사꾼이었다. 그의 눈치 하나는 누구도 못 따라갔다.
“일전에 말했던, 최 회장 막내딸 말이다.”
그래서 회장은 부러 더 떠보듯 말을 꺼냈다.
“아까 오찬 모임에서 최 회장이랑 마주칠 일이 있어서 내….”
“저 얘랑 연애합니다.”
야, 이 미친놈아.
숨길 생각도 없이 실토하는 승조의 고백에 희진은 탄식했다.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엄 회장의 반응을 살폈다. 그가 얼마나 무섭고 냉정한 사람인지는 오랜 시간 듣고 본 바가 있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승조의 죽은 부모님도 끝까지 자신들의 관계를 인정받지 못해 비참한 선택을 한 걸로 아는데.
근데 이렇게 쉽게, 그냥, 막 말을 하고 이런다고?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언제부터?”
그러나 어쩐 일인지 회장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태연자약했다.
“며칠 안 됐어요. 삽질을 좀 오래 해서.”
“그럼 그동안 미친놈처럼 굴었던 게 다 희진이 때문이었냐?”
“네.”
그걸 그렇게 순순히 그렇다고 하면 어쩌나. 아무리 허구한 날 살벌한 말이나 주고받는 손자라지만, 그래도 제 손자를 그렇게 망가뜨렸던 원인 제공자인데, 엄 회장의 눈에 그런 제가 곱게 보일 리 있겠냔 거였다.
그럼에도 차승조는 뻔뻔스러우리만큼 침착했다. 옆에서 듣고 있는 자신만 속 한숨을 쉬며 좌불안석이었을 뿐.
“결혼은?”
불현듯 결혼 얘기로 화제가 점프를 했다. 도무지 대화의 흐름을 못 좇아가겠단 생각을 하는데, 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이어졌다.
“할 겁니다.”
“해 넘기지 마라. 나이도 있는데 시간 끌어 좋을 거 없어.”
제 할 말을 마친 회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희진은 어안이 벙벙해 덩달아 일어나며 입술만 감쳐물었다. 회장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넌 따로 준비할 것 없다. 필요한 거 있으면 나나 신 실장한테 말하고,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서 상견례 날짜만 잘 정해 봐.”
“…….”
더 이상한 건 엄 회장의 목소리가 퍽 자상하게 들린단 거였다. 그는 멍하게 선 희진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답을 재촉하듯이. 그 바람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네, 알겠… 습니다.”
회장은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곤 태연하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싶어, 희진은 제 옆에 선 승조를 올려다봤다.
“지금, 이게, 무슨….”
“너 분명히.”
저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별안간 이채를 띠었다.
“알겠다고 한 거다?”
여전히 이 철없는 차승조는 전혀 도움도 안 되는 신소리만 해 댈 따름이었다.
* * *
엄필중은 무표정한 얼굴로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신정화와 강 집사에게 승조의 결혼 준비를 시작하란 명령을 한 이후였다. 갑작스러운 말에 모두가 벙찐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확연 엄필중 답지 않은, 뜻밖의 결정이었다.
“진심이십니까, 회장님?”
도통 의중을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건영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정말이지 그럼, 네 놈은 지금 내 말이 농담처럼 들리냐?”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한 건영이 말끝을 흐렸다. 엄 회장도 알았다. 건영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그래. 솔직한 심정이야, 나 죽고 그놈한테 더 확실한 뒷배가 돼 줄 수 있는 집안이랑 엮어 주고 싶다만. 그놈이 어디 한번 내 말 귓등으로라도 듣는 놈이야? 청개구리 새끼처럼 죽어라 반대로만 굴 줄 알지.”
엄 회장은 혀를 쯧, 걷어찼다.
“그리고 희진이 걔 정도면 충분히 괜찮아. 똑 부러지게 제 일 열심히 하고, 심성도 바르고, 생각도 곧고. 뭣보다 미친 망아지 같은 그놈, 잡아다 주저앉힐 수 있는 것도 희진이 그 애뿐이잖냐. 그래도 덕분에 그나마 사람 구실은 하게 됐으니, 내가 도리어 그 애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판이다, 지금.”
건영은 내심 안도했다. 두 사람의 재회를 축하하면서도 혹여 과거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던 게 사실이었으니까.
“근데. 네 놈은 왜 나한테 보고를 안 해?”
불현 휙, 뒤를 돌아선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 어떤 보고를 말씀하시는….”
“내가 승조 놈 일거수일투족, 하나도 빼지 말고 죄 보고하라고 했냐, 안 했냐. 늙은이가 주책없이 희진이 앞에서 최 회장 막내딸 얘기나 꺼내게 해?”
“아…. 그게, 저도 둘 관계 파악한 지가 얼마 안 돼서….”
건영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뒤통수만 벅벅 긁었다. 그 눈빛에서 귀신처럼 거짓을 읽은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튼,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회장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건영이 웃었다. 그조차 전혀 가망이 없다 여겼을 만큼 깊었던 조부 간 감정의 골이, 어쩌면 의외로 쉽게 누그러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희진 덕분에.
“희진이랑 결혼하면 승조 더 잘할 겁니다, 뭐든. 지금도 말은 못 해도 분명 회장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생각, 분명 가지고 있을 거고요.”
건영은 확신하며 말했다.
“그런 마음은 바란 적도 없으니 됐고, 저놈 속이나 좀 편해지면 그뿐이다. 평생을 속 시끄럽게 살았으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나도 그렇고.”
고집스럽게만 보이던 회장의 노안에 설핏 그리움이 드리워졌다. 죽은 딸에 대한 오랜 그리움이었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해.”
회장은 씁쓸히 조소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
발단은 고작 사진 한 장이었다. 자취방 청소를 하다 우연히 떨어진 앨범을 펼쳐 봤던 게 시작이었다.
대학 축제 때 무대에 섰었던 차승조의 사진 한 장. 무대 위를 깨끗이 쓸던 통 넓은 힙합바지에, 발목까지 떨어지는 벨트. 게다가 시커먼 밤, 선글라스까지 끼고 춤을 추는 힙합 전사 차승조의 모습을 발굴해 낸 순간, 도무지 터지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도무지 치부라곤 없을 것같이 완벽한 차승조 유일의 흑역사가 버젓이 제 손에 있었으니.
그렇게 사진 한 장을 들고 뺏고 빼앗기며 몸싸움을 하다 욕정에 불이 붙었다. 희진은 뒤늦은 후회를 했으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테이블 위, 그에게 두 발목을 꽉 잡혀 버린 후였다.
발끝에 아슬아슬 걸려 있던 짧은 파자마 바지가 기어코 바닥으로 스륵 낙하했다. 말캉한 젖가슴을 움켜쥐고 딱딱해진 유두를 비비적 문지르며 이미 푹 젖은 팬티 위를 더듬는 남자의 목소리가 음험했다.
“어차피 이렇게 다 벗겨지고 젖을 거. 번번이 귀찮지도 않아?”
“하아.”
“말 더럽게 안 듣지, 진짜. 그냥 입지를 말라니까.”
“흐으, 아니, 그래도 사람이 옷은 입고 있어야지. 짐승도 아닌데 어떻게….”
“그래. 또 나만 짐승새끼야.”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힐난하며 젖은 팬티를 밀어젖혔다.
“순수한 유희진 씨께선 하나도 흥분 안 되고, 하나도 안 꼴렸는데도 이렇게 보지가 젖었다 그치.”
“흐으응….”
굵다란 중지가 갈라진 틈 사이를 미끄덩, 훑어 매만졌다. 금방이라도 파고들 듯 질구를 맴도는 익숙한 감각에 부르르, 여린 살이 수축하며 떨렸다.
“와. 많이도 쌌다. 흥분한 거 아닌데 왜 이렇지? 우리 희진이, 오줌 쌌어?”
놀리는 게 분명했다. 빙글빙글 한껏발기한 클리토리스만 실컷 문지르다 정작 질구는 슬쩍 미끄러져 지나쳐 버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얄미웠다.
희진은 그의 어깨에 손가락을 푹 박은 채 눈을 흘겼다.
“흐, 으읏, 너, 진짜. 흐!”
“왜. 나 뭐?”
“장난, 치지… 마, 흐응.”
“장난치는 거 아닌데. 나는 늘 너한테 진지해, 희진아.”
“으응…. 그만, 흐읏, 만, 져. 흐응.”
“응, 안 돼. 나는 원래 짐승새끼 변태 새끼라, 원래 이래요. 몰랐어?”
찔끅찔끅, 잔뜩 흘러나온 물을 손가락에 흠뻑 묻혀 음부 전체를 감싸 문질렀다. 어느새 길어진 애무 탓에 점성 짙은 애액은 우윳빛을 띠었다. 음순으로 덮인 여린 안쪽 살을 진득이 비벼 지나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흰 실타래가 하나둘 늘어났다.
“꼭 내 정액 싸 놓은 것 같네.”
빙긋, 한쪽 입매를 말아 올리며 읊조리는 그의 얼굴이 느물느물, 악랄하기 짝 없다.
나쁜 놈.
“하아, 이렇게 계속, 만질 거면… 그냥… 흐응!”
“그냥 뭐.”
“흐으응, 진짜, 차승, 조, 흐으읏.”
“왜 말을 하다 마실까. 그냥 뭐.”
손가락 마디 끝이 벌름대는 구멍 속에 슬쩍 묻혔다 빠져나갔다. 삽입을 기대했던 여린 점막이 파르르 떨리며 성을 냈다.
“하으, 그만, 흐으응, 제발, 하아…!”
“그만 뭐. 제발 뭐. 말을 똑바로 해야 알아듣지. 그만하라고? 제발 그만할까?”
“하아, 아니, 하으으!”
미칠 것 같은 흥분감에 희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의 어깨에 푹 박아 넣은 그녀의 손가락에 날이 서고 있었다.
“하으, 제발, 그냥, 흐으응.”
그가 고개를 숙여 바짝 선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혀끝에서 음탕하게 굴러가는 여린 살갗의 감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답을 재촉하듯 그가 유두를 입에 문 채 낮게 속삭였다.
“원하는 걸 말해 봐. 뭐든 다 해 줄게.”
목소리는 쓸데없이 다정하고 눈빛은 쓸데없이 결백하다. 제 눈앞의 완벽한 피조물이 느른한 목소리로 연약한 저를 회유해 온다. 그 눈빛에 홀려, 희진은 부지불식간 신음했다.
“으응, …해 줘, 흐읏.”
“뭐를. 뭘 해 줘?”
“후으, 해, 넣어, 으으응, 넣으라고, 이 나쁜… 놈아!”
결국 희진이 울먹거리는 신음을 크게 내지르고 나서야 피싯, 웃으며 제 단단한 아랫배를 맞붙였다. 묵직한 흉기는 벌써부터 꺼떡이며 군침을 뱉는다.
“지금 누가 짐승이야?”
의미 없이 붙어 있던 마지막 천 조각마저 간단히 벗겨 낸 그가 희진의 코끝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누가 변태야. 어?”
“하아, 너…! 하으.”
흥분감에 발개진 눈자위로 그를 원망스레 쏘아보았다. 굵직한 선단 끄트머리가 금방이라도 안으로 짓쳐 들 듯 양 음순을 밀며 비비적댔다.
“아. 그럼 변태한테 고분고분 넣어 주세요, 해 보시든지.”
느릿한 그의 손짓에 애가 단 희진이 기어코 그의 목에 바짝 매달리며 입술을 떨었다.
“…흐, 응, 넣어, 주세요.”
일순 번죽이던 그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하고, 사타구니 사이로 묵직한 기둥 하나가 콱 못처럼 박혀 들었다.
“하읏! 응!”
기다렸다는 듯, 한계까지 벌어진 붉은 속살이 고였던 물기를 찌르릅 뱉어 냈다.
“변태 좆이 그렇게 맛있어?”
우둘투둘, 굵다란 자지를 버거워하면서도 기어코 날름 삼켜 먹는 구멍을 썩 기특해하는 질문이었다. 대답 대신, 울음 같은 신음 소리와 난잡하게 찌걱이는 소리가 귓가를 쟁쟁히 울렸다.
“으으, 응…! 흐응!”
제 것이 아닌 것 같은 교성이 터졌다. 결국, 무섭게 가속하는 쾌감에 희진은 질끈 눈을 감았다. 뿌리까지 깊게 찔러 박힌 기둥이 울근대며 내벽을 까득 긁어 댔다. 빈틈 하나 없이 맞물린 교합지가 꼭 불구덩이처럼 뜨거웠다.
“눈 떠.”
“하으, 읏!”
“나 봐.”
허리 아래, 사나운 추삽질과 달리 이마를 보듬는 손길과 속삭이는 목소리는 느른하기만 했다.
“흐으응…! 후으, 응!”
“변태 좀 봐 봐, 희진아.”
파르르, 웃으며 떨리는 눈꺼풀을 말아 올렸다. 초점 없이 마주친 두 개의 눈동자가 같은 박자로 흔들렸다. 저속한 포만감에 사로잡힌 눈자위가 촉촉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진심. 더 확인할 것도 없을 것 같은 그 마음.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고백이었다.
“사랑해.”
그런데 막상 그의 입술로, 그의 목소리로, 그의 눈빛으로 듣고 나니 주체 못 할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응?”
유치하단 걸 알면서도 못 들은 체, 그를 보며 앙큼을 떨었다.
“사랑해.”
그 또한 모르는 척 고백을 반복해 왔다.
“사랑해.”
주문처럼.
“사랑해.”
그대로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바짝 끌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이 맞닿았고, 교태로운 소리는 잇새로 꿀꺽꿀꺽 사그라들었다.
이윽고 뜨거운 절정이 몰아닥쳤다.
진짜, 고백이었다.
│에필로그
정신없고 소란스러운 간이 대기실 한구석. ‘저항의 힙합 전사’ 콘셉트로 차려입은 한 무리의 댄스 팀이 공연을 앞두고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도 마지막 동선을 맞춰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단 한 사람. 홀로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앉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차승조를 제외한 채.
“인마. 넌 아무리 그래도 무대 올라가기 직전에도 연습을 안 하면 어쩌려고 그래?”
참다못한 졸업반 선배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다고 눈 하나 깜짝할 성격도 아닌 그였지만.
“하여튼 진짜, 재수 없어.”
선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회장인 그가 그렇게 재수 없어 죽겠는데도 차승조를 내쫓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재정적으로 풍족한 동아리 운영이 가능해진 건 물론이었고, 가입 회원이 없어 폐쇄 위기였던 동아리에 가입 서류가 물밀듯 밀려들었다. 물론, 죄 여자들이긴 했지만.
그러나 사실 그런 자잘한 이유 말고, 그를 내쫓지 못한 진짜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차승조는 춤을 잘 췄다. 동아리 내 어느 누구보다도.
무대만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기가 막히게 관객들을 홀려 버리고야 마는, 독보적 댄스 실력자. 동아리의 에이스가 바로 차승조였다.
“자, 다음! 힙합 댄스 동아리 ‘빠삐용’! 준비해 주세요!”
용달차 빛을 닮은 시퍼런 천막이 훅 걷히고, 스태프 목걸이를 건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질러 왔다. 준비하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희진은 그제야 제 앞에 와서는 그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선글라스는 좀 벗지?”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무대 조명이 환하긴 하다만, 이 밤에 도대체 선글라스가 웬 말인가.
“싫어. 얼굴 팔리는 거 딱 질색이야.”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재벌 사채 빚 내는 소리인지…? 얼굴 팔리는 게 싫으면 축제 무대에 서질 말든가.
“야. 선글라스 낀게 더 튀거든?”
“어차피 난 눈에 띄게 돼 있어. 워낙 독보적이잖아. 피지컬이든, 춤이든.”
앞뒤 안 맞는 말이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들리기도 하는구나 싶어, 희진은 그냥 체념했다. 사실 반박할 수 없는 소리이기도 해서였다.
이렇게 껄렁껄렁, 제멋대로 굴기는 해도 그가 얼마나 힙합에 진심인지, 그녀는 잘 알았다.
제대로 연습 한 번 안 하는 것 같아 보여도 매일 밤 저를 불러내 사람을 그토록 닦달하고 괴롭혔던 그다. 동아리 활동 하자고 남몰래 개인 과외까지 받는 인간은 단언컨대 차승조 하나일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희진은 함께 희생된 어린양일 뿐이었다. 왜 원하지도 않는 댄스 과외를 함께 받아야만 하는 건지. 정말로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들 눈엔 더럽게 잘나 재수 없는 재벌 3세. 천하의 호색한이자 제멋대로 인생 사는 팔자 좋은 난봉꾼, 따위로 비치겠지만, 그녀는 알았다. 진짜 차승조의 실체를. 돈 것도 보통 돈 게 아닌 또라이라는 사실 말이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저 외엔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지만.
“끼약!”
‘힙합 빠삐용’이 내거는 간판스타답게 그가 먼저 무대에 올랐다. 독무였다.
시끄러운 함성 소리와 함께 가슴을 울리는 비트가 뒤섞여 퍼졌다. 우월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격렬하고 파워풀한 춤사위에도, 이어지는 동작들 하나하나는 물 흐르듯 부드럽고 섬세했다. 수려하게 움직이는 몸의 근육들은 또 어떠한가.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넋이 나갈 만큼 매력적이었다. 완벽한 댄스였다.
그 무대의 주인공은 온전히 차승조였다. 그래. 분명히 그랬었다.
희진이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댄스는 한층 더 강력했다. 관객들로 하여금 앞선 모든 공연의 기억을 싹 잊게 만들었다. 뚝딱거리며 움직이는 관절의 뻣뻣함과 비트를 쪼개며 엇박으로 타고 노는 특유의 리듬감은 그녀만이 가진 유니크한 능력이었다. 타고난 몸치의 재능으로, 댄스의 새 장르를 개척한 것이랄까.
참으로 희귀한 광경에, 먼저 내려와 있던 승조는 기막힌 헛숨을 내쉬었다.
“뭘 봐? 왜. 이 누나가 오늘 너무 잘 춰서 넋이 나갔냐?”
스스로 만족한 무대였다는 듯 샐쭉하게 웃는 그녀의 입꼬리가 앙증맞게 말려 올라갔다.
참으로 완벽한 축제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
* * *
동아리들의 무대가 끝나고, 축제는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승조와 희진은 복잡한 운동장을 벗어나, 사회대 뒤편의 조용한 잔디밭에 가서 맥주 한 캔씩을 더 나눠 마실 참이었다. 그 잔디밭이 불꽃놀이 명당이라는 건 재작년 축제 때 희진이 우연히 알아낸 둘만의 비밀이었다.
“매년 보는 건데 안 보고 갈 순 없지.”
털썩, 잔디밭에 주저앉은 희진이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은 까맣고 조용한 밤하늘엔, 드문드문 반짝이는 별 몇 개만 보일 뿐이었다.
“매년 보는 걸 굳이 올해도 또 봐야겠냐.”
투덜대면서도 옆에 앉는 승조의 손이 바빴다. 사 들고 온 맥주 캔과 마른오징어를 희진의 양손에 하나씩 쥐여 주느라.
“당연하지. 넌 하늘에 터지는 게 폭죽으로 보이디?”
“뭔데, 그럼.”
“내 피 같은 등록금이 터지는 거거든. 팡팡.”
승조는 핏,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공연 잘 마치니까 기분은 좋네. 이번에 나 춤 실력 완전 많이 늘었지 않아?”
저도 모르게 오물조물 움직이는 그 입술을 빤히 바라봤다. 그새 제게 뻔뻔함을 배웠나 싶어서.
“나 갑자기 궁금한게 있는데.”
“뭔데.”
“넌 그 많은 동아리 중에 왜 하필 힙합 동아리를 골랐냐?”
새삼스레 진지하게 묻는 그에게, 희진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했다.
“금지된 자유에 대한 갈망, 이었달까?”
“아. 그래서….”
웃음을 참느라 씰룩대는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네 춤이 그렇게 자유로운 거구나.”
희진은 그 번지르르한 얼굴을 힘껏 흘겼다. 하여튼 하루라도 장난을 안치고 절 놀리지 않으면 못 견디는 놈이었다.
입을 삐죽이며 맥주를 들이켜는데, 불쑥 장미꽃 향이 코끝에 훅, 스며들었다.
“이거.”
“뭐야?”
흘긋,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 전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여학생 하나가 수줍게 그 앞에 내밀고 사라진 꽃다발이었다.
“네가 갖고 가.”
음영이 깊게 드리워진 눈동자가 예고도 없이 저를 마주해 왔다. 덜컥 이상한 감정이 치밀어 맥주 캔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꽃 좋아하잖아, 너.”
“웃겨. 자기가 선물받은 걸 왜 날 줘?”
괜스레 밀어내며 시선을 피했다.
“진짜 안 가져가?”
“야, 준 사람 성의가 있지 내가 이걸 어떻게….”
“싫음 버리고.”
“아, 야!”
스윽, 멀어지는 꽃다발을 다급히 잡아 쥐었다. 희진을 내려다보는 그의 두툼한 입매가 설핏 말려 올라갔다.
“네가 준 꽃 누가 버리면 좋겠어? 왜 사람 마음을 그렇게 무시해?”
“너처럼 허허실실, 거절 못 해서 다 받아 주는 것보단 나아. 그래야 상대도 빨리 마음을 접을 거 아냐.”
“하여튼 차승조, 진짜 못돼 처먹었어. 나니까 네 성질머리 다 참고 너랑 놀아 주지. 어휴….”
“허.”
승조는 기막히다는 듯 헛숨을 내뱉었다.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나 아니면 널 누가 챙겨? 맨날 여기저기 물건 죄 흘리고 다니고, 넘어지고, 다치고, 우당탕탕.”
“야, 내가 언제 또…!”
인정할 수 없는 발언에 반박하려는 순간.
팡, 파팡.
커다란 소리와 함께 하늘 위, 새빨간 불꽃이 높이 뻗어 올라갔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뒤로 꺾였다. 올해의 불꽃놀이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팡, 팡. 쉴 새 없이 폭죽이 터졌다. 하나둘, 쏘아 올려진 불꽃들이 어느새 형형색색으로 까만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눈이 부셨다.
“우와.”
희진이 토끼 눈을 뜨며 감탄했다. 입술까지 벌린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대체 이게 뭐라고.
승조는 도리어 그런 희진이 신기해 웃음이 났다. 분명 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타입인데 그게 또 싫지는 않았다. 자꾸 보게 되고, 보고 있으면 자꾸 웃음이 나는 그런.
시선을 느낀 건지, 하늘만 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 왔다. 말간 얼굴이 오롯이 저를 향했다. 하얗고 해사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그렇게 좋냐?”
저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둥글고 새카만 눈동자에 반짝반짝, 예쁜 불빛이 어렸다.
“응. 너무 좋아.”
주어 없는 고백을 들으며,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화려하게 일렁이는 불꽃 탓인지, 심장께가 간질간질, 이상한 기분이었다.
적당히 서늘한 가을밤의 공기. 불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폭죽 소리. 그리고 코끝을 자극하는 누군가의 달큼한 향내까지.
모든 게 더없이 완벽한 밤이었다.
“뭐. 예쁘긴 하네.”
다시금 제 옆의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