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ng Transcript RAW novel - Chapter 76
16장. 중급 퀘스트(1)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자는 비참하게도 양팔과 한쪽 다리가 잘린 채로 금방까지 검을 맞대고 있었던 적에게 구걸하고 있었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이겠지만. 토막이 난 남자의 손발은 마네킹처럼 깔끔했다. 다행히 가상세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남자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이라는 이름의 이 가상세계는, 천문학적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예거 아머를 우승상품으로 내걸고 있다. 국가 혹은 국제조직에서 그걸 노리고 수천억대의 자금을 투자해서 우승을 노리고 있는 와중이다.
그리고 구성원의 대다수가 도퍼로 구성되어있는 국제범죄조직 그레이의 일원인 이 남자는 초급 퀘스트를 하러 오는 플레이어를 방해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임무에 이제 단순작업처럼 느껴졌을 때. 평범한 검을 휘두르는 플레이어에게 잡혀서 이 꼴이었다.
그 플레이어는 자신이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했다.
“그러니까 유령. 상급 퀘스트로 향하는 입구가 있는 게이트가 어디야?”
단도직입. 플레이어의 질문에 유령이란 이름의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는 진이 재차 움찔했다.
“어, 어이. 그걸 내가 쉽게 알려줄 수 있을 거 같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플레이어의 옆에 있던 샤기컷의 사내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리더. 협상하고 싶어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그러게요. 평화적인 방법으로 물어보고 싶었는데. 우리가 여러 가지 편의도 봐주기로 했잖아요. 그래도. 찔러본 거였는데 알긴 아나 봐요?”
진은 리더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의 말에 다시 한 번 움찔했다.
‘이미 이쪽의 정보를 쥐고 흔든 게 아니었단 말이야? 임무실패를 숨겨주는 제안을 할 정도로 이쪽을 배려해준 게 이쪽을 구슬려서 고급정보를 캐내려고 한 걸 텐데.’
진은 당최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1234, 아니…. 리더. 그건 내가 좋은 방법이 있는데 한번 시도해볼까?”
그때 뒤쪽에서 6대4 가르마를 한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말하고는 진을 쳐다봤는데, 아까도 그랬지만 진은 왠지 모르게 그 사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오싹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무슨 방법입니까? 인텔파이브님.”
1234, 강현이 인텔파이브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인펠파이브가 씩 웃었다. 그걸 본 진은 더욱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장 원시적인 게 가장 효율적일 때도 있는 법이지.”
*****
“으햐하하하학.”
거대한 통로를 웃음소리가 매웠다. 소리의 주인은 진이었다. 사지 중에 남은 곳이라곤 다리 한 짝밖에 없었는데 인텔파이브가 어디서 남은 발의 신발을 벗겨서는 쉴 새 없이 간질이고 있었다.
덕분에 진은 비명 섞인 웃음을 지르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강현과 수지 일행은 모르지만. 아까 혼자서 수지네 일행을 비웃을 때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강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인텔파이브가 하는 행위를 지켜봤다. 손가락으로 간질거리고, 석궁의 볼트 끝으로 간질거리고, 후하고 불어대고 벌에 별짓을 다 했다.
강현은 혹시나 인텔파이브가 경찰 특유의 윽박지르는 강압수사 같은 걸 하려나 싶었는데 예상 밖이었다. 대신 효과는 좋았다.
“그, 그만. 알았어. 말할 테니까. 으야아햐하하학.”
그 뒤로 진으로부터 정보를 캐내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조금 진정한 진은 이것저것 묻기 전에 알아서 나불거렸으니까. 쓸데없는 말을 빼고 요약하자면.
교대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상급 퀘스트를 향하는 던전입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긴 했다. 정확하지 않지만. F 게이트. 이유는 다른 게이트에 비해서 몬스터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강현은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혼자서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다닐 때 딱 E 게이트까지 찾았던 터였다. 문제는 또 있었다. 강현이 확인한 바로는 게이트 안의 필드에는 몬스터들이 불규칙적으로 있었는데, 그걸 피하면서 다니더라도 던전 입구 근처를 지키고 있는 몬스터들이 서넛이 몰려있었고. 그 몬스터들의 보스 격인 몬스터가 한 마리 더 있었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혼자서는 던전입구를 열어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던 터였다.
“그럼 됐지? 얼른 풀어줘. 아니 얼른 죽여줘. 사망 페널티로 이거 복구하게.”
진이 자신의 잘린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호소했다. 사망하면 장비가 찢긴 채로 게이트 앞으로 이동될 터였다. 강현은 그런 진의 재촉을 무시하고 재차 물었다.
“혹시 그 F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가 어느 정도인지 들었어?”
“몰라몰라. 얼른 죽여달라니까.”
“저기 인텔파이브님?”
“아, 정말 모른다니까. 듣기로는 적어도 두 배 이상은 된다고 했어.”
“그래…?”
강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3, 4마리의 몬스터와 함께인 보스 몬스터. 당장에는 역량이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팀원들이 성장한 다음이라면 이 정도 숫자로도 몬스터 한두 마리를 적당히 유인하면서 어떻게든 사냥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거기에 두 배라면 지금의 팀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리더?”
강현이 생각에 잠긴 듯 보이자. 의아한 표정으로 팀원들이 쳐다봤다. 그 기묘한 기류가 답답했는지. 진이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볼일 끝났으면. 얼른 죽여줘. 심심하게 이렇게 내버려두지 마….”
진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절명했다. 강현이 진의 심장 쪽을 노리고 칼을 깊숙이 찔렀기 때문이다. 잠시 후 진의 사체가 천천히 투명해지면서 사라졌다.
“저기. 퍼스터영님.”
“네.”
강현은 채영을 불렀다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혹시 팀원을 더 지원받을 순 없나요?”
그 말에 채영이 대답하기 전에 주위가 먼저 소란스러워졌다.
“어이어이. 리더. 이제 슬슬 잘해보려고 하는데. 왜 그래?”
“그래. 어차피 지금 지원인원을 더 받기도 힘들 거야. 예산도 예산이고.”
“우리 능력도 의심받을지도 몰라. 좀 더 열심히 할 때니까 어떻게든 해보자. 리더?”
남자 셋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현을 만류했다. 강현이 채영을 쳐다보다. 채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분들의 말씀대로 추가 지원은 받기 힘든 상태입니다.”
“네. 그럼 어쩔 수 없죠.”
강현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뒤에서 잠자코 보고 있던 수지가 강현을 향해 물었다.
“그 정도로 힘든 일인 거심? 우리끼리 파이팅해서 잘해보면 되는 거 아니삼?”
수지의 말에 남자 셋이 동조했다.
“역시 레드파이어님.”
“레드파이어님 말씀대로죠.”
“약한 모습 보일때가 아닙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강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분위기를 바꿔서 손뼉을 짝하고 쳤다.
“레드파이어님 말씀대로 안될 건 없죠. 열심히 해봅시다. 대신 더욱 빡세게 수련하셔야 해요. 각자 못해도 3등급씩은 되어야 하니까요.”
강현의 말에 남자 셋이 앓는 소리를 했다.
“뭐 3등급? 지금 우리 등급이 몇이지?”
“이제 겨우 8등급이잖아. 던전하나 클리어하고 1등급 올랐는데 어느 세월에….”
“내 듣기로는 이 등급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더디게 올라간다고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봐줄 수는 없었다.
“제가 지금 2등급이니. 제 발목 안 잡으시려면 못해도 3등급은 되어야 하니까요. 그때쯤이면 제가 1등급에 가까워질 테니까. 2등급이 되시면 좋겠지만. 역시 열흘 안에 올리시는 건 무리겠죠?”
그런 말을 하면서 강현은 시선을 수지에게로 돌렸다. 수지는 강현이 마지막에 말한 “무리겠죠.”라는 말을 몇십 번 곱씹더니만. 이내 고개를 번쩍 들고 말했다.
“할수있삼! 아니 철야를 해서라도 해낼것이심!”
그렇게 말하는 수지의 눈빛은 투쟁심으로 불탔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레드파이어님도 힘드시겠지만. 이 세분 수련 부탁합니다. 아무래도 저보다 레드파이어님을 잘 따르네요.”
“이번에야말로 맡겨두삼.”
수지는 주먹을 쥐고 가슴팍을 쳤다. 풍성해진 가슴팍이라 의기를 보여주기에는 야릇한 소리가 났지만. 강현은 믿음직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해보자. 여자도 저렇게 한다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람?”
“사나이로 태어나서 이 정도야 껌이지.”
“그래 여자한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봅시다. 아자 아자.”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였다. 강현이 살짝 노려본 거긴 한데 놀랄 정도의 변화라서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문제는 기합 충전한 세 남자를 보고 더욱 의지를 불태우는 수지였다.
“남자라서 여자가 하니까 한다고 했심? 좋삼! 그럼 대결이삼!”
“대결?”
“호, 혹시. 그럼 내기하는 건가?”
빅사이즈의 말에 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기도 좋심. 제일 먼저 2등급 달성하는 쪽이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기로 하삼.”
“오!”
수지의 말에 남자들이 손을 모아 들어 올리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강현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저런 식으로라도 의욕이 생긴다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모른척하기로 했다.
한편 저 소란의 외곽에 있던 채영이 강현더러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보다 1234님. 더 지원이 안 되는데 혹시 해결책은 있으신가요?”
“알아봐야죠. 대신에 여러분이 등급 올리시는 동안 혼자서 또 바쁘겠네요.”
게임이라면 어느 상황에서든 공략법은 존재하는 법이다. 강현은 이미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아직 사전 조사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정공법이 안된다면. 계략으로 돌파해야겠지.’
강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참 열의를 태우고 잇던 스타로드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아참. 아까 그 유령 녀석 커버해주러 가야지.”
“그 녀석 내버려 두면 안 돼?”
빅사이즈의 말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유령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우리를 위해서라도 임무실패를 노출해선 안 됩니다.”
“하긴 그 가벼운 입을 보면 누구한테 털렸는지 금방 나불나불 되겠지.”
이해가 된다는 듯 인텔파이브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현은 그 말에 빙긋 웃었다.
“그럼 제가 가볼 테니까요. 여러분은 열렙하세요!”
“오. 리더 고생해.”
게이트 밖으로 나가는 강현을 보고 사람들이 반겨줬다. 처음 던전에 들어올 때랑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렇게 강현이 사라지고 나서 남자들이 정색하고는 서로 쳐다봤다.
“근데, 열렙이 뭐지?”
*****
“다행히 게이트 앞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 그치?”
그렇게 말하며 강현은 검은 망토를 둘둘 싸매고 있는 유령, 진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은 인텔파이브의 고문(?)의 후유증 때문인지 멍하게 있었다.
강현은 거기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도 너희 작품이지? 극 초반부터 퀘스트를 방해하고 있으니까. 대부분 호기심에 접속한 일반인이라면 금방 때려치우지. 접속 캡슐이 환불 가능할 때 말이야.”
여전히 진은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강현이 입을 다물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레이에서 이렇게 통제하는 이유가 당최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강현은 짐작 가는 바가 있음에도 진과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모르는척했다. 멍하게 강현의 말을 듣고만 있던 진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야. 돈 때문이지. 그것도 모르냐?”
진은 강현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강현은 개의치 않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래?”
“당연하지. 지금 나라별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자금을 얼마나 투입하고 있는데. 너 같은 녀석은 상상도 못 할 금액일 거야.”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지금 일본팀이랑 중국팀이랑 얼마나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지 알아? 일본팀도 A, B팀으로 두 팀이나 있지만. 중국팀은 총 7개 팀이나 된다더라. 완전 인해전술이 따로 없지. 그뿐만 아니라….”
강현의 질문에 진은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일단 강현이 그리는 그림의 첫 단계로 정보수집이었다. 물론, 이 수다쟁이의 말을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정보를 근거로 해서 점차 정보를 모아나가야 할 터였다.
‘그럼 단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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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상 지방에 내려와 있어 외부에서 모바일로 등록합니다.
오류가 있더라도 양해바랍니다.ㅠㅠ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