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01)
괴식식당-101화(101/613)
101화. 한 놈만 걸려라 (2)
사람들은 등수 매기기를 좋아한다.
세계 3대 도시, 세계 3대 영화제, 세계 3대 뭐시기, 뭐시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전문성이 있는 기관에서 조사, 연구, 집계한 등수가 아니다.
그냥 호사가들이 객관성과 논리 없이 등수 놀이 하는 거니까.
그런 와중에 세계 3대 요리는 그나마 공신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대중적으로 납득은 하지 않는가?
“세계 3대 요리하면 일단은 중국이지.”
“중국, 그 동양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나라 말이군요?”
“중국을 알고 있나?”
당연한 말이지만, 올림포스의 신들은 아주 예전에는 지구에 있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리스 쪽이니까 중국은 꽤 멀지 않나?
아테나가 어깨를 펴며 말했다.
“가봤어요. 빛나는 마차를 타고 가면 되지요.”
“아, 빛나는 마차.”
하늘을 달리는 빛나는 마차는 비행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 중국을 알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테이블을 세팅하며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은 토지만큼이나 많은 식재료가 있고, 바퀴 달린 거 빼고는 다 먹는 곳이지. 도전 정신 넘치는 중국인들은 뭐든지 다 먹어서 시험해 보니까.”
‘뭐든지 다 먹여 버리겠다!’라고 들리는 건 기분 탓인가?
아테나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중화요리도 꽤 자신 있어.”
그래서 칼도 중화식도를 쓰고 있다.
냄비도 중화 냄비인 웍을 쓰고 있고, 불 맛을 만들어내는 건 특기 중의 특기다.
아테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할 요리는 중화요리인가요?”
“아니. 요즘은 매너리즘이 심해져서 하던 걸 하는 건 재미가 없더라고.”
“…….”
남에게 대접할 때 실험하지 마라.
아테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까 이건 대접해 주는 자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실험의 장, 내지는 처형장이다.
그야 아쉬운 건 이쪽이고, 승우 쪽은 아쉬울 거 하나도 없는 입장이니까!
“어쨌든 한식과 중식을 기반으로 해서 테라의 괴식을 만드는 건 이제 조금 질렸단 말이야.”
“그렇다는 건 다른 세계 2대 요리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겠다는 거군요.”
“역시 머리가 좋아. 그렇지. 나머지 세계 2대 요리 중 하나는 일단 프랑스야.”
“프랑스…….”
아테나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앓는 소리를 냈다.
“혁명의 나라로군요.”
“프랑스도 가봤나?”
“가본 적은 없지만 당신의 친우인 테오가 입이 아프도록 말하고 다니던 곳 아닙니까?”
“괜히 말해주긴 했지……. 어쨌든 간에 프랑스 요리는 훌륭하지. 요리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나라야.”
“다른 하나는요?”
궁금한 건 못 참겠다는 건가.
과연 지혜의 여신다운 학구열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건 좀 이야기가 분분하지. 프랑스와 중국은 독보적인데, 3번째는 다들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거든. 대표적으로 터키,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많네요.”
“응. 그래서 오늘 할 요리는.”
아테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의 흐름을 보건대 먹을 요리는.
“프랑스 요리다.”
혁명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예술적인 요리.
그 요리에 테라의 괴식을 도입한다.
얼마나 창조적이며 사람을 괴롭히는 요리가 나올지.
아테나는 벌써부터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풀코스로 대접할 건 아니니까. 딱 하나만 만들도록 하지.”
그건 정말 불행 중 다행인 소리였다.
* * *
승우는 괴식을 만들 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만든 괴식은 인간이 버틸 수 없는 요리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을 쏟는다면 그만큼 효과가 좋아지겠지만 부작용도 늘어난다.
최악의 경우는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최대한 억제하고 배려를 해서 먹을 수 있는 수준,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평준화하는 노력을 구상 단계에서부터 한다.
하지만 이번에 먹을 대상은 무려 신.
인간이 먹을 게 아니니까.
“참아줄 필요는 없지.”
예전에 친구들에게 해주던 것처럼 전력을 다한 요리를 해도 된다.
승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마석을 꺼냈다.
마석 오븐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다.
오븐을 예열시키는 건 생각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보통은 예열과 온도 조절만으로도 40분 이상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좋은 마석 오븐.
그리고 좋은 마석이 있다면 일은 쉬워진다.
질 좋은 오우거 로드의 마석이 던져지고 오븐에 불이 들어왔다.
그럼 이제부터는 요리 시간이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질 좋은 기름을 둘렀다.
아테나는 그 기름이 부덕한 몹쓸 왕들이 즐겨 사용하는 프로시아의 꽃 기름인 걸 알아보았다.
그래서 조금 당황했다.
‘저 기름은 분명 맛을 좋게 해주지 않던가?’
테라에서 맛있는 음식은 금물.
저것은 음식을 맛있게 해주니 떳떳한 기름은 아니었다.
저 기름을 사용한다는 건?
‘맛있는 요리를 해줄 생각인가?’
아테나의 상념은 치익- 하고 고기가 익는 소리에 끊어졌다.
지글지글하며 고기가 익고 있었다.
굉장히 맛있는 냄새가 풍기고 입가에 침이 고인다.
아는 고기 같은데……?
“그건 어떤 고기입니까? 냄새가 매우 좋군요.”
“이올라비스 돼지.”
“!?”
승우는 얼마 전부터 게르니아에서 이올라비스 돼지를 몇 마리 정도 키우고 있었다.
뭐, 사실 승우가 직접 하는 것은 없고 나비가 도맡아서 키우고 있다는 게 정답.
이 이올라비스 돼지는 테라에 있는 알베르트가 기르던 것으로, 가이아교와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처분이 필요해진 것 중 하나였다.
대미궁에서 어느 정도 영업권이 생겼다고는 해도 이올라비스는 금기 중의 금기!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명목 이전에 신들이 지정한 금기 중 하나이다.
그래서 처분을 고민하던 중 승우에게 토스한 것이다.
부랴부랴 운송된 이올라비스들은 승우의 게르니아에서 열심히 사육되는 중이다.
“신과 함께 하는 식사인데, 기왕이면 좋은 걸 대접해 줘야지.”
승우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자극되어 있던 아테나의 침샘이다.
그런데 재료를 알고 나니 어쩐지 식욕이 더 돈다.
아테나의 입가가 실룩였다.
그러고 보면 이건 최고의 기회기도 했다.
괴식의 신이 직접해 주는 요리다.
처형장이거나 실험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진짜 좋은 의미로 대접해 주는 게 아닐까?
‘그래. 나를 가지고 실험을 하지는 않겠지. 말 그대로 대접해 주는 거였구나.’
아테나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녀의 걱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테나는 승우가 소실되었다고 전해지는 헤스티아의 6성 요리.
라그나로크의 요리법을 알고 있으며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완성된 라그나로크를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지만…….
이리저리 대접해 준다고 하고 먹여서 죽이려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도 했다.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살았다.’
아테나가 안도하거나 말거나 승우는 요리를 이어갔다.
이올라비스 돼지를 적당히 구워서 익혔다.
이건 이대로 먹어도 맛있는 돼지고기 구이다.
소금과 후추만 뿌린 후에 줘도 괜찮겠지.
아주 맛있을 거다.
‘하지만 그래서야 그냥 맛있는 돼지구이지.’
승우는 다음 행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테나의 눈을 피해서 새 고기를 꺼냈다.
그리고 꺼낸 고기를 재빨리 다지고 오븐에서 각종 향초와 함께 구워준다.
이러면 냄새와 맛을 가릴 수 있다.
그 동작이 너무 재빨라 아테나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올라비스 돼지고기가 익어가는 향기에 취한 탓도 있었다.
승우가 이올라비스 돼지고기와 다른 재료들을 준비할 동안 오븐의 고기도 한껏 향을 취한 채 구워졌다.
그렇게 두 개의 고기가 모두 준비됐다.
이올라비스 돼지고기와 이름 모를 고기.
한쪽은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은 고기였고, 한쪽은 각종 향초와 비법으로 맛을 극대화시킨 고기였다.
“그 사각형 틀은 뭡니까?”
아테나가 승우가 들고 있는 네모난 틀을 가리켰다.
“테린 틀, 테린을 만들 때 쓰지.”
“테린이라, 테라 같아서 친근감이 드는 이름이네요.”
“프랑스식 가정요리야. 한식으로 치자면 편육인데…….”
아테나가 편육을 알려나?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눌러서 단단하게 다진 고기 말이군요.”
“알고 있다면 설명이 쉽지.”
때로는 으깬 생선을, 때로는 잘게 썬 고기를 그릇이나 틀에 담는다.
그리고 눌러서 단단히 다져지게 한 후에 그것을 차갑게 식혀서 먹는다.
방식도 원리도 편육과 매우 흡사했다.
생선을 쓸 수도 있다는 게 차이점이지만 이번에 승우는 고기만 썼지 생선은 쓰지 않았다.
“맛있겠네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승우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채소가 좋아, 아니면 고기가 좋아?”
“채소입니다.”
“음, 그럼 마무리는 채소로 해야겠군.”
아테나가 호기심을 가지고 승우를 지켜봤다.
그러는 동안 승우는 테린 틀에 나뭇잎을 넣고 바닥을 깔았다.
“채소라는 게 그 나뭇잎은 아니겠죠?”
“맞아. 이건 이대로 먹어도 좋아. 신목의 나뭇잎이니까.”
“신목……?”
“지구의 것도 아니고 테라의 것도 아닌 나무야. 운 좋게 구할 수 있었는데, 잎이 아주 상쾌하고 괜찮더라고.”
신목의 나뭇잎은 상당히 크고 평평했다.
그래서 적당한 잘라낼 필요가 있었다.
나뭇잎을 손질하고 그 위로 고기를 올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름 모를 향초를 뿌렸다.
고기를 한층 깔고, 위에는 향초를.
그리고 다시 고기를 깔고 다른 향초를.
층층이 두 가지의 고기와 향초가 쌓여갔다.
반투명한 테린 틀 안쪽의 모습이 비쳐보이자 아테나가 말했다.
“지층 같군요.”
그녀의 눈에는 이 테린이라는 요리의 모습이 지층 단면도 같아 보였다.
“누가 지혜의 신 아니랄까 봐, 참 맛 떨어지는 비유를 하는구만.”
“그럼 뭐라고 말해야 됩니까?”
“무지개나 오로라 같은 품위 있는 비유가 있잖아.”
색이 다른 두 고기와 층마다 다른 색의 향초, 확실히 무지개처럼 보이긴 했다.
승우는 그렇게 켜켜이 쌓아올린 테린 틀 위에 커다란 마석을 올렸다.
누름돌로 쓰이는 거였지만 보통의 마석이 아니었다.
마석은 보통 몬스터의 마나코어를 말하는데,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서는 마석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가령 용.
용의 심장이라면 마석이 아니라, 드래곤 하트라고 부른다.
아테나의 눈이 커졌다.
“카, 카일레우스의 심장?!”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 잘도 아는군.”
“이 정도로 마력이 응축된 드래곤 하트는 둘도 없으니까요.”
초마왕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던 엘더 드래곤이 승우에게 죽은 건 알았지만 설마 드래곤 하트까지 가지고 있을 줄이야.
아테나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카일레우스의 심장을 봤다.
“엘더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를 누름돌로 쓰다니…….”
“진하게 마력도 배어들 테니까 요리의 효과도 오를 거야.”
이제 잘 달궈진 오븐에 테린을 넣으면 된다.
그러나 이 녀석을 그냥 넣으면 안 된다.
우선 오븐 판에 물을 붓고 그 위에 갖은 재료를 담은 틀을 얹는 것.
‘프랑스 요리는 손이 많이 가긴 해.’
오븐에 그냥 구워 버리면 육즙이 빠져 버린다.
그러니까 바로 중탕을 한다.
오븐에서 중탕이 모두 완료된다면, 이것을 꺼내 천천히 식혀야 한다.
“피차 바쁜 몸이니까 마법을 쓰도록 하지.”
천천히 식혀야 제대로 된 맛이 나지만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럴 때 쓰이는 것이 바로 비장의 48가지 요리마법이다.
마법으로 저온숙성마저 가능하니 말이다.
“끝나 가니까 테이블에 앉아 있으라고.”
“예…….”
올 게 왔구나.
아테나는 각오를 마쳤다.
그래도 심장이 살짝 뛰었다.
이건 기대인가, 공포인가.
길게 생각할 건 없었다.
이올라비스 돼지를 사용한 요리다.
저걸로는 맛없는 요리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아테나는 안심하고 기대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럼 마무리군.”
누름돌로 사용한 카일레우스의 심장을 치우고 테린 틀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는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테린이 있었다.
승우는 테린을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올렸다.
층층이 다른 색이 보이는 무지개의 테린은 편육이었지만 마치 케이크처럼 보였다.
이게 바로 프랑스 음식의 특징인데, 눈으로 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접시에 올릴 때도 그냥 올리지 않는다.
최대한 요리를 아름답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여러 손길이 부가된다.
이를 테면 색이 다른 소스들은 물감이다.
소스로 그림과 문양을 그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청경채 같이 색이 강렬한 야채를 사용해서 그라데이션 효과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눈으로도 보고 즐겨야 진정한 프랑스 요리!
승우는 세심하게 마무리 작업을 마친 후 허리를 폈다.
“역시 프랑스 요리는 즐겁군.”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리고 난 후의 뿌듯함이라고 할까.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아테나의 앞에 접시가 놓여졌다.
“그럼 먹자.”
처음에 겁먹었던 기색은 이제 없다.
아테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에는…….’
매우 훌륭하다.
일곱 겹의 테린이 무지개의 배색으로 아름답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테린을 놓은 접시를 캔버스 삼아 소스로 빛나는 방패를 그려 놨다.
‘빛나는 방패를 알고 있다니…….’
아테나의 상징물은 빛나는 방패였는데 그것은 전쟁의 신이나 가질 법한 상징이었다.
실제로 전쟁의 신 아레스의 상징은 빛나는 창이다.
그녀와 아레스는 신명이 없던 시절, 전쟁의 신의 자리를 두고 다투던 사이였다.
서로 자신이 전쟁의 신에 걸맞다고 주장했지만, 제우스는 아들인 아레스를 지명했다.
그리고 잘 유지하던 아레스의 신명이, 테라에서 연일 패배를 당하며 결국 자격 박탈을 당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승우는 그 사연을 알고 있다는 듯이 빛의 방패를 그려줬다.
그 배려에.
“잘 먹겠습니다.”
아테나는 경계심을 지우고 스푼을 들었다.
그래서 몰랐다.
승우의 요리 혼에 불이 붙으면 어떤 요리가 나오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