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1)
괴식식당-11화(11/613)
011화. 김치찌개 (2)
돼지고기의 앞다리살.
전지라고 불리는 이 부위는 다른 부위에 비해서 확실히 싸다.
삼겹살을 아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싼 가격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는 부위다.
돼지가 걸어 다니면서 가장 많은 운동을 하는 곳이다 보니 조금 질긴 감은 있지만, 그 때문에 확실하게 깊은 맛이 난다.
‘볶으면 확실히 맛있어지는 고기지.’
승우가 살살 앞다리살을 볶기 시작했다.
기름진 부위다 보니 돼지기름이 웍 중앙에 고였다.
이 기름, 이 기름에 김치를 볶는 거다.
다만 꼭 같이 넣어야 하는 게 있다.
“된장을 넣어야 돼. 돼지고기는 조금 누린내가 나거든.”
“냥. 그렇구냐.”
아주 약간의 된장이 돼지고기의 누린 맛을 잡아준다.
“술로 잡는 경우도 있고, 사실 대부분은 누린 맛을 신경 안 써. 김치에는 마늘이 엄청 들어가는데 그 마늘이 누린 맛을 잡아주니까.”
“하지만 민감한 사람들을 위해서 된장을 넣는 거구냐.”
“그렇지. 술은 종교적으로 금지된 사람이 있고, 김치에 마늘을 덜 쓰는 경우도 있으니까.”
승우가 좋아하는 김치는 마늘을 덜 넣은 것이다.
당연히 가게에서 사용하는 김치도 그렇다.
돼지고기 기름을 머금은 김치가 볶아지며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겼다.
여기에 잘 우러난 육수를 붓고 양파와 약간의 설탕을 넣는다.
그걸로 끝.
천천히 요리를 풀어서 설명해 주니, 너무도 간단한 요리였다.
나비는 조그마한 메모장에 요리법을 차근차근 적었다.
“우냥. 이제 김치찌개는 냐도 할 수 있다냐.”
“그래. 다음에는 네가 한 번 해봐.”
어느덧 요리가 끝나고 가게에 김치찌개의 냄새가 가득 찼다.
박성한은 나비가 건네주는 음식을 받았다.
승우는 솜씨 좋게도 잠깐 사이에 다른 음식도 만들었다.
절묘하게 반숙인 계란 프라이.
달착지근하면서도 살짝 매운 애기고추멸치조림.
간장에 조린 감자.
말하지 않았지만 먹고 싶었던 음식들.
성한은 승우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왔다가 나간 것 같아서 얼굴을 붉혔다.
“저만 이게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보군요. 당신도 그랬습니까?”
“하하, 이상한 일이죠? 지구에서 있을 때는 특별히 의식도 안했던 것들입니다만, 이세계로 가니 별나게 먹고 싶더라고요.”
“이해합니다, 이해해요.”
성한은 눈가를 적시며 연신 수저와 젓가락을 움직였다.
고향의 맛. 그래, 그냥 고향의 맛이다.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잠시간의 식사가 끝나고, 박성한이 입을 열었다.
“저는 테라에서 13년 있었습니다.”
“13년이라…….”
“여기서는 6년이 흘렀더군요.
시간의 흐름이 엉망이군.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 귀환자와 이세계의 시간 흐름은 정말이지 규칙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1년을 사라졌다가 돌아온 귀환자가 이세계에서 20년을 있었던 경우도 있다.
승우의 경우는 40년을 있었는데 9년이다.
“저는 레벨 51의 사냥꾼입니다.”
“중견이군요. 은 등급 모험가였습니까?”
“정확하십니다.”
테라에서 모험가들은 금, 은, 동의 광물로 등급을 매겼다.
은 등급의 모험가라면 딱 중간 정도의 모험가라는 소리.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모험가 있으며 제일 많은 양의 퀘스트를 해결해 주는 ‘주력’ 등급이다.
테라의 가장 큰 위험은 분명 초마왕이다.
그 초마왕은 유승우의 파티가 퇴치했다.
그렇다고 위험이 없는 건 아니다.
몬스터의 존재는 여전히 위협적이었으며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게이트 문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세계인의 도움까지 요구하는 막장 직전의 세계.
그게 테라다.
“그런 반면에 이곳의 게이트 대처 체계는 완벽하더군요. 하루만 봐도 알겠습니다.”
“그렇죠. 솔직히 이 정도까지 잘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만…….”
헌터를 관리하는 헌터 협회의 철저한 제도.
퍼스트와 세컨드를 비롯한 등급체계.
일반인을 보호하면서 헌터의 생명도 보호하는 각종 보호 수단까지.
수많은 사람이 궁리하고 연구한 현대의 체계는 경이적일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테라의 생각이 나는군요.”
“설마……?”
“저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원해서 돌아온 게 아닙니까?”
“사교의 지하 던전을 모험하던 중에 배니시에 당했습니다.”
“잠깐! 귀환 주문이 아니라 배니시라고요?”
승우가 어이가 없는지 입을 살짝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배니시는 제대로 된 마법이 아니다.
배니시먼트. 차원 추방 마법.
피격자를 차원의 바깥으로 강제로 날려 버리는 마법이다.
이 마법의 무서운 점은 사용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는 점이다.
무수히 많은, 그야말로 셀 수도 없는 타 차원 중 하나에 날아가는 것이다.
그 차원이 제대로 문명이 있을 확률.
그리고 숨을 쉴 공기가 있을 확률.
그 모든 확률을 뚫고 ‘테라’에서 배니시에 당한 ‘지구인’이 ‘지구’로 배니시를 당할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박성한을 보며 승우가 감탄했다.
“엄청난 운이군요.”
“기적이죠.”
“기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한데… 하, 하하.”
“가능한 최상의 결과라는 건 인정합니다.”
최상의 결과고말고.
배니시에 당해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승우도 기꺼이 몸을 던졌을 거다.
그러나 승우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성한의 표정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성한 씨는 그곳이 이제 집이군요.”
“예. 저를 기다리는 아일루로스도 있고, 아내도 있습니다.”
“13년이라…….”
“고향이 바뀌기 충분한 숫자죠.”
성한은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귀환자 등록을 마치고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방으로.
그것은 싫었다.
이세계에는 자신이 있을 곳이 있다.
기다리는 아내가.
애교를 부리는 아일루로스가 있다.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돌아가고 싶다고 울부짖을 때는 절대로 못 돌아가던 지구에…….
왜… 왜, 테라에서 살기로 결심하니 돌아올 수 있었던 걸까.
무력감이 몸을 지배했다.
여기서 퍼스트 오더로 대접받으며 사람을 지키는 것도 좋다.
하지만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은 누가 지켜주지?
성한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남자의 울음이란 참 봐주기 힘든 일이라, 승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야옹야옹 하는 소리를 내며 나비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레나토에 의해서 지구로 온 나비지만, 이건 가이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비도 성한을 도울 수 없음에 그저 함께 울어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울고 싶은 기분일 때 위로를 받으면 울음이 터지는 법이다.
나비의 위로를 받은 성한은 곧 나비를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이쯤 되니 승우는 남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 큰 남자가 펑펑 우는 모습은 여러모로 좋은 광경은 아니다.
우는 쪽도, 보는 쪽도 말이다.
언제까지 울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승우는 할 수 있었다.
박성한을 원래 있던 테라로 떨구는 일 말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게이트를 만들 수 있으니, 그냥 보내주면 된다.
승우는 잠깐의 고민을 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돌려보내 드릴까요?”
“예?”
“테라로 보내드리냐고요.”
“가, 가능하시다면-! 언제라도 돌아가고 싶지요!”
“오케이.”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였다.
승우가 손가락을 튕기니 성한의 발밑에 게이트가 열렸다.
“이건?!”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테라로 통하는 직통 게이트다.
성한은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졌다.
이내 게이트가 닫혔다.
승우는 한 건 했다는 듯이 손바닥을 털며 중얼거렸다.
“우는 사람을 보는 건 질색이야.”
“이래도 되는 거였냥?”
차원 이동을 맘대로 했다가는 여신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승우는 귀찮은지 귀를 파며 말했다.
“아무렴 어때. 본인이 가고 싶다는데 보내줘야지. 저쪽의 일은 난 몰라.”
그래, 모르는 일이다.
일이 잘못되어 가이아가 난처해지든 말든 모르는 일이다.
그보다 귀환하자마자 그곳이 그리워서 돌려보내 달라고 하는 사람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납득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박성한에게는 분명 그곳이 더 의미가 있으며 소중한 곳이겠지.
그렇다면 돌려보내 두는 것이 올바른 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비는 미심쩍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냥 귀찮아서 보낸 거 같다냐…….’
그렇다.
승우는 누군가가 우는 걸 싫어한다.
특히 그게 다 큰 성인의 눈물이라면, 진저리치게 싫어한다.
“아, 남 좋은 일만 했네.”
“냥?”
“백강혁 말이야. 아마 지금쯤, 어디서 술이라도 마시고 있었을 걸?”
박성한은 레벨 51의 귀환자다.
즉 명백하게 랭킹 100위의 백강혁보다 강하다!
박성한쯤 되는 전력을 가만히 두고 볼 일은 없다.
그럼 그가 등용이 된다면?
백강혁은 코트를 벗어야 할 판이다.
운 좋게도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승우가 박성한을 있던 곳으로 보내버렸으니까.
“생색이나 나중에 내볼까… 아무튼 수고했어, 나비야. 이제 진짜 가게 닫자.”
“알았다냐! 아, 이 실패작은 푸딩 슬라임에게 주겠다냐~”
나비가 아까, 나비가 만들었던 실패작을 들었다.
그러자 승우가 말렸다.
“안 돼. 그건 내가 먹을 거야.”
“주인님, 이건 좀 아니다냐.”
“괜찮다니까.”
승우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비는 입술을 샐쭉 내밀며 꼬리를 흔들었다.
놀리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 * *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한의 날.
관중 보호를 이유로 경기가 중지된 검투장에서 승우는 덜덜 떨고만 있었다.
화톳불은 있다만 그것은 일류 검투사를 위한 자리다.
애송이 검투사인 승우의 자리는 구석진 벽이다.
“이봐, 유. 오늘이 네가 검투장에 온 지 200일인 거 알고 있나?”
“존… 그걸 내가 기억할 리가 없잖아.”
존, 검투사를 관리하는 관리직.
노예와 관리의 관계지만 그는 썩 괜찮은 사람이었다.
승우를 동정하여 가끔 먹을 걸 넣어주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으니까.
존이 씩 웃으면서 승우에게 작은 냄비를 건넸다.
“선물이다. 지난번에 잠꼬대로 말하던 김치찌개가 그게 맞지?”
“…이걸 어디서 구했어?”
“소환된 이세계인 중 하나가 소지품으로 가지고 있었나 봐. 동전 한 닢으로 샀지. 그리고 덤으로 찌개라는 걸 만들어달라고 하니 이렇게 해주더군.”
“김치를? 소지품으로? 그거 걸작인데!”
지구에서는 김치 장사라도 하던 사람인가?
승우는 오랜만에 웃었다.
“하지만 존. 이건 김치찌개가 아니야.”
“그럼?”
“이건 김치죽이지.”
존이 가져온 작은 냄비에는 걸쭉한 김치죽이 있었다.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신 냄새가 물씬 나는 약간 상한 죽이다.
지구에서라면 입도 안 댔을 음식.
하지만 여기서는 돈 주고도 못 먹는 지구의 음식이다.
승우는 오랜만에 맡아본 김치 냄새에 눈가가 축축해졌다.
그걸 보고 존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런? 사기당한 건가!”
“하지만 고마워. 이것도 먹고 싶었어.”
“그럼 다행이지! 팍팍 먹고 다음 싸움에서도 살아남으라고.”
인간은 본디 선하다.
승우는 그것을 존으로부터 배웠다.
사람을 죽이고, 몬스터를 죽이고 광대가 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선은 있다.
그렇게 과거를 떠올리던 승우는 나비가 만든 김치죽을 먹으며 웃었다.
“그때 뭔 양파를 넣었나 했는데 어니언 잭의 머리였군. 이제야 알겠어.”
어찌나 맵고 독하던지.
누가 테라의 요리가 아니랄까 봐 먹기 힘들어서 고역이었다.
하지만 맛있었지.
“과연, 조금은 박성한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걸.”
과거 레벨1의 검사였던 승우가 용사가 되고.
레벨 255가 되어 신조차도 초월한 존재가 됐다.
지금의 그가 가이아를 죽이고, 만신전의 모든 신조차 죽인 뒤에 테라의 대륙을 멸하는 재앙이 되는 건 간단한 일이다.
승우의 마음속에도 그 정도의 어둠은 있다.
“재미 삼아서 이세계인을 검투장에 던지고 자기들끼리 죽이라고 말하는 귀족에 대한 분노 같은 거 말이지.”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건 바로 존 같은 선량한 자들 때문이다.
그들이 준 자그마한 선함이 승우의 기억 속에 있다.
“만약 그때 존이 없었다면…….”
테라는 초마왕을 뛰어넘는 더 큰 재앙.
유승우를 볼 수 있었을 테지.
승우는 시큼한 김치죽을 먹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맛있네. 배탈 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