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11)
괴식식당-111화(111/613)
111화. 라면
라면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의 국민 간식, 소울 푸드. 라면!
혼자 사는 남자, 자취생이라면 좋든 싫든 간에 끼니의 대부분을 라면으로 때우게 된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의외로 영양 밸런스도 괜찮은 편이며 시원한 국물이 속을 데워주니 포만감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라면의 종류도 많다.
간장 라면, 치킨 라면, 매운 라면, 순한 라면.
떡라면과 건면, 우동 같은 라면.
치즈를 넣은 라면이나 만두, 혹은 김치를 넣은 라면.
짜장 소스에 버무리는 라면, 스파게티 같은 라면.
다시마가 큼직한 라면이나, 면이 오동통한 라면.
짬뽕처럼 얼큰한 라면, 해산물을 넣은 라면.
라면의 종류를 논하자면 끝이 없었다.
이 중에 자기 취향의 라면은 있게 마련.
이 많은 라면 중에서 승우의 취향은 매운 라면 계통이었다.
그중에서 하나만 꼽는다면 역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푸 라면이다.
매우면서 진한 버섯의 향기가 나는 국민 라면!
‘그런데 이게 참,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구만.’
푸 라면 하면 매운 걸로 유명한 라면이다.
어디까지나 9년 전에 말이다.
지금은 틈바구니 라면이니 하면서 정말 말도 못 하게 매운 라면이 있어서 푸 라면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그쯤 매우면 괴식의 영역 아닌가? 흐음, 다음은 테라식을 베이스로 한 라면을 만들어볼까?’
하지만 역시 맵게만 만들면 꽤 식상한데?
다른 방식이 있지 않을까.
헤스티아의 책으로 얻은 새로운 기술이 제법 많다.
응용해 볼 것도 있지.
‘뭐, 그건 다음에 생각하고 우선은 라면이야, 라면.’
승우는 구깃구깃하니 흠집이 있고 우그러진 양은 냄비를 꺼냈다.
길거리의 중고시장에서 천 원을 주고 사온 냄비다.
자고로 라면은 이런 냄비에 끓여야 맛있는 법이다.
과학적인 요소는 조금도 없지만 기분이라는 게,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는가?
‘으음, 정말 잘 샀단 말이지. 이 적절하게 찌그러진 모양이 마음에 들어.’
다른 한 손으로는 미리 사둔 푸 라면 한 묶음을 꺼냈다.
창밖을 보니 보름달이 떠 있었다.
한밤중, 시각은 1시.
야식이 땡기는 시간이다.
‘거기서 공을 놓치다니, 지려고 환장했지? 젠장.’
응원하던 야구팀이 엄청난 실책으로 경기를 말아먹었다.
9회까지 잘 막다가 플라이 볼을 놓쳐서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응원을 했지만 경기가 끝났을 때 승우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져도 하필이면 그놈의 독수리한테 지냐고. 하, 망할 공룡 놈들, 내가 뛰어도 그거보다는 잘하겠다.”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진 날.
과거 대학생이던 시절의 승우는 이런 날이면 분노를 담아서 라면을 먹고는 했다.
거의 50년은 된 이야기다.
승우는 어째 그때의 기억이 나면서 불현듯,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밥집을 하는 요리사라고 해서 맨날 각 잡고 먹을 순 없지.’
가끔은 이렇게도 먹게 마련.
승우는 냄비를 가볍게 세척하며 수돗물을 담았다.
예전에는 정수기 물로 끓이는 게 대세였지만 요즘은 그냥 수돗물을 쓴다.
수자원공사가 이세계에서 회수한 깨끗한 물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는지라, 물맛이 아주 좋다.
그래서 줄지어서 정수기 회사가 도산했다던가?
‘아무튼 지금 이 화를 가라앉히려면 라면을 먹어야 해.’
승우는 냄비에 불을 올리며 라면을 준비했다.
한 묶음, 6봉지.
이걸 한 번에 다 먹어야 분이 풀리겠지만 그렇다고 한 번에 다 끓이는 건 하수다.
라면의 맛은 시시각각 변한다.
최고의 맛을 유지하려면 한 번에 한 개.
그리고 계란 하나, 파 조금.
쌈장 반의반 수저.
TV에서 배운 황금의 레시피다.
대학생 때 이 황금의 레시피를 알게 된 후로, 승우는 무조건 이렇게 라면을 끓였다.
보글보글하고 물이 끓었다.
스프를 풀고, 3초 대기.
건더기 스프와 파를 넣고 다시 5초 대기.
그리고 면을 넣는다.
‘앞으로 50초.’
50초간 면이 끓었다면 이제는 계란을 넣을 차례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포시- 계란을 넣었다.
그리고 1분하고도 10초.
다른 사람 기준으로는 약간 설익었지만 승우의 기준에서는 완벽한 면발 상태를 가진 라면이 완성됐다.
보글보글하게 라면 국물이 끓고, 매콤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식욕이 생기면서 살짝 군침이 돈다.
‘밑반찬은 마트 김치.’
라면을 먹을 때 곁들이는 김치로 직접 담근 김치는 안 된다.
그건 쓸데없이 맛있다.
약간의 조미료 맛이 느껴지면서 조금 지나치게 익은 쉰 김치가 딱이다.
‘밥은 살짝 찬 밥.’
반쯤 먹고 밥 말아 먹어야지.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젊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승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쟁반에 라면과 김치, 밥을 담았다.
‘영화 보면서 먹어야지. 야구가 짜증났으니 액션 영화를 봐야겠어.’
밥상머리에서 버릇없이 영화나 보고 말이야-!
영화 보면서 먹는다고 그렇게 잔소리할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이제 승우를 혼낼 어른은 아무도 없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할 때는 자유라고 즐거워했는데, 이제는 그 자유가 씁쓸한 나이가 됐구나.
“과연 새벽 1시. 센티멘털한 기분이 드는걸.”
야간 경계병 중에 시인이 많다던가?
하여간 이 시간에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승우는 씩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영화, 영화.
액션 영화.
그러고 보면 승우가 사라지기 전 기록적인 흥행을 한 액션 영화들이 있었다.
시리즈로 수십 개나 되는 대작 영화인데, 보려면 처음부터 봐야 해서 지금까지 보지 않았었다.
“역시 시작은, 브론즈맨이지!”
마치 워 기어의 작은 복사판처럼 생겼는데 성능은 그 이상이다.
승우는 영화를 볼 준비를 마치고 손을 비비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일단 먹으려면 면부터.
그런데 그의 손이 한 움큼의 면을 집는 순간 굳었다.
“누군가 오고 있군.”
인기척이 느껴진다.
단련된 기척감지 능력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이렇게 불쑥불쑥, 남의 기척을 느낀다.
평소에는 의식적으로 차단해 두는 편이었지만 과연 새벽 1시의 밤거리, 인적이 드문 곳이다 보니 안 느낄 수가 없었다.
“백강혁이잖아? 이 자식은 또 사고를 쳤나?”
제법 다급한 눈치다.
팔짱을 끼고 있으니 놈이 다급하게 노크를 했다.
승우는 혀를 차며 문을 열었다.
“야심한 밤에 뭔 일이야?”
“싸장님! 저 좀 숨겨주세요!”
“……?”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 없군.
다급한 일이 있나 보다.
강혁이 횡설수설하며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운동회의 마지막 날.
C섹터의 이철웅이 활약하긴 했지만, 최종 우승은 A섹터였다.
민을 필두로 한 기마전에서의 압승이 컸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철웅의 콧대가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
일단 힘으로 A섹터의 헌터들을 제압한 건 사실이고, 애초부터 그 외의 시합은 어찌되던 알 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A섹터의 누구보다도 이철웅의 힘이 강했다는 것.
그는 기고만장해져서 말했다.
“하하-! A섹터라고 해서 긴장했는데 쭉정이밖에 없구만!”
이철웅의 도발은 꽤나 싸구려 도발이었다.
그리고 예정된 도발이었다.
저건 목적이 있는 도발이다.
어그로, 관심을 끌어서 스폰서를 구하고 조만간 있을 랭킹 100위 도전.
그러니까 새롭게 퍼스트 오더가 된 민에게 도전장을 내밀기 위한 복선이었다.
의도가 있는 도발에 넘어갈 사람은 없었다.
백강혁을 빼고는.
“뭐 인마!? 함 뜰까?!”
그렇게 A섹터, C섹터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 벌어졌다.
순수한 육체 강화 능력자와 관심으로 강해지는 특수 강화 능력자의 싸움!
일견 육체 강화 능력자가 우세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똑똑하게 알게 되었다.
“치, 치사한 놈!”
“싸우는데 치사하고 말고가 어디 있냐! 이기는 놈이 정의다!”
강혁이 윤은형과의 싸움을 통해서 단련한 전투 기술.
머리끄댕이 잡고 뒹굴기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머, 머리 가죽이 뜯긴… 뜯긴……!”
“크헤헤헤-! 근육만 우락부락하지 별거 없구만!”
“비열하다! 이게 A섹터의 방식이냐!”
“C섹터는 유연성 운동도 안 시키니? 근육 고릴라야. 너 등 못 긁지?!”
등 뒤에서 머리를 잡힌 이철웅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항하면 머리털이 사라진다.
저항을 안 하면 무방비한 약점을 향해, 백강혁이 매서운 공격을 날린다.
유연성이 부족하고 기술의 다채로움이 없는 이철웅에게 이런 더러운 싸움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압도적인 힘으로 백강혁을 뜯어낼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러면 머리 가죽도 뜯길 뿐이다.
이철웅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싸움은 강혁의 압승으로 끝났다.
“졌다고-! 졌다니까!”
“크핫핫핫! 그럼 네놈의 머리털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 사라져라!”
“아아악-!”
승리가 확실시됐을 때.
강혁은 마무리를 했다.
이철웅은 원치 않은 부분 탈모(물리)가 생겼다.
모근까지 살짝 뜯겨서 재생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한 것 같다.
* * *
“낄낄. 제가 한 방 크게 먹여줬죠. 강철의 이철웅은 무슨……! 미스터리 서클의 이철웅이면 충분하죠!”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기록적인 추함이다.
기사 검술은 어따 팔아치운 거지?
의문이 여러 개 떠올랐지만 깊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대응하는 이쪽이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승우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응,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다고?”
“헌터 간의 싸움은 금지거등요. 특히 퍼스트 오더는 사사로운 싸움을 하면 안 돼요. 헌터의 얼굴이자 대표자잖아요.”
“응. 그렇지.”
그걸 알면서도 윤은형하고 머리끄덩이 잡고 싸운 거냐?
저런 게 대표자고 얼굴이라니?
헌터란 참으로 슬픈 직업이다.
강혁과 엮인 윤은형이 거듭 불쌍해졌고 승우였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놈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싸움을 걸었으니 징계감이거든요?”
“응. 그렇겠지.”
“하지만 안 잡히면 일단 어떻게든 얼버무릴 수 있어요!”
“…….”
‘어떻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역시 생각하기를 관뒀다.
진지하게 대응하면 이쪽이 바보가 된다.
“그래서 숨겨달라고?”
“예! 아침까지만 숨겨주세요!”
“그렇군.”
승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폰을 꺼냈다.
그리고 민에게 전화를 걸면서 강혁의 팔을 잡았다.
-예, 선생님.
“빡강혁. 여기에 있다.”
-그럴 줄 알고 지금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전화가 끊어지자, 강혁이 소리쳤다.
“난 싸장님을 믿었는데~!”
“멋대로 믿은 사람이 문제라고는 생각 안 하냐?”
“멋대로 신뢰를 준 사람이 문제지, 뭔 소리 하시는 거예요!”
“…….”
강혁이 발버둥 치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승우의 팔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놔줘요! 으아아아!”
그는 곧 도착한 민과 윤은형에게 제압당했다.
“으아아아! 놔라! 이 배신자! 난 A섹터를 대표해서 싸웠을 뿐인데!”
“멋지게 싸웠으면 우리는 어떻게든 너를 커버 칠 생각이었다.”
민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말하자 윤은형이 거들었다.
“그런데 그딴 방식으로 싸우면 우리가 뭐가 되냐?”
“이, 이기면 장땡 아냐?!”
“시끄러워. 다물어. 내가 너 때문에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
“그럼 죽든가!”
윤은형이 강혁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깨갱 하는 소리가 났다.
민이 승우를 향해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협조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렇게 아닌 밤중의 소동은 끝났다.
끌려간 강혁이 어떻게 됐는지, 승우에게는 알 바가 아니었다.
부디 더 이상 엮일 일이 없기만을 빌었다.
“나 참. 아직도 애야, 애.”
강혁이 저놈은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어른이 될지.
승우는 혀를 차며 문단속을 하고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일시정지를 눌러놓지 않아서 영화가 꽤 흘러갔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했던 주인공이 부상을 입은 채로 햄버거를 씹고 있었다.
“처음부터 돌려봐야겠네. 에휴…….”
그런데 영화가 문제가 아니었다.
리모컨을 내려놓자, 그곳에는 퉁퉁 불은 라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물을 모조리 흡수해서 마치 가래떡처럼 불어난 라면이-!
“백강혁 이놈…….”
라면은 다시 끓여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