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12)
괴식식당-112화(112/613)
112화. 테라와 지구 (1)
아침부터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승우는 느긋하게 신문을 보다가, 그녀의 방문에 잠시 손이 굳었다.
승우만 굳은 것이 아니었다.
가게에 있던 모든 손님들도 식사를 중지하고는 그녀를 봤다.
그녀를 보고 멈췄다는 결과는 같았지만 이유는 달랐다.
승우는 약간의 당황이었지만 손님들은 충격이었다.
“아름답다.”
누군가가 넋이 나간 채로 중얼거렸다.
아름답기야 하지, 신이니까.
아테나가 금발 머리를 찰랑거리며 걸어왔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곱창 머리끈을 이용하여 뒤로 묶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승우가 미간을 모으며 중얼거렸다.
“지혜의 신이 정장 차림과 안경이라. 지나치게 어울리네.”
“칭찬인가요?”
“칭찬이야. 안경이랑 머리끈, 정장은 어디서 구한 거야?”
“백화점에서 샀지요.”
이쪽 돈이 있었나?
하긴 마음만 먹으면 돈을 만들 방법은 많다.
그걸 신이나 되는 이들이 직접 했다는 게 신기할 뿐.
아테나가 으쓱 하고 가슴을 펴며 말했다.
“현대의 지구에서는 정장이 갑옷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전장으로 향할 때는 갑옷을 입어야죠.”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군. 정장이 갑옷이라, 그럼 무기는?”
“주얼리 아닌가요? 목걸이와 반지, 귀걸이. 모두 제대로 갖췄답니다.”
제법 현대의 지구를 잘 알고 있구만…….
승우는 보석에 대해서 잘 몰라 눈치를 못 챘지만 아테나가 갖추고 온 장신구들은 상당히 고가의 보석들이었다.
게다가 가격은 둘째 치고 아테나에게 상당히 어울린다.
황금빛 갑옷과 투구, 창을 들고 있는 모습보다는 확실히 이쪽이 보기에 좋았다.
아테나는 익숙하게 자리를 잡더니 메뉴판을 들었다.
“그럼 오늘의 메뉴라는 걸로 부탁해요.”
“그게 뭔지 알고는 시키는 거지?”
“가게의 주인이 엄선한, 그날 최고로 자신 있는 메뉴 아닌가요?”
이것도 맞았다.
아테나는 제법 지구의 지식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괴식이 아니라 오늘의 메뉴를 주문하다니?
이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메뉴다.
테라의 신이라면 괴식을 먹어야 할 텐데, 맛있는 요리라니?
“아.”
그런 건가.
승우는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이야기할 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는 챘는데…….”
“……?”
“너, 다른 세계에 자주 먹으러 다니지?”
그러니까 중국도 프랑스도 알지!
이거 어째 한두 번 놀러 다닌 솜씨가 아니다.
승우는 확신을 담아서 이야기했고, 아테나는 살짝 눈을 피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진짜냐.”
승우가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테라의 신 주제에 미식 여행이라니…….”
신민들은 못 먹게 하고 자기는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녀?
이래서 그리스 계통의 신들이란, 제멋대로라니까!
내로남불, 자기애의 화신들!
승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자 아테나가 바로 변명했다.
“미, 미식을 위해서 온 건 아니거든요? 일하러 왔어요.”
“일?”
“예, 일이요.”
아테나가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지구 출신의 용사 중 귀환을 선택한 건 모두 8명이었는데, 그중 7명은 레벨이 5도 되지 않는 자였다.
테라에 소환된 지도 얼마 안 됐고, 소질이 발현되지도 못한 이들.
예전이라면 아마 이리저리 고생만 하고 죽었을 이들이다.
그들은 집에 돌려보내 준다는 이야기에 냉큼 손을 들었고 그렇게 송환이 결정되었다.
‘나머지 일곱 명은 그렇다 쳐도 한 명은 아깝군.’
레벨 81, 지구로 돌아간다면 퍼스트 오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힘을 가진 용사.
그레이엄 앨리슨.
그녀의 귀환은 테라에는 뼈아픈 손실이었고, 지구에겐 난데없는 행운이었다.
‘본인이 원하니 어쩔 수 없지. 막을 수 없을 거야.’
아무튼, 8명.
무려 8명이다.
지구로 돌려보내야 할 용사의 수가 꽤 된다.
그래서 아테나는 생각했다.
‘이 8명을 그냥 무작정 지구에 보내는 것보다, 창구를 개설해 두는 게 낫겠어.’
좋건 싫건 이제부터 테라에서 지구로 돌아오는 사람의 숫자는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때마다 사람들을 그냥 성의 없이 돌려보내 봐라.
무조건 승우의 귀에 이야기가 들어가게 돼 있었다.
‘계약에는 이런 일에 대한 건 없었지만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는 것보다 뒤처리까지 해두는 게 나아.’
세 개의 신명을 가진 용사를 쓸데없이 적으로 두는 것보다 호의를 사두는 게 낫다.
아테나는 그렇게 결론을 짓고 지구와의 접선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백화점 직원을 제외하고, 지구에서 아테나와 처음으로 이야기한 것은 이정훈이었다.
“나는 아테나. 테라에서 온 신이다. 네가 책임자인가?”
이정훈은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을 테라에서 온 신이라 소개하는 여자를 봤을 때.
의외지만 놀라지 않았다.
그저 당황했을 뿐이었다.
‘뭐지, 이 사람?!’
갑자기 나타나서 느닷없는 선포라니?
보통이라면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거나, 갑작스러운 무단침입에 과잉 대응했겠지.
퍼스트 오더들도 상시 대기 중이니 지부장인 이정훈은 그렇게 대응할 만했다.
하지만 과연- 이정훈은 노련했다.
그가 침착하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총장님과 연락할 수 있게 해보겠습니다.”
“총장? 그게 누구지?”
“음, 지금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검과 승리, 괴식의 신보다 영향력이 있나?”
이정훈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총장님보다 영향력이 있진 않을 겁니다.”
“그런 거물이 있다니… 알겠다. 기다리지.”
그렇게 아테나?주혁진의 핫라인이 만들어졌다.
테라의 신과 지구의 최고 실권자들의 만남은 24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주석과 법 조항 참조만 100페이지가 넘어가는 계약서를 검토한 끝에, 양측이 서명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 * *
“그랬군.”
승우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거 다른 사람들이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가?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홀린 듯 중얼거렸다.
“아름다워.”
“몹시 아름다워…….”
신이 가진 천성의 카리스마와 외모가 주는 강렬한 인상은 무엇보다 강했다.
주변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은 입에 뭐가 들어가지는지도 모르고 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아테나만을 응시했다.
이야기?
안 들린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알 바도 아니었다.
그저… 아름답다.
몹시 아름답다.
멍 때리는 손님을 두고 아가 냥이들이 무릎 위로 올라가서 오징어덮밥의 오징어를 쏠랑쏠랑 빼먹고 있는데도 아무도 모른다.
아니, 몰래 먹는 것도 아니고 당당하게 테이블 위로 올라가도 몰라?
어어어?
손가락을 깨물어도 모른다.
아가 냥이들의 만행이 도를 넘어가자 옆에 있던 나비가 한숨을 쉬었다.
“용사님냥.”
“그래. 격리시켜.”
승우는 나비를 시켜서 아가 냥이를 격리시켰다.
아가 냥이들은 바동거리면서 저항했지만 역시 나비는 이길 수 없었다.
‘아테나를 봐서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아프로디테를 봤다간 다들 응급실로 실려 가겠군.’
승우는 한 손으로 웍을 흔들며 말했다.
“이리저리 태클 걸고 싶은 부분은 많지만, 일단은 잘했어.”
애프터케어는 승우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서 필요한 것이다.
테라에서 살다가 대뜸 지구로 온다면 귀환자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법이다.
승우는 그런 부분에서는 예외였던 건, 자기가 돌아올 게이트를 선택할 수도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강했으며 돈이 될 물건이 인벤토리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돈, 힘, 지식이 다 갖춰졌으니 당황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돌아오는 귀환자가 그걸 다 갖출 확률은 매우 적었다.
아무래도 테라에서 지구로 돌아올 귀환자는 약한 사람, 부적응자가 대부분일 테니까.
“신세를 졌군.”
“후후.”
아테나가 더 칭찬하라는 듯이 눈을 감고 씩- 입 꼬리를 올렸다.
“칭찬이 고픈 나이는 아닐 거라고 보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이죠.”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제가 한국어 하는 건 안 이상하고요?”
“…이젠 테라의 신이 아니라 지구인과 이야기하는 기분까지 들기 시작했어.”
아테나가 깔깔 하고 웃었다.
분위기가 바뀐 건가, 아니면 갑옷과 투구, 창을 벗어서 그런가.
군인 같았던 인상이 희미해지고 이제는 신이라기보다는 그냥 좀 잘사는 아가씨 같았다.
그렇다.
아테나는 신으로서 있을 때와 여행객으로 왔을 때, 성격이 달라지는 부류였다!
“고마우면 칭찬을 더 해주고, 요리를 맛있게 해주세요.”
“그게 테라의 신이 할 말이냐…….”
승우가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아테나가 주문한 오늘의 메뉴, 오징어덮밥은 끝나간다.
애초에 양념은 만들어뒀고, 밥도 있으니 가볍게 볶는 걸로 끝이었다.
접시에 밥을 소복하니 담고 볶은 오징어를 담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두른 뒤에 깨를 살짝 뿌려주면 끝.
과연 오징어덮밥.
간단한 조리법과 맛으로 제육덮밥과 더불어서 분식계의 쌍두마차라 불릴 만한 요리다.
아테나가 수저를 들고는 흐흥~ 하고 콧노래를 불렀다.
한 입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한 아테나가 물었다.
“맛있네요. 중국식?”
“한식이지만. 중국식의 영향을 안 받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흠흠. 과연.”
아테나는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었는데, 슬쩍 보니 수첩에 적힌 글의 양이 제법 많았다.
무엇인가 빼곡하게 적힌 것은 전부 요리명과 소감.
그러니까.
“미식노트?”
“으, 으음. 지혜의 서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아, 그래.”
식사를 하는 사람을 방해하기도 뭐하지.
승우는 조용히 자리를 피해줬다.
그러자 아테나는 느긋하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이제 아테나의 외모에도 익숙해질 무렵, 시끄러운 녀석이 나타났다.
“싸장님! 당신의 제자가 돌아왔소! 오덮을 파멸시키고야 말 것이오!”
“좀 조용히 해라.”
“옙. 오징어덮밥, 8인분 주세요. 괴식 말고요! 배고파요.”
전날 잡혀가서 두 끼나 밥을 굶는 고초를 겪은 강혁이 굶주린 배를 매만지며 걸어왔다.
그런데 항상 앉았던 자리에 웬 여자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강혁은 일부러 바로 옆에 앉으며 은근히 어필을 할 생각이었다.
거긴 내 자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문을 잊었다.
“아름다워.”
“……?”
“딱 내 이상형이야……!”
그만큼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형용사로 쓰면 될 것같이 생겼다.
강혁은 심장이 두근거리다 못해서 얼굴이 심장이 된 기분이었다.
두근두근하고 얼굴이 거칠게 뛰었다.
“싸, 싸장님! 이분은 누구십니까?! 설마 싸장님의 애인은 아니겠죠?”
“어……. 그게.”
누구라고 설명해야 되지?
승우는 잠깐 고민했지만 길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본인 소개는 본인이 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구태여 승우가 소개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아테나가 승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알아서 소개하겠다는 뜻이겠지.
승우가 알겠다는 듯이, 그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테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승우 씨의 애인입니다.”
“……!”
밥집이 들썩였다.
* * *
소란이 끝난 후 손님이 다 떠난 가게.
승우가 살짝 붉게 된 얼굴을 가리면서 말했다.
“아니, 본인 소개는 본인이 하라고 고개를 끄덕인 거였지…….”
“지구에서 고개를 끄덕인다는 건 긍정의 표현으로 아는데요?”
“그, 그건 그렇지만…….”
“사귀는 사람으로 해달라니 꽤나 적극적인 어프로치였습니다. 조금 두근거렸습니다.”
승우는 어지간한 일은 다 웃어넘기는 강력하고도 막강한 넉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승우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럼 실망이군요. 슬퍼졌습니다.”
“그만하라고 했다?”
“뭐, 그럼 그만하고 이제 일 이야기를 하죠.”
할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못 할 말.
아테나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조만간 이곳에서 대형 게이트가 열릴 겁니다. 이쪽의 랭크 계산법에 의하면 SS랭크 오버 정도가 되겠네요.”
“뭐?”
승우가 아테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