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31)
괴식식당-131화(131/613)
131화. 선입견 (2)
나비와 승우가 만든 사골국이 완성됐다.
우유처럼 뽀얀 국물 색!
진하게 우러난 사골 특유의 구수한 향기.
아주 제대로 된 사골국이다.
“냐아아- 뜨거워냐.”
나비가 빨간 혀를 날름거렸다.
살짝 데어버렸다.
앞발의 털을 핥으며 서둘러 혀를 식혔다.
옆에서 맛을 본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생각한 대로 잘 만들어졌군. 예전 맛 그대로야.”
“이거 만들어본 적 있었냥?”
“아주 예전에 친구 때문에.”
승우는 예전에 태양의 축복 현상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오크인 크라이는 속성 친화력이 낮아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고, 신앙심으로 보호받는 레나토, 특수한 속성을 가져서 각 속성 내성이 엄청나게 높았던 승우.
이 셋에게는 태양의 축복 현상이 크게 영향이 없었다.
그러나 승우의 파티에는 엘프가 있었다.
속성 친화력이 어마무시하게 높아서 정령사의 재능만은 전 종족 중 최고라고 꼽히는 엘프!
엘프 궁사 테오도르는 태양의 축복 현상이 발생하자마자 그만 뻗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의 속성을 중화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게 바로 이 사골이다.
“입맛 까다로운 녀석이 이 사골국을 먹고 엄지를 치켜들었지.”
“확실히 맛있다냐. 하지만냥…….”
호록- 하고 나비가 한 입 더 먹었다.
맛있다고 한 것 치고 나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맛은 있는데, 거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하지?
“뿌우우…….”
나비가 고민하는 동안 영식이가 코를 골았다.
“슬라임이 코를 골다니……. 애초에 코가 어디지?”
녀석은 태양의 축복 때문에 수면 시간이 거의 하루 종일이었다.
지금도 비몽사몽으로 승우의 머리 위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 중이다.
“일단 너부터 먹자.”
“뿌?”
먹을 거?
영식이는 슬라임답게 식탐이 대단한지라, 자면서도 먹을 것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얼굴 근처를 왔다 갔다 하는 구수한 향에 영식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몸을 뻗어서 사골국을 벌컥벌컥 마셨다.
“뿌?”
뭐야, 이거?
몸을 타고 오르는 이상한 맛에 영식이의 눈이 물음표를 그렸다.
* * *
용사의 밥집의 기본은 ‘밥집’이다.
먹을 만한 걸 판다는 의미다.
몬스터의 식재료를 써서 만든 음식은 대체로 테라식이고 괴식이며 효과가 강렬하다.
그래서 아주 일부의 요리, 그러니까 헤라기가스와 미노타우루스 우유를 쓴 클램차우더 같은 요리를 제외한다면 거의 다 헌터 전용이다.
각성을 하지 않은 일반인은 테라식을 먹었다간 반작용으로 건강이 도리어 위험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아직까지 해결 못 한 문제가 있다.
몬스터의 식재료를 쓴 요리.
몬스터 요리라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이다.
일반인이나 헌터나 몬스터의 요리를 먹는 건 사실 거부감이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간다면 이 둘은 궤가 조금 달랐다.
몬스터를 먹는 건 헌터들에겐 징크스의 영역이다.
정신적인 문제고, 약간의 샤머니즘. 종교적인 영역에도 닿아 있다.
일반인이 몬스터의 요리에서 느끼는 거부감은 몬스터라는 것에 대한 생소함, 미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
그리고 혹시 모를 독이나 안 좋은 효과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승우는 이번에 사골국을 써서 약간의 재미를 추구할 작정이었다.
“재미는 중요한 거야.”
용사의 밥집은 평소와는 조금 모습이 달랐는데 우선은 전면과 측면 유리를 전부 개방해서 오픈 카페 스타일이 되었다.
그리고 뒤편에 있던 마당을 전부 개방했다.
은하나 나비, 영식이와 열한 마리의 고양이가 쓰던 놀이터다.
이곳이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장소가 됐다.
여기저기 돗자리나 통나무 의자,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이미 한 차례의 손님이 오고 간지라, 바닥에는 손님이 버리고 간 종이컵, 휴지 같은 쓰레기가 꽤 많았었다.
“깨끗해져라~ 깨끗해져라~”
은하가 바닥을 청소했다.
청소는 언제 해도 재미있다.
그렇게 은하는 청소를 하고 나비는 입구를 지켰다.
입구에는 커다란 솥이 걸려 있다.
거인의 솥같이 상식을 부술 정도의 크기는 아닌 평범하게 큰 솥이었다.
안에는 뽀얀 사골 국물이 있고, 그 옆에는 주의 사항이 적힌 메뉴판이 있었다.
특이한 문구였다.
가게를 찾은 민이 천천히 문구를 읽었다.
“맛에 대한 말을 하지 말라니, 의미 불명이네요.”
“하지만 먹어보면 이해할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먹어보면 안다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먹어야만 하기도 했다.
현재 권고문이 떨어졌다.
A섹터의 주민이라면 모두 용사의 밥집에서 사골국을 먹을 것.
특정 가게에 대한 홍보를 ISAC에서 한다.
뒷돈을 먹었다라든가, 악질적인 밀어주기라는 여론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헌터들이 승우에게 보내는 무한한 신뢰와는 상관없이 시민들에게 이곳은 그냥 밥 잘하는 집 정도다.
과한 특권이나 우대 사항은 아무래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쨌든 그런 세세한 일은 뒤로하고 요점은 하나다.
사골국을 먹어라. 무조건.
“자, 맛있게 먹고. 주의 사항은 잊지 마.”
민은 고개를 흔들면서 상차림을 받았다.
구성은 정말 평범했다.
물 한 잔, 따뜻한 밥 한 그릇.
조금의 석박지와 겉절이김치.
그리고 사골국.
뽀얀 국물에 파가 올라가 있는 진한 사골국!
‘이거 피는 못 속이는 건가.’
민은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자라기를 미국인으로 자랐다.
그런데 이 뽀얀 육수를 보면 군침이 도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게 한국인의 유전자라는 걸까?
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걸었다.
가게를 지나서 뒷마당에 도착했다.
등받이가 있는 게 편하니 통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좋겠지.
민은 자리에 앉으면서 주변을 조금 더 확인했다.
은하가 조금 옆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은하를 제외하면 사람이 없었다.
“오늘 손님은 어땠니?”
“아까까지는 아주-! 많았어요.”
“그렇구나.”
평일 점심시간, 서류 작업이 조금 밀려서 1시간 정도 늦었더니 피크 타임을 넘어간 모양이다.
차라리 잘됐다.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먹는 건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보지?’
은하, 총장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
민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사골국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풉-!”
그만 입안에 머금은 걸 내뱉고 말았다.
그러자 은하가 기다렸다는 듯이 수건을 가져와서 테이블을 닦았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은하가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어때요? 어때요? 놀랐죠?”
“…….”
놀랐냐, 안 놀랐냐라고 물으면 놀랐다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놀람 이상으로 황당해졌다.
그는 수저를 보고 사골 국물을 교대로 보더니만 이번에는 사골국의 냄새를 맡았다.
약간 쿰쿰한 소뼈의 진한 냄새.
구수하다 못해서 기름진 이 사골국의 냄새!
어딜 봐도 사골국이다.
그런데…….
“맛이 왜 생크림?”
“굉장하죠?”
“굉장하긴 굉장한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스스로의 입을 믿을 수가 없게 됐다.
민은 천천히 수저를 들어 다시 사골국을 한 입 먹었다.
먹자마자 느껴지는 이 강렬한 생크림의 맛!
진하다 못해서 농후한 이 크림의 맛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골국인데, 먹으면 생크림?
“어, 어째서?”
“몬스터의 뼈로 만든 사골이라서, 음 속성이 충만해서 그렇대요.”
“음 속성이랑 생크림이랑 무슨 관계가 있… 아니, 됐다.”
그분이 만드는 음식이 언제는 상식적이었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야구로 치자면 구질이 다른 것이다.
그가 만드는 대체로 요리는 괴롭거나, 아프게 만드는 고통이 수반된 음식.
그러니까 직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골인 줄 알았는데 생크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음식.
즉, 변화구!
“이, 이런 것도 만드실 수 있었구나!”
“근데 맛있죠?”
“맛있냐고 하면……. 그래, 맛있네.”
맛은 있다.
생크림 중에서도 이 정도면 최고급 생크림의 맛이다.
일류 파티쉐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맛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적은 맛이 아니라 선입견이다.
“이거 사골국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괴식이네.”
“그래서 그럴까요? 외국인분들은 다 호평이셨어요. 맛있다고 하셨어요.”
“나도 사골국을 안 먹어봤으면 그렇게 말했을 거야.”
요리에서 시각과 후각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일단 눈으로 이걸 사골국으로 인식했고, 코가 사골국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맛은 생크림이니까, 이 낙차가 장난이 아니다.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 민에게 은하가 말했다.
“밥도 말아 드셔야 돼요.”
“새, 생크림에 밥을 말라고?”
“꼭 드셔야 한다고 했어요.”
“…….”
생크림에 밥을 말아먹다니, 그게 뭔 괴식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ISAC의 헌터 중에서도 종종 있었다.
우유에 밥 말아먹는 입맛을 가진 녀석이-!
“그걸 시키는 건가……. 제길. 선생님이 시키신 일이니까 의미가 있겠지.”
민은 눈을 딱 감고 절반의 밥을 사골국(을 가장한 생크림)에 넣었다.
그리고 슥슥 말아서 한 입을 먹고.
바로 다시 뿜었다.
“생크림 케이크-?!”
“굉장하죠?”
“아니, 이게 말이 되냐?! 연금술이야?!”
겉보기는 밥인데 스폰지 케이크?
민은 납득을 할 수 없다는 눈으로 보다가 이번엔 석박지와 겉절이김치로 눈을 돌렸다.
석박지, 큼직하게 만들어진 깍두기다.
설렁탕과 사골국과 같이 먹으면 10배는 맛있어지는 마성의 반찬.
민이 두려움에 떨면서 석박지를 씹었다.
은하가 생긋 웃었다.
“맛있죠? 딸기 맛이에요.”
“그러니까아-!?”
석박지에서 왜 딸기 맛이 나냐고?!
“그럼 이건 뭔데?! 이건 뭐 사과 맛이라도 나냐!
민은 바로 젓가락을 움직여서 겉절이김치를 입에 넣었다.
겉절이김치는-!
“김치네?”
“김치니까요?”
“…….”
그냥 겉절이 김치였다.
완벽하게 놀아나고 있다.
여래의 손바닥 안에서 날아다니던 손오공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승우가 머리 위에서 미소 짓고 있는 것 같다.
민이 황당하게 밥상을 봤다.
그러고 있으니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푸, 푸하하.”
실소를 짓고 이제야 이해했다.
주의 사항이 왜 있는지.
왜 맛에 대한 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지.
“이거 나만 당할 수는 없지.”
아직 안 먹어본 녀석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런 건 말해주면 재미가 없다.
은하가 깔깔 하고 웃었다.
“삼촌 말로는 스포일러 금지래요.”
“그래, 알았다. 스포일러는 나쁜 일이지. 나쁜 일이고말고.”
이걸 누구에게 먹여주지?
민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 *
보통의 사람들은 직장을 구할 때, 제일 먼저 보수를 확인한다.
일이라는 게 그렇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게 일인데 보수가 최고로 중요한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리비의 경우에는 보수보다는 재미가 먼저였다.
재미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천금이 들어와도 시시한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시시한 사람이 시키는 일은 시시하게 마련.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을 함께한 리비의 파트너, ISAC 총장인 주혁진은 좋은 동업자다.
재미있는 일을 시키고 목숨이 꼴랑꼴랑 할 정도로 어렵고 힘들면서 어쨌든 할 수는 있는 일을 준다.
보통 사람에게는 이것이 혹사겠지만 리비에게는 포상이었다.
그리고 성격도 꽤 맞았다.
본래 게임을 만들던 게임 회사 사장이어서 그럴까?
그는 의외로 위트 있고 재밌는 사람이었으며 심술궂은 면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 재밌네.”
리비는 귀환자, 유승우와도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생크림 케이크 맛 사골국?
이 심술궂음이라니!
리비는 입가를 닦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