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43)
괴식식당-143화(143/613)
143화. 기말고사 (1)
퍼스트 오더 65위, 윤은형은 착각하고 있었다.
‘성적이 안 올라.’
자기 자신은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퍼스트 오더로서 교육받은 군 지휘관 지식과 통제 요령.
수신호나 모스 부호, 특별 법규 조항.
수많은 병기의 사용법과 응용법.
몬스터의 대처법과 유형 등등등.
은형이 머리에 새긴 지식은 머리가 나쁜 사람이라면 익힐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오죽하면 퍼스트 오더 중에 머리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까.
백강혁조차도 지능지수로 보면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많은 걸 배우고 익히고 기억하며 퍼스트 오더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의 뛰어난 머리로 공부를 하면 그깟 성적이야 얼마든지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전교 280등…….’
321명 중에서 280등이다.
‘이, 이상하다. 중학교 때는 공부 안 해도 중상위권이었는데?’
고등학교 들어와서 확실히 성적이 낮아지긴 했다.
그야 공부를 안 했으니까.
그리고 바빴으니까.
하지만 공부를 안 했을 때야 등수가 낮은 게 당연하지만, 이번에는 공부를 했다.
아주 죽어라 했다.
그런데 5등 올랐다.
은형이 중간고사 결과를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째서지? 왜 성적이 안 오르지?”
“어째서긴 뭐가 어째서야, 밥통아. 다른 애들은 공부 안 하냐?”
전교 1등, 전국 1등의 석차를 자랑하는 권능하가 히죽 웃었다.
“나도 공부했다고-!”
“야, 생각을 해봐라. 요즘 공부하는 애들이 보통 애들인 줄 알아?”
“보통 애들이 아니면?”
“이능력 각성을 위해서 노력하거나 다른 기술을 익힐 시간에 공부를 한다? 그건 아예 공부에 목숨을 걸었다는 이야기라고. 너처럼 벼락치기로 잠깐 공부하는 게 아니라 계속 진득하게 공부했는데 상대가 되겠냐.”
“윽.”
“5등 오른 거? 야, 장난하냐. 네가 있던 밑바닥 애들은 공부하는 애들이 아냐. 그냥 엄마가 학교 가라고 해서 나오는 애들. 그러니까 태어난 김에 사는 애들이거나 너처럼 벌써부터 다른 직업을 가지고 기술을 익히는 애들이라고. 공부를 조금만 더 하면 5등쯤이야 당연히 오르지. 밑바닥이니까. 하지만 딱 중위권부터는 넌 절대 못 올라가. 왜냐? 거기서부터는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피터지게 공부하는 애들이거든. 짬짬이 공부하면서는 걔네들 못 이겨.”
팩트와 팩트로 버무려진 공격!
능하의 빠른 말에 은형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결과가 보여준다.
은형은 280등.
“너는?”
“1등이지. 뭘 또 새삼스럽게 물어봐.”
“왜지?”
능하도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쟤도 일하고, 서류 정리도 하고 그러던데?
능하가 상큼하게 웃었다.
“그야 난 천재니까.”
“하. 웃기시네.”
“어디가 웃기지? 응? 대체 어디에서 웃을 수 있는 거지? 280등 양반?”
팔랑팔랑하고 흔들리는 성적표, 1등이라 적힌 저놈의 성적표!
은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전교 1등, 전국 1등을 놓친 적 없는 놈이 상큼하게 저리 씨부리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때렸다.
“잘났다, 망할 자식아!”
“당연히 난 잘났지! 우하하하!”
때리는 쪽과 맞는 쪽.
이 경우에는 때리는 쪽이 진 거고 맞는 쪽이 이긴 거겠지.
“나를 때린다고 성적이 오르지는 않는다네~”
“…….”
이 자식을 입원시켜 버리면 전국의 모든 학생들의 석차가 1등 오르겠지?
은형은 그렇게 생각하며 싸늘하게 능하를 봤다.
“친구만 아니었어도 1등을 더 올릴 수 있었는데…….”
“너 졸래 위험한 생각 하는 거 같다……?”
“진짜 아깝다.”
“…….”
능하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어, 어쨌든 이걸로 이번 중간고사는 조졌으니 검술 배우기는 글렀네.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다니?”
“아니, 그 사람이니까 애걸복걸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어떻게 해보면 검술 가르쳐 주지 않을까?”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충실히 하라는 말은 못 지켰다.
하지만 유승우도 사실 급진적인 성적 향상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공부 자체를 하는 걸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공부를 해왔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정도 조건은 충족했고, 뭐 여차하면 밥이라도 좀 먹던가 알바를 하면 되겠지.
능하는 그리 생각하면서 말했지만 은형에게는 아니었다.
“싫어. 석차 올리고 나서 가르쳐 달라고 할 거야.”
“새끼, 존심은…….”
이제 와서 협상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그것은 은형의 높은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려죽여도 성적을 올려서 유승우의 면상에 성적표를 던지면서 나를 가르치라고 외칠 것이다.
은형은 조져 버린 성적표를 찢어 버리며 이를 갈았다.
“다음 시험이야말로-!”
“뭐 다음 시험도 내가 계속 1등하겠지.”
“…….”
와, 진짜 이 자식 재수 없어.
은형이 능하의 등짝을 후려쳤다.
* * *
그렇게 지난번 중간고사는 망쳤다.
시간이 흘러 다음의 시험 기간이 시작됐다.
이제 기말 고사가 코앞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은형은 꽤 많은 반성을 하고, 더 많은 노력을 했다.
다만 그 방향성은 굉장히 어긋나 있었다.
“네가 이 방면에 최고라고 알고 있다. 할 수 있겠지?”
“아, 그래서 본인에게 왔다고? 뭐, 조선제일의 무당을 자부하는 이 홍룡도령에게는 쉬운 일이지.”
괴력난신(怪力亂神)!
공부를 하느니 학업증진의 부적을 쓴다!
은형은 은행잔고에 그득하니 쌓인 월급을 써서 홍룡도령에게 부적을 사기로 작심했다.
그의 부적은 영험하다고 소문이 났으며 정말로 성적이 쑥쑥 오른다고 명성이 자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중간고사에서 은형의 밑에 있던 녀석이 치고 올라서 단번에 100등 안으로 올라가기도 했는데 그것이 바로 홍룡도령의 힘이었다.
“그나저나.”
사연을 다 들은 홍룡도령이 쯧쯧쯧 하고 혀를 찼다.
“거참, 얼굴이 반반하니 연예계로 가도 좋고, 퍼스트 오더니 칼밥을 먹고 살아도 잘살 터인데 어째서 그리 공부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소이다.”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할 수 있어?”
“학업증진의 부적이야 쉽지. 그래, 어디까지 보고 오셨소?”
홍룡도령이 느긋하게 웃었다.
학업 증진을 위해서 눈이 돌아간 고객님, 그것도 퍼스트 오더다.
과연 어디까지 질러줄 것인가!
목표는 어디인가!
은형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교 1등. 금액은 네가 불러.”
“1등? 어허, 크게 나오시는구려.”
“콧대를 뭉개줄 녀석이 둘이나 있어.”
“1등과 2등이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군. 좋아, 그렇다면 꽤나 크게 내셔야겠소이다. 령들이 말하길 보통 큰일이 아니라구만.”
“그래서 얼마지?”
“큰 거 네 장 되시겠소이다.”
큰 거 네 장?
은형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400만 원이나 받아?”
탁- 하고 홍룡도령이 부채를 접었다.
“…장난하시오?”
“아. 40만 원이지?”
“이 사람아, 내가 굿 한 번 하면 얼마나 나오는지 모르고 온 거요?”
“설마 4000만 원이야?!”
홍룡도령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귀하의 학교 전교 1등이라 하면 전국 1등 아니겠소? 기말고사라 전국 순위를 따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사실상의 전국 1등을 만들어주는 데 고작 4000만 원 받는다면 전국의 학부모들이 집 앞에 진을 치고 있겠지. 당연히 4억이외다.”
“4억-!?”
은형이 벌떡 일어났다.
4억이라니-!
고등학생에게 4억은 정말 너무 큰돈이었다.
그가 억대로 버는 건 사실이나 씀씀이는 역시 고등학생!
백만 원짜리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살 때 손발이 덜덜 떨리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너무 비싸잖아!”
“미안하지만 싼 거요.”
“!”
“귀하가 퍼스트 오더라 인맥을 터두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나는 지금 10억쯤 불렀을 거라오.”
“우, 웃기지…….”
“돈으로 당신의 자식을 전국 1등으로 만들어주지, 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10억을 바칠 사람 정도는 얼마든지 있다오. 실로 이 조선팔도의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은 고금제일인지라 당연한 일이외다.”
“으… 으음.”
듣고 보면 그런 거 같기도……?
“거, 효과를 못 본다면 내가 환불 정도는 받아주도록 하겠소이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소?”
“밑져야 본전이라고?”
“효과를 보면 1등이고 못 보면 뭐, 환불해 주는데 손해가 있겠소?”
“…그건 그렇군.”
문제는 이제 하나였다.
4억을 줄까 말까.
통장에는 그 이상의 돈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은형은 아직 고등학생이고, 돈의 개념을 잘 몰랐다.
그래서 ISAC에서 붙여준 재산관리사에게 용돈을 받아서 사는 게 평소 생활이었다.
‘4억이 한 방에 빠지면 걸릴 텐데?’
400만 원이 빠져도 재산관리사가 놀랄 텐데, 4억?
큰일이 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지만 애초에 전교 280등 하던 놈이 전국 1등 하면 걸리는 게 당연하다.
급격한 성적 향상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완전범죄를 꿈꾼다면야 천천히 등수를 올려야 하는 게 응당 당연한 일!
그러나 눈이 돌아간 은형은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일단 능하의 콧대를 부러트리고 다음은 유승우에게 본때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나머지 일은 알 바 아니었다.
“할부 돼?”
“24개월로 해드리겠소.”
“좋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분할 납부는 아는구먼.
홍룡이 팔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지금부터 부적을 두 종류를 써드리겠소. 하나는 잿물에 달여서 마실 것이고 하나는 품에 넣고 있으면 좋을 거요.”
“마신다고? 잿물을?”
“거, 그 정도는 참으시구려.”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은형이 고운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홍룡도령은 느긋하게 노란색의 부적을 꺼내고 붓을 들었다.
척 봐도 신묘한 힘이 서린 금필이었는데 그 끝에 적혀진 것은 새빨간 것이었다.
살짝 느껴지는 피비린내.
먹물이 아니라 닭의 핏물이다.
일필휘지.
노란 종이에 닭의 피로 한순간에 문양을 그리니 문외한이 보아도 그것은 꽤 그럴듯했다.
“이 첫 번째 부적은 시험 보는 날 아침에 태운 후, 그것을 찬물에 타서 마시면 되오. 요즘 고등학생들 시험이 며칠 보오?”
“3일.”
“그럼 세 장을 써주겠소이다. 잘 기억했다가 아침에 꼭 마셔야 하오.”
“알겠어.”
“그리고 이 두 번째의 부적은 그냥 품에 넣고 있으면 되오. 때가 되면 알아서 그 힘을 보일 것이외다.”
그 부적은 상당히 사이하게 생긴 부적이었다.
검은 종이에 하얀 색으로 그려진 문양은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은형은 몰랐지만 이 부적은 은하가 박달수의 집에서 찾은 부적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흠. 알았어.”
하지만 사이하다고 해도 은형은 사이한지 어떤지 그런 것을 조금도 몰랐다.
그가 품에 넣고 갈무리하자 홍룡도령이 웃었다.
“이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오.”
홍룡도령이 호언장담했다.
이것은 승우가 그를 찾아오기 3일 전의 일이었다.
* * *
그 3일 후.
용사의 밥집.
홍룡도령, 한유성은 쌀 좀 깨끗하게 씻어서 밥을 해두라는 승우의 말에, 세제를 넣고 쌀을 뽀득뽀득 닦다가 혼이 났다.
깨끗하게 씻으라고 해서 세제를 넣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입술을 한껏 내밀고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지?’라고 투덜거리며 폰을 꺼냈다.
화가 날 때는 폰을 꺼내 통장내역을 보는 것이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음, 좋아. 입금이 됐군.’
여기저기서 입금이 된 걸 보니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기분이 좋은 건 좋은 거고 일은 일이다.
‘받았으니, 그 값은 해야겠지.’
다른 일은 몰라도 윤은형의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로서도 준비가 필요한 일!
한유성은 조용히 눈치를 보다가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날카로운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었다.
“저거 수상하네.”
승우가 살짝 눈을 치켜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