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53)
괴식식당-153화(153/613)
153화. 기억
“어렵네, 어려워.”
오늘은 가게를 닫았다.
공부를 위해서다.
승우는 책상 앞에 앉아서 연신 책을 뒤적거렸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초보 신을 위한 차원 법 특강]과 [오버마인드만큼 할 수 있는 차원 법] 같은 차원 법에 대한 것으로, 모두 어렵게 구해온 책들이었다.
“책값이 어지간히 비싸야지…….”
이런 책을 구한다는 건 구매자가 당당한 신이라는 의미.
그래서 그런지 책값이 보통 비싼 게 아니었다.
책 두 권을 사는 데 백강혁이 모아준 신력을 죄다 탕진해 버렸다.
다른 신이 들었다면 뭔 인간 하나가 그리 신력을 많이 모아줬냐고 놀랄 일이었지만, 고작 책 두 권에 갖고 있는 신력을 펑펑 써야 했던 입장에서는 과소비한 기분이었다.
“공부라니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네.”
그가 왜 차원 법을 공부하는가.
그것은 그가 신이기 때문이며, 그것도 하필이면 지구에서 유일한 신이기 때문이었다.
“지구를 위해서라면 공부를 해야겠지.”
차원 법에 의하면, 적합한 신이 없는 곳은 차원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올림포스 신들이 떠난 뒤로 지구는 차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승우라는 신이 있다.
그는 만신전의 에메랄드 타블렛에 이름이 적힌 진짜 신이었다.
그래서 따로 더 신경 써야 할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차원 법 1조 1항. 신으로서 올바르게 신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소속 차원에 신전을 지어야 한다.”
테라에도 이러한 신전이 있다.
로프트기우스 왕국에 가이아 신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아테나나 아레스 같은 신들이 살고 있는 것은 테라 산꼭대기에 있는 올림푸스 신전.
신이 거주하니 신전이라기보다는 신청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자면 그 차원의 신이 안건을 처리하고 토의를 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공간이다.
지구에는 아직 이런 신전이 없었다.
“신전을 지으려니까 또 법을 알아야 하고…….”
그건 또 차원건축법이라는 게 있으시단다.
정말이지 법을 알자니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머리가 아프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지.”
차원법의 보호를 받고 안 받고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차원 법은 만능은 아니다.
차원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게이트가 생기는 걸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보조를 받을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시간 축을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은 중요하지.”
지구와 테라의 시간 축은 엉망이었다.
어느 때는 하루면 반년이지만 어느 때는 한 시간이 한 달이기도 하고, 종종 같은 시간으로 흐를 때도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의 원인은 따지고 보면 지구에 있었다.
테라는 차원법의 보호를 받는 정규 차원이고, 지구는 차원법의 보호를 못 받아서 차원표준시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시간이 어느 한쪽에게 불리하게 흐른다면 에너지의 불균형으로 인한 멸망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시차를 이용한 적의 공격이다.
이쪽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데 저쪽은 1시간에 10년 정도 흐른다고 쳐보자.
거의 무한 보급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게이트를 서로 연결하면 비슷한 시간이 흐른다는 조항이 있긴 하다만 예외 조항도 100개가 넘었다.
알면 아는 만큼 이득을 보고 모르면 모르는 만큼 손해를 본다.
현실의 법과 딱 똑같은 상황이다.
승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표준차원시도 그렇고 외교권도 그렇고 다 필요하긴 한데… 끄응…….”
배울 건 산더미만큼 있다.
승우는 앓는 소리를 내며 하나하나 차원 법을 암기했다.
“신도 못 해 먹을 짓이네.”
한참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 식사 시간이다.
승우는 잠시 상황을 떠올려 봤다.
나비는 요즘 재미가 붙었는지 아르바이트를 다닌다.
목표였던 세탁기는 이미 샀지만 그냥 일이 재밌다니까 말릴 수도 없었다.
오늘은 백화점 시식 코너에서 일을 한다던가?
“은하는 유치원에 갔고, 태지는 거기서 먹을 거고…….”
그렇게 되면 가게에는 승우와 한유성, 영식이만 남는다.
유성에게 점심 식사를 시키면 엄청난 꼴을 당하겠지.
“세제로 쌀을 씻는 정신 나간 놈의 밥을 먹다니. 정신 나갔지. 아무튼 내가 해야겠네.”
그렇게 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문을 열고 영식이가 나타났다.
녀석은 파란 앞치마를 두르고 말했다.
“요리할 거야뿌!”
* * *
사락사락.
영식이가 촉수로 요리책을 넘겼다.
‘음……. 쉬워 보인다. 조아써.’
영식이가 보고 있는 건 프랑스 요리책이었다.
시라노가 승우에게 선물한 정통프렌치 요리책!
“할 수 있을 거 같아뿌.”
Escargots. la bourguignonne.
사워크림을 사용한 달팽이 요리, 통칭 에스카르고.
턱을 괸 채 한가롭게 티비를 보던 유성이 영식이 손에 든 책을 보고 말했다.
“그걸 할 거라고? 어려울 거요.”
“뿌?”
“허허. 뛰기 전에 날려고 하구려. 프렌치 요리라는 건 보통 어려운 요리가 아니외다.”
이게 대체 무슨 근자감인지.
요리 초보자인 유성도 프랑스 요리가 어려운 걸 알고 있었다.
이 슬라임은 대체 왜 이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의문을 담아서 영식을 봤지만, 영식은 콧김을 뿌- 하고 내뱉더니만 몸을 조금 크게 부풀렸다.
“할 수 있다뿌.”
영식이는 지금껏 많은 요리를 보아왔다.
보통 요리가 아니다.
나비가 만들고 승우가 만든 초차원적인 요리!
그런 요리에 비해서 이 에스카르고라는 요리는 너무나 쉬워 보였던 것이다.
그야 마법도 안 쓰고, 이세계의 몬스터도 쓰지 않으니까.
그냥 자르고 굽고 끓이면 되는 거 아닌가!
유성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거참, 관우와 여포가 싸우는 걸 보고 여포는 무리겠지만 관우쯤은 이겨볼 만하겠구나 하는 거 아니오? 그러다가 관우에게 맞는 수가 있소이다. 초보자는 엄백호랑 놀아야지 뭔 놈의 객기인지 모르겠구려.”
“뿌?”
얘가 뭐라고 하는 거지?
영식이의 눈이 물음표가 됐다.
“이런, 애가 이해하기엔 조악한 비유였나. 요컨대 처음 요리하는 거라면 쉬운 걸 하라는 이야기지.”
“뿌.”
쉬운 걸 해도 과연 아빠가 맛있어할까?
영식이가 끙끙거리면서 고민했다.
그러자 유성이 상쾌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다른 방법이 있소.”
“뿌?”
“귀하가 이곳에서 받은 용돈이 그럭저럭 있는 걸로 아는데, 그걸 본인에게 주시구려. 그럼 그 돈으로 다른 곳에서 아주 맛있는 걸 구해올 테니 그걸 귀하가 한 요리라고 말하면 되지 않겠소?”
보아하니 쌈짓돈으로 받은 돈이 상당했다.
그걸 받고, 한 3만 원짜리 배달 족발을 시켜주면?
남는 건 다 내 돈!
아이의 코 묻은 돈까지 갈취하려는 유성의 개수작이었다.
유성은 성공을 자신했다.
같이 며칠 살아 보니 이 슬라임은 완전 어린애였다.
아는 것도 없고, 단순한 어린애.
‘그런 어린애 하나 등쳐 먹는 건 일도 아니지.’
무당으로서 수많은 사람을 등쳐 먹었는데 고작 슬라임쯤이야.
그렇게 생각한 유성을 향해 돌아온 건 따귀였다.
“악-!”
영식이는 손을 파리채로 만들어서 유성의 뺨을 후려쳤다.
쫙- 하고 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
“으, 뭐요. 갑자기 공격을 하더니만 왜 쪽지를 보이…….”
영식이가 보여준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만약 유성이 돈을 요구하면 때려라.유성이 거래를 요청해도 때려라.
혹시 유성이 뭔가 하자고 해도 때려라.]
승우의 필적이었다.
유성은 꾸깃 하고 쪽지를 구기며 이를 갈았다.
“고오얀. 아무리 신선이라고 해도 관심법을 쓰다니-! 사람의 마음을 그리 마음대로 읽으면 안 되는 걸 모르나! 남의 마음에 장화 발로 그리 무참하게 들어오다니 강호의 법도가 땅에 떨어졌구나!”
법도고 뭐고 반응을 보니까 알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인간이 나를 속이려 했다.
그걸 눈치챈 영식이가 위협적으로 파리채 손을 흔들었다.
유성이 투덜거렸다.
“에잉. 장사 못 해 먹겠군.”
“뿌뿌!”
“악악! 그만두시오! 등짝이 아프오! 아직 지난번에 맞은 게 덜 나았단 말이오!”
“뿌? 그럼 앞뿌.”
“우와아악-! 낭심은 더 안 되오!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소?!”
유성이 황급하게 도망갔다.
평온을 되찾은 영식이는 뿌뿌거리며 다시 책을 펼쳤다.
‘움?’
아까까지 충만했던 자신감이 사라졌다.
이제는 다 어려워 보인다.
이게 다 저 인간 때문이다.
영식이는 호다닥 달려가서 티비를 보는 유성의 엉덩이를 때렸다.
“거기도 안 되오!”
“그럼 어디 때려뿌?”
“사람은 때리면 안 되는 거요! 부모에게 그것도 못 배웠소?!”
“뿌모?”
영식이가 아리송하게 꿈틀거렸다.
부모.
아버지와 어머니.
영식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맞다. 이 녀석 몬스터지.’
몬스터라고 해도 부모는 있겠지.
그래서 뭔가 패드립을 한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유성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패드립이다.
조상을 모독해서 좋을 게 뭐란 말인가.
“미안하오. 실언이었소.”
유성이 사과를 했지만 영식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뿌…….”
영식이는 머릿속을 타고 흐르는 기억에 혼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남자가 영식이를 보더니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게 못내 싫어서 고개를 돌리니 반대편에서는 한 여자가 영식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여자는 영식이에게 먹을 걸 내밀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빵.
그리고 몽글몽글하게 만든 달달한 계란.
영식이는 그 맛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그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뿌?”
영식이는 홀린 듯이 주방으로 가서 프라이팬을 꺼냈다.
버터를 구르고, 나비가 만들어둔 식빵을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식빵에 약간의 설탕을 뿌리고, 이번에는 계란을 꺼냈다.
그릇에 계란을 까 넣고, 우유를 부었다.
어느 정도 부어야 하는지는 몸이 알았다.
“뿌.”
버터를 두른 프라이팬에 계란 물을 풀었다.
소금을 조금 넣고 밑면의 색이 변하자 정신없이 젓가락을 흔들었다.
몽글몽글.
재밌을 정도로 계란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다 보니 이게 웬걸?
기억 속의 계란이 되었다.
“뿌?”
내가 이걸 어떻게 한 거지?
영식이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엣헴 하고 살짝 몸을 부풀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이 다 되었다.
이걸 이제 아빠에게 줘야지.
영식이는 그릇에 빵과 스크램블 에그를 담고 컵에 우유를 한 잔 따랐다.
이거면 한 끼 식사로는 충분하겠지?
영식이가 의기양양하게 승우의 방으로 향했다.
유성은 입맛을 다셨다.
“본인 것은 없소?”
의외로 맛있어 보였는데 말이지.
* * *
식빵과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우유 한 잔.
서양인의 모닝세트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이것은 모닝세트라고 불릴 만한 요리였다.
바쁜 아침에 요리하기도 편하고 맛도 좋다.
그리고 영양밸런스도 매우 훌륭하다.
‘이건…….’
승우는 표정을 살짝 굳히고 식빵을 봤다.
버터를 살짝 두른 식빵은 적당하게 잘 구워졌다.
초보자가 만들면 버터가 타서 탄 자국이 남게 마련인데 그것도 없다.
스크램블 에그는 한층 더했다.
계란은 섬세해서 조금만 열 조절에 실패해도 눌어붙는다.
그게 싫어서 계속 뒤적거리면 이번에는 몽글몽글해지지 않고 퍼석해진다.
버터를 넣어서 몽글몽글하게 만든 스크램블 에그는 소금 간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초보자의 실력이 절대로 아니다.
“뿌!”
칭찬해 달라는 건가.
승우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영식이를 끌어안았다.
차갑고 말랑말랑한 몸이 느껴졌다.
“뿌?”
“고마워.”
“뿌뿌~♪”
영식이가 같이 먹자며 양손을 흔들었다.
“잘 먹을게. 맛있겠다.”
“뿌~”
빵과 스크램블 에그는 맛있었다.
너무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은 맛.
이게 아마 영식이의 원래 입맛이겠지.
승우는 그 맛을 기억하면서 눈을 감았다.
‘좋은 요리야. 하지만 너무 잔혹하군.’
어째서 슬라임인 영식이가 이런 요리를 할 수 있었는가.
그는 그 원인을 눈치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맛나뿌~!”
“그러게. 맛있다.”
그냥 상냥하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승우는 영식이를 무릎에 올리고 밥을 먹었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된 승우.
그냥 기분이 좋은 영식이.
그리고.
“본인은 그냥 없는 사람이오? 밥은 줘야지.”
뿔이 나서 배를 곪고 있는 사람이 여기 하나.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