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67)
괴식식당-167화(167/613)
167화. 단죄 (1)
올림포스의 신들이 경악했다만, 레나토도 마찬가지로 경악했다.
“설마 제가 진심으로 당신들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 겁니까?”
이해가 안 되는 사고방식이다.
승우의 용사파티 3인방은 확실하게 말해서 아웃사이더다.
파티 결성 때부터 지금까지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레벨이 낮을 때는 가망이 없을 거라는 이유로, 레벨이 어느 정도 됐을 때는 저러다가 망할 거니까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레벨이 높아졌을 때는 높아졌으니까 투자할 필요 없다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전혀 도움을 받진 못했지만, 거기까지였다면 그래도 악감정까지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를 했다.
퀘스트를 내려놓고서 보상을 주지 않거나, 다 깬 퀘스트를 자신들이 밀어주는 용사들.
이를 테면 제우스의 손자나 아들, 아레스가 총애하는 용사들을 시켜서 가로채기까지 했다.
그러한 일화는 너무나도 많아서 일일이 끄집어내서 말하자면 1년 12달을 씹어도 끝나지 않는다.
그런 녀석들이 지금 레나토가, 승우를 돕겠다는 걸로 경악한 건가?
“뻔뻔한 것에도 등급이 있다면 당신들은 분명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군요.”
“저 녀석들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이건 나도 할 말이 없네.”
승우가 혀를 내둘렀다.
애초부터 레나토와 승우가 싸운다는 가능성은 0%였다.
그런데도 자신들을 도와줄 거라고 확신하다니, 뭔 근자감이란 말인가.
“특권 의식 때문에 그래.”
“특권 의식이요?”
“저 녀석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신이었고, 신의 자식이었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이야. 그러니까 뭘 하더라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지.”
레나토는 승우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고 있으니 아레스가 악을 썼다.
“헛소리하지 마라-! 우리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봐봐. 뭘 잘못했냐네. 나 참, 얼탱이가 없어서 말이야.”
승우가 발로 돌멩이를 걷어찼다.
그러자 그 돌멩이는 공기의 장벽을 뚫는, 소닉붐 현상을 일으키며 아레스의 미간에 처박혔다.
“컥-!”
투가가각 하고 지면이 갈리며 아레스가 날아갔다.
아레스는 이걸로 다섯 번째 죽음이다.
(전)전쟁의 신치고는 너무나 비참하며 하찮은 죽음이었다.
그의 시체가 지면에서 솟아난 검은 팔에 의하여 명계로 끌려갔다.
“아들아-!”
“그래, 거기 제우스 씨. 납득을 못 하는 거 같으니 일일이 뭘 잘못했는지 불러줘?”
칵- 하고 지면에 검이 박혔다.
승우가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애초부터 이곳 자체가 말이 안 돼.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세계로부터 용병을 구해 와? 합의도 뭣도 안 됐는데 강제로 끌고 와서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부려 먹어. 그리고 합당한 대가도 주지 않지. 이게 지금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거냐? 진짜 니들 다 죽어볼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태어나서 남과 싸움 한 번 안 해본 순둥이 중학교 도덕 교사가 갑자기 이세계로 떨어졌다.
그리고 노예가 돼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검투장에 끌려갔다.
살아남기 위해서 몇을 죽였는가.
명색이 ‘도덕’ 교사라는 자가 고작 생존을 위해서 타인의 숨통을 끊었다.
승우는 아직까지도 꿈에서 자신이 죽인 자의 비명을 듣는다.
아마도 평생을 갈 트라우마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르지? 모르겠지. 너희들은 신이고, 인간의 아픔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내가 너희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몇 번이나 느꼈는지도 모를 거다.”
그가 지금까지 참은 이유는 레나토 때문이었다.
친구가 참아달라고 하니 참아준 것뿐이다.
그리고 레나토가 말했다.
이번에는 참지 말라, 라고.
“레나토는 너희가 타르젤리아 축제를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까지의 죄를 반성하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거라고 믿은 거야. 나? 나는 당연히 너희 개자식들이 할 거라고 믿었지.”
“그럼…….”
“그래, 그 축제가 너희들의 최후의 기회였어.”
애초부터 울분을 삭히고만 있었던 승우.
그리고 끝까지 올림포스의 신을 믿은 레나토.
타르젤리아 축제가 그들의 기준이었다.
축제를 멈춘다면 레나토가 옳았다.
올림포스의 신도 반성을 아는 이들이고 앞으로 바뀔 가능성이 더 있다.
축제를 강행한다면 유승우가 옳았다.
이 녀석들은 살려둘 가치가 없는 개자식들이다.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고, 돌이킬 수는 없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타르젤리아 축제라는 마지막 기회를 걷어찼다.
“너희들은 이제 끝이다.”
분노한 검의 용사가 단언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마음속에 있던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신이라는 자부심, 특권 의식.
신들을 신으로 만드는 굳건한 믿음이 무너졌다.
강하다, 너무나도 강하다.
그와의 수준 차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커서 올림포스의 신과 필멸자인 인간의 격차보다도 컸다.
도저히 이긴다는 가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직 세 개의 신명 무구가 남아 있었다.
아예 본인이 가진 힘의 편린조차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
희망은 없다.
올림포스의 신이 모두 모이면 반은 죽겠지만 이길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알았다.
신이 모두 모여도 그의 힘을 절반도 끌어낼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모조리 죽는다.
예외가 있다면 아테나와 가이아 정도일까.
아테나는 용사의 협조자였으며, 다른 신들과는 다르게 큰 죄를 짓지는 않았다.
다만 가이아는, 가이아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제우스가 최후의 방패막이를 들었다.
어떻게든 레나토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하지만 부활과 단죄의 신이여. 자네는 그럼 가이아마저 단죄할 생각인가?”
“…….”
“그녀 또한 올림포스 12주신의 일각. 자네들의 말대로라면 큰 죄를 지었지. 그러니까 책임은 피할 수 없어.”
레나토가 힐끔 승우를 봤다.
그러자 승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잠시 물러나 줬다.
죽이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속 시원한 해명이다.
‘추궁하고 싶은 만큼 해봐. 오늘은 결자해지의 날이니까.’
‘고맙습니다.’
둘은 무언의 시선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렇게 승우가 비켜주고 레나토가 말없이 가이아를 봤다.
그녀는 움찔 하고 떨면서 흙 묻은 얼굴을 털어냈다.
제우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평소의 깔끔한 모습이던 가이아와는 다르게, 지금의 가이아는 마치 전쟁터의 민간인 같았다.
행색은 남루하고, 흙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온몸은 흙투성이다.
거기에 평소 싸움이라는 걸 해본 다른 신과는 다르게, 싸움 따위는 해본 적 없는 무구한 꽃의 신의 자태는 보호 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내라면, 그리고 신자라면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동정심이 들게 마련.
특히 레나토라면, 레나토라면 마음이 흔들릴 터.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차분하던 레나토의 눈이 일그러졌다.
“예전부터 무엇인가 위화감은 있었습니다.”
“……?”
“한 달간 바뀌지 않는 옷.”
“아, 아, 그건…….”
가이아가 얼굴을 붉히면서 몸을 가렸다.
레나토는 이를 빠득 갈았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남루한 행색. 고서에 기록된 녹음의 드레스는 어디에 있습니까?”
“윽…….”
가이아의 신명 무구는 녹음의 드레스, 대자연의 힘이 집중된 철벽의 방어구다.
신이라면 자신의 신명이 새겨진 무구를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가이아에게는 그게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신명 무구를 아낄 이유는 없지요.”
다 죽게 생긴 판이다.
이제 와서 신명 무구를 아낄 머저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신명 무구를 챙기지 않았는가.
“강적과 싸우다가 파괴됐거나, 신명을 잃었거나…….”
본인이 가이아가 아니거나.
레나토가 조용히 가이아, 아니, 플로라를 봤다.
그 눈에 플로라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되니 플로라 대신 대답한 것은 막 부활해서 달려온 헤라였다.
“마왕에게 당했을 때 잃어서 그래!”
“마왕에게 당했다라, 그렇다면 그건 넘어가겠습니다. 그럼 그녀는 왜 방어구 같지도 않은 남루한 옷을 입고 있고, 당신은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최고급의 아티팩트를 전신에 처바른 겁니까.”
헤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둘은 너무나 비교가 됐다.
한쪽은 죽지 않기 위해서 방어구를 잔뜩 껴입었고, 플로라는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얇은 튜닉 하나뿐이었다.
“무엇 때문에 대접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내 아내의 허영심은 알지 않는가.”
제우스가 그리 끼어들자 헤라가 발끈했다.
허나 뭐라고 항의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외줄 타기였다.
레나토와 가이아의 관계를 이용한 외줄타기.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굴러 떨어진다.
제우스가 신중하게 말했다.
“신력이 고갈되어 상황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내 아내가 허영을 좀 부렸네.”
“좀, 이라. 좀…….”
“미안하게 됐네. 가이아에게는 내가 개인적으로 챙겨 줬어야 하는데…….”
과연 주신을 해먹을 만한 정치 감각이었다.
순식간에 헤라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신은 빠져나갔다.
승우가 휘파람을 불면서 기도 안 차 하는 사이, 이번에는 레나토의 눈이 헤르메스를 향했다.
“가이아 님에게 님 자를 자주 생략하더군요?”
“어, 그게… 내가 그런 성격인 거 알잖아. 제우스 님에게도 가끔 제우스라고…….”
“공식석상에서 제우스에게 존칭을 거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이아 님에게는 총 188번 빼먹으셨더군요.”
“캑…….”
그걸 다 세고 있었어?!
헤르메스가 기가 막혔는지 날개를 움츠렸다.
그러나 이건 레나토에게 있어서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존칭만큼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단서가 있을까.
헤르메스는 명백하게 가이아를 무시하고 있었다.
왜?
“가이아 님, 당신은 가이아 님이 맞습니까?”
레나토가 그리 물었다.
그러자 바로 제우스와 헤라가 입을 열었다.
플로라의 연약한 성정 탓에 진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았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제우스와 헤라는 아무런 제지도 할 수 없었다.
“너희들은 좀 다물고 있자. 할 수 있지?”
어느새 승우의 검기가 둘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미동이라도 하면 죽는다.
그렇게 방해물을 치우자, 레나토가 지긋이 플로라를 봤다.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한낱 꽃의 이명을 가진 님프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섭고, 무섭다.
염화, 신의 권능으로 계속 귓가에 으름장을 놓는 제우스와 헤라도 무서우며 어제까지 상냥하게 대해 주던 신도도 무섭다.
“가짜였군요.”
레나토가 납득했다는 듯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언제부터 가짜 가이아 행색을 했습니까?”
“정확히 기억 안 나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플로라가 힘겹게 말하자, 레나토가 바로 되물었다.
“제가 15세가 되던 어느 겨울날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건 오래된 일이 아니잖아요.”
“기억하십니까?”
“기억해요. 당신이 열이 올라서 괴로워했었고, 제가 치유 효과가 있는 꽃을 줬었죠.”
“제가 6살 때의 일은요?”
“산에서 미아가 된 당신을 집까지 돌려보내 줬었죠.”
레나토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돌려보냈지요?”
“코스모스를 피게 해서 길까지 표시를…….”
말을 하던 플로라가 입을 다물었다.
마치 꽃이 피듯이, 태양이 떠오르듯이 레나토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됐습니다.”
“예?”
“제가 아는 가이아는 당신이 맞았군요.”
“그야…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도 제가 가이아를 했었… 으니까요?”
“그거면 됐습니다. 당신이 가짜건 아니건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걸로 미혹은 모두 사라졌다.
레나토가 겁내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가짜 가이아를 몇 년에 걸쳐서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것.
그가 아는, 추억을 간직한 가이아가 여러 신이 대를 이어서 연기한 가짜인 것만이 두려웠다.
그러나 오롯이 한 명의 신이 가이아 행세를 한 거라면.
“당신이 제 가이아입니다.”
아무것도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렇다면 일은 단순해진다.
그녀는 나쁘지 않았다.
나쁜 건 누구인가.
“제우스만 죽이면 되겠군요. 승우, 제우스는 제 겁니다.”
부활과 단죄의 신이 죄 많은 벼락의 신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