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79)
괴식식당-179화(179/613)
179화. 눈싸움 (2)
눈싸움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른도 눈싸움을 한다.
재해복구지역 A섹터의 주둔군은 단합 대회로써 눈싸움을 적극 장려하고 있었다.
팀워크의 재확인, 눈싸움을 통한 전략전술기동 훈련.
이능력과 신체 능력의 재점검 등, 모의 전투 훈련으로써 눈싸움은 매우 우수하다.
그러니 매 분기, 폭설이 내리는 날에는 눈싸움을 시켰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적을 향해서 온 힘을 모아서 눈덩어리를 던져, 쌍코피를 터트리는 행위는 헌터들의 투쟁심과 전투 욕구를 자극하긴 했다.
그러나 이들은 승부욕이 강한 헌터 이전에 나이를 그럭저럭 먹은 성인이다.
성인들이 굳이 이 엄동설한에 눈싸움을 해야 할까?
각성하여 초인이 됐다고 해서 추위를 안 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참는 거지.
눈덩어리를 맞출 때는 좋지만 맞으면 아프다.
젖은 옷을 입는 것도 기분이 별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닳고 닳은 헌터들은 눈싸움 따위 하등 이득이 없다며 농땡이를 피웠다.
그런 요맘때.
A섹터 주둔군의 헌터들을 사열한 운동장에서, 이정훈이 목청을 올렸다.
“눈싸움의 시기가 왔다, 제군들.”
역시나 반응이 좋지 않다.
“우우우우-!”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자유분방한 군기를 자랑하는 A섹터 주둔군답게 야유가 아주 거셌다.
이정훈은 가장 앞에서 ‘우우, 대머리 하야해라’ 따위를 소리치는 백강혁에게 마이크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르며 말했다.
“우선 제군들에게 말해두지. 이번 분기의 눈싸움은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르다.”
응? 격이 달라?
헌터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정훈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백강혁조차 입을 다물고 이정훈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이정훈이 씩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제군들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스폰서가 상당히 들어왔다. 우선 매년 우리들에게 좋은 식사와 보상을 제공해 주는 대명이 작년에 비해서 3배의 보상을 약속했다.”
작년의 3배!
작년 보상은 우승팀에게 금일봉 2억이었다.
한 팀이 대략 2~10명 정도로 구성되니 나누고 보면 별로 큰돈은 아니었기에 동기부여가 되진 못했지만, 그 3배라면 나눠도 상당한 금액이다.
눈싸움 좀 해서 버는 돈치고는 확실히 크다.
“어, 괜찮은데?”
“그러게……. 저 정도면 준수한걸.”
의욕이 조금 생겼다.
긍정적인 중얼거림이 들렸다.
이정훈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누가 더러운 성인 아니랄까 봐, 돈 더 준다니까 눈 초롱초롱해지는 거 보소. 저러고도 진짜 ISAC의 정예 병사라고 할 수 있는지. 아주 그냥 지들이 맨날 물어뜯고 욕하는 길드 놈들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네그려. 여기가 ISAC인지 길드인지 구분이 안…….”
“지부장님, 마이크 켜져 있습니다.”
“…지적 고맙네.”
알고도 한 말이지만.
이정훈은 안절부절못하는 황지현을 뒤로하고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두 번째로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그리고 매일 이용하는 그 식당의 사장님이 스폰서로 나서주셨다. 지원 물품과 규칙 설명은 우선 사장님이 하실 거다. 모두 박수!”
이정훈이 한 발 물러서며 승우가 단상에 올랐다.
동시에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우는 덤덤하게 볼을 긁었다.
“길게 말하는 건 싫어하니 짧게 말하겠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튕겨,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그러자 그 안으로부터 국가 공인 명장, 크리스탈 밸리의 알리스터가 만든 아티팩트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뿐만 아니다.
아테네의 보물 창고에서 털어온 아티팩트.
평소 승우가 사냥해서 모아둔 A급 이상의 아티팩트들도 나왔다.
“미췬.”
주르르륵, 주르르륵.
끝도 없이 아티팩트가 나왔다.
단상을 가득 채울 정도의 아티팩트는 눈이 멀 정도의 광채를 내뿜었으며, 구경하던 헌터들의 무릎이 살짝 풀릴 정도의 양이었다.
눈을 의심하는 헌터와 볼을 꼬집는 헌터.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의 헌터와 ‘끄응’ 하고 짧게 이마를 짚는 민.
버섯 모양의 신발을 보고 눈이 뒤집히는 버섯파이브.
수도 없이 널린 검 아티팩트를 보고 꿀꺽하고 군침을 삼키는 윤은형.
그리고 ‘어째 어디서 본 아티팩트가 섞여 있네’ 하고 고개를 조금 흔드는 백강혁까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며 승우가 말했다.
“원하는 아티팩트가 있습니까?”
“네-!”
“필요합니까?”
“네-!”
“2개씩 드리겠습니다.”
“!”
“우승하면 말이죠.”
가지고 싶으면 이겨라.
승자만이 아티팩트를 얻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조차 녹아버릴 정도로 강한 열기를 내뿜으며.
그렇게 대눈싸움의 시대가 시작됐다.
* * *
규칙은 간단.
필드는 A섹터 주둔군 지역 전체.
눈을 써서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든다.
이 소름 돋게 간단한 규칙을 보고 모두가 식은땀을 흘렸다.
아티팩트에 대한 욕심으로 참가를 선언한 헌터는 거의 전원.
사무직 헌터조차도 즉석 팀을 구성하여 참가하는 경우가 반절 이상!
이 간단한 규칙에서 느껴지는 진한 전쟁의 향기.
곰 수인 페로가 머플러를 단단히 매며 말했다.
“저, 전투 불능이라니……. 엄청난 규칙이군요.”
아이들의 눈싸움이 보통 옷이 망가지거나 울거나 코피가 나면 끝나는 것과 다르다.
이번 눈싸움의 규칙은 전투 불능, 싸울 수 없는 상태인 빈사, 기절이 돼야 끝난다.
의식불명! 졸도 상태!
단련된 헌터가 눈덩어리에 맞고 전투 불능 상태가 될 수 있을까?
된다면 그것보다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다.
실질적으로 눈덩어리에 맞아서 기절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규칙은 저게 전부!
그것의 의미는 너무나 명확했다.
“이능력을 써도 된단 말이지?”
붉은 버섯을 카득 하고 씹으며 이상윤이 웃었다.
이능력을 써서 최대로 강화된 힘으로 눈덩어리를 던지면 코피가 아니라 뚝배기를 깰 수도 있다.
이상윤이 강화된 팔 근육으로 눈뭉치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토사가 치솟았다.
“강화 능력자가 유리하겠는데.”
“아니, 그건 아직 모르지.”
돌을 조작하는 암석 능력자, 김찬식이 웃으면서 돌덩어리에 눈을 뭉쳤다.
그 모습에 이상윤이 경악했다.
눈덩어리에 돌을 넣다니 저런 사악한!
“야, 그건 선을 넘었지!?”
“왜? 규칙에 이런 걸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어.”
“아니아니아니. 미쳤나! 심판! 심판! 이 새끼 규칙 위반이에요!”
이상윤의 밀고에 승우가 다가왔다.
이상윤의 이야기를 들은 승우는 흠, 하고 짧게 헛기침을 하고 김찬식을 봤다.
“이상윤 씨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반론은 있으십니까?”
그러자 김찬식은 떳떳하게 돌에 살짝 눈을 바른 듯한 눈덩어리를 보였다.
“저는 암석 조작 능력자입니다. 그런 제가 제 능력을 쓰는 게 규칙 위반입니까?”
“흠, 자신의 능력을 자신이 활용하는 것이니 이치는 맞습니다만.”
“예로부터 저희 한국인들은 석전을 즐겨왔습니다. 전통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도 허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석전……!”
실로 그러했다.
석전이라는 것은 짱돌로 눈싸움을 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 있었던 전통문화였다.
머리가 깨지고 죽는 사람이 속출해서 사라진 문화였지만, 어쨌든 그런 게 있긴 했다.
“좋습니다. 인정합니다.”
“캄사합니다.”
눈에 돌을 넣어도 된다.
그렇다는 건 눈덩어리에 튜닝을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닌가.
눈만 살짝 뭉쳐준다면……!
아니지, 아예 가공한 무기에 눈을 살살 뿌려서 던지면?
“이상윤 같은 육체 강화 능력자는 눈덩어리를 수류탄처럼 던질 수 있지.”
“그렇다면 수류탄으로 눈을 뭉치면 되는 거 아닐까?”
“좋습니다. 인정합니다.”
계속해서 내놓는 아이디어, 아이디어!
그리고 황희 정승이라도 빙의한 건지, 너도 옳다, 너도 옳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승우의 고개!
황지현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저, 저 아저씨가 미쳤나!”
미친 게 분명하다.
이건 유혈 사태 직통 코스다.
전력으로 싸우면 누구 하나 다치는 선에서 안 끝날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나아가면 장애가 남는 부상이고 거기서 한발 더 나가면 사망이다.
이벤트로 하는 눈싸움 모의전에서 사망사고라도 나면 대체 언론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황지현이 서둘러 옆에 있던 민을 흔들었다.
“민 씨, 말려 봐요!”
“흠, 그렇군, 그렇군.”
민은 침착하게 좌중을 돌아봤다.
헌터들의 눈에서 흉흉한 안광이 흐른다.
마치 S급 게이트라도 터진 양 실전을 방불케 하는 이 분위기.
한껏 해이해진 A섹터 주둔군의 군기가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상황은 나쁘지 않다.
승우가 의도하는 것도 대강은 이해가 됐다.
매우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를 미끼로 눈싸움이라는 놀이를 진검승부의 장으로 만들었다.
이제부터 이건 놀이가 아니다.
훈련을 빙자한 실전이다.
왜, 왜 승우는 이런 걸 원하는가.
민이 씩 웃었다.
“그렇군. 선생님이 피를 원하시는 건가. 그렇다면 나도 전력으로 응할 수밖에.”
“아니, 말리라니까 왜 민 씨까지 그래요!”
“그야, 선생님이 피를 원하시지 않은가. 그럼 따라야지.”
“광전사예요?!”
민이 진심 가득 담긴 눈으로 전장을 응시했다.
많은 팀이 모인 A섹터지만 결국 최강은 퍼스트 오더다.
퍼스트 오더 65위, 블랙 호크 윤은형과 부관인 권능하의 2인조 팀.
퍼스트 오더 92위, 슈퍼스타 백강혁과 몬스터즈.
그리고 퍼스트 오더 100위, 샤프슈터 민 오키프와 스트라이크 팀.
그 외의 변수는 다섯 팀으로 뿔뿔이 흩어진 버섯파이브 정도일까.
모두의 머리에서 맹렬하게 계산기가 돌아갔다.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가.
퍼스트 오더가 없는 팀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나.
퍼스트 오더가 있는 팀은 어떻게 해야 집중포화를 이길 수 있는가.
어떤 팀과 동맹을 맺을까.
어떤 장소를 점거할까.
어떤 능력자를 섭외하여 팀을 보충하면 승산이 오르는가!
권능하는 즐거워서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천재님이 나설 때로군.”
“그래그래. 천재님만 믿는다.”
윤은형은 한숨을 쉬며 목검을 들었다.
접착제를 뿌리고 눈을 바른 검이다.
이걸로 후려치면 일단 눈으로 치는 거니까 OK 아닐까.
권능하는 그렇게 말했고, 진짜로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인정합니다.”
“이래도 된다고?”
“왜? 불만이냐?”
얘, 진짜 제정신인가?
윤은형이 어이없어 하건 말건, 승우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 소리에 맞춰서 여기저기서 눈덩어리가 날아왔다.
* * *
빙결 능력자가 눈덩어리를 얼려서 던지면, 그것은 그냥 돌덩어리다.
투포환의 철구처럼 딱딱하게 굳은 눈덩어리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암석 조종 능력자가 임시로 만든 석벽이 폭음과 함께 철거된다.
전기 능력자가 전기를 방출하여 움직임을 멈추면 그때부터는 고속 이동 능력자들의 시간이다.
그들은 고속으로 돌이 들어간 눈덩어리를 던졌다.
발화 능력자는 불꽃으로 눈을 녹이고, 중력조작 능력자가 궤도를 비틀었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이 펼쳐질 때.
승우는 느긋하게 이동용 화로에 불을 붙이고, 철판을 올렸다.
“자, 그럼 부상자가 나오기 전에 요리를 시작해 볼까.”
직사각형의 커다란 철판.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길거리 호떡용 철판이다.
그가 만드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철판에 두르는 기름은 카이로돈의 지방으로 만들어진 라드였고, 흑설탕처럼 보이는 것은 마석을 절굿공이로 빻은 것이었다.
이정훈이 난감하다는 듯이 식재료를 훑었다.
“정말 그걸로 회복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승우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다.
그가 강준치 따위의 잡고기로 몬스터를 죽이는 요리를 만드는 걸 보기도 했었으니, 그의 실력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물론 그게 요리라고는 아직까지 생각 안 하지만.’
먹으면 슬라임이 싹 죽는 건 요리라고 안 한다.
무기, 그것도 생화학병기지.
아무튼 이정훈이 걱정하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가 지금 사용한 식재료는 알아주는 폐기물들이다.
카이로돈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견된 돼지인데 맛이 뭣 같음은 물론이고, 지방질이 냄새가 어마무시하게 나서 비누로도 쓸 수 없고 연료로도 쓰기 애매했다.
그런 주제에 개체 수는 더럽게 많고 식사량도 대단해서 나타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아서 발견 즉시 제거 등급을 받은 악수(惡獸)다.
흑설탕처럼 보이는 저 마석은 또 어떠한가.
마력을 죄다 뽑아 쓴 마석이다.
즉, 전기가 다 방전된 배터리!
ISAC의 수석 과학 팀이 마석의 리사이클을 연구 중이라 모으기만 할 뿐인 악성 재고다.
그 두 재료를 사용해서 아주 강력한 회복 효과가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니,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정훈의 우려 섞인 말을 들으며 승우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말없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