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8)
괴식식당-18화(18/613)
018화. 하수도 청소 (2)
지구가 위험하다.
세계가 위험하다.
그렇다고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법의 붕괴, 치안의 악화는 기회다.
UN이 붕괴하고 세계의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할 때 자신들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조직은 2000년을 넘어서면서 확실하게 움츠러든 상태였다.
정부는 폭대법이라는 이름의 범죄조직 죽이기에 여념이 없었고… 단순히 주먹과 폭력, 협박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점점 막혀갔다.
그러자 몇몇 머리 좋은 이들은 부패한 정부 관리나, 기업인과 연합하여 무대를 바꿨다.
전화 사기, 주식 사기, 방송계로의 진출.
범죄의 무대가 바뀌는 순간이었었다.
하지만 이것은 소위 전통을 지킨다는 범죄자들이 영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일이었다.
범죄 조직이라 하면 무력, 힘을 동원해서 일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그런 그들에게 게이트와 균열, 이능력자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었다.
“벌레 자식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
민이 경멸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를 따르는 팀원들도 얼굴 가득한 혐오를 숨기지 않았다.
“썩어빠진 놈들.”
지구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 덕에 문화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돈이 돈으로써 기능을 발휘하려면 시장경제의 안정이 필요한데, 그 안정을 위해서 조금도 노력하지 않은 범죄 조직들이 그 혜택을 누린다?
그것은 정말 얄미운 일이다.
“이 구역에는 더 없는 거 같다. 지금까지 몇 명 잡았지?”
“13명입니다.”
얼마나 잡아야 끝날까.
민은 짜증으로 인한 편두통이 재발하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선생님 덕에 거의 다 나아가는 중이었는데!
이 빌어먹을 일이 끝나는 대로 선생님을 찾아뵙든가 해야겠군.
투덜거리면서 다시금 하수도 청소를 시작했다.
“포메이션을 유지하면서 전진한다.”
ISAC의 총장, 세계 헌터 협회의 제1인자.
그가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2일 남았다.
* * *
지하에서 민을 위시한 서포터 팀이 범죄자 색출에 여념이 없을 때.
지상에서는 강혁을 비롯한 에이스들이 강도 높은 순찰 중이었다.
하수도 청소 중에 다른 범죄자가 지상으로 올라와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인명 피해 및 도주를 예방한다는 취지다.
한국의 지부장, 이정훈은 우유부단할지는 몰라도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중시의 지휘관이다.
그래서 지하 청소라는 막중한 임무 중에도, 그에 3배나 되는 지상 경호 인력을 투입했다.
그러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터였다.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이거 어쩐지 좀 불안한데…….”
이정훈이 갈증으로 물을 마시면서 중얼거릴 때.
하수도 청소 작전 시작 후 5시간 경과.
승우가 영화 관람을 시작한 지 1시간하고도 20분.
나비와 은하가 중고 시장 나들이를 시작한 지 1시간하고도 40분.
말이 씨가 되어 일이 터졌다.
발단은 사소했다.
민의 지휘 아래, 서포터 팀이 범죄자들을 소탕하고 범죄자들을 응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발에 의한 전력 시설물의 파손이 있었다.
“윽! 전기가!”
1차적으로 전기가 방전되고 차단기가 내려갔다.
하수도에 불법적으로 설치된 조명 시설이 꺼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이뤄지는 총격전.
그리고 본격적인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하필이면 범죄 조직의 능력자 중 하나가 ‘전기’ 능력자였던 것이다.
“으워어어어!!”
전기 능력자가 때는 이때라는 듯 망가진 전력 시설물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기를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전기 능력자는 전기를 공급받으면 받을수록 강해진다는 것이다.
“으오오오~! 힘이-! 힘이 샘솟는다!”
그러나 한 구역의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이었던 탓일까?
전기 능력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전기가 그의 몸에 깃들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의 허용치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상태.
전기 능력자들의 흔한 문제 중 하나인 ‘오버 히트’가 돼 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과전류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문제가 터져 버렸다.
시설물 고장과 전기 능력자로 인한 일순간의 과잉 전기 공급.
여러 가지 문제가 더해져서 그만.
한 지역의 전기 공급이 끊어졌다.
민이 침착하게 이정훈에게 ‘망했습니다’라고 보고 하는 순간.
그리고 강혁이 정전이라는 이상 사태에 대응하여 야간 투시경을 낄 때쯤.
“…….”
승우는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던 중이었다.
영화는 이제 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판이다.
손에 땀을 쥐는 카메라 워크와 배경음악.
주연과 조연의 연기에 한창 몰입할 때.
“…농담이지?”
전기가 끊어졌다.
거짓말처럼 스크린이 사라졌다.
그리고 팟팟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여기서 나가란 듯이 비상등이 켜졌다.
“죄송합니다! 정전입니다!”
알아, 인마. 조용히 해봐.
상영관 플로어의 목소리를 들으며 승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모처럼, 아니, 실제로는 40년 만의 휴일이다.
그리고 40년 만에 영화 직관이다.
무려, 영화광이 40년 만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거다!
그 무게를 아는가!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영화가 무엇인지 아는가?
10년 전에 대흥행했던 영화의 후속작이다.
승우가 초임 중학생 교사로 막 임용을 시작할 때 개봉했던 영화다!
너무 재밌어서 3번이나 볼 만큼 아주 좋아했던 그 영화의 후속작이, 지구로 귀환한 승우를 반겨주듯 개봉한 것이다.
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 기적 같은 일을 정전이 망쳐버렸다.
“오, 신이시여.”
신에게 빌어봐야 별 볼 일 없지.
승우는 빠드득 하고 팝콘을 씹어 넘겼다.
그리고 탄산음료를 마치 물처럼 벌컥벌컥 마시면서 생각했다.
‘이 영화를 이제 다시 본다고 치자.’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1시간 45분.
그중의 1시간 20분이나 되는 내용을 알고 있는데 정주행을 해야 한다.
이게 말하자면 처음 보는 영화를 재탕하는 셈이다.
과연 그 후에 시작될 클라이맥스, 25분.
영화의 가장 알짜 부분까지 긴장감과 흥미를 이어서 재관람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있냐. 젠장.”
이렇게 된 거 스틱스의 강물을 마시고 오늘의 기억을 지워버려?
‘제기랄!’
신이나 마찬가지니 그딴 강물 먹고 배탈이 나면 낫지… 기억이 지워지지는 않는다.
길게 말할 거 없다.
오늘의 휴일은 망쳤다.
승우는 슬픈 눈으로 영화관을 나왔다.
환불이니 뭐니 소동이 벌어졌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다.
갈 곳을 잃은 그는 터벅터벅 가게로 돌아왔다.
다행하게도 이곳은 정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이다.
“무사해서 다행이네.”
가게가 정전되면 끔찍한 일이 생긴다.
식당에서 냉장고가 멈추면 벌어질 일은 수습이 힘들다.
그렇다고 다 인벤토리에 넣을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야.
“아무튼 호된 꼴을 당했군. 젠장.”
승우도 사람인 만큼 화가 난다.
물론, A섹터의 지하에서 뭔가가 투닥거리다가 생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놈들 때문에 정전이 됐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분노를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과 인간의 일에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기로 정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몸에 쌓이는 이 분노를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
가벼운 분노지만 이런 사소한 일이 쌓여서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니까 이럴 때는!
“먹어서 푸는 거지.”
뭘 먹을까.
이럴 때는 그냥 직감이나 운에 맡기고 아무거나 해보는 게 재미있다.
승우는 팔을 걷어 올리고 찬장을 뒤졌다.
전에 커피숍을 하던 사람의 가게를 그대로 인수했다 보니, 찬장에는 재밌는 게 많다.
그렇게 한참을 뒤적거리던 승우의 눈을 끄는 게 있었다.
“오, 펭귄 모양 얼음 빙수기! 그립구만!”
승우가 어린 시절에 쓰던 그것과 똑같은 모양이다.
이게 아직까지 있다니, 거의 20년은 넘었겠네.
승우는 펭귄 모양의 귀여운 얼음 빙수기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침 여름 기분이겠다, 빙수나 먹어볼까?”
빙수.
한국인에게 빙수는 대부분 팥빙수다.
곱게 간 얼음에 팥을 올리고 젤리와 시리얼을 뿌린 그런 팥빙수.
하지만 승우에게는 아니다.
그가 빙수란 생각을 했을 때 처음으로 떠올린 건 ‘술 빙수’다.
“실제로 먹어본 적은 없지만 만드는 걸 봤으니까 따라 만들 수 있겠지.”
그는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평생 술로 사고를 친 적도 없고, 남을 곤란하게 한 적도 없는 호인.
지구로 귀환하자마자 귀환자 등록 수속을 밟으며 아버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신께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게이트 사고에 휘말린 아이를 지키다가 가셨다고…….
얼마나 호인이셨으면, 당시의 일이 뉴스를 타고 전 국민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술도 안 좋아하시던 양반이 유독 빙수에는 꼭 와인을 뿌려 드셨다.
이래야 진짜 맛있다나?
아무튼 기억을 떠올리니 만드는 방식도 유추할 수 있었다.
곱게 간 우유 얼음에 연유를 뿌리고, 생과일을 올린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와인을 뿌려서 슥슥 퍼먹으면 끝이던가?
어린 마음에 그게 참 맛있어 보여서 슬쩍 훔쳐 먹으려다가 혼났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어떤 맛인지 알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이면 나도 어른 맞겠지.”
승우는 얼음 마법으로 우유를 얼리며 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픔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두 분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았기도 했으며,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생각할 때 슬픔보다는 웃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 만들어볼까.”
살짝 설탕을 넣은 우유를 빙결 마법으로 얼린 후, 펭귄 얼음 빙수기로 곱게 갈았다.
갈린 우유 빙수를 대접에 예쁘게 담고, 그 위에 살짝 연유를 뿌린다.
과일은 마침 멜론과 딸기가 있다.
그걸 보니 조금 더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따르는 걸 보면 참…….”
민 오키프라는 남자는 외관상으론 확실히 승우와 동년배였다.
그런데 일일이 선생님이라고 존중하고, 올 때마다 선물을 가져온다.
이 과일도 그가 가져온 물건이었다.
잘 씻은 멜론과 딸기를 곱게 잘라 빙수 위에 올렸다.
이제 중요한 건 뿌릴 술이다.
“국왕에게 받은 술이 몇 개 있을 텐데……. 여기 있군.”
인벤토리를 뒤져서 술을 꺼냈다.
아마, 초대 용사가 마왕을 이긴 기념으로 주조된 술이다.
대략 500년은 됐다는 소리인데, 이게 또 맛이 끝내준다.
승우는 적당하게 술을 뿌렸다.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빙수가 녹기 시작했다.
이제는?
먹기만 하면 된다.
승우는 수저를 들고 조심스럽게 빙수를 머금었다.
시원하면서 싸하면서 톡톡 튀는 맛.
그리고 과일의 단맛이 혀를 꾹꾹 눌렀다.
와인의 화~한 불꽃 같은 맛과 빙수의 차가운 맛이 어우러져서 가슴을 때린다.
얼리는 것도 같고 녹이는 것도 같다.
그 신기한 느낌이 재밌어서 계속해서 먹었다.
그러다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슴 속에 쌓인 자그마한 스트레스가 사라져 간다.
이제 영화관 일이나 정전에 대한 일은 잊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런 거였구나.”
술도 싫어하는 양반이 왜 굳이 빙수에만 술을 뿌려 드셨을까.
그건 아마도 착한 아버지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아니었을까.
뜨거운 술로 스트레스를 태우고, 차가운 얼음으로 속을 식히는 그 나름의 합리적인 의식.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빙수를 드셨었다.
“그걸 이해했으니, 이제 나도 확실히 어른이란 말인가?”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결혼을 안 해서 그런가, 아이가 없는 탓인가.
아니면 불로불사이기 때문인가.
승우는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확신이 생길 것 같다.
나도 꽤 어른이 됐구나 하고.
“우냥… 다녀왔습니다냐.”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나비와 소녀가 들어왔다.
나비는 바로 소파에 앉아서 앞발과 뒷발을 닦았다.
뽀긱뽀긱 하는 소리를 내며 나비가 젤리에 묻은 먼지와 흙을 터는 동안.
은하는 다소곳하게 승우에게 다시 한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전 때문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래. 괜찮으니까 푹 쉬렴.”
어린 애가 제법 의젓하잖아?
가정교육을 엄청 잘 받은 건가?
아무튼 휴일이지만 나비가 데려온 손님이다.
손님이 왔으면?
먹여야 식당이지.
“그런데 둘 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그렇게 말하니 둘 다 빤히, 빙수 그릇을 바라봤다.
승우는 웃으면서 빙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 이번에는 술을 넣지 않을 거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이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