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88)
괴식식당-188화(188/613)
188화. 서열정리 (5)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알리스터를 보며 카타스트로페가 감탄했다.
–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드시고 오셨나 봐요.
“보면 알아?”
– 어휴, 모르겠습니까. 보면 바로 알지요. 모르면 눈이 안 좋은 거죠.
카타스트로페가 대단한 마검이라 그녀의 변화를 눈치챈 것이 아니다.
그냥 그녀의 변화가 너무 극심했다.
기절한 후에 막 깨어나서 바로 달려온 터라 그녀 자신도 자신의 변화를 몰랐다.
“뭐가 달라졌다고 그…….”
대수롭지 않게 말하던 그녀의 말문이 닫혔다.
카타스트로페의 붉은 검신에 비추어 보인 스스로의 모습이 보여서다.
“이게 뭐야!!”
– 훌륭합니다. 눈물이 나올 만큼 감격적인 모습이네요.
알리스터가 자신의 팔을 만졌다.
대장장이라고 해도 그녀의 팔은 원래 얇았다.
엘프니까 뭔 짓을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는다.
그것은 종족적인 특성에 가까운 것이라 알리스터가 아무리 영양제를 챙겨먹고 규칙적인 운동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팔은 마치 철근 같았다.
우람하게 솟아오른 이두박근, 어깨빵으로 몬스터 몇은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두툼한 삼각근.
코브라같이 꿈틀거리는 힘줄과 단단한 전완근까지!
“오.”
알리스터가 잠깐 팔에 힘을 줬다.
울끈불끈.
팔의 근육들이 춤을 췄다.
아니, 팔만이 아니다.
어깨, 복근, 대퇴부까지 다 울끈불끈했다.
– 등이 에게해급으로 넓군요. 듬직해라.
이만하면 어디 가서 몸으로 꿀리지 않으리라.
헌터들의 채용을 결정하는 심사관이 등만 봐도 바로 합격 목걸이를 주겠지.
문제는 그녀가 엘프였으며 여자라는 거지만.
“이게 내 몸?”
알리스터가 자신의 몸을 봤다.
몸이 아주 멋지다.
전사다운 몸.
이거야말로 대장장이가 가져야 할 몸이다.
알리스터는 이 변화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이 몸이 있으면 더 좋은 장비를 만들 수 있어! 으하하하! 망치가 아주 깃털처럼 가볍구나!”
붕붕 하고 그녀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미스릴 망치를 돌렸다.
평소에는 망치답게 아주 무거운 녀석이었는데 지금 들어보니 마치 귀이개 정도의 무게감이다.
힘이 수십 배는 강해진 느낌!
–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물론. 매우 마음에 들어!”
그녀는 엘프의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나에 민감하다는 것과 정령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참 대단한 장점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몸이 약하다.
같은 대장장이 경쟁자인 드워프와 비교한다면 그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하다.
– 대장장이라서 그런지 보통 사람이랑 사고관이 틀리구만요. 저야 무지 좋지만요. 그나저나 보아하니 주인님이 슈퍼 도핑 요리를 해주셨군요.
“슈퍼 도핑 요리?”
– 영구적인 효과보다는 순간적인 효과가 강력한 요리를 말합니다요. 효과를 보아한즉 아뷔소스네요.
슈퍼 도핑 요리.
테라의 일반 백성들이 먹는 레드 스타가 낮은 요리 중에서도 그 효과가 강력한 요리로, 유지 시간은 짧지만 즉각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암흑 샤브샤브, 아뷔소스는 어부들이 고된 뱃일을 하기 위해서 먹는 노동 요리다.
근육을 일시적으로 강화하고, 피로를 잊고 밤눈을 좋게 하는 요리!
아뷔소스는 원래부터 노동 요리 중에서도 효과가 좋은 요리였는데 그걸 괴식의 신이 직접 요리했다 보니 이런 폭발적인 효과가 나온 것이다.
알리스터가 신기하다는 듯이 하늘 봤다.
“호오, 대낮에도 별이 보여.”
– 물고기 잘 잡으라고 시력이 좋아지거든요.
“그렇군. 그런데 너.”
– 예?
“그런 설명만 듣고도 뭔 요리인 줄 알다니, 요리 좀 하나 봐.”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던가?
유승우의 곁에 오래 있다 보니 그런 걸까.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놈은 검을 거의 꺼내지도 않는다.
옆에서 보고 배울 시간이 없을 텐데?
알리스터가 의문을 갖자 카타스트로페가 검신을 반짝이며 씁쓸하게 말했다.
– 다 사연이 있지요. 듣고 싶으십니까?
“아니. 전혀.”
의문은 의문일 뿐.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알리스터에게 남의 일 따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 매정하시긴.
“그런 거보다 거래다. 빨리! 자, 피 줄게. 마력 나눠줘.”
– 아주 몸이 달아오르셨구먼요.
“아, 말이 많아! 빨리 하자!”
– 좋습니다. 좋아요. 서로 피차 바쁜 몸이니 빨리 해서 나쁠 게 없지요. 흐흐.
카타스트로페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검붉은 오오라를 뿜어내며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잔광이 일렁거렸다.
그것은 실로 마검다운 풍모라 알리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걸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 무엇인가가 닿았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 보였다.
“이 투덜이 엘프가 군말 없이 먹기에 이상하다 싶었더니, 이런 사연이 있었군.”
“켁.”
귀환자, 유승우다.
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팔짱을 꼈다.
상황이 훤히 보였다.
엘프와 마검이 모종의 계약을 맺었다는 것도, 왜 그런 일을 했는지도 불 보듯 뻔했다.
“이 녀석이 꾀만 늘어서는 잔재주를 부리네.”
– 에, 헤헤헤.
마검이 머쓱해하며, 폼멜에 달린 긴 천으로 검신을 닦았다.
검이지만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쫄은 것이다.
마검씩이나 돼서 쫄다니,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꾀? 잔재주?’
뭔 말이지?
알리스터는 뚱하니 입을 내밀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뭐가?”
“꾀? 잔재주? 저 녀석이 뭔 수작을 부렸나?”
“별거 아냐. 이 녀석은 피를 먹을 수 있는 마검이거든.”
“그건 알아.”
“피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음식도 먹을 수 있다는 뜻이지.”
“어?”
“처음에는 하도 피를 달라고 보채기에, 짜증 나서 우유를 줘봤거든. 10일쯤 굶으니까 잘만 먹더라고.”
“…….”
“그래서 혹시 몰라서 밥을 줘봤는데, 싫어하긴 하지만 들어가긴 들어가더라.”
마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마검 카타스트로페에게는 두 가지 이름이 있다.
하나는 마왕군의 일익, 흡혈공작의 애검이었던 시절에 부여받은 이름 그대로, ‘재앙’.
그리고 녀석은 승우에 손에 떨어진 뒤에는 이렇게 불렸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능이 첨부된 검. 줄여서 쓰검.”
“쓰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가 오랜 시간을 들여서 대제국이 됐듯이, 무엇이든 하나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단련.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지구에 있던 시절 자취생을 위한 요리만 할 줄 알던 승우가 괴식의 신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요리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요리를 실패했을까.
요리라는 건 성공하면 먹어서 없어지겠지만 실패하면 그저 쓰레기가 될 뿐이다.
그 실패한 요리들을 꾸역꾸역 먹어서 처리한 것이 바로 카타스트로페였다.
녀석이 괴식에 대해서 다른 검보다도 유난히 박식한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 으, 으으으. 푸딩 슬라임 취급은 싫어어엇!?
“여행에 못 데려가는 푸딩 슬라임보다는 네가 확실히 좋긴 했지.”
카타스트로페는 그런 인고의 세월을 견딘 결과 강해지긴 했지만 세상만물의 요리가 싫어졌다.
다시는 괴식의 괴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먹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다.
그래서 내놓은 결론이.
“내 요리를 먹은 사람의 피는 맛과 관계없다, 라는 거야.”
“아.”
요리를 먹긴 싫다.
하지만 강해지고 싶다.
그러니까 요리를 먹은 사람의 피를 먹는다.
완벽한 논리였다.
알리스터가 입을 샐쭉 내밀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래서 내 계약은? 난 녀석에게 피를 주고 마력체를 받기로 했는데.”
“마력체는 줄게. 피는 주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청소나 도와줘. 칼도 갈고 방어구도 손질하고. 할 일은 많으니까.”
“그래? 정말이지?”
알리스터가 반색했다.
피를 주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게 훨씬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트롤, 오우거급으로 몸이 강화된 상태!
빨리 일을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넌 의외로 착한 놈인 거 같아! 으하하하!”
그녀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아티팩트의 유토피아를 향해 달렸다.
남은 건 승우와 카타스트로페뿐.
승우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으면 나한테 말을 하지. 뭐, 솔직히 말해서 그냥 먹을 생각도 아니었겠지.”
마검이 괜히 마검이 아니다.
알리스터는 피를 살짝 빤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죽을 만큼 빨 생각이었지?”
– 아니, 주인님. 그게 아니라요.
“내가 아니, 로 시작하는 말은 안 듣는 거 알잖냐.”
– 녜.
“어디 한번 원 없이 마셔봐.”
승우가 먹다 남은 냄비를 꺼냈다.
아뷔소스, 암흑 샤브샤브의 남은 국물이다.
“들어가.”
카타스트로페는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녀석은 군말 없이 냄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꿀렁, 꿀렁 하고 암흑 샤브샤브의 육수가 흡수됐다.
암흑 샤브샤브의 레드 스타는 약 2.5성.
살짝 고기에 찍어먹는데도 그 정도다.
육수 자체를 원샷하는 건 4성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 끼에에엑!
“오랜만에 먹으니 좋지?”
간만에 괴식의 뻐근한 맛.
녀석은 곧 의식을 잃었다.
* * *
슈퍼 도핑 요리, 암흑 샤브샤브를 먹은 알리스터는 컨디션 만점이었다.
넘치는 기운으로 수많은 도구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승우는 그녀에게 대부분을 위임했지만 딱 하나의 검만은 예외로 하여 자신이 손질했다.
그 검은 일견 불량품으로 보였다.
이 검을 불량품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는 꽤 많았는데 우선은 장식이 일절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검이라면 있어야 할 가드와 폼멜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손잡이와 검신만 있을 뿐이라 모든 것이 부족해 보였다.
기이하게 긴 검신이 매끄러운 것이 그나마 봐줄 만했지만 문외한이 보더라도 썩 좋은 검이 아니다.
만든 대장장이가 ‘이것은 불량품이다.’라고 판단하여 헐값에 판 것이니 당연하겠지.
존은 그리 말하며 검투노예였던 승우에게 건네줬다.
승우는 반신반의했지만 이 검은 실제로도 좋은 검이었다.
40년이라는 시간을 온전하게 버텨낸 검은 이 검이 유일했으니.
“흐음, 좋아. 어디…….”
승우가 검을 들고 가볍게 자세를 잡았다.
신명을 얻고 나서는 거의 잡아본 적이 없는, 검의 용사 시절 승우가 취하던 자세다.
그의 검술은 이 검으로 펼치는 것이 기본이었다.
성검, 마검, 용살검 등 많은 아티팩트를 얻었지만 이 검이야말로 승우의 원점.
이 검으로 싸운 시절이 가장 길었으며, 수많은 적을 베어왔다.
그렇기에 이 검이야말로 바로 검의 신으로서 가진 신명 무구였다.
많은 사선을 거쳐 온 이름 없는 불량품 검은 이제 검왕, ‘아이온’이라 불린다.
“완벽해.”
점검은 끝이다.
아이온은 이제 언제라도 싸울 수 있다.
승우는 아이온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하늘을 봤다.
“그나저나 저거 며칠은 하겠지?”
하늘에는 여러 무기들이 떠올라 있었다.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여러 가지 능력을 사용해서 치고 박고 싸운다.
모처럼 답답한 인벤토리 밖으로 나왔으니, 나온 김에 서열을 정리한다.
마치 짐승 같은 논리다.
가장 격렬하게 싸우는 건 단연 용살검들이었다.
무려 신급 용살검이 세 자루나 있기 때문이다.
용살검 그람과 발뭉, 그리고 카일레우스.
셋 중에서는 카일레우스가 조금 더 격이 높지만 그래도 큰 차이는 아니라서 싸웠다 하면 정말 오래간다.
저 녀석들만이 아니다.
성검만 다섯 자루.
마검은 오십 자루가 넘는다.
그 많은 검들이 서열 다툼을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자기 계통에서의 정리가 끝나면 통합 타이틀매치.
종합서열도 있다.
며칠 만에 끝내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
“그럼 나는 다른 걸 정리해 볼까.”
여기저기에서 얻어온 식재료, 포션.
환금성이 높은 보석들과 마석들.
그리고 왕국 장서보다도 많은 책.
승우는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다.
정리할 것은 아직도 많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며 해야 할 일도 딱히 없으니까
그리고 청소는 시간이 많을 때 하면 즐거운 법이다.
“흐흠~”
시간 제한이 없는 대청소.
콧노래를 부르던 승우가 책 정리를 하다 문득 한 책을 잡아들었다.
“이건…….”
테라에서 어렵사리 구했던 만화책이다.
승우가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는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승우가 사라진 9년 동안 1권도 나오지 않다는 점이다.
신간이 나왔을 거라고 두근두근하며 서점에 갔다가 없다는 걸 알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작가로서 진짜 연중은 하면 안 되지, 연중은…….”
그나저나 다시 봐도 재미는 있네.
“흐음, 흐음, 오호. 호오오!”
청소 도구를 집어던지고 조용히 독서를 이어갔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해가 진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