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9)
괴식식당-19화(19/613)
019화. 수인으로 산다는 것 (1)
시간이 지나 월요일 아침.
토요일부터 시작된 하수도 청소가 끝났다.
강혁과 민은 퀭한 얼굴로 밥집의 문을 열었다.
“아…….”
“아…….”
48시간의 가혹한 근무의 결과.
둘 다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입을 열 기력도 없는지, 인사하는 소리가 모기 소리다.
승우는 그런 그들을 떨떠름하게 보며 말했다.
“좋은 아침.”
“아침인가?”
“아침이었구나.”
강혁과 민이 고개만 끄덕이며 비적비적 걸어왔다.
그들은 주저앉다시피 의자에 몸을 뉘였다.
어지간히 피곤해 보인다.
민이 중얼거렸다.
“지부장 죽었으면.”
“…….”
평소 냉정하던 민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럼 이럴 때 길길이 날뛰며 욕지기를 내뱉던 강혁은?
“…때려치고 싶다.”
보아하니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치솟아서 맛이 간 모양이다.
승우가 여유 있게 맡은 편에 앉으며 물었다.
“뭔 일이야?”
“이번에 정전이 있었던 거 알죠?”
강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정전이라, 그래.
있었지.
2일 전에 아주 큰놈으로.
“알다마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다가 정전이 돼서 곤욕을 치렀었지.”
“그게 실은 기밀 작전 중에 생긴 일입니다. 하수도에 있는 범죄조직을 소탕하다가 생긴 일이었죠.”
“그래?”
“이 범죄조직이란 놈들이 사실 예전부터 치워야지, 치워야지 하면서 벼르던 놈인 건 맞지만, 우리가 갑자기 왜 치웠을 거 같아요?”
청소를 갑자기 해야 되는 이유라?
승우는 턱을 괴고 두런두런 답을 내놨다.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 그도 아니면… 보여주면 안 될 사람이 있어서?”
“그겁니다. 보여주면 안 될 사람. 에이 씹. 까놓고 말해서 진짜 드럽게 높은 사람이 오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군대에서 사단장님 오시면 급하게 막사 청소하는 느낌인가?”
강혁이 손가락을 튕겼고, 민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췄나?
뭐, 흔히 있는 일이지.
승우는 이해했다는 듯이 둘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커피의 향이 둘의 굳은 뇌를 깨우고 활력을 넣었다.
‘죽은 눈이었던 아까보다는 조금 낫군’이라고 승우가 생각하자마자 강혁이 분노를 토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죽을힘을 다해서 청소를 했단 말이죠.”
“잠깐. 지상에서 꿀 빤 네놈이 죽을힘을 다했어? 개가 웃겠군.”
“뭐?! 지하에서 약한 조직원들이나 체포한 네가 그럼 더 일했다고?”
“그럼 지상에서 도주하느라 정신이 없는 놈들만 체포한 네가 더 힘들었을까?”
“이 양반 봐라? 말 막 하시네.”
강혁과 민이 으르렁거리자, 승우가 말을 잘랐다.
“그래서? 일이 잘 처리됐으면 좋은 거 아냐?”
“좋은 거죠.”
“좋기는 개뿔이나.”
민이 긍정하고 강혁이 부정했다.
강혁이 바로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 높으신 사람이 안 온다잖아요!”
“…….”
“개처럼 일하고 잠도 안 자고 48시간 일했는데 안 온다잖아요! 왜 안 오냐니까 다른 나라에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있다네요? 아니, 우리는 중요한 일 아닌가?!”
“아, 아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지.
온다고 하고 안 오는 높으신 분들.
승우는 그립게 군대 생활을 떠올리고는.
“…….”
치를 떨었다.
“와,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라는데 군대 일은 추억이 안 되는군. 아무튼 사정은 다 알았다. 고생했네.”
“크윽… 그러니까 오늘은 진짜 제발 부탁이니까 맛있는 거로 줘요. 그놈의 불 나가는 스테이크는 집어치우고!”
“저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요즘 두통이 조금…….”
요 녀석들.
결국, 치료용의 회복 요리를 달라는 말이렷다.
사설이 길구만?
승우는 둘의 속셈을 파악하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 봐줬다. 오늘은 맛있는 것으로 주마.”
오늘의 첫 손님이니만큼 신경 써서 줘야겠군.
그렇게 하루가 시작됐다.
* * *
“냐앙, 간지럽다냐.”
“안 돼요. 나이오비. 참아야 돼요.”
요 며칠간 바뀐 게 있다면 점심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대의 풍경이다.
이맘때가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은하가 왔다.
이 조숙한 꼬마 숙녀는 항상 예쁜 옷을 입고 다소곳하게 인사한 후.
쪼르르르 나비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쉬는 나비의 옆에 앉아서 빗질도 해주고 책도 읽어줬다.
승우는 커피를 마시며 그런 둘을 봤다.
확실하게 힐링이 되는 모습이다.
저 꼬마 숙녀는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가져와서 나비에게 주는데, 오늘은 장화를 사온 모양이다.
“냥. 신발은 꼭 신어야 하냥?”
“매번 다녀올 때마다 발을 닦잖아요? 좋은 습관이지만 비 오는 날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때는 목욕한다냐. 하지만 목욕은 싫다냐.”
고양이니까 당연하지.
나비는 온몸이 젖는 감각을 떠올리고는 꼬리를 부르르르 떨었다.
은하가 그런 나비에게 차근차근 말했다.
“그러니까 이 장화가 필요한 거예요. 비가 와도 발을 지켜주잖아요.”
은하는 빨간 장화를 들어 올리며 필요성을 역설했다.
빨간 장화는 흔히 말하는 레인 부츠, 비 올 때 사용하는 것이다.
확실히 비 올 때 쓴다면 목욕으로 이어지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겠지.
우비, 우산도 다 걸친다면 말이다.
저 앙큼한 꼬마 숙녀는 분명 우비와 우산도 사뒀을 것이다.
아마 내일쯤 와서 하나씩 주겠지.
‘그러고 보면 3일 후에 비가 올 예정이었지.’
어린 나이에 저런 용의주도함이란!
저 꼬마 숙녀는 나중에 크게 되겠어.
은하의 설득에 결국 나비가 장화를 신기로 결심했다.
낑낑거리면서 신더니 이제는 따박따박 하는 소리를 내며 가게를 걸었다.
장화는 신기하게도 사이즈나 규격이 아일루로스인 나비에게 딱 맞았다.
‘고양이 수인용 장화도 따로 파나?’
세상이 변하긴 변했어.
별걸 다 파는구나.
그나저나 빨간 장화와 고양이라니.
‘망토와 칼만 있으면 딱 그거로군.’
빨간 망토, 빨간 장화.
그리고 고양이 칼.
샤를 페로의 동화, 장화신은 고양이다.
뮤지컬로, 영화로, 게임으로도 있는 걸작 동화.
‘영화로 본 지가 언제 적이지? 적어도 40년은 넘었겠군.’
떠올리니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오늘은 그걸로 저녁 시간을 보내야겠다.
승우가 저녁 영화를 정하고 커피를 하나 더 뽑을 때였다.
점차 줄어들던 나비와 은하의 말소리가 멈췄다.
“우, 우. 어쩌지.”
은하가 곤란하다는 듯이 웅얼거렸다.
나비가 그만 잠들어 버렸다.
은하의 무릎을 베개 삼아서 늘어진 모습이 참 태평했다.
따끈하게 쏟아지는 햇빛 아래에서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는 은하의 빗질이다.
나비는 아주 기분이 좋은 듯 갸르릉거렸다.
“너, 너무 귀여워.”
은하가 나비를 꼭 끌어안았다.
털의 감촉도 너무 좋고 냄새도 좋다.
태양 빛에 말린 세탁물의 향기가 난다.
그런데 따끈하면서 말랑하기까지 하다.
“졸려요.”
은하가 하품을 했다.
잠이 솔솔 온다.
앗, 큰일이다.
“어쩌지. 이제 유치원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은하는 며칠 전부터 가게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외출이 가능한 2시간이 끝나가니, 돌아가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혼날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커다란 고양이 씨가!
이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데?
같이 계속 있고 싶어!
꼬마 숙녀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안 돼.
이대로 유치원을 빼먹으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
유치원은 꼭 가야 해!
은하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했다.
커다란 고양이 씨의 유혹을 이기고 유치원에 갈 것이다!
그런데 움직이면 깨지 않을까?
이렇게 행복하게 자는데 깨우긴 싫은데!
은하가 어쩔 줄 모르고 당황했다.
그런 은하에게 승우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흠, 그럴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단다.”
승우가 2일간 잘 숙성된 푸딩 슬라임의 푸딩을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그걸 나비의 코앞에서 흔들었다.
승우가 흔드는 접시에 맞춰서 나비의 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접시를 가까이 대자, 핑크색의 코가 벌름거렸다.
“우냥… 맛있는 냄새다냐. 이건 나쁜 냄새다냐. 먹어서 혼내준다냐…….”
나비는 눈을 감고 승우가 유인하는 대로 머리를 움직였다.
승우는 그렇게 은하의 무릎으로부터 나비의 머리를 빼냈다.
그리고 소파에 접시를 두니 나비가 우물우물 푸딩을 먹었다.
“냐아아. 푸딩이여- 왜 이렇게 맛있는 거시냐아아.”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거라더니만, 이 식탐이란…….
승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은하에게 말했다.
“나이오비는 잠꼬대가 심한 편이니까, 신경 쓰지 마.”
이걸로 은하의 무릎은 자유다.
은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꼬마 숙녀가 배꼽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조심히 가렴.”
“네, 오빠.”
오빠…….
…오빠라.
그렇게 불리기에는 나이 차이가 심하지만 듣기에는 좋은 말이다.
승우는 코를 스윽 훔치며 멀어져가는 은하를 봤다.
그리고 건너편 건물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인물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인물은 승우가 손을 흔들자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떴다.
“은하의 경호원 같은데… 호오.”
저 경호원은 백강혁보다 강하다.
그것도 상당히.
듣자하니 백강혁이 퍼스트 오더 중에서는 유난히 약하다지만.
그래도 경호원이 저 정도 급이라?
“은하라는 아이, 옷차림도 그렇더니만 제법 잘사는 집의 아이인가 보군.”
그래서 그런지 가정교육도 잘 받은 것은 물론이고, 애가 상당히 귀엽다.
딸이 있다면 딱 저랬으면 좋겠다 싶은 표본이랄까?
하지만 딸을 낳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여자 친구라던가 결혼…….
“시작부터 아웃이군. 젠장.”
승우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비의 옆에 앉았다.
나비는 온기를 탐하는 뱀처럼 꿈틀거리더니만 승우의 무릎을 두 번째 베개로 삼았다.
“냐웅. 좀 딱딱하다냐.”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승우는 하품을 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 아직 좀 시간이 있다.
한잠 자두도록 할까…….
* * *
게이트 주둔군의 균열 관리과에는 곰 수인이 있다.
이름은 페로.
한없이 백곰에 가까운 외형을 한 수인이다.
그는 균열에 휘말려 지구에 불시착했다.
지구의 인간들은 기억을 잃었던 그에게 이름과 직장.
그리고 신뢰를 주었다.
하지만 그런 지구인들도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지구의 음식은 영 몸에 맞지 않아요.”
“그래? 일이 힘든 건 아니고?”
사각사각 하고 펜으로 서류를 정리하며 황지현이 반문했다.
페로는 보고서를 재검토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일이 힘들다고 해도, 이건 보람이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괜찮아요.”
“나는 자기의 그 성실한 면이 참 좋더라. 우리 오더님이 반만 닮아주면 얼마나 좋아.”
“백강혁 님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더가 들을까 봐 두려우니까. 칭찬은 아껴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황지현님은 너무 칭찬에 인색해.
아니, 백강혁 님에게만 인색한 걸까?
그러고 보면 백강혁 님에게만 공격적으로 말하는 것도 같다.
페로는 펜을 콧등에 올리면서 말했다.
“아무튼 일이 피곤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면 진짜로 음식이 안 맞아서 그러나 본데… 역시 조리된 음식은 힘들어? 생식이 더 좋을까?”
“으음,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따로 생식도 해봤습니다만 역시 몸에 맞지는 않네요.”
“역시 고향 음식이 필요한 걸까…….”
고향.
아, 기억도 나지 않는 고향이여.
이름 모를 숲의 향기가 맡고 싶다.
페로는 울컥하고 치솟는 감정을 느끼고는, 안경을 벗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으이그, 자기. 역시 향수병이구나.”
“훌쩍. 그런 거 같습니다.”
“근속 3년이면 자기도 제법 베테랑이야. 그럴 법도 하지.”
균열을 타고 불시착하는 수인은 종종 있다.
그들은 대부분 ISAC에게 고용되는 걸 선택한다.
신분도 보장하고 일거리도 주며 보호까지 해준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좋은 관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3년이 되면 대부분 향수병으로 괴로워한다.
이건 딱히 해결책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귀화한 수인종 전반에게서 발생하는 문제다.
“아니. 잠깐.”
황지현은 멈칫하더니, 한 밥집을 떠올렸다.
기괴하고 이상한 요리를 내놓지만 맛있는 그 집.
요즘 주둔군의 헌터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는 그 귀환자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