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197)
괴식식당-197화(197/613)
197화. 봄의 끝(1)
신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
기도란 신앙을 바치는 행위,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신에게 기원하는 일.
신보다 위인 존재는 있을 수 없기에 아레스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허나 지금은 기도를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누구에게?
누구라도 좋다.
이 미치광이를 치워줄 수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기도할 수 있다.
단 하나.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빼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에게 기도를 할 수는 없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에서 저 미치광이를 멈출 수 있는 신은 그 녀석뿐인지라, 아레스는 어금니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백기사, 백승리, 백설기…….”
“이름 끝내주지?”
강혁이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꼈다.
자그마치 3시간이나 고민해서 지은 이름이라 자신이 있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놈의 자신감과는 상관없이 아레스는 절망했다.
강혁의 자식 계획이 성공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동생이라고……?’
거룩한 신의 계보에서 헤라의 첫째 아들은 헤파이스토스였으며 둘째 아들은 아레스였는데, 이제 셋째, 넷째, 다섯째는 백기사, 백승리, 백설기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녀석들은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의 삼촌이 되며 촌수로 치자면 테라의 최고 주신들과 동 항렬이 된다.
‘이게 무슨 개족보야!?’
단숨에 족보가 이상해진다.
마족이나 짐승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개족보는 아닐 것이다.
아레스가 아찔하게 휘청거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이건 아니었다.
엄마가 새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뭐든 간에,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대! 반대다. 그런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
“…….”
아레스는 조심스럽게 흙을 쥐고 있는 강혁을 보고는 헛기침을 했다.
이 새끼 지금 흙 뿌리려고 했다.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쳇.”
“분명히 말해두겠다, 필멸자. 헤라 님은 네깟 놈이 넘볼 분이 아니시다. 썩 꺼지는 게 좋을 거다.”
강혁이 주먹을 꺼내더니만 천천히 중지를 폈다.
지구에서도 쌍욕에 해당하는 저것은 테라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아레스가 미간에 굵은 심줄을 새기는 걸 보며 강혁이 나불거렸다.
“뭐래. 희라 누나가 먼저 나 좋다고 그랬거든? 우린 서로 보자마자 한눈에 뻑간 사이거든?”
“헤라 님이 그럴 리가-!”
“그러니까 네가 뭔데 희라 누나를 판단하냐고, 짯샤. 어이가 없는 놈이네.”
“이 자식! 말로는 안 되겠군……!”
말로 안 되면 완력을 써야지.
아레스가 검을 꺼냈다.
강혁도 마찬가지로 검을 꺼내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두 사내가 검을 쥐고 대치했다.
그리고 쿠제는 입맛을 다시면서 둘을 봤다.
‘지금 뭔가 말하는 게 서로 엇나가는 기분인디…….’
일단 인칭부터 이상하다.
강혁은 희라 누나라고 하고 있고, 저자는 헤라 님이라고 하고 있다.
희라와 헤라.
둘은 발음이 비슷하지만 사실은 강세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듣다 보면 차이가 난다.
쿠제가 듣기에도 완전히 다른데 어째서 저 둘은 모를까.
그것은 둘 다 서로의 이야기를 반쯤 흘려듣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어지간히 자기가 할 말만 하고 상대의 말은 안 듣고 있다는 의미!
‘근데 헤라? 헤라아아? 헤라!?’
쿠제는 저 둘과는 다르게 질투와 분노, 뻘 생각에 지배되지 않은 매우 냉정한 상태였다.
질겅질겅 씹는 고기 껌이 쿠제의 이성을 매우 냉철하고 침착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쉽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
“오오오, 아레스 님이 검을.”
“이 어찌 고귀한…….”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오체투지 중인 실버 채리옷 기사단 때문에 저 남자의 이름이 아레스인 걸 알 수 있었다.
“희라 누나는 나랑 살 거야!”
“그 더러운 입으로 헤라 님의 이름을 내뱉지 마라!”
여전히 서로 대화가 엇나가는 강혁과 남자.
저 남자가 아레스.
그러니까 실버 채리옷 기사단이 모시는 신.
요약하자면.
‘희라라는 사람은 헤라 님이고, 저 남자는 아레스 님……?’
쿠제의 작은 머리가 모든 걸 읽었다.
그러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백, 백. 저 미친놈. 네가 미친놈인 줄은 알았지만 아레스 님에게 칼을 겨눌 정도로 미친놈일 줄은 몰랐다!’
아레스의 신전에서 아레스에게 검을 겨누다니!
그것도 아레스의 엄마와 애를 셋 낳는다는 개소리를 하면서!
쿠제의 목숨이 1만 개쯤 돼도 하고 싶지 않은 미친 짓이다.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는데, 아직도 저 둘은 입 싸움 중이다.
쿠제는 언제 아레스의 검이 울부짖을지 겁이 나서 그쪽을 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아레스는 강혁을 건드리는 순간 유승우에게 박살이 날 터이니 건들 수 없었고, 강혁은 강혁대로 아레스의 강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강혁이라고 해도 눈이 없는 게 아니라서 아레스의 힘은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사랑의 힘으로 무시하고 있는 거지!
‘어쩌지?’
큰일이 터지기 전에 여기서 수습하고 튀어야 한다.
어떻게?
슬기롭게?
쿠제는 갈팡질팡하며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얼굴로 작은 돌멩이가 날아왔다.
돌멩이는 톡 하고 얼굴에 맞고는 떨어졌다.
쿠제는 반사적으로 돌멩이가 날아온 곳을 봤다.
하늘, 신전의 부서진 지붕 쪽이다.
그쪽에는 하얀 날개의 남자가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그 머리가 벙긋벙긋, 입모양으로 말했다.
[안녕, 난 헤르메스. 우리 댕댕이 조용히 있어봐. 네가 떠들면 재미없어져.]아레스에 헤르메스.
연이어서 나오는 신님들을 보고 쿠제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 * *
전령의 신 헤르메스.
빠르고 아무튼 빠른 남자.
경박한 이 남자는 연애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보며 영화를 즐기는 취미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테라의 문화는 매우 삭막해서 즐길 거리라고는 전쟁을 포함한 스포츠나 하계의 인간들에게 갑질하는 정도라 헤르메스의 취미 정도면 상당히 고상한 편에 속했다.
그런 그가 아레스와 헤라, 그리고 지구인을 둘러싼 이 재미난 이야기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는 일이었다.
“아, 졸 잼…….”
“오늘도 최고네요.”
벌거벗은 작은 아이의 모습을 한 신, 에로스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헤르메스 님이에요. 진실을 말하되 순서를 다르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말해서 착각을 유도하다니 정말 고풍스럽고 멋진 연애살법이어요.”
“그렇지? 그렇지?
연애살법(戀愛殺法).
그것은 사람들의 연애에 간섭해서 최종적으로는 칼부림, 유혈 사태로 이어지게 하는 유서 깊은 전투법으로 헤르메스가 창시했다.
뭇 영웅과 신들은 이 기술의 진가를 모르지만, 이 기술에 제대로 걸려서 별자리가 된 영령과 영웅이 부지기수였다.
헤르메스는 이 기술로 신조차도 농락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아레스는 이 기술을 보고 비웃었지만, 막상 당하니까 속수무책이지. 후후후.”
“후후후. 꼴좋네요, 아버지.”
헤르메스가 씩 웃었고 에로스도 씩 웃었다.
낳기만 하고 방종, 방탕하게 사는 아레스의 모습에 아들인 에로스도 질렸다.
언젠가 한번 크게 엿을 먹일 거라고 맹세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다니, 잡아야지.
“헤라 님이 뿌린 씨앗을 잘 수습해서 이 정도까지 파국으로 만들 수 있는 건 헤르메스 님 정도일 거예요.”
“에로스, 너도 훌륭했어. 내가 도착하기 전에 아레스를 잘 요리해 뒀더라.”
“아버지를 엿 먹일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죠.”
“좋아. 다음 단계로 가자고.”
“좋습니다, 좋아요. 후후후, 누굴 쏘면 되죠?”
헤르메스가 음흉하게 웃었다.
“저 필멸자, 백강혁이라는 녀석의 부하 중에 황지현이라는 여자가 있더군. 그 필멸자에게 사랑의 화살을 쏴라.”
에로스의 사랑의 화살에 맞는다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에로스가 홍조를 띠며 말했다.
“삼각관계군요!”
“그렇지!”
헤라와 백강혁이 데이트하는 동안 황지현에게 사랑의 화살을 쏜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국과 절망의 삼각관계!
양다리를 걸치는 놈을 보며 아레스가 얼마나 빡칠지, 어떤 사고를 칠지!
헤르메스와 에로스가 으흐흐흐 하고 웃으면서 신전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뭔가 상황이 배배 꼬이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너희들이 문제였냐.”
“흐익!”
“으엑!”
등 뒤에서 들린 날 선 목소리!
헤르메스와 에로스는 반사적으로 활과 날개를 휘둘러 공격했다.
날카로운 것으로는 명검 이상인 헤르메스의 날개와 에로스의 신명 무구 공격!
하지만 허사였다.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공격이 튕겨졌다.
검막, 검기로 만들어진 방어벽이 너무 두텁다.
대수롭지 않게 휘두른 이 방어 기술에 두 신이 기겁했다.
이 넓은 세상에 이 정도 검막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둘도 없다.
“끼야아악-! 검신!”
에로스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유승우가 검을 들고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우째서 여기에 검신이-!”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서 왔지. 하여간 네놈들은 언제나 변하질 않는구나.”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건 테라 신들의 유희 중 하나다.
놈들과 관련되면 사실 좋을 게 없다.
잘 풀려도 하늘의 별자리 엔딩이고, 안 풀려도 별자리 엔딩이다.
별자리 엔딩이 뭐냐고?
테라의 신들과 연관된 인간들이 비극적인 사연이나 전설을 남기고 저 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걸 의미한다.
즉, 최종적으로는 비참하게 죽는다.
헤르메스가 손을 비비며 말했다.
“아, 그게 검신님. 오해가…….”
“음, 됐고. 일단.”
유승우가 살짝 공터로 손짓했다.
“따라와. 밖에서 이야기하자.”
“네.”
“녜.”
헤르메스와 에로스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아레스와 강혁은 어땠냐면, 서로 검은 들었지만 공격은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아레스는 강혁을 건드렸다가는 유승우에게 죽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에 때릴 수가 없다.
강혁은 어떤가 하면 이 녀석은 뻗대도 누울 자리 보고 뻗대는 지능적인 분노조절잘해 증후군을 가진지라, 아레스의 강함을 알아보고 참는 중이었다.
공격했다가는 98%는 죽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열받는다.
그래서 선택한 게 입딜이었다.
입딜, 입으로 딜을 넣는 것.
“%^*$ 같은, %^#@#가!”
“[email protected]%&(*(%#, 필멸자 #$%^&&가 !#한 말을 하는 구나!”
“뭐래, $%&^&%가!”
서로 추악한 말을 주고받으며 씩씩거렸다.
말이라는 게 하다 보면 더 열받게 마련이라 둘의 분노는 정점을 찍었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똑 하니, 한 여성이 내려왔다.
아름다운 외모에 딱딱하게 굳은 표정조차도 섹시한.
강혁은 그녀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희라 누나!”
“어, 엄마!?”
엄마?
강혁의 목이 천천히 돌아갔다.
자신과 좀 전까지 영혼의 맞딜을 주고받던 남자가 한 말이었다.
귀를 의심했다.
엄마라니?
“내가 정말 못 살아!”
강혁의 동공에서 지진이 날 무렵, 헤라는 다가와서 아레스의 등짝을 때렸다.
두 개의 신명을 가진 초월적 신다운 엄청난 스매싱!
그 충격파로 신전의 바닥재가 들썩이고 기둥이 흔들렸으며 오체투지하던 실버 채리옷 기사단이 날아갔다.
강혁조차도 기둥을 꽉 잡고 날아가지 않게 버티는 게 한계였다.
“끄아아악-! 아팟!”
“너라는 애는 대체 뭐가 문제니!”
“엄마! 사, 살살 때려!”
“지금 그게 문제야!?”
두 방, 세 방.
등짝 스매싱이 연타로 터졌다.
쩡-쩡 하고 거인이 망치로 산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아레스는 눈물을 쪽 빼면서 빌었다.
“엄마, 살려줘요! 아들 죽어!”
“지 애비랑 똑같이 사고만 치고!”
헤라가 속이 타는지 가슴을 쾅쾅 쳤다.
하지만 빈말은 아니었다.
아레스는 정말 죽을 뻔했다.
“쿠, 쿨럭.”
아레스가 입에서 한 바가지의 피를 토했다.
그리고 강혁도 피를 토하고 싶은 기분이 됐다.
“엄마, 아들?”
천천히 헤라와 아레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백강혁은 자신의 봄날이 끝나가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