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00)
괴식식당-200화(200/613)
200화. 야망 (2)
카지노에서 한 탕 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현의 결단과 판단력은 정말 대단했다.
딱 위법하지 않을 정도로.
딱 추노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딱 ISAC에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그러면서도 최대한의 금액을 긁어냈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의 행동력과 준비성이 아니다.
평소부터 행운의 아이템을 얻을 걸 고려해서 카지노에 대한 자료를 수집, 시뮬레이트.
카지노의 생리나 습성, 관련 법안을 모조리 파악한 황지현이라는 인간은 확실히 걸물이었다.
“유비무환이죠. 저는 당장에라도 이세계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거예요.”
“그건 정말 대단하군.”
평범하게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황지현이다.
대놓고 이상한 백강혁보다도 자세히 보면 더 이상한 사람!
그런 황지현이 충동적으로 돈을 다 썼을 리가 없다.
“돈을 마구 낭비했을 리는 없고…….”
승우의 취미 중 하나는 식당에서 이런저런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는 취미 생활을 위해서 언제나 귀를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법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겠는데?”
“맨입으로 들으시려고요?”
지현의 말에 승우는 씩 웃으며 한 그릇의 셔벗을 더 준비했다.
넋두리처럼 지현이 입을 열었다.
* * *
대재앙으로부터 9년, 이제 1주일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빌어먹을 10주기가 된다.
왜 빌어먹을, 이라는 말을 붙였냐면 그 10주기 행사를 주관하는 게 A섹터라 그렇다.
엄밀히 따지면 A섹터 전체의 큰 이벤트지만 그걸 총괄하는 게 이정훈의 일이고, 그걸 보조하는 게 부관인 황지현의 일.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을 터이니 욕지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한 욕지기가 나오는 행사가 코앞인데 황지현은 드물게 실수를 저질렀다.
일을 따블, 따따블, 따따따따블로 만들어 버렸다.
무엇 때문에?
야망 때문에!
“야망?”
“음, 저는 예전부터 꿈이 있었어요.”
“고층 빌딩 입주, 고급 스포츠카 수집 같은 거?”
“그건 야망의 곁다리죠.”
보통 고층 빌딩 입주와 스포츠카 수집이라면 인생 목표로 걸어도 부족함이 없을 텐데?
승우가 신기하다는 듯 보니 그녀가 팔짱을 꼈다.
“열심히 돈 벌다 보면 사실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저는 버는 거에 비해서 쓰는 게 적으니까. 퍼스트 오더에 비해서 적게 받는다고 해도 저 정도면 꽤 고액수급자거든요?”
“그렇겠지. 그렇게 일을 많이 하니까.”
승우가 아는 것만 해도 퍼스트 오더 백강혁의 부관, A섹터 지부장의 부관을 겸임하고 ISAC 총장의 직속 특수 감찰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바쁘게 일하면서 돈 쓸 시간도 없이 몸이 갈려 간다면 분명히 40대 중반쯤에는 고층 빌딩에 입주할 수 있으리라.
“저는 예전부터 ISAC의 방침 중 하나가 정말 싫었어요. 모든 재능은 재난 극복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제1방침이요. 이게 맞는 말이긴 해요. 예전에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흠, 난 지난 9년간의 일은 몰라서…….”
“많이, 많이 힘들었어요.”
막 각성한 초인들이라고 해도 레벨 1이다.
다른 세계였다면 막 기사 수습 과정을 밟는 견습생이라도 레벨 3~5는 될 것이다.
게이트가 열리는 재앙이 터지고 나서 몇몇 소수의 사람들이 초인으로 각성했고, 그렇게 레벨 1로 지구 방어가 시작됐다.
“현대 병기는 잘 안 통하지, 몬스터는 쏟아지지, 균열은 쩍쩍 갈라지지. 개판이었죠. 거의 3년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어요. UN이 엄청 무능했거든요. 그러다가 수습에 성공한 게 바로 지금의 총장님이에요.”
“그건 대강은 들었지만… 솔직히 납득이 안 되더라고. 대기업 회장이 갑자기 어떻게 총장이 됐는지, 어떻게 국제기구를 부수고 새 국제기구를 만들 수 있었는지.”
“그건 저도 잘 몰라요. 뭔가 되게 복잡한 정치적인 사정이 있었나 봐요. 여튼 중요한 건 당시에는 찬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었다는 거죠.”
“그래서?”
“발견된 모든 종류의 이능력자들을 전쟁터로 보냈어요.”
육체강화 능력자나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사람들.
마법을 갑자기 쓸 수 있게 된 이들, 천둥과 바람, 불을 만드는 자들.
모두가 전쟁터로 끌려 나갔다.
그래서 이겼다.
능력자는 점차 늘어갔고 사망자는 줄었다.
초기의 고비는 넘어갔고, 그 후부터는 탄력을 받아서 현대 병기가 몬스터에게 통할 정도로 발전됐다.
“그렇게 된 게 지금이잖아요. 저는 슬슬 이능력자들을 다른 방향으로도 사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흐음, 다른 방향이라……. 예를 들자면?”
“이번에 사장님에게 꼭 좀 부탁해서 한유성 씨를 모셔왔잖아요?”
“…….”
승우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때가 떠올랐다.
한유성을 압박해서 시키고 싶은 일이 있으니까, 꼭 좀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숙이던 지현의 모습이.
그리고 그것을 허락해 주자 바로 국세청에서 가져온 자료를 토대로 압박을 넣어서 한유성에게 올가미를 걸고 질질 끌고 가는 지현의 모습이-!
[가, 가고 싶지 않소이다아아-!! 도, 도와주시오! 주인 양반!] [놔라! 놔라! 이놈들! 갸아아아아-!]구슬프게 우는 한유성의 마지막 단말마가 아직 귓가에 선하다.
“그래. 모셔갔었지.”
“한유성 씨의 능력은 만능형이에요. 대체로 직업형 능력이 그렇죠.”
민의 탐지 능력이나 아왈트의 재생 능력처럼 한 능력이 명확하게 지정된 능력과는 다르게 직업형 능력은 여러 가지 기능을 다양하게 구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능력인 ‘무당’은 귀신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건데, 이걸 응용해서 부적에 영을 담는 방법과 영을 부려서 대상의 정신에 직접 말을 거는 텔레파시, 영이 본 시야를 자신이 보는 원격 시야, 미약한 예지 등 굉장히 많은 응용법이 가능했다.
“한유성 씨의 능력을 ISAC에서 쓴다면 100% 전선지휘관이 될걸요.”
“그렇겠지. 탐지부터 원격시야에 원격회화도 가능하고 막말로 전투 능력은…….”
“단련하면 그만이니까요.”
부적에 영을 담는 요령으로 몸에 담는다면 몸을 강화하는 한편, 적에게 저주까지 씌울 수 있을 것이다.
전투 기술이야 훈련하고 교육하면 되는 것.
한유성의 잠재 능력은 그야말로 퍼스트 오더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능력은 전투가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써도 괜찮단 말이에요.”
“다른 방식이라……. 아, 설마 정신 치료 목적인가?”
“역시 사장님! 한 번에 제 생각을 알아채셨군요!”
영을 불러낼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불러낼 수 있다는 소리다.
애초부터 무당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다.
산 사람을 위해서 죽은 사람을 불러내 마음을 치유하고, 미련을 끊어주는 자.
그게 바로 올바른 무당이다.
유성은 그걸 이용해서 돈벌이를 한 모양이지만!
“무당과 가장 닮은 직종이 정신과 의사긴 하지.”
“예, 맞아요. 사람들은 유령을 보고 싶어 해요. 호기심 같은 걸로 보는 종자들만이 아니라 그리워서, 미련이 있어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죠.”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친한 사람, 가족을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나보낸 이를 보고 싶은 법이다.
가만히 수긍하고 있는 승우만 해도 그러하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
죽은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을 수가 없다.
“대재앙 때 죽은 사람이 한둘이에요? 다들 마음에 상처 몇 개쯤은 있잖아요.”
“그래, 그렇지.”
“한유성 씨의 능력으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거예요. 그걸 위해서 지금 한유성 씨를 모셔 와서 훈련 중입니다.”
유성이 예전에 하던 대로 사기 치는 방식으로 능력을 사용하는 건 금지.
진짜로 혼을 불러와서 친구들과 가족들, 전우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을 위해서 지현은 유성을 훈련시키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거죠. 한유성 씨처럼 다른 사람도 전투적으로 능력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웃을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하게 만들어주기! 그런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모두에게 행복을, 지현 재단!
지현의 꿈이다.
“그, 빌딩이나 스포츠카 같은 건?”
“그건 그거대로 노력해야죠. 꿈이라고 해도 모든 걸 희생해서 얻을 생각은 없거든요? 재단도 세우고 빌딩도 세울 겁니다.”
“요, 욕심쟁이구만.”
“물론! 욕심쟁이 맞습니다! 둘 다 할 거예요!”
둘 다 놓치지 않겠다니 확실히 걸물은 걸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개 공무원이 가지기에는 거대한 야망이다.
“아무튼 10주기 이벤트가 코앞이라 조신하게 있어야 할 때인데, 카지노에서 딴 돈이 생긴지라 성급하게 재단 설립을 준비했죠. 그런데 그만 돈이 동나서 다른 사업 아이템이 필요해 졌… 사장님?”
지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자 승우가 눈을 가렸다.
“큭, 눈에서 땀이…….”
이 어찌 멋진 생각이란 말인가.
테라에서는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오만 가지 호로 자식들을 보고 온 승우에게 지현은 꽤나 눈부시게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흠……. 도와줄 수도 있을 거 같네.”
“어? 정말요?”
“음…….”
킬러맨시 셔벗 체인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
첫째로는 재료 공급.
제우스가 직접 재배한 킬러맨시만이 이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통상의 킬러맨시로는 셔벗을 만들어봐야 달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으며 정신을 맑게 해주지도 않는다.
꼭 제우스가 정성을 담아 키운 재료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재료 공급은 내가 하게 만들게.”
“귀한 재료 아니었어요?”
“응. 귀하지만.”
죽고 싶지 않으면 자기가 하겠지.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었고, 주먹보다 강한 게 검이다.
하물며 테라의 신이 멋대로 만든 법 따위는 승우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
올림포스의 쓰레기 신들 앞에서는 기꺼이 강도가 될 수 있는 게 승우였다.
“구해올 수 있어.”
“그, 그거 다행이네요.”
“다음 문제는 사람 혹은 기계겠네.”
철근보다 강력한 킬러맨시를 갈아서 셔벗이나 스무디를 만들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런 강한 육체 강화 능력자를 체인점마다 일일이 배치하자니 고용비가 수익보다 많이 나온다.
기계로 대체하자니 갈 때 방전되는 전기를 버틸 기계를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아예 기계를 만들자니 설계비와 생산비가 폭등해서 사람을 사는 것보다 비싸진다.
이것만은 정말 답이 없어서 지현도 바로 백기를 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승우가 조용히 지갑을 뒤졌다.
그리고 그가 꺼낸 것은 새까만 카드였다.
지현은 보자마자 탄성을 내질렀다.
“그거 설마, 대명 블랙카드!”
소문으로만 들었던 다섯 개도 안 된다는 대명의 특수 카드다.
한도 무제한! 대출 무제한!
대명에서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환상의 카드!
승우가 카드를 지현에게 보이며 말했다.
“이걸 가지고 경매장에 나가면 될 거야.”
“경매장이요? 뭐, 뭘 팔아요? 전 가진 게 없는데.”
“야망.”
“예?”
승우가 씩 웃었다.
“그곳은 좋은 사람이 많아. 경영 위기에 빠져서 도산하려는 고아원이나 복시센터를 매물로 내놓으면 비싼 가격에 사주는 사람들이 모이지.”
돈은 많고, 그 돈으로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색 경매장이다.
그들은 대부분 돈은 있으나 자식이 없는 부자 노인들, 혹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다.
“그 사람들이라면 지현 씨의 야망도 비싸게 사줄 거야. 기계를 설계해 줄 사람도 소개시켜 줄 수 있겠고, 직접적으로 지현 씨를 도우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사실 킬러맨시 셔벗 체인점을 만들 필요도 없을 만큼 도움을 줄지도 몰라.”
“사장님…….”
지현이 감동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때였다.
승우가 씩 웃으며 카드를 다시 지갑에 넣었다.
“엣?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줄 거긴 한데, 해야 할 게 있지?”
“뭐, 뭐 해요?”
“이런, 여기가 어디인지 잊은 모양이네.”
이곳은 용사의 식당.
사람들이 부르길 괴식 식당.
“먹어야지?”
맨입으로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승우가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향했다.
괴식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