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08)
괴식식당-208화(208/613)
208화. 튀어나와요. 신들의 숲 (2)
인간, 드워프, 엘프는 테라를 비롯한 여러 차원에서 자주 발견되는 선도 종족 중의 하나다.
그중에서 엘프는 어느 차원에서 발견되어도 대부분 수명이 매우 길며 손재주가 뛰어나고 숲을 사랑하며 미색이 출중하다.
엘프들의 공통점은 그 외에도 더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어느 차원에서든 숲의 신이나, 사냥의 신.
혹은 달의 신을 섬기며 세계수를 지키는 삶을 산다.
숲, 사냥, 달은 이들의 상징이었고 세계수의 수호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흐읍, 흐읍. 아… 숨이 막히네.”
알리스터는 자신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저 새하얀 가지가 세계수의 가지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승우의 인벤토리 정리 작업 막바지에 발견한 그것은 정말, 정말 눈에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자태를 보여줬다.
거기다가 충격적인 것은 묘목도 있었다.
세계수의 묘목이라니!
이 작은 묘목은 언젠가 세계를 떠받칠 진정한 세계수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필요한 것은 딱 세 개다.
질 좋은 토지.
미친 듯이 긴 시간.
그리고 보호해 줄 엘프.
이곳에는 그 세 가지가 다 있었다.
알리스터는 그 마지막 엘프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묘목부터 세계수를 돌볼 수 있다니…….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엘프야.”
알리스터가 크리스털 벨리에 있는 자택과 작업 공방을 게르니아로 옮긴다고 선언한 것도 당연한 일.
그녀는 승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감행했다.
그래서 그녀가 공식적인 게르니아의 첫 주민이이다.
“세계수의 묘목이라니. 흐흐흐.”
그녀는 이 작은 가지 몇 개를 지키는 것에 인생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묘목이란다. 묘목!
천 년쯤 지나면 이 묘목도 아름드리나무 정도로는 자랄 것이다.
그렇다면 잎사귀 하나 정도는 재료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가지 반 토막으로 무기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세계수의 가지나 잎으로 마법 무구나 도구를 만드는 것은 엘프 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이다.
천 년 정도야 기다리고말고.
정 뭐하면 자식을 낳아서 대대손손 가업을 잇게 해도 좋겠다.
그렇게 알리스터가 다짐하고 있으니 승우가 말했다.
“아, 맞아. 세계수의 가지로 마법 봉이나 하나 만들어주라.”
“마법 봉? 마법 봉이라. 네가 쓸 건가?”
“아니. 선물할 거야.”
슬슬 은하에게도 주력 무장이 필요하다.
풍진 세상.
자신을 지키는 최고의 수단은 자신이 강해지는 것.
은하는 스스로를 지킬 필요성이 있다.
‘내가 언제까지나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다면 무기를 사용한 전투법이나 호신술을 가르쳐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은하는 아직 어려서 무기를 사용하기 좋은 신체나 나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차선책.
단순히 원소를 다루는 원소 능력자들은 자신의 마력을 통해서 세상에 원소를 구현한다.
그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마법 봉이다.
적은 마력을 써서 최고의 성과를 내는 도구!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마법 봉은 최고로 친다던데.”
“물론이지.”
세계수는 한 세계를 보호하는 신목 중의 신목, 나무의 왕이자 나무의 신.
나무 그 자체이자 생명의 어머니이며 아버지다.
그런 세계수의 가지로 마법 봉을 만든다면 최고일 수밖에 없다.
알리스터가 세계수의 가지를 만지며 탐욕스럽게 웃었다.
“세계수의 가지는 최고의 마력 증폭률을 가지고 있어. 통상의 마나메탈의 마력 증폭률이 1.5배라고 한다면 일전에 보여준 신목은 2.35배 정도 된다. 하지만 세계수의 가지는 크흐흐흐, 6배가 넘는다고!”
6배는 정상적인 교환비가 아니다.
지구의 현대 과학 기술의 결정체, 마나메탈을 한순간에 ‘따위’로 만들 수 있는 비정상적인 출력!
알리스터가 홍조를 띠며 세계수의 가지를 얼굴에 비볐다.
“그래? 그렇게 높은 줄은 몰랐네.”
“그것뿐이 아니야. 마력을 사용한 공격은 대자연에 악영향을 줘. 마력으로 세상의 법칙을 뒤틀기 때문이지.”
“알아. 그래서 마력을 사용하면 법칙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찌꺼기가 생기고, 그 찌꺼기가 모여서 균열이 발생하게 되는 거 아니냐.”
눈 고래가 먹어치우고 정화하는 것이 그 찌꺼기 마력이다.
승우가 태연하게 말하자 알리스터가 입을 살짝 내밀었다.
“논문을 봤나 보군?”
“논문?”
“솔 크라이슬러가 학회에 제출한 눈 고래에 대한 논문이 지난주에 나왔는데 벌써 본 건가?”
“원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 찌꺼기가 뭐?”
“세계수의 가지로 마력을 구현화하면 그 찌꺼기가 나오지 않아. 그러니까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마법 봉은 ‘에콜로지 아이템’인 거지!”
에콜로지 아이템이라니…….
승우가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친환경인가…….”
“친환경이야.”
“친환경은 중요하지. 어쨌든 잘 부탁해.”
“그래, 그럼 바로 작업 준비를 하도록 하지.”
“바로 시작한다니 좋네. 얼마쯤 걸릴까?”
“일단 세계수의 가지를 다루는 일이니까 목욕재계를 15년 정도 하고, 작업대 손질과 공방의 준비를 20년 정도, 예행연습에 100년. 내 몸을 만드는 데 400년. 그리고 마법 봉을 제작하는 데 780년 정도를 잡으면…….”
손을 꼽는 알리스터를 보며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이래서 장생종들이란 시간 감각이 엉망이다.
“길어. 1주일 안에 끝내.”
“미, 미쳤어?!”
“길잖아. 천 년? 은하에게 선물할 거지, 은하의 까마득한 후손에게 선물할 물건이 아니라고.”
“하지만 세계수의 가지를 그렇게 불손하게 막 만들 수는…….”
“실패해도 되니까 적당히 만들어봐.”
진짜 재료 귀한 줄 모르는 놈이다.
알리스터가 눈을 흘기다가 팔짱을 꼈다.
“그렇다 쳐도 1주일은 부족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나 혼자서 어떻게 만드냐?!”
“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거지?”
“그래.”
그것도 보통의 사람은 도와줄 수도 없다.
알리스터는 천천히 요구사항을 읊었다.
“우선 나무를 사용한 도구 작성이나 마법무구 제작을 할 줄 알아야 해.”
“음. 그리고?”
“세계수는 엘프가 아니라면 마음을 열지 않아. 엘프여야 하지.”
“그리고?”
“기왕이면 힘이 좋아야지.”
“그리고?”
“레벨도 높으면 좋겠네. 마법도 잘 다뤘으면 좋겠고.”
고레벨의 마법을 잘 쓰면서 힘도 좋은 엘프 장인.
알리스터는 말을 하면서도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를 다 뒤져봐도 이 조건에 해당하는 건 알리스터 하나였다.
아주 엄중하게 잣대를 들이밀면 사실 알리스터도 요구사항에서 빠지는 감이 있었다.
“나 자신도 내가 원하는 요구사항에 못 들어가.”
“그래?”
“레벨이 부족해. 근력도 부족하고, 마법 수행도 아직 부족하지. 그러니까 예행연습과 몸 만들기로 500년은 써야 한다고 한 거라고.”
“그렇군.”
“결론적으로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 그냥 시간을 써야…….”
“아냐. 적당한 사람 있어.”
“뭐?”
“정원사!”
승우가 손을 흔들면서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손질하던 한 엘프가 정원사 가위를 어깨에 걸치고 다가왔다.
알리스터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엘프 여성이다.
엄청난 장신이라 거의 2미터에 달할 정도의 키라서 잠깐 착각했지만 미색이 실로 대단했다.
마치 여신 같은 아름다움과 전사의 늠름함, 그리고 귀족 특유의 오만한 카리스마가 철철 흐른다.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누, 뉘신지?”
“알 거 없다.”
삭막하게 말하는 엘프
그녀는 수렵의 신, 아르테미스였다.
포세이돈이나 아폴론처럼 그녀도 승우에게 끌려와서 노역을 하고 있었다.
원치 않은 강제 노역이었지만 그래도 염전 노예가 된 포세이돈이나 전등 수리 기사가 된 아폴론보다는 한결 나았다.
수렵의 신인 만큼 숲은 그녀의 무대!
숲의 생태계 조성과 작은 동식물의 관리에 대해서는 그녀보다 잘 아는 자가 없었다.
무엇보다 염전 노예보다 노동 강도도 약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요.”
“이 사람을 도와서 마법 봉을 만들어줘.”
“추가 업무 따위는 싫다고 한다면?”
“혼자가 된 아폴론이 슬퍼하겠지.”
아르테미스와 아폴론은 쌍둥이 신이다.
그녀는 끌려오기 싫다고 발악하다가 별자리가 될 뻔한 동생을 떠올리고는 치를 떨었다.
테라의 신들과 거래할 때의 승우는 단 하나의 방법만을 사용했는데 그 방법은 협박이었고, 과정은 무력시위뿐이었다.
그 가차 없는 손속에 전율하며 아르테미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승우가 툭 하고 알리스터의 어깨를 쳤다.
“자, 요구한 조건을 전부 충족하는 조수다. 힘세고, 엘프고, 레벨은 높아.”
알리스터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그건 보면 안다.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엘프다.
엘프의 대장로를 봤을 때보다도 강한 이 위압감.
분명히 아주 대단한 가문의 대장로거나, 그도 아니면 세계수를 지키는 로열가드일지도 모른다.
마치 엘프의 신 같은 이 존재감!
알리스터는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이보다 대단한 엘프를 본 적이 없었다.
“그, 거시기… 요구 조건은 맞는데…….”
이렇게 대단한 분을 조수로 쓰라고?
어떻게?
내가 조수가 되는 게 맞지 않나?
알리스터가 심란한 상상을 하고 있으려니.
“마법 봉. 잘 부탁해.”
손을 흔들며 승우가 걸어갔다.
알리스터는 오도카니 서 있다가 아르테미스에게 물었다.
“저기……. 어느 가문의 분이시죠?”
“알 거 없고 일이나 하자.”
“예…….”
* * *
여기저기서 일을 한다.
게르니아 자체가 노역장이 된 분위기다.
모두가 일을 하고 있다.
헤르메스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하얀 날개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숨을 돌리는 중이다.
“하이고오, 죽겠네.”
노동량으로는 부동의 1위인 포세이돈을 제외한다면 헤르메스가 운동량이 제일 많았다.
그의 일은 택배였다.
여기저기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도구를 배송하고 물건을 나른다.
단순한 택배라고 얕볼 것은 아니었다.
아폴론이 태양을 조절하는 데 쓰이는 것들도 장난 아니지만, 포세이돈이 바닷물을 조정하여 만드는 소금의 생산량만 하더라도 하루 1톤이 넘었다.
아르테미스가 배치를 바꾸고 새롭게 심는 나무도 어마어마했다.
신은 신이라 신급 규모의 노동이다.
중간에 끼어서 모든 신들의 노동을 견인해 주는 것이 바로 헤르메스의 일!
“날개 부러지것다.”
그는 고된 일에 지쳐서 해안가 바위에 앉았다.
그러자 꺅꺅 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소리다.
게르니아 전체가 거대 노역장이 된 판에 아이들은 정말 살판이 났다.
“저기는 분위기가 다르구만.”
숫제 놀자 판이다.
지켜보고 있자니 한 슬라임이 소리쳤다.
“왕이 된 기분뿌우-!”
쫙 달라붙는 수영복을 입은 슬라임이 왕관을 쓴 채 보드를 타고 서핑을 즐긴다.
바닷물을 흡수하는 걸 방지하는 수영복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드라니?
심지어 잘 탄다.
헤르메스는 멍하니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 저거 해신의 왕관이잖아.”
바다와 해일의 신 포세이돈.
바다를 상징하는 신명 무구가 트리아이나라고 한다면 해일을 상징하는 것이 해신의 왕관이다.
저 슬라임은 지금 해신의 왕관을 쓰고 해일을 일으켜서 서핑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포세이돈 님이 봤으면 피눈물을 흘리겠구만…….”
자기의 신명 무구가 아니라서 그런 것인가.
테라의 신들로부터 압수한 신명 무구를 정말 멋대로 다루고 있다.
헤르메스는 지친 허리를 두들겼다.
“그나저나 꼬맹이가 많네.”
꼬마 여자아이는 슬라임이 만들어낸 해일을 타고 같이 서핑 중.
고양이는 하품을 하며 바다낚시 중이다.
다들 여가 시간을 정말 잘 쓰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부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다가 아레스가 다가오는 걸 보고 손을 흔들었다.
“아레스 어서 오고.”
“뭐냐, 그 이상한 인사는? 아무튼 상황은 어때?”
“최악이지.”
“그렇겠지.”
평소에 유승우에게 밉보인 이들이 차례차례 끌려와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지옥도도 이런 지옥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이게 예상한 것보다는 몇 배나 온건한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최악이지만, 상정한 거보다는 나아.”
유승우는 실로 호인(好人)이었다.
헤르메스가 보기에 테라의 신들이 한 지금까지의 악행과 협잡 짓을 이걸로 퉁쳐준다는 것 자체가 성품이 온건하다는 증명이다.
만약 헤르메스에게 다른 신들이 그렇게 했다면, 그리고 헤르메스가 승우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은 모두 나노 단위로 잘게 썰려서 개먹이로 됐을 터.
“그렇… 군.”
헤르메스의 말에 아레스가 참담한 얼굴이 되었다.
그 수많은 협잡 짓과 악행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건 제우스와 포세이돈이었고, 그 다음은 아레스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레스가 승우를 싫어했기에 제우스와 포세이돈도 승우를 적대한 거라 모든 것의 시작은 아레스가 맞았다.
그래서 아레스는 아주 큰 부채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나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고 있어.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을까?”
“타개할 방법이라…….”
헤르메스가 턱을 괴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아이들을 향했다.
“해결책이 될 것도 같은데……?”
“그렇군. 아이들을 인질로 잡으면…….”
아레스가 감탄하며 중얼거리자 헤르메스가 날개로 아레스의 머리를 후려쳤다.
“이게 미쳤나. 혼자 뒈져라?”
“…….”
“이 새끼는 발전이 없어!”
“…….”
“진짜 말하기 전에 생각을 안 하냐? 뇌가 없어? 인질? 인지이일?”
헤르메스가 인상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