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14)
괴식식당-214화(214/613)
214화. 정면승부 (2)
시라노는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세계 3대 전략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호사가들이 좋아하는 순위 매기기지만 솔직히 시라노는 러시아의 바실리, 그리고 총장 주혁진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전략으론 지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위기 감지 능력.
귀신같이 위험한 상황을 읽어내고는 그 상황을 피하는 세계 최고의 생존 본능!
맞기 전에 때려서 죽인다는 주혁진의 패기 넘치는 선빵필승 전략론이나 신산귀모의 혜안으로 천리 길 밖의 상황을 맞추는, 예지 능력자에 가까운 전술안의 바실리에 비견되는 시라노의 특기가 바로 이 위기 감지 능력이었다.
그런 그의 위기 감지 능력이 경종을 울렸다.
‘이 사람은 위험해.’
개수작을 부려서는 안 된다.
골든 리트리버는 착해서 나쁜 짓을 해도 100번까지는 봐준다지?
유승우의 레드카드는 단 한 장이다.
그의 참전을 위해서 이쪽에서 내걸 수 있는 수단은 의외지만 많았다.
그가 아끼는 백강혁이나 민을 사지에 던지면 걱정된 그가 따라오겠지.
그도 아니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며 그의 슬라임을 차출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하면 안 된다.
본인에 대한 협박이나 주변 인물에 대한 정치 공작을 하는 그 순간 유승우의 레드카드가 뽑히고 시라노는 죽는다.
잠재 위험 등급 Ex.
혼자서 세계 멸망이 보장 가능한 핵병기.
설사 세계 멸망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시라노 본인의 생명은 단 한 장의 레드카드로 정해질 수 있다.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시라노는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개수작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유승우의 조건에 모든 걸 맞추기로 작정했다.
그 첫 번째.
‘보상.’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바로 보상이다.
아마추어는 보상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지만 프로는 보상이 있어야만 움직인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보상 없이 움직인다면 자신의 솜씨는 물론 경력에 흠이 간다.
무엇보다 무상으로 움직여 주는 귀환자라니, 그것은 ISAC 입장으로서도 재앙이다.
‘검을 좋아한다고 했지.’
조사 데이터에 의하면 반대의 의미일 수도 있다고 했다.
반대의 의미라니, 유승우가 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검이 유승우를 좋아한다는 뜻인가?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아무튼 선물이라면 검이 적절하다.
AI가 그렇게 추천했다.
그래서 힘들게 루브르 박물관에서 A급 아티팩트를 반출해 왔다.
오래된 문화재가 아티팩트로 변화된 케이스가 늘 그러하듯, 반출은 힘들었다.
무기로서의 성능보다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그래도 ISAC의 권한으로 그것을 해냈고 물건을 보여줬다.
하지만 어째 반응이 심드렁하다.
‘A급 아티팩트로는 기별도 안 간다는 건가.’
오히려 주와이외즈 쪽이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스 안에서 격렬하게 날뛴다.
황급하게 케이스를 닫지 않았다면 뛰쳐나갔겠지.
어쨌든 이쪽의 성의는 정해졌다.
그가 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시라노가 그린 설득 플랜의 마지막.
정면 승부.
그가 만드는 괴식을 먹고 정식으로 의뢰하는 것.
여태까지 많은 사람이 성공한 일이다.
내가 실패할 리가 없지.
무엇보다도 먹는 일이지 않은가.
프랑스인은 세계 어디에서도 식문화로는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프랑스인 중에서 시라노는 미식가로 이름 높은 몸!
성공하는 게 당연하다.
시라노는 그렇게 자신하며 팔짱을 끼다가, 이내 팔짱을 풀었다.
유승우가 꺼낸 식재료가 어째 이상하다.
“Fat innkeeper worm?”
“과연 음식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시라노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유성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아니, 이런 천벌 받을! 본인이 밥 먹는 중인데 그딴 걸 왜 꺼내는 거요?! 식욕이 뚝 떨어지잖소!”
Fat innkeeper worm.
한국어로는 ‘개불’이라 한다.
개불.
개의 불알이라는 뜻.
영문화권에서는 그 생김새가 남성의 그곳 같다고 하여 Penis fish라고 부르며 중국에서는 바다에 내장이 떠다닌다는 의미로 해장(海腸)이라 부른다.
그 이름이 증명하듯 녀석은 비범하게 생겼다.
승우가 혀를 찼다.
“좋은 재료인데 생김새 때문에 혐오 음식 취급되다니, 슬픈 일이야.”
“보이는 그대로 혐오스럽잖소. 매일 아침 화장실 가면 보는 걸 왜 밥 먹으면서까지 봐야 하는 거요!”
된장국에 밥을 말며 유성이 투덜거렸다.
시라노는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승우가 개불을 들어올렸다.
“이거 진짜 좋은 재료거든? 시라노 씨는 알고 계시죠?”
“…물론.”
개불은 실제로도 정말 좋은 식재료다.
쫄깃한 식감은 그 자체만으로 천하 일미.
동물성 식재료에서 보기 드문 감칠맛과 단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풍부한 맛을 자랑하며 해산물 특유의 바다 향은 거북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풍미를 보인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알고 있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이론으로는 알고 있다네.”
미식가라고 자부하는 시라노는 그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먹어본 적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마침 서식지도 한국에 쏠려 있어서 외국에서는 보기도 힘든데 생긴 게 저 모양이다.
그 덕에 외국에서 개불의 취급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미스터리 딜도다.
딜도가 헤엄도 치고 해초도 먹고 그런다는데 이건 숫제 오컬트 수준.
학회에서 오리너구리가 처음 발표됐을 때.
장난하지 말라고 항의도 있었고, 웃느라고 발표가 중지되었다던가?
개불의 인식은 그 정도였다.
저런 뭣 같이 생긴 해산물이 실제로 있을 리 없어-! 라고 말이다.
실제 존재한다는 게 참으로 유감이었다.
시라노가 몸서리치며 말했다.
“으음, 개불을 쓴 요리라니……. 이건 또 새로운 도전이 되겠군.”
“뭐, 이건 꽤 일상적인 요리라서 저에게는 감흥이 없지만요.”
“이게 일상적이라니, 한국인이란…….”
“확실히 한국에서는 개불을 흔하게 먹긴 하죠.”
“그야 그거 이름 자체가 korean penis fish 아닌가. 한국인만 먹는 거라고.”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제가 갔었던 이세계에서도 많이 먹어요.”
“…이상한 곳이군.”
“심지어 이게 서민 음식이랍니다.”
개불은 테라에서는 정말 많은 종류가 자생하고 있었고, 모두가 애용하는 좋은 괴식의 재료였다.
어느 것이나 다 테라의 기준으로 좋은 효과와 맛을 자랑한다.
시라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잠깐. 말의 흐름이 이상한데? 설마!?”
이 사람 감이 좋은걸?
승우가 씩 웃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하나둘 새로운 것을 꺼내들었다.
노란 개불, 빨간 개불, 검은 개불, 형광 개불, 무지갯빛 개불, 자이언트 개불, 위 아래로 크게 떨리는 개불까지.
각양각색의 개불이다.
“테라의 각종 개불을 사용한 모둠회를 해볼까 하는데요.”
“먹기 싫네! 개불만 해도 인내심의 한계였는데 이세계의 개불 모둠회라니 이게 뭔 짓인가!”
“괴식 챌린지요.”
“끄, 끄으응.”
시라노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각오는 했다.
뭐가 나오든 먹는다고 각오는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일전에 예고한 대로 프렌치 요리를 해주는 것까지는 기대도 안 했다.
해봐야 한국인이 좋아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나, 일상적인 백반.
그러니까 저기 잘생겼지만 얼빠진 총각이 먹는 평범한 백반을 기대했다.
조사를 해보니 괴식이라고 해도 도를 넘어서서 혐오 식품에 가까운 괴식은 안 만드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내가 오자마자 바로 이런 본격 괴식인가?!”
“요즘은 어쩐지 이런 걸 만들고 싶은 기분이라서.”
“기분? 기부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바람처럼 나부끼는 인생인 것은 알고 있었다.
내키면 가게를 열고 내키면 닫는 집시와도 같은 신조인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리사로서도 이 정도일 줄이야.
시라노가 어금니를 악물며 말했다.
“머, 먹고 싶지 않네.”
“그래요?”
승우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문 쪽을 가리켰다.
먹을래? 갈래?
그가 눈으로 물었다.
시라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중국에서 대기 중인 수많은 헌터를 떠올렸다.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승우가 꼭 필요하다.
시라노는 앓는 소리를 내더니 애꿎은 유성을 향해 화를 냈다.
“에이, 거참! 그 백반 맛있어 보이는구만!”
“아니, 이 코쟁이가 미쳤나! 왜 갑자기 본인에게 화를 내는 거요!”
“부러워서 그러네! 부러워서!”
* * *
개불은 보기와는 다르게 확실히 맛있는 해산물이다.
그뿐인가. 효능도 훌륭하다.
혈관 속의 노폐물을 녹이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고혈압과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혈관성 질환에 특효이며 콜라겐이 많아서 피부미용에도 좋다.
“철분도 많아서 빈혈에도 좋고, 고단백에 저칼로리라서 다이어트에도 좋은 팔방미인이지.”
“이 양반이 미쳤나. 생겨먹은 게 그 모양인데 뭔 미인.”
유성이 그릇을 치우며 투덜거렸다.
승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역시 생긴 것은 뭐라고 해도 좀 숭했으니까.
“그나저나 저 다른 색들의 개불은 뭐요? 그 테라인가 뭔가에서 가져온 물건이오?”
“그래.”
“그럼 그 녀석들은 더 효과가 좋겠구려.”
“물론이지.”
무엇을 먹고 사느냐.
어떤 것을 먹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하여 어떻게 몸을 구성하는가.
육식을 하는 동물은 초식을 하는 동물보다 누린내가 심하다.
과일을 먹고 자란 소가 여물만 먹고 자란 소보다 고기가 향기롭고 육즙이 풍부하다.
마찬가지였다.
“테라에서 자란 개불은 다양한 것을 먹고 성장해.”
붉은 개불은 화산지대에서 발견되는 녀석인데 철광석과 용암을 먹고 자라서 엄청난 철분 함유량을 자랑한다.
노란 녀석은 민물에 살면서 채소를 주로 먹고 자라서 엄청난 식이섬유질과 비타민 함유량을 가지고 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
“하나하나가 다 자기만의 생태계를 가지고 성장해서 독특한 효과를 가지고 있지.”
“그럼 그걸로 요리를 번듯하게 하는 게 더 효과가 좋지 않겠소?”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라노가 머리를 싸매고 고개를 흔들었다.
개불 모둠회는 확실히 빡세다.
하지만 저걸로 요리를 하면 더 빡세질 것이 뻔했다.
그의 위기 감각이 다시 한번 맹렬하게 고성을 질렀다.
‘요리하면 더 심해질 것 같아-!’
차라리, 차라리 회가 낫다.
그런 감정이 보이는 몸짓이었다.
유성이 입맛을 다셨다.
“음. 그렇군. 댁이 진짜로 요리하면 저치가 반 죽는다 이거구려.”
“그런 거지. 자, 그럼 금방 끝내볼까.”
의외지만 모둠회는 꽤나 어려운 요리에 속했다.
사시미, 회를 써는 것은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해산물의 살은 약간의 열과 압력에도 뭉개진다.
거창하게 열과 압력이라고 했지만 단순하게 말해서 손이다.
해산물을 잡는 손.
인간의 체온으로도 해산물의 영양소와 맛은 파괴된다.
칼로 회를 썰 때 생기는 압력으로는 너무 쉽게 뭉개진다.
날카롭게 썰지 못하면 단면이 으깨진다.
그러니 최대한 섬세하게, 빠르게, 정확하게, 완벽하게 칼솜씨를 부릴 필요가 있었다.
이 칼솜씨를 얻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수행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회를 써는 것은 검의 신이었다.
휘릭 하고 칼이 춤췄다.
“오.”
“와.”
지켜보던 시라노와 유성이 무심코 탄성을 내지르는 칼솜씨였다.
중화식도를 잡고 가볍게 칼을 돌리는 듯하더니만, 이내 그릇 위로 손질된 개불이 떨어졌다.
하나의 개불을 완벽하게 회 써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초.
7종류의 개불이 화려하게 그릇 위로 펼쳐지는 것에는 7초.
찰나의 예술. 빠름의 미학.
수많은 요리 중에서 최고로 속도에 집착한 요리.
“테라와 지구의 개불을 사용한 모둠회. 완성.”
앗, 하는 사이에 요리가 끝났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요리하는 과정 자체가 보이지도 않았다.
섬광 같은 칼놀림은 시라노에게 다른 의미로 충격을 주었다.
시라노가 양손을 내밀면서 당황했다.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됐는데……!”
“해산물이 가장 맛있는 순간은 짧습니다. 특히나 테라의 개불은 15분 안에 다 먹어야 하거든요?”
“1, 15분?”
“그러니까 조건을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15분 안에 다 못 먹으면 실격.”
시라노는 과연 눈치가 빨랐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 15분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젓가락을 들었다.
그가 성급하게 노란 개불을 입에 내던졌다.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