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26)
괴식식당-226화(226/613)
226화. 소통 (1)
유승우는 리비에게 1주일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어째서 시라노가 그 시간 동안 귀환자에게 검술 교육을 받을까?
답은 뻔하다.
‘나를 막기 위해서겠죠.’
벼락치기 1주일로 강해져 봤자 얼마나 강해질까.
변한다고 해봤자 팔이 하나 더 생기길 하겠나, 레벨의 앞자리가 변하길 하겠나.
괄목상대라는 말이 있긴 해도 인간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가르치는 교사가 하필이면 그 유승우다.
그의 검술 훈련을 받으면 정말로 1주일 만에 뭔가 변할 수도 있다.
원래부터 괜찮은 검사였던 시라노가 유승우의 가르침을 받아서 리비와 비슷한 격을 가지게 된다면?
허무맹랑한 일이지만 불가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시라노는 그 확률에 걸고 귀환자 밑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거겠지.
‘건방지지만 나쁘지 않아요.’
베이스캠프에 오기 전까지 리비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의 조언대로 어른스럽게 아량을 베풀어 시라노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어쩌면 놈과 마주치자마자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 면상에 주먹을 처박을지도 모른다.
시라노가 리비를 빡치게 한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빡쳐서 싸워 봤자 주먹질이었다.
시라노의 실력은 분명 일류지만, 리비가 상대라면 서로 맨주먹으로 싸워야 겨우 비등한 정도.
전력으로 싸운다면 시라노가 죽을 거라는 걸 두 사람 다 알기 때문에 오히려 드잡이질에서 멈춰 왔던 아슬아슬한 균형!
하지만 지금, 만약 시라노가 귀환자 유승우의 검술을 배워 격을 올린 상태라면.
그래서 건방지게 진심으로 싸움을 걸어온다면.
이번에야말로 죽여도 괜찮은 거 아닐까?
‘그럼 혁진 씨도 저한테 뭐라고 못 하겠죠!’
[강해져서 덤벼드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하, 시라노 씨도 정말이지.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었군그래.]‘이거예요, 이거.’
응, 좋다.
완벽하다.
‘그러니까 일단 상황을 보러 왔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완벽한 각도의 원산폭격이다.
저것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땅을 밀어내는 듯한 머리의 힘.
태산처럼 높게 솟아오른 엉덩이.
다가가면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 뻗은 다리.
하루 이틀 원산폭격을 해서는 나올 수 없는 자세다.
‘이 녀석, 스킬에 원산폭격이라도 있나?’
지켜보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그의 자세는 완벽했다.
신기한 나머지 영식이가 달려가서 미끄럼을 타도 그의 균형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으니 과연 태산 같았다.
“어, 음.”
리비의 머리가 깔끔하게 표백됐다.
좀 전까지 생각하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은근슬쩍 백강혁이라는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 리비가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사이.
백강혁이 머리를 처박은 채 당당하게 말했다.
“영식이에게 듣기에 좋지 않은, 저속하며 무례하고 또한 불쾌감이 들 수 있는 단어를 가르친 것은 분명히 제가 맞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아, 맞아.
파란 슬라임이 버릇없는 소리를 해서 그 원인을 제거하려고 했었지.
리비가 다급하게 정신 줄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이야기다.
저놈이 문제니까 저놈을 죽이면 된다.
“아, 그래요. 유언은 있어요?”
“예! 하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량을 베풀어서 하찮은 저의 변명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는 들어줄 수 있죠. 해봐요.”
백강혁이 힐끔, 뒤쪽에서 심호흡 중인 시라노를 봤다.
리비 또한 자연스럽게 시라노를 보게 됐다.
바로 백강혁이 소리쳤다.
“모든 것은 시라노 사령관님 때문입니다.”
“!”
“그 저속하면서도 무례하고 불쾌감이 드는 세 글자의 단어를 입에 붙이고 사시는 탓에 영식이가 그 단어의 뜻을 궁금해하였고, 저는 그것을 귀엽게 포장하여 영식이에게 가르쳐 준 겁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전 죄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죄다 시라노 사령관님이 소울이터 님에게 아주 추잡하면서 사사롭고, 형평성에 어긋난 시기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생긴 일이옵니다!”
빛보다 빠른 배신-!
시라노가 기가 막혀서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 얼마 전까지는 형이라고 부르겠다며 딸랑거리던 놈이 바로 나를 팔아?!”
백강혁이 헹- 하고 콧방귀를 꼈다.
“아, 그때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사령관님이 그랬잖습니까! 싫다고, 절대 하지 말라고요! 막 정색하면서 팔꿈치로 밀고 면박 주고 그랬잖아요!”
의외로 팩트였다.
백강혁이 훅훅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원산폭격 중이라 머리에 피가 몰린 탓이다.
“저랑 지금 밀당합니까?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했더니 이번에는 또 뭡니까? 그래서 형이라고 부르라는 겁니까, 말란 겁니까! 사람이 아무리 권력자라고 해도 같은 사람 가지고 장난하는 거 아닙니다!”
“이 짜식이-! 뚫린 게 입이라고!”
발끈한 시라노가 달려들었다.
상황은 엉망이었다.
“악! 사령관이 사람 패네!”
“맞을 짓을 하니까 맞지!”
“난 뭐 반격 못 할 줄 알아!”
“아니, 이놈이 하극상을!?”
전군 총사령관과 퍼스트 오더 91위가 흙 밭에서 뒹굴고 있다.
저러고도 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전략가인가?
그냥 옆집 사는 잘생겼지만 머리가 조금 모자란 아저씨 같은데?
소름이 돋는다.
백강혁이란 남자는 대체 무엇인가!
‘시라노 씨 정도 되는 사람을 저렇게 하찮게 만들 수 있다니, 무슨 능력자일까요?’
연관된 사람의 지능을 떨구는 이능력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게 또 자주 있었던 일인지, 슬라임은 태평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고 승우는 한심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윤은형은 폰을 꺼내 촬영 중이다.
리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아.’
여기 올 때까지 생각했던 선택지들은 싹 날아갔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에 리비가 선택한 것은 환상의 히든 선택지.
저 바보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으니 빠진다- 였다.
* * *
싸움이 진정됐다.
백강혁은 그대로 헌병대에 의해서 영창에 끌려갔다.
죄명은 하극상이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잡혀가는 백강혁을 뒤로하고 유승우가 말했다.
“자, 이제 모두 자리에 앉자.”
“예.”
“음.”
일사불란하게 식당 의자에 앉는 모두의 표정이 미묘했다.
좀 전까지 난리를 치면서 흙 밭을 구르던 시라노는 뒤늦게 찾아온 부끄러움에 시선을 창밖으로 둔 채 입을 꾸욱 다물었다.
윤은형은 아까 찍은 영상을 어떻게 편집해서 올려야 구독자가 늘까~ 따위의 말을 하며 시라노의 속을 긁다가 폰을 압수당하고 나서는 저기압인 상태였고.
영식이는 리비의 머리 위가 마음에 들었는지 거기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으며.
리비는 그런 영식이를 내버려 둔 채 살짝 표정을 굳히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반적으로 어수선하면서도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승우만은 침착했다.
실로 초인적인 침착함과 냉정함!
시라노가 감탄하며 물었다.
“당신은 어째 이런 상황이 익숙해 보이는군.”
“백강혁이랑 같이 있다 보면 이런 상황은 흔합니다. 평소라면 민이 교통정리를 잘해줘서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없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하지만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승우가 깔끔하게 분위기를 정리했다.
“일단 내가 요리를 할 테니, 자세한 이야기는 먹으면서 하자고.”
대답은 없었다.
시라노와 리비는 속으로 짜증과 울화를 삭이면서 서로의 존재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었다.
승우는 이럴 때 제격인 요리를 알고 있다.
만드는 법도 어렵지 않다.
승우가 인벤토리에서 한 열매를 꺼냈다.
테라에서 가져온 콰다- 라는 이름의 과일이다.
겉모습은 키위와 비슷했지만 속은 계란과 비슷했다.
껍질을 깨면 안에서 내용물이 나온다.
“…….”
“…….”
신기한 과일, 콰다 때문일까.
호기심 어린 시선이 하나 둘 힐끔힐끔 승우를 쳐다본다.
그 시선을 느끼며 승우가 슬쩍 매우 큰 사발을 꺼냈다.
사발 안으로 수십 개의 콰다의 내용물이 쏟아졌다.
그러고는 내용물을 섞는데 마치 노른자와 흰자가 섞인 계란 물처럼 되어 갔다.
손을 부지런히 놀리면서 승우가 말했다.
“옛날에 한 왕이 있었다. 그 왕은 매우 착한 사람이었어.”
“착한 왕 좋아뿌.”
“하지만 왕의 인생은 매우 불행했지.”
“뿌?”
기간토마키아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전쟁병기와도 같은 이들이었기에 테라의 왕들은 대부분 불행했다.
신들의 자식인 경우는 신들의 자식이기에 불행했고, 신들의 자식이 아닌 자는 아니기에 불행했다.
하지만 승우가 말하는 왕은 조금 다른 이유로 불행했다.
“첫째 왕자를 차기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는데, 그 때문에 두 왕자가 서로 싸우다 죽었거든.”
두 명의 아들은 서로를 증오하여 결투를 하다가 서로 찔러 둘 다 죽었다.
평범하게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을 뿐인데, 두 아들을 모두 잃게 된 것이다.
왕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동생이 왕이 되고 싶어서 형을 찌른 거야?”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 형제의 경우에는 소통의 단절로 일어난 비극이었던 게 더 커.”
첫째 왕자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세상을 떠도는 방랑 기사를 동경했고, 하기도 싫은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억지로 하느라 성과가 좋지 못했다.
둘째 왕자는 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형의 존재 때문에 일부러 제왕학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밖을 나돌며 살았다.
“둘 다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고, 왕은 아무것도 모르고 첫째 왕자를 차기 왕위 계승자로 지명했다는 거야.”
책임감에 짓눌려 살아온 첫째는 자유로운 동생이 미웠고, 왕위에 대한 욕심을 참아온 둘째는 무능한 형이 미웠다.
마침내 첫째 왕자가 차기 왕위 계승자로 선포된 날.
두 사람의 사소한 다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죽어가는 두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왕비는 슬픔에 못 이겨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윤은형이 흥 하고 비웃었다.
“바보들 아냐? 그러면 그렇다고 서로 찔러 죽이기 전에 말을 했으면 되잖아.”
“맞아.”
승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뜨겁게 데운 미노타우르스의 우유를 잘 섞은 콰다에 부었다.
그러자 김이 피어오르며 콰다가 익어서 몽글몽글하고 푸르게 변했다.
곁눈질로 보던 시라노는 그것이 색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지만 커스터드 크림을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는 걸 티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종류의 사람인지라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커스터드 크림?”
“맞습니다.”
“색이 다른데.”
“이세계 요리니까요. 색소가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요리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커스터드 크림을 단 20초 만에 만들어 내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겠지.
시라노가 감탄하는 사이 승우는 갓 만든 따끈한 커스터드 크림을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는 그 위에 새하얀 가루를 솔솔 뿌렸다.
“그건 뭔가?”
“음, 그건 비밀입니다.”
“마약 같은 건 아니겠지?”
“설마요. 설탕이랑 비슷한 겁니다. 이렇게 쓰는 거죠.”
커스터드 크림 위에 가루를 다 뿌린 승우가 살짝 손가락을 튕겼다.
마력의 불꽃이 피어올라 가루를 녹였다.
파란 커스터드 크림 위에 뿌려진 가루가 노랗게 변하며 막을 형성한다.
시라노가 탄성을 내질렀다.
“오. 크렘브륄레!”
“맞습니다.”
크렘브륄레는 커스터드 크림에 설탕을 뿌리고 토치로 녹여 만드는 디저트다.
재료가 달라서 색이 달랐을 뿐, 요리법은 완전히 정통파의 방식 그대로였다.
막 설탕을 녹여서 그런지 냄새가 굉장했다.
프랑스, 고국의 디저트니까 시라노가 좋아하는 것도 당연지사.
단 걸 좋아하는 리비도 눈을 빛냈다.
윤은형은 별 생각이 없는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서 그 왕 이야기는 뭔 뜻인데?”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맞아뿌.”
영식이는 능숙하게 쟁반을 들고 완성된 크렘브륄레를 올렸다.
그러고는 재빨리 모두에게 서빙을 했다.
다들 스푼을 들고 한 입을 먹었다.
맛은 기대와는 달랐다.
엄청나게 달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콤하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외견에서는 나오면 안 되는 맛이었다.
달디 단 커스터드 크림과 더 단 설탕의 맛이 나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크랜베리 파이 같은 맛이다.
시큼하고 약간의 단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쁜 맛은 아니라서 다들 입맛을 다셔가면서 한 입, 두 입 계속 먹었다.
그걸 확인하고서 승우가 말을 이었다.
“가족을 모두 잃은 왕은 실의에 빠졌지. 뭐가 문제였을까. 왜 내 가족은 죽었어야 할까. 생각하자 답은 금방 나왔지. 평소에 이야기를 안 하고 살아서 그런 거였어.”
“그렇겠지.”
첫째 아들이 왕이 되기 싫다고 말했다면!
둘째 아들이 왕이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평소에 왕과 왕비가 아들과 속을 터놓고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신에게 빌었어. 인간은 모두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솔직하게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말이야. 그리고 신은 그 말을 듣고 친히 비법을 전수해 줬어. 마법의 하얀 가루를 쓰는 비법이었지.”
“마법의.”
“하얀…….”
“가루요?”
“뿌?”
불길한 예감이 든다.
리비와 시라노의 스푼이 멈췄다.
그들은 자신이 먹던 디저트 그릇을 내려다봤다.
거의 다 먹었는데.
“혹시 아까 그 하얀 가루가?”
“응. 그게 그거야.”
마법의 하얀 가루는 이후 이렇게 불리게 된다.
“신의 자백제.”
먹으면 본심이 생각한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오는 최강의 자백제.
리비와 시라노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