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3)
괴식식당-23화(23/613)
023화. 공방 (2)
에고 아이템은 자아가 있는 모든 아이템을 말한다.
장비가 따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사용자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떤 에고 아이템은 마법을 쓰기도 하고…….
그중 연식이 좀 된 녀석들은 주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경우도 있다.
노숙을 할 때는 주인 대신 불침번을 서주기도 하고, 심지어 성장도 한다.
그러니 이러한 아이템은 부르는 게 값인지라, 천정부지의 고가를 자랑했다.
그럼 엘프의 장비는?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엘프의 장비는 에고 아이템의 일종이다.
마법을 쓰거나 특수 능력을 쓸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뿐이지.
엘프가 만든 것은 대부분 미약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 자아가 바로, 장비가 주인을 고른다는 이상 사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알리스터의 아이들은 모두가 다 콧대가 높다.
그녀의 실력이 뛰어난 만큼, 전박적인 자아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진 만큼 ‘이렇게 잘 만들어진 나를 쓰려면 주인도 잘나야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주인을 가린다.
그녀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 명의 주인도 선택하지 않았다.
모두가 다 눈에 차지 않는다는 시위인 동시에 알리스터가 장인으로서 자부심이 넘치는 이유기도 했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장비라는 건 그만큼 장인의 실력이 높다는 증명이기도 했기에!
오늘 이때까지 알리스터의 콧대는 매일매일 최고가를 갱신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런 알리스터의 아이들 눈에 유승우는 어떻게 보였을까?
“얘, 얘들아?!”
알리스터의 비명과 동시에 진열장에 놓인 장비들이 자기 어필을 시작했다.
검의 장식용 보석 부분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의 빛이 내뿜어지는가 하면, 들썩거리면서 진열장을 부술 듯이 날뛰는 방패도 있었다.
성질 급한 망치는 이미 유리창을 부수고 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마치 ‘나 이렇게 강하니까 당장 들고 가줘요!’ 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유승우의 시선을 가장 끈 건 쌍권총이었다.
불이 날 정도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피젯 스피너도 아닌데 잘도 도는군.”
“저건 권총이다! 내 필생의 역작을 장난감 취급하지 마! 아, 아무튼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말했잖아. 사고 칠 거 같다고.”
승우는 난처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잘 생각해 보니 이 사달이 난 건 이번이 7번째가 맞는 것 같다.
엘프들은 꼭 이랬다.
무기가 선택을 안 하는 게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꼭 주인을 고르지 않은 작품을 보여주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처음 승우가 엘프 공방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엘프 장인은 어느 엘프가 그러하듯 자랑삼아 자신의 걸작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걸작은 엘프 장인이 ‘만져 볼래?’라고 권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우의 손에 달라붙었다.
결국 공방의 주인인 엘프 장인은 울었고, 그 엘프의 경쟁자였던 다른 엘프는 비웃었다.
[걸작도 별거 없구만! 네놈이 그렇지!] [이익! 너라고 다를 줄 알아?!]정말 다를 게 없었다.
비웃었던 장인이 두 번째 피해자가 됐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승우를 공방으로 안내했고, 5초 후에 최고 걸작을 잃었다.
이게 세 번이 되고 네 번이 됐다.
승우의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서 아이템의 구애는 더 격렬해졌다.
다섯 번째부터는 공방에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아이템이 뛰쳐나올 정도였다.
이쯤 되니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엘프 장인들도 눈치를 챘다.
이 유승우란 용사는 엘프 아이템 킬러라고!
“이, 이런 바람둥이가 정말 좋다는 말이냐!? 얘들아! 다시 봐봐! 이 남자는 아냐!?”
“바람둥이…….”
알리스터가 황망하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아이들을 봤다.
아이들은 여전히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승우에게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의심할 것 없다.
이 아이들은 이미 승우를 주인으로 인정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난 안 들어간다고 했었어.”
“바, 바람둥이 같으니… 하나도 아니고 88개 전부를 꼬시다니…….”
“꼬신다는 말 좀 하지 말아줄래? 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승우가 진저리 난다는 듯 정색했다.
하여간 이 엘프 장인이라는 것들은…….
자기가 만든 작품을 아이라고 부르는데, 취급도 정말 자신이 낳은 아이처럼 다뤘다.
그러니까 자기가 만든 아이가 주인을 선택했을 때는 축하연까지 열어줄 정도다.
자식을 시집보내는 부모와도 같은 마음이라나?
알리스터가 눈시울을 붉혔다.
“너는… 너는 엘프의 마음을 모른다!”
“딱 7번째 들어보는 말이군.”
“한 남자에게 88명의 아이를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기분을 알겠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확실하게 말해봐라. 이런 적이 또 있었다고? 그럼 지금 네가 가진 엘프 장비는 몇 개지?”
“어디보자…….”
그러니까 처음에 사고 쳤을 때는 검과 방패 한 세트였고, 두 번째는 창 한 자루.
이 둘은 한 번 당하자마자 공방의 문을 걸어 잠가서 큰 피해가 없었지.
세 번째는 백년에 하나 만들까 말까 하는 장인이라 6개였던가?
하지만 네 번째부터는 공방을 통째로 털었던지라 정말 많았었지.
승우가 손을 꼽으면서 백 개, 이백 개, 삼백 개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걸 듣는 알리스터는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략 오백 개쯤 될 거 같은데.”
“오백……?”
500개의 엘프 장비를 가진 자에게 지금 자신의 어여쁜 88명의 아이가 간단 말인가?
저 남자는 지금 그 어떠한 엘프의 장비도 착용하고 있지 않다.
오백의 엘프 아이템을 거느린 주제에, 평소에는 아무것도 안 들고 다니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럼 취급도 뻔하지?!’
창고에 들어가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평생을 빛도 못 보고 처박혀 있게 될 거다.
피를 토하는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만든 아이들이!
창고에!
평생!
영원토록!
“으, 으어어어어…….”
엄청난 충격을 받은 알리스터는,
“꿱.”
오리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정신을 잃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승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쯧, 이걸 어쩐다.”
알리스터가 충격을 받은 건 받은 거고, 그녀의 아이들이 승우를 선택한 건 선택한 거다.
승우는 사고를 쳤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녀의 아이들은 슬금슬금 승우에게 기어오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 엘프의 예법은 어떠한가 하면.
“무조건 장비의 결정을 존중해 주는 거지.”
그러니까 다 가져가도 무죄다.
심지어 값도 제작을 의뢰한 쪽에게 다 받았기 때문에 무료다.
“후, 내가 평소에 요리한 생선보다는 회를 좋아한다만… 너무 날로 먹는 건 정신 건강에 안 좋은데.”
승우는 자신을 보며 보석과 몸을 빛내는 아이들을 슬쩍 봤다.
어쩌겠어?
자기들이 좋다는데?
“수준은…….”
‘불타는 검’은 화염의 정령석과 마석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성능이 나쁘지 않았다.
일단 불은 대상의 세포를 지져 재생을 막는 능력이 기본이고, 얼음 속성에 대해서 높은 내성을 보장해 준다.
망치는 단순하게 근력 증강과 타격 증폭이 부여된 무기다.
심플 이즈 베스트.
간단할수록 강한 법, 확실히 좋은 무기다.
다른 무기도 수준이 대단히 뛰어났다.
특히 쌍권총이 대단했다.
‘권총을 이해하고 만드는 엘프 장인이라니, 진짜 대단하네.’
검과 갑옷을 만들던 장인이 2년 만에 총기를 만들었다.
총기는 구조나 제작 방식이 검과 갑옷과는 아예 다르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만들다니 어지간히 공부해서 만든 게 아니겠지.
실제로도 이 쌍권총 ‘쌍룡강탄’은 알리스터의 최고 역작이었다.
그녀가 이 권총에 부은 열정과 시간은 다른 작품의 10배가 넘는다.
무려 1년 동안 만든 거니까 말이다.
‘전반적으로 80레벨쯤 되는 사람이 쓰면 좋겠군.’
퍼스트 오더인 백강혁이 대략 20~30레벨로 보였으니, 퍼스트 오더도 눈에 안 찰 만하지.
상위 랭커를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대략 레벨 6~80쯤 하지 않을까?
지구 기준으로 보건대 최상위 0.0001%에 해당하는 장비다.
‘그렇다고 내가 쓸 정도는 아니지만.’
대단하다고 해도 승우가 보기에는 영 수준 미달이긴 했다.
그가 쓰는 무기는 정말로 특별한 것들뿐이다.
드래곤이 오천 년 동안 벼린 용검.
뱀파이어 로드가 만 년 동안 응어리진 분노를 담아서 만든 마검.
신이 직접 하사한 성검과 비교하면 엘프 장인의 장비는 한참 뒤떨어지는 물건이다.
승우는 팔짱을 끼고 장비들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책임은 지고 거둬는 주마. 하지만 너희들에게 어울리는 주인을 찾으면 바로바로 분양해 줄 거야. 동의하면 줄 서라.”
알리스터의 아이들이 빠릿빠릿하게 줄지어 섰다.
승우는 인벤토리를 개방해서 녀석들을 차곡차곡 넣었다.
그렇게 마구 쓸어 담는 중이었다.
한 아이가 어째선지 승우가 아니라, 승우의 뒤를 보고 있었다.
“나 말고, 내 뒤라고?”
푸른 건틀릿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승우는 녀석의 몸짓을 이해하고 얼굴을 폈다.
세상에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
나를 차?
승우는 살짝 기뻐하며 나비에게 손짓을 했다.
“나비야. 이쪽에 와 봐.”
“냥? 무슨 일이냥?”
“이 아이가 널 찾는데?”
“냥?!”
나비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건틀릿이 빛을 번쩍였다.
잡아달라는 의미였다.
나비는 홀린 듯이 건틀릿을 잡아들었다.
그러자 녀석은 몸을 부르르르 떨었다.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냐아?!”
“너를 주인으로 인정한 거야. 대단한데?”
용사 유승우를 두고도 나비를 고르다니.
어지간히 자기 소신이 뚜렷한 녀석인 것이다.
승우는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비는 기쁘다는 듯이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눈을 빛냈다.
“이제 냐도 무기가 있다냐!”
건틀릿은 나비가 착용하자, 찰싹 달라붙어서 그 크기를 바꿨다.
나비가 얍얍 하면서 주먹을 뻗었다.
승우는 슬며시 폰을 꺼내, 그런 나비의 모습을 찍었다.
* * *
정신을 차린 알리스터가 망치를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승우를 후려치고 싶지만, 장인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땅-땅 하고 울분과 설움을 담아서 금속을 내리쳤다.
“내 자식들을 보쌈 당한 와중에 네놈이 쓸 식칼도 만들어야 하다니, 죽고 싶다.”
“너무 그러지 마. 이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큭… 네놈은 앞으로 내 공방에 출입 금지다.”
아무것도 없는 공방이니 갈 생각도 없다.
“그래. 얼마나 남았어?”
“이제 끝나간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칼을 내밀었다.
승우가 주문한 대로 중화식도였다.
“정말 실력이 좋구나……?”
“다른 아이도 아니고, 1시간 만에 뚝딱 만든 식칼로 알아주다니… 복잡한 기분이군.”
80렙 정도가 쓰기 좋은 고급 아이템보다도, 이 중화식도 쪽이 승우에게는 가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신이나 고위 마족, 용이 식칼을 만들겠는가?
이 식칼은 지금까지 써온 공장제 칼이나 요리용보단 당연히 뛰어나고, 사이즈가 적당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써온 미스릴 나이프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칼이었다.
달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푸르스름한 중화식도에는 알리스터의 서명이 박혀 있었다.
장인이 서명을 새겼다는 건 아이를 인지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봐도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할 때 새기는 것이다.
알리스터는 1시간 만에 이런 칼을 뚝딱 만들 수 있는 건 역시 자신밖에 없다고 여기며 어깨를 폈다.
승우가 봐도 그러했다.
써본 중화식도 중에는 확실히 비교할 만한 것이 없었다.
무게 중심도 좋고 베는 맛도 좋다.
그러면서 튼튼하다.
요리용 칼로는 과분할 정도다.
“좋아.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이 아이는 내가 확실히 잘 써주지.”
“다른 아이들도 잘 써라!”
“네 아이들과 합의는 다 했다. 적당한 주인이 나오면 보낼 거야.”
알리스터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다가 납득했는지, 망치를 내려놓았다.
“창고에서 썩는 것보다는 낫지. 알았다.”
“납득했다니 다행이군.”
“하지만 적당한 주인이 과연 나올까? 지난 2년간 하나도 못 보냈는데…….”
2년간 한 명도 없었는데, 갑자기 나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일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다 방법이 있어.”
승우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 * *
다음 날.
승우의 가게 앞에 귀여운 알림판이 세워졌다.
그리고 그 알림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도전! 극악 요리!] [제한 시간 내에 완식 성공 시 ISAC 공식 인증 명장의 장비를 드립니다.] [주의, 헌터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후일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괴식 챌린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