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45)
괴식식당-245화(245/613)
245화. 크라이 워몽거 (3)
지오그란트는 증기와 열의 문명이다.
행성의 절반을 이루는 물과 이상할 정도로 뜨거운 지열이 그런 문명을 만들었다.
말하자면 스팀펑크라고 할 수 있겠지.
지오그란트 스팀펑크 문명의 핵이자 심장은 핵반응 지열가속기, 축열로다.
축열로는 높이 5㎞, 행성에 공급되는 증기 에너지의 45%를 생산한다.
이것이 없다면 지오그란트의 문명은 유지될 수가 없다.
그런 축열로가 무너지고 있었다.
“…….”
승우는 발밑의 도시를 내려다봤다.
황동과 증기기관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 아마도 이곳이 수도이리라.
열풍이 불어온다.
증기기관이 폭주하고 있다.
사방팔방으로 증기를 뿌린다.
냉각수가 유출되고, 열을 식히지 못하니 증기기관에는 곧 불이 붙는다.
한 번 터진 재해는 막을 도리가 없다.
메마른 산에 화마가 덮치듯, 불이 빠르게 번진다.
도시 하나를 덮는 것도 순간이다.
한복판에 세워진 5㎞짜리 거대 건축물, 축열로가 붕괴하면서 폭발이 시작됐다.
그런 난리 속에서 지오그란트의 주민, 마치 닭처럼 생긴 이들이 혼비백산하여 사방팔방으로 뛰어간다.
황동의 보호구를 입은 이들이 서둘러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하려 한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그런 그들의 시선이 모두 다 축열로의 맞은편, 커다란 건축물을 향해 있다.
누군가는 걱정을 담아서.
누군가는 원망을 담아서 본다.
어째서 저 건물을 보는지는 이해하기 쉬웠다.
“저곳이 황궁인가.”
위대한 자, 가장 고귀한 자가 머무는 곳은 제일 크고 화려하다.
어느 세계를 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분명 황궁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황궁의 근처는 다른 곳보다 크게 손상되어 있다.
관찰력이 조금 더 좋다면 그 파괴가 안쪽에서부터 시작됐음을 알 것이다.
승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파괴의 형태를 보고 누구의 소행인지 알았다.
“크라이?”
익숙한 친구의 권경(拳勁)이다.
잘못 볼 리 없다.
“어째서?”
모든 장사가 그러하듯, 최우선으로 생각할 것은 이득이고 그 다음은 신뢰다.
신뢰가 없다면 이득도 없으니 엄밀히 말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신뢰다.
차원용병을 업으로 하는 임페리얼 오크에게 신뢰가 중요함은 당연한 일인데 고용주를 공격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겠지.”
황궁을 향해 날았다.
다가갈수록 크라이가 느껴진다.
부서진 건물의 틈새로 내부가 보인다.
불타는 양탄자, 녹아내린 샹들리에, 무너진 벽.
바닥에 흩뿌려져서 끓고 있는 피.
죽은 원주민의 시체.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옥좌.
그리고 그곳에 앉아서 기다리는 친구.
승우가 싱긋 웃으면서 술병을 흔들었다.
“한잔할 여유는 있어?”
여전한 넉살에, 크라이는 그만 헛웃음을 내뱉었다.
술잔이 날아왔다.
크라이는 그걸 받아서 목을 축였다.
“벌꿀술?”
“넥타르를 희석한 술이야.”
“술 주제에 달다니, 웃기는군.”
“하지만 맛있지?”
“나쁘진 않아.”
옥좌의 옆, 아마도 왕비가 앉았을 자리에 승우가 앉았다.
힐끔 주변을 보니 지오그란트의 군사들이 보인다.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둘은 태연했다.
무엇도 둘을 방해할 수 없다.
그런 태도였다.
“지오그란트의 왕이 죽었다. 시구르드라는 이름이다.”
명성에 비해서 별로 강하진 않았다, 라고 크라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머리는 조금 썼지만, 힘은 정말 하찮았지.”
“흐음? 머리를 쓴다고?”
“그래. 너희는 함정에 빠진 상황이었다. 차원전쟁에서는 종종 사용되는 편법인데, 혹 차원 레벨을 알고 있나?”
“알지.”
모든 차원에는 격, 레벨이 있다.
차원법에 따르면 이 레벨을 기준으로 너무 차이 나는 차원끼리는 연결될 수가 없다.
상위 차원이 하위 차원을 압도적으로 짓밟고 식민지를 만드는 일을 방지하는 법이다.
승우가 혀를 찼다.
“아, 대강은 이해하겠네. 명분을 사용한 허용치 늘리기군.”
“그렇다.”
명분이 있다면 차원 레벨의 차이로 인한 진입 장벽을 일시적으로 없앨 수 있다.
지구가 다른 차원에 방사능폐기물을 투척한 것도 그렇고, 이 니드호그라는 신급 아티팩트의 강탈도 그렇다.
“일부러 강탈당해 준 거구나. 지구로 가는 게이트를 열려고, 굳이 지구 출신 귀환자를 찾아서 말이야.”
니드호그를 지구 출신의 귀환자에게 맡긴다.
그리고 녀석이 니드호그라는 창조설화에 엮인 신급 아티팩트를 훔쳐서 지구로 돌아가게끔 꼬드긴다.
그렇게 되면 지구로 가는 게이트를 열 수 있게 된다.
“그럭저럭 흔한 꾀지.”
“하지만 효과적이긴 하네.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을 고른 거니, 막을 방법이 없구나.”
“그래.”
“녀석은 왜 그런 일을? 정말로 소문처럼 검의 신명이 가지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맞다. 하찮은 닭 주제에 검의 신이 되고 싶었다더군.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어. 나를 고용해서 싸우게 할 정도로 정보에도 밝았으니까.”
둘 다 살짝 술잔을 기울였다.
달짝지근한 벌꿀주가 목을 축였다.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하지만 아직 남은 의문은 있다.
“시구르드의 꾀는 알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시구르드를 죽일 이유는 없잖아.”
“살려둘 이유도 없지.”
“…….”
승우는 말없이 그를 지켜봤다.
“변했구나.”
커다란 어금니 두 개 중에 하나가 부러졌고, 남은 하나는 그 부러진 어금니만큼 더 커졌다.
피부는 조금 더 회색에 가까워졌으며 덩치는 1.5배는 더 커졌다.
이제는 승우보다 한참 더 크다.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즐비하다.
그러나 그런 육체적인 변화는 정신의 변화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정정당당, 명분을 중요시하고 누구보다 정의를 따지던 그다.
살려둘 이유가 없어서 죽였다?
“헤어진 지 1년이 안 됐을 텐데 너무 변했군.”
“1년? 그렇군. 너의 시간은 아직 1년이었는가.”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는 말은 변한 지 오래다.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크라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에게는 수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수천 년?”
“천 년이 넘을 때부터는 세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가 없군.”
만신전에 등록하지 않아 차원법에도 묶이지 않은 차원은 많고도 많았다.
그런 차원의 시간은 제멋대로라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다.
크라이는 시간의 흐름이 느린 차원을 골라, 오랜 시간 전쟁을 해왔다.
무엇을 위해 그 긴 시간을 보냈는가.
왜?
벌꿀주를 마셨는데도 입맛이 쓰다.
“변할 수밖에 없겠군.”
“변할 수밖에 없지. 내가 왜 변했는지는 알겠나?”
“모를 수도 없지.”
임페리얼 오크는 강자와의 싸움을 원한다.
크라이는 임페리얼 오크다.
유승우는 강자다.
크라이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싸우자.”
많은 것이 변했지만, 단도직입적인 것은 안 변했네.
승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와 싸워본 횟수가 883번인가?”
“그래. 883전 0승 883패.”
“그래도 싸우고 싶어?”
883전 0승 883패, 비참한 기록이다.
신이 되기 전에 승우와도 질릴 만큼 싸웠다.
이기지 못했다.
신이 된 후에도 이기지 못했다.
녀석이 두 개의 신명을 얻는 날부터는 진심으로 대적하기를 포기했다.
초마왕을 쓰러트리고 두 번째 신명을 얻은 후.
녀석은 어느샌가 세 번째 신명을 얻었다.
승우는 늘 그랬다.
늘 한 발자국씩 앞서 나아갔다.
크라이와 테오도르, 레나토도 계속해서 성장했지만 승우보다는 항상 뒤처진 상태였다.
출발점이 달라서?
아니다. 출발점은 오히려 이 중에서 승우가 가장 뒤였다.
크라이는 어렸지만 임페리얼 오크의 전사였기에 시작 레벨이 이미 30이 넘었다.
엘프였던 테오도르도 마찬가지고, 레나토는 레벨은 낮았으나 신성마법을 이미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테라에 와서 처음으로 검을 잡아본 도덕교사보다는 한참 앞서서 걸었었다.
하지만 그는 날아갔다.
다른 사람의 노력 따위, 그의 눈으로 보면 기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겠지.
검을 처음으로 잡아봤다는 청년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이길 수가 없다.
임페리얼 오크인 크라이에게는 그것이 한이었다.
친구지만, 동료지만,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옆에 있다.
그런 사람을 옆에 두고 강자를 찾는다니 어리석은 일이다.
수천 년간 전쟁터를 누비고 수많은 승리를 쟁취했지만 마음의 허기가 가라앉지를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하나.
유승우에게 이긴다.
1승. 한 번의 승리.
모든 것과 바꿔서도 얻고 싶은 승리의 쾌감.
원하는 것은 그뿐이다.
여태까지 883전 전패의 비참한 기록.
그래도 싸우고 싶냐고?
크라이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물론이지. 나는 그걸 위해 살아왔다.”
옥좌가 부서졌다.
그걸 신호로 지오그란트의 군대가 홍수처럼 밀려왔다.
크라이의 손에 색이 다른 두 개의 건틀릿이 끼워졌고, 승우의 손에 검이 쥐어졌다.
그리고 둘의 무기가 서로를 향했다.
* * *
비지땀을 흘려가며 안톤이 말했다.
“사령관님, 어째서 유승우 씨를 그곳에 보낸 겁니까.”
“왜? 뭐가 이상해?”
“이상하고말고요. 그 사람은 핀치히터, 보험 역으로 고용했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핀치히터를 적의 심장부에 떨궈요? 핀치도 아닌데? 그리고 그걸 그 사람이 들어줘요? 그 까다로운 사람이 순순히 들어주다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시라노가 휘파람을 불었다.
“안톤 주제에 제법 예리한 질문인데.”
“안톤 주제에라니,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바쁜 와중에 그런 거나 묻다니 이 몽총이가아~! 하고 면박을 안 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지휘통제실은 전쟁터였다.
지금은 전방위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싸우고 있는 25명의 퍼스트 오더와 수천 명의 병사에게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송해 주며 지휘하고 있는데 전쟁터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한가롭게 질문이라니, 안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멍청하긴 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돼서 그렇습니다.”
“좋아. 우리 궁금증이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안톤 군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도록 하지. 이제 에메랄드 레이븐즈로 갈 녀석이니까,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가서 캬- 시라노 사령관이 키운 인재라서 역시 특별하구나- 하고 존만이가 감탄하게 해달라고.”
“예예. 사설은 그만하시고 제발…….”
“별 거 아냐. 작전의 흐름을 보면 이건 미친 짓이거든.”
“예?”
“기습이 왜 기습이지?”
이번엔 전략론인가. 아주 사람을 바보로 보는군.
안톤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대꾸했다.
“적이 모르게 먼저 때리니까 기습이죠.”
“그래. 그럼 적이 알고 때리면?”
“그냥 공격이죠.”
“그럼 적의 기지를 그냥 때리면?”
“공성전이죠……?”
“그래. 그거야. 지금의 우리 전황은 공성전이라고. 공성전은 뭐다?”
“수비가 유리하죠.”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무지하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다급하게 흩어진 전력을 모으고 있는 중인데도 백중세다.
장기전으로 가면 무조건 이긴다.
방어를 위해서 방어기지를 꾸려놓은 곳이니까 방어할 때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이치.
본래 공성전이라는 것은 수성 중인 상대에 비해서 전력이 5배는 강해야 해볼 법하다.
“그런데 적은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을까.”
“기습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겠죠.”
“그건 아냐. 왜냐면 우리도 그 능력의 한계를 모르는 사랑스러운 귀환자님의 친구가 적의 대장이거든. 그 대장이 귀환자님의 능력을 모를까?”
“여기에 있는 걸 몰랐다든지…….”
“저 사람이 여기를 얼마나 쏘다녔는데, 모르겠냐. 기지 위치를 알아낼 정도면 당연히 저 사람의 존재도 아는 거지.”
“…그럼 되게 이야기가 이상해지는데요.”
안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그럼 적의 대장은 기습을 예측 당할 걸 알고, 기습이 실패해서 공성전이 될 걸 알고 보냈다는 겁니까?”
“그렇지.”
“그런데 적의 공성병기나 대책은 보이지 않는데요?”
“그렇지. 그럼 답은?”
“지휘관이 전쟁전문가치고는 엄청 무능하거나…….”
전쟁에서 지고 싶었거나?
자신이 없어서 소심하게 중얼거린 목소리에 시라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지, 그거야. 그게 정답이야.”
“어째서 그런 짓을?”
“뭐야, 너 내 옆에서 이야기 다 들었잖아.”
“뭐, 뭘 들었었죠?”
“임페리얼 오크의 생태와 역사, 크라이라는 오크의 인간상, 귀환자님과의 인과관계 등등. 필요한 것은 다 들었을 거 아냐. 그걸 다 조합하면 답이 나와.”
시라노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크라이란 녀석은 임페리얼 오크를 싫어해. 아주 역겹다고 여기고 있지.”
“예?”
“그래서 아예 여기서 다 뒈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예??”
“그리고 그런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 이렇게 된 거 존경할 만한 남자와 싸우다가 확 죽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거야.”
“그럼!”
그런 이야기를 유승우에게 한 것인가!?
경악하는 안톤을 향해서 시라노가 눈을 찡긋했다.
“냉큼 뛰어가던걸.”
“그건 전부 다 사령관님의 추측일 뿐이잖습니까!”
“맞아. 그러니까 본인의 눈으로 확인해 보라고 했지.”
내 생각이 맞았으려나?
시라노가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