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46)
괴식식당-246화(246/613)
246화. 크라이 워몽거 (4)
승우와 크라이는 한 번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전력을 다하지도, 필살의 기술도 아닌 그저 가볍게 인사삼아서 내지른 공격이다.
그러나 결과는 굉장했다.
검과 주먹이 닿는 순간 발생한 충격파로 황궁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다.
포위하고 있던 군사가 사라진 것은 덤이었다.
그런 파괴의 현장에서 승우는 천천히 어깨에 검을 걸쳤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아직 있다.
“크라이,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본격적으로 해볼 판에 질문이라니, 너답군. 뭐가 그리 궁금하지?”
“왜 너희 종족을 자살하는 자리에 떠밀었지?”
크라이가 한쪽 눈을 크게 떴다.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사정 설명을 해주니 이쪽의 머리 좋은 사람이 그러더군. 지금의 군사작전은 전문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악수(惡手) 중의 악수라고. 군사를 죄다 죽여 버리고 싶을 때나 쓰는 전략이라고 확신하더라.”
“흐응… 꽤나 머리가 좋은 녀석이 있군. 아니, 이건 머리가 좋은 수준이 아닌데. 예지 능력자인가?”
“미약한 예지 능력도 있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덕이겠지. 그래서 답은?”
크라이가 웃었다.
“맞다. 나는 놈들을 다 죽이고 싶다.”
“왜지?”
“왜냐고 묻는 게 더 이상하군. 임페리얼 오크란 녀석들은 아무리 해도 정이 가질 않아.”
“그건… 이상하잖아.”
크라이와 승우의 관계는 40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왔다.
그 시간 동안 교류하며 서로의 생각을 수도 없이 주고 받아왔다.
승우는 크라이가 자신이 임페리얼 오크라는 사실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좀 더 종족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변했나.”
“간단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신이 되고 나니 그토록 역겨운 종족이 없더군.”
“뭐?”
“너는 인간의 신이 됐는가?
“아니. 되고 싶지도 않아. 내가 인간인데, 인간 위에 군림하다니 끔찍해.”
“잘 생각했다. 할 게 못 된다. 종족을 대표하는 신이 된다는 것은 녀석들의 구질구질하면서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썩은 욕망이 가득 담긴 기도를 매일 아침, 밤마다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할 게 못 되지.”
신이 된다.
신앙을 가진 신도를 갖는다.
승우의 경우는 자신을 모시는 신도가 매우 적었고, 그것도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 터라 기도의 빈도가 매우 적다.
적어도 테라에 있는 신도들은 테라에서 알아서 잘 처리해 주고 있으니 실제로 신도라고 할 법한 것은 화신인 백강혁 정도다.
녀석의 기도가 짜증이야 나긴 하지만 그래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게까지 기도가 짜증 나?”
크라이가 입가를 올렸다.
명백한 멸시의 표정이었다.
“수천 마리의 오크 놈들이 나에게 비는 소원이란 매번 똑같지. 강해지게 해달라, 더 쎈 적을 나타나게 해달라.”
“오크답군.”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볼까? 노력은 안 했지만 더 쎈 적과 싸워서 최고의 싸움을 즐긴 후에 아슬아슬하게 내가 이기고 그 결과 더 강해지게 해달라. 기왕이면 적은 자신이 본 적이 없는 기상천외하고 재밌는 기술을 썼으면 좋겠고, 싸움은 아슬아슬할수록 좋아. 그리고 보상은 클수록 좋지. 생각도 못 해본 무기였으면 좋겠고, 그게 자신과 딱 맞아떨어졌으면 더 좋겠다. 대체로 요구사항은 이 정도야. 판에 박힌 듯 똑같지.”
“그건 지칠 만해. 하지만 아직도 죽이려는 이유로는 약해, 크라이.”
기도에 지쳤다고 해도 신이라면 기도 정도는 차단할 수 있다.
그냥 수신 거부를 하면 끝 아니던가.
한 귀로 흘리는 거야 일도 아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종족을 다 죽이려고 하는 건…….”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그저 종족 자체가 싫어졌어. 친구여, 묻겠다. 지구에는 수많은 게이트가 생기고 침략자가 오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아무래도 좋은 행성이니까.”
“우리들의 행성과는 수준이 다르지. 비옥하고, 물은 많고, 종의 다양성도 있으며 신화체계는 탄탄한데 정작 군림하는 신은 없어서 점령한다면 막대한 신력을 무한하게 얻을 수 있으니까. 자, 그래서 무수하게 침략자가 쳐들어오지. 그런데 지구로 오는 것이 침략자뿐이던가?”
“아니지.”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의 출신이지만 호의를 가지고 온 존재이거나, 사고로 인해서 본인이 원하지 않은 상태로 표류한 이가 있다.
이런 이들은 긍정적으로 대화하고, 정보를 나눈다.
곰 수인 우르크의 페로나, 아일루로스인 나비, 켈빙족인 펭귄 레미가 그런 경우다.
크라이가 짜증을 담아서 으르릉거렸다.
“그렇다면 우리 임페리얼 오크는 어떤가.”
임페리얼 오크는 명백한 침략자다.
싸우기 위해서 차원을 이동하고, 이동한 곳에서 전쟁을 해서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재로 만들고 떠난다.
본인들은 아무런 문명도 사상도 없다.
지구인의 눈부신 과학도 테라의 아름다운 예술도 지오그란트의 증기 문명도 없다.
아름다움을 볼 눈이 없고 식사를 즐길 혀가 없으며 음악을 들을 귀가 없다.
오크에게 있는 것은 싸움과 파괴뿐이다.
“그런 이들을 뭐라고 부르지?”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하는 자.
게이트를 넘어오는 재앙.
그것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종족.
그런 이들을 부르는 단어는 딱 하나.
“몬스터.”
“그래. 임페리얼 오크는 몬스터다.”
크라이는 테라에서 승우를 만났다.
우정을 나눴고, 음식을 나눠 먹었으며 여행을 했다.
테오가 하는 정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레나토에게 신들의 이야기와 미담, 전설을 들었고 승우에게 인간의 도덕과 문명,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크라이가 사납게 가슴을 쳤다.
“나는 몬스터가 아니다. 몬스터는 죽인다. 그게 내가 임페리얼 오크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유다. 이제 답이 됐나, 친구여.”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충분히.”
시라노의 말이 맞았다.
그는 임페리얼 오크를 다 죽이고 싶어 했다.
자신의 종족을 멸절시키고 싶어 하는 신이라니, 끔찍한 일이다.
아니길 바랐지만 어쩔 수 없다.
그의 선택이니 존중할 수밖에.
다행인 것은 시라노의 예측 중 두 번째는 틀렸다.
“그럼 싸우자.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겠다.”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투지.
크라이는 승우와 싸우다가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싸워서 이길 작정이었다.
어디까지나 당당하게, 정면에서 망설임 없는 전력의 싸움을 해서 이긴다.
승우의 전력은 쉽게 볼 수 없다.
그가 진짜로 힘을 내면 대륙이 부서진다.
관계없는 생명체가 휘말려서 몰살을 당하고 행성이 영구적으로 파괴된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힘을 조절한다.
조절해도 여태까진 모두 다 이겼겠지만.
글쎄, 자신과 싸워도 그럴까?
“전력을 내라. 그럴 무대를 만들었다.”
크라이는 그런 승리 따윈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서로 진짜 실력을 내어도 상관없는 지오그란트의 땅을 무대로 선정했다.
함정을 파고 지구를 침략하는 행성이다.
승우는 적에게는 용서가 없기에, 여기서라면 모든 힘을 쓸 수 있겠지.
크라이의 소름 돋는 집념에 승우가 살짝 웃었다.
“아까 말한 우리 쪽에 머리 좋은 사람이, 네가 자살하고 싶어 한다던데.”
“미쳤군. 머리가 좋은 이들은 종종 자신의 논리에 매몰되곤 하지. 휴식을 권하는 건 어떤가.”
“그대로 전해줄게.”
이걸로 서로 간에 마음의 의혹은 없어졌다.
그냥 전력으로 치고받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승우가 어깨를 풀었다.
“예전부터 누누이 말했지만 말이야.”
“……?”
“몇 번 덤벼도 너는 날 못 이겨.”
“뭐라고-!”
“그러니까.”
그가 양손에 검을 들었다. 케라우노스와 아스트라페다.
두 검으로부터 전기가 흘렀다.
“이번에 져도, 원망하지 말고 또 덤비라고.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친구가 자살할 생각이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역시 져줄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크라이가 크게 포효했다.
그러자 태풍이 몰려왔고 하늘이 갈라지며 낙뢰가 떨어졌다.
지오그란트의 대지가 흔들린다.
포학과 투쟁의 신 크라이.
검과 승리, 괴식의 신 유승우.
두 신이 정면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전쟁 발발로부터 50분.
노도처럼 밀려오는 오크의 군세는 실로 위력적이다.
작전 개시 전까지 사방에 흩어졌던 헌터들은 힘들게 기지로 돌아왔다.
한발 빠른 시라노의 명령 덕분에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부상자는 많았다.
“나노스킨의 잔량은 충분해?”
“충분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나노스킨으로는 치료가 안 되는 부상자겠네요.”
“끙.”
나노스킨은 파스처럼 생긴 물건이었는데, 나노머신이 상처 부위로 들어가서 상처의 악화를 방지하고 재생을 돕는 물건이었다.
재생자가 사용한다면 굉장한 효과를 보여주지만 재생 능력이 없는 헌터에게 사용할 경우엔 마법 같은 효과는 보여줄 수가 없다.
마법이라면, 역시 포션이지.
먹는 걸로 모든 상처가 낫는 마법의 약.
“포션의 잔량은 어때? 몇 달 전부터 그 난리를 쳐서 모았으니 충분하지?”
“사전에 박박 긁어 왔지만 워낙 귀한 거라 턱도 없습니다. 긴급한 부상자에게 사용해서 부상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선에서 뛰는 이들도 챙겨야 하니까요.”
안톤의 말에 시라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아이고. 대가리가 아프네.”
부상자를 챙기자니,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싸우는 중인 헌터들도 문제다.
포션은 여벌의 목숨과도 같은 거라 한 개가 있으면 한 번 덜 죽을 수 있다.
귀중한 생명 줄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포션을 이미 부상을 입은 자에게 써봐야, 죽을 부상인 사람이 덜 죽을 부상이 될 뿐이었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0명입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보호 장구들.
많은 치료 도구,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살리는 생명 유지 장치.
동료들과의 깔끔한 연계와 끈끈한 우정.
그리고 뛰어난 지휘력과 운이 있어야 가능한 결과다.
시라노가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아직 내 기록은 안 깨졌구만.”
“깨지기까지 초읽기지만요. 어떻게 합니까?”
선택의 기로다.
포션을 부상자와 전선에 선 사람.
이 중 누구에게 우선 공급하는가.
시라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고민할 일도 아니다.
답은 하나뿐이다.
전선에 선 사람에게 줘야 한다.
그래야 이 전선이 유지되고 수성전을 성공리에 끝낼 수 있다.
“사령관님.”
“보채지 말아봐. 제기랄, 다 살리고 싶다고. 일단 회복 능력자들은…….”
“처음에 지시하신 대로 마나 보유량에 맞춰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후… 미치겠네. 뾰족한 수가 없다면 어쩔 수 없지.”
1초가 늦으면 1명이 죽는다.
지휘관의 판단력에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찾을 시간에 빠르게 선택해야겠지.
시라노가 어금니를 깨물면서 포션 공급 승인을 내렸다.
“사령관님은 옳은 판단을 하셨습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위로는 됐어. 젠장…….”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겠지만. 모르지. 우리 귀환자님이라면 뭔가 기적 같은 수단이 있었을지도.”
주혁진 총장이 있었다면 그 귀중한 귀환자 찬스를 고작 몇 명을 더 살리자고 쓰냐고 화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시라노의 본심이었다.
아무도 죽게 하고 싶지 않다.
어리광 같은 말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가지면 안 되는 마음이지만, 그런 마음이다.
혀를 차고 머리를 긁고 화를 내다가 상황판을 봤다.
지휘해야 한다. 안 되는 일에 미련을 가지면 안 된다.
하지만 미련이 그리 쉽게 지워지는 일이던가.
“다른 방법이…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생각해라.”
시라노가 손톱을 뜯으면서 중얼거릴 때였다.
지휘통제실의 자동문이 열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
“여기다뿌.”
아래를 보니까 영식이가 있었다.
작아서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아, 아래였군. 파란 존만아, 뭔 일이냐. 여긴 출입 금진데.”
영식이가 뭔가를 내밀었다.
동그란 밀가루 부침?
어디선가 본 모양인데.
“호떡 머겅!”
뿌- 하고 영식이가 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