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48)
괴식식당-248화(248/613)
248화. 각오 (1)
‘언제였더라?’
친구들 중에서 처음으로 두 번째 신명을 얻을 때였나?
‘아니야. 그보다는 조금 더 됐지.’
그래. 첫 번째로 신명을 얻을 때였다.
힘들게 싸우고 어렵사리 검의 신명을 얻었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런 한편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검을 들고 상대와 싸운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변칙적인 룰이 추가된 가위바위보와 같다.
가위는 바위에게 진다.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보에게 진다.
보는 가위에게 진다.
찌르기는 그 속도가 빨라서 모든 베기를 이긴다.
하지만 횡, 종으로 움직인다면 피하기 쉽다.
베기는 찌르기보다 느리지만 횡으로, 종으로 움직이는 적을 벨 수 있다.
막기는 타이밍만 맞으면 모두 다 막을 수 있다만 결국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무기의 성능, 지형, 상대와 나의 속도, 힘의 격차, 그날의 컨디션 등.
가위바위보에는 없는 특별한 규칙이 계속해서 추가된다.
그런 복잡한 변수를 넣어서 엮인 것이 싸움이다.
‘그런 싸움의 기본을 잊은 게 신명을 달고부터였지.’
검의 신명은 승우와 너무 상성이 좋았다.
검의 천재, 검의 정령이라 불리던 자가 검의 신이 됐으니 당연한 일이지.
본래 신명이라는 것은 ‘그렇게 태어난’ 타고난 신족과 신격을 얻어 죽을 만큼 수련한 자가 얻는다.
후자인 승우가 검의 신명과 어울리는 것은 당연지사.
폭발적인 시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너지를 얻고 잃은 것이 있다.
‘싸움. 올바른 싸움.’
적과의 간격을 재고, 상대의 수를 읽는다.
찌르기, 막기, 피하기, 베기, 쳐내기, 최선의 수를 찾아서 최적의 행동을 한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고, 때로는 질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최선의 수가 없어 최악을 피해 차악을 고르는 일을 한다.
자신이 추가한 규칙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고, 적의 규칙을 이해해 내 것으로 만든다.
때로는 내가 추가한 규칙이 적에게 이용되기도 하지.
그 공격과 방어의 흐름은 어렵고 힘들지만 이겼을 때는 최고로 기쁘다.
하지만 승우는 그 기쁨을 잃어버렸다.
신명을 얻은 그에게는 더 이상 그러한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검을 내지르면 막을 자가 없었으며 피할 자도 없다.
누구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강하다.
초마왕이라는 규격 외의 적을 제외하고는 싸움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그리고 초마왕을 쓰러트리고 세 번째 신명을 얻은 그에게 누가 맞설 것인가.
살짝 무료함에 빠져 있던 그에게.
“재밌는데……?”
크라이는 오랜만에 싸움의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 * *
의지에 반응하여 광전사의 수갑이 크라이의 힘을 몇 곱절로 강하게 만들었다.
폭발적으로 치솟는 투기를 휘감고 짧게 주먹을 끊어 쳤다.
기를 내뿜는 발경의 수법 중에서도 위력이 높기로 정평이 난 촌경의 이치였다.
본래라면 촌경, 손가락 하나 굵기의 짧은 공간에서만 효과적인 기술이지만 이미 권의 극의를 이룬 크라이에게 공간의 제약은 없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충격파.
공간이 일그러진다.
효율적으로 압축된 공격이라, 힘의 손실이 적다.
그리고 빠르다.
피하기도 힘든데, 맞으면 죽는다.
“좋은 기술이야. 신명 하나 정도의 신이라면 어버버하다가 죽었겠는걸?”
물론 그런 신들과 나는 비교할 수 없지.
승우는 순식간에 200개 이상의 대처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을 골랐다.
‘이런 건 튕겨 내줘야지.’
촌경의 기파를 읽어내고 검기의 파장을 조절하여 공명시킨다.
그리고 각도를 조절한다면 대부분의 기는 튕겨낼 수 있다.
“!”
자신을 향해서 쇄도하는 촌경을 보고 크라이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승우는 튕겨내는 것과 동시에 수억 발의 벼락을 발사했다.
크라이는 호흡을 정돈하며 화경의 수법으로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촌경이야 본래 자신의 기로 만들어낸 충격파니 무력화가 쉬웠고, 벼락은 한 번 본 기술이니 대처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방어 동작에 들어가는 0.1초. 찰나의 시간.
승우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느새 쇄도한 그가 크라이의 방어막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번개 찌르기, 강혁이 사용했던 검성기다.
그러나 효과는 아예 달랐다.
요란한 소리도 방전되는 번개도 없었다.
그의 검은 소리를 두고 왔다.
검은 조용히 크라이의 방어막을 부수고 들어가 그의 단련된 육체를 밀어냈다.
소리와 번개는 조금 늦게 울려 펴졌다.
“우오오–!”
크라이가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지면을 뚫고 끝없이 밀려들어갔다.
“크아아악-!”
콰드득, 콰드득 하는 소리가 등으로부터 전신에 퍼진다.
다른 행성보다도 훨씬 뜨거운 지오그란트의 지열이 크라이를 덮쳤다.
하지만 크라이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모든 걸 버텨냈다.
단번에 구멍이 나지 않은 것은 크라이가 뒤늦게나마 기를 모아 명치를 막은 까닭이다.
‘잊고 있었군. 놈과 나의 결정적인 차이는 속도가 아니라 효율인 것을.’
속도가 같다고 가정해도 승우는 빠르다.
동작에 낭비가 없고 완벽하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 효율성을 바탕으로 놈은 남이 한 동작을 할 때 두 동작 이상을 할 수 있다.
‘멍청하게도.’
수천 년을 단련해 온 주제에 그것을 그새 까먹다니-!
그 대가로 지면으로부터 수천㎞를 뚫고 처박혀야 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광전사의 수갑은 그것을 강한 의지로 받아들였다.
의지를 힘으로 바꿔 한계를 모르고 힘이 치솟는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크라이가 양팔을 뻗었다.
우드득 하고 단단한 맨틀이 잡힌다.
최대로 집중한 기감이 승우의 위치를 찾는다.
녀석은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우오오오오오-!”
크라이는 온 힘을 모아서 녀석에게 잡히는 것을 던졌다.
지오그란트의 대지가 뜯겨 나왔다.
평소에는 불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광전사의 수갑이 그에게 엄청난 괴력을 부여해 주고 있다.
솟구치는 용암, 그리고 대지.
자신을 향해서 쇄도하는 땅덩어리를 보며 승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뭔 괴력이냐. 헤라클레스도 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
오랜만에. 정말로 오랜만에 피한다는 선택지와 튕겨낸다는 선택지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르면 그만이지.”
왼손에 든 검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오른손에 든 검을 위에서 아래로.
쇄도하던 땅 덩어리가 십자 모양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크라이가 날아왔다.
방어조차 하지 않고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었다.
무모한 일이다.
대륙조차 가르는 십자참이다.
맞으면 크라이라고 할지라도 네 동강 난다.
하지만 크라이는 그 공격을 온전히 버텨냈다.
승우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엇-?”
“방심했구나-!”
노 가드로 승우의 십자참을 버텨낼 정도의 방어력!
그것은 그의 힘이 아니라 신명 무구의 권능이다.
광신의 투구-!
크라이의 두 번째 신명 무구다.
싸움에 대한 의지만큼 자신의 방어력이 올라가는 능력은 간단하지만 그만큼 강력했다.
‘벌써 두 번째 신명 무구를?’
광신의 투구는 효과 지속 시간이 짧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국면에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크라이는 그것을 탐색전에서 바로 사용했다.
힘을 아끼기보다는 단번에 전개해서 싸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크라이의 도박이었다.
도박은 성공했다.
크라이는 자신의 주먹이 승우에게 닿았다.
물론 제대로 친 게 아니라 검의 위를 친 것에 불과했지만 처음으로 거리를 좁혔다.
서로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의 밀착 거리-!
“주먹의 공간이지.”
수억 발의 공격은 승우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크라이는 한 호흡을 몰아쉬며 수억 발의 난타를 가했다.
한 방 한 방이 산을 무너트리고 용을 죽이는 일격이다.
거리를 벌리는 승우에 맞춰서 거리를 좁히며 난타를 이어간다.
제대로 명중하진 않는다.
이런 상황에도 그는 검신이다.
검의 벽은 뚫리지 않는다.
난공불락, 철의 벽, 최강의 요새.
그의 방어 기술은 완벽이란 글자 그대로 틈이 없다.
수억 발의 공격이 막히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벽이라도 뚫는다.
그렇게 믿는다.
수천 년의 의지를 모아, 주먹을 내지른다.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억이라는 단위가 조(兆)가 됐다.
조짐, 점괘를 의미하는 단위의 힘이었을까.
믿음이 힘을 발휘한 걸까.
“큭-!”
처음으로 주먹이 승우에게 닿았다.
그의 입가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녀석도 고통을 받는다. 인간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스럽게까지 느껴졌다.
그의 입가에서 튀는 피가 수천 년의 싸움을 보상해 주는 것 같았다.
‘이길 수 있어. 녀석은 무적이 아냐!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고!’
승기가 보인다.
그렇게 공격을 이어갈 찰나, 크라이는 문득 공격을 멈추고 몸을 피했다.
그러자 승우가 만든 심검이 크라이의 목이 있던 자리를 베고 사라졌다.
빠르고 정밀하며 규모가 작지만 크라이의 목을 자르긴 충분한 위력이다.
만약 조금만 더 공세를 이어갔다면 즉사했겠지.
단련된 전사의 감각이 그를 살렸다.
그러나 크라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기뻐하진 않았다.
승우가 입가를 닦으며 웃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방심했어. 진짜 대단하네. 세상에나, 그 타이밍에 신명 무구를 써서 내 공격을 막아? 하. 끝내주는군.”
“고작 이 정도로 대단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런 건 내 발밑에서 말해야지.”
크라이의 등에 한줄기의 땀이 흘렀다.
지치진 않았다.
하지만 승우의 분위기가 변했다.
“아니야, 크라이. 제우스나 포세이돈, 하데스는 셋이 모여도 놀면서 한 손으로 처리할 수 있었어. 역시 그 바보 셋과 너는 격이 달라. 훌륭해.”
“…….”
“이런 훌륭한 싸움을 놀면서 하는 건 실례지. 좋았어.”
웃으면서 검을 교체하는 승우.
그것을 보며 크라이가 떠올린 것은 초마왕이었다.
힘겹게 치명상을 입혔다 싶었더니 웃으면서 놈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페이즈 2.]“그럼 지금부터 페이즈 2.”
크라이의 귀에 초마왕과 승우의 목소리가 겹쳐 들릴 때.
그가 인벤토리로부터 새로운 검을 꺼냈다.
그것은 그의 신명 무구, 아이온이었다.
“그렇지, 그렇지. 그거다. 그걸 기다려 왔다.”
크라이는 흥분과 기대로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천천히 웃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 * *
사망자 0.
전쟁에서는 꿈같은 소리지만 시라노는 그걸 원했다.
ISAC의 지휘관이라면, 책임자라면 누구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침략자들이야 백이든 천이든 만이든 죽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의 형제자매, 동료들은 한 명도 잃을 수는 없다.
이기적이면서 어처구니없는 유아적인 바람이다.
전쟁이라면 누군가가 죽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내 작전대로 가면 할 수 있어.”
승우로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그렇다는 것은 적의 대장은 승우가 막아주는 모양이다.
파괴와 폭력을 좋아하는 임페리얼 오크의 대장이다.
그런 놈들의 대장은 가장 강한 사람이 하게 마련.
아마도 놈이 전장에 나왔다면 사망자 0명이라는 것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겠지.
압도적인 힘으로 아군 병사들의 목숨을 빼앗을 거다.
보스라는 건 그런 놈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쟁의 최고 공훈자는 단연코 유승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의 싸움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다급하게 무기를 들고 총을 쏘는 레이첼이나 열심히 호떡을 굽는 영식이, 나비, 은하.
최전선에서 적의 배후를 치기 위해 유격활동을 하고 있는 25발의 화살, 퍼스트 오더.
부상을 무서워하지 않고 적의 대군을 막아서는 병사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레벨 업 하겠냐고 공포를 이기고 독려하는 헌터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버섯 따러 가는 버섯새끼들을 빼면 모두가 다 공훈자다.
“저 개새끼들은 전쟁만 끝나봐. 전부 교수대로 보내 버리겠어.”
“시라노 사령관님! 이거 전체 방송입니다!”
“놀랍겠지만 알고 하는 말이란다.”
전쟁은 이기고 있다.
시라노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상황판을 주시했다.